"우리가족 이야기"---(1) (공부보다 인성교육이 먼저다)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난 가족들을 인솔하여 잠실 야구장을 찾곤한다. 때론 김밥을 싸가기도 하고 가끔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준비하기도 한다. 처음에 집사람은 별로 내키지않아 했지만 차츰 야구에 묘미를 붙이곤 이젠 시즌만 되면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한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더 야구에 대해 상식이 많다. 메이저리그가 어떻고 박찬호가 어떻고 하면서 말이다. 아니 야구뿐만이 아니라 한창 입시시절에서도 난 꼭 어딜 데리고 다녔다. 누군 입시를 앞둔 고3 이면 온가족이 숨도 제대로 못 쉰다고 하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될 놈은 하루쯤 공불 안 해도 되고 떨어질 넘은 제사도 안 지내고 입시준비해도 떨어진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조 용필 콘서트"---걔네들에겐 한마디로 바늘방석에 앉은것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정도는 기성세대들의 음악을 알아야하고, 난 또 그들의 세계도 알려고 언제한번 젊은 프로(?)가 오면 언제던 함께 가자고도 했지만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는걸로 봐서 별로인가 보다. 아마도 여자애들이였다면 틀림없이 실행 했을 것이다. 하여간 난 그들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일요일이면 단골 만화방에 데리고 가서 자장면도 시켜 먹어가면서 책과 친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나쁜 책이래도 보질않는것 보담은 나으니까-그러던게 사오년전부턴 두넘들이 각기 군대를 가게되면서 조금씩 기회가 전원이란 말이 힘들어졌다. 많지도 않은 식구가 꼭 한두사람이 빠지게된다. 한집 살면서도 함께 아침같이 먹은지도 언젠지 기억이 나질않는다. 무슨 놈의 약속이 그리도 많은지? 쓸데없이 전화와서 방핼하는 친군 또 왜 그리도 많은지? 하는 수 없이 엊그젠 "보성행" 이 "맨데토리"라 했다. 난 언제부터인지 "북괴의 4대 군사노선" 을 내 생활에 대입시켜 실행해오고 있었다. 양놈이던, 왜놈이던, 뙤놈이던 또한 빨갱이 놈들이던 좋은 점이 있다면 본 받아야 한다고 난 늘 생각했고 실행해왔다. "전 장비 현대화" 를 "전가족 H.P 현대화"로 바꾸어 해마다 12월이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사람씩 내 돈으로 교체 해준다. "전 국토 요새화"는 "전 방(房) TV 시청화" 로 시행으니 서로 리모콘 쟁탈전이 없어 좋았고 "전인민 간부화"는 "전가족 간부화"로 시키기 위해 가끔씩 가족회의로 준빌(?)한다. (살아가는-#864, 03년 6월 2일-- "흑백 TV 시절이 그리워"-숙이님 글 참조) 마지막 "전인민 무장화"는 "전가족 드라이버화"로 바꿔서 일찌감치 면허를 따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사실상 W.는 두 아이들 보다 경력이 많이 앞서지만 실력은 뒤떨어진다. 따라서 이번 "보성차밭행"은 실로 오랫만의 가족 나들이가 아닐수 없다. 더우기 앞으로 큰넘의 직장생활이나 작은넘의 복학이 되면 더더욱 어려울것이다. 집사람과의 행차는 수시로 생각날때면 언제나 이뤄진다. 밤 열두시고 새벽 두시고 내키는대로 떠나면 된다. 그러나 네식구가 함께 장거릴 동행한건 '01년말 만리장성을 다녀온후 처음인것 같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집사람의 운전기피증도 좀 해소하고(언젠가 후진하다 크게 혼난적이 있었으며 그 후론 안한다고 함) 작은넘의 고속통행연습도 좀 시킬겸, 겸사겸사해서 아예 출발시부터 운전댈 맡겨 버렸다. 그러나 출발시 부터 삐꺽대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일을 저질르고 말았다. 큰넘의 말대로 처음부터 잘아는 퇴계원으로 해서 중부 고속도로를 가면 될터인데 굳이 서해안 고속도롤 고집하다가 어디서부터 잘못된지 눈을 떠보니 신림동이 나오고 과천간판이 보이고,서울대학교 팻말이 나오질 않은가? 나도 한동안 서울에서 남의 자가용 기사로 근무한적도 있었지만 워낙 오래된 터이라 아물아물 잘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행주대굘 탄것까진 잘 됐으나 시흥으로 죽 뻗은 도롤 잘 못 들어선 모양이다. 하루 전 미리 테스크를 줘서 알아볼 시간을 줬는데도 사전 준빌 안한듯 하니 스스로 반성하겠지 했다. 아빠가 한참 담배를사랑하던 시절---(하루 네 갑을 피울적도 있었다)--- 큰넘이 이불을 좍 깔고 두다리를 쭉 뻣고 담밸 꼬나물은채 허공에 대고 후후 품는 시늉을 하다가 내게 걸렸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성냥불을 켜서 한모금 깊이 빨고 오장육보를 한바퀴 돌게 만들어 흰연기 품게 만들었다. "콜록콜록!" 온통 울며 불며 난리가 났다. 제 어미가 더 지랄(?)을 했다. 그 후론 담배를 만지는것 조차 꺼려했다. 물론 작은넘도 안 피운다. 지금은 비록 한,두어 시간을 손핼 봐서 타격이 심하겠지만 나중엔 크게 깨우치리라. 난 사실 며칠째부터 오랜 고질인 허리가 도진것이며 사실 약속만 아니었더라도 포기하고 싶었다. 어쨋거나 끝까지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과 책임을 지워야 된다. 아홉시 반에 출발하여 보성에 도착하니 아침 여섯시가 조금 넘었다. 실로 두 세시간은 더 걸린 셈이지만 안전하게 도착시켜준 막내에게 고맙다구 해야겠다. |
밤 새워 운전한 덕분으로 거의 모두가 율포 해수욕장 해수-녹차탕에서 샤워를 한다.
주차장엔 먼저온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
창 밖을 내다보니 그 유명한 율포 해수욕장이 보인다.
이게 숙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녹차잎이야.(난 아직 단둘이 있을땐 淑이라고 부른다.)
제가 가끔 전우님들과 대화를 할려고 방에서 안나오면 저희들끼리 깔깔대고 웃는다.
뭐냐고 물으면---벌써 왕따를 시킨다. 허지만 때론 유일한 나의 고우-스톱 파트너 들이다.
작은 아들 - 이번 여행에서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아라.
(내일 부터 보름 정도 국내 여행을, 끝나면 구라파를 배낭여행으로 혼자 갈것입니다.
장래 관광업계를 뒤흔들(?) - 홍 연일)
"형제는 용감하였다." ---이넘들이 서로 잘못 가는듯 해요.
음악을 좋아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리고 몇번의 시련을 겪은바 있는 대기만성형인 둘째는
활동적인 "관광경영과" 이고 (오히려 성적으로 장학금도 탐)
반대로 혼자 알아서 한번도 신경 안쓰게 만든 활동적인 큰애는 가만히 책상에
들어박혀 앉아일하는 "임상병리과" 랍니다.
이놈은 차라리 제에미 의류장사하는데서 '알바' 하는것이 더 적성에 맞는듯 함.
(아 글쎄 재학시절엔 엉뚱하게도 축구감독을 맡아 오히려 장학금을 타드라구요)
둘이 서로 주특기를 맞바꾸었으면 하지만 세상사 뜻대로 안되는 거드라구요.
엊그제도 제에미가 모처럼 식구외식 한번하자고 시외 변두리에 "초계탕" 을 먹여주려고
가는중에 자꾸 시계를 보면서 불안해 하는겁니다.
교통은 막히고 시작 시각은 닥아오지 안절 부절을 못하는겁니다.
자꾸 중간에서 채근을 하는겁니다.
그냥 간단한 옛날 짜장이나 먹자고--- 실은 제가 할소리였지요.
얼마나 빨리 집에와 경기를 보고팠으면 식사가 덜 끝났는데도 일어나더니
지가 계산도 하고, 시동걸고 야단 법석이었으요.
박 주영이가 종반에 넣어 1:1 로 겨우 비긴 월드컵최종 예선전이 결과였지만---
"얌마! 아직은 아빠가 계산할수 있어" (알나 자지에 밥풀을 따 먹지)---
그날은 큰넘이 학생복 알바를 이십여일간 하고 겨우 몇 십만원 돈을 만진 날이였답니다.
어때? 가게 하루 문 닫길 잘 했지?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꾸나!
"이봐! 마눌-뭘 그리 골똘히 생각는게야. 대충 사는게지."
"그때가 좋았으요."
"어느때?"
"내가 백화점 의류 판매원으로 있을때 말이야요."
(또 그얘기) ---얘기인즉슨---97년도 일이었다.
최씨집(처갓댁 형제,자매) 네식구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우리가) 친정엄마 모시고
제주도를 3박 4일 놀러다녀 왔다는 사실이 온 친목회내에서 몇날 몇일을 두고
화제에 올랐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네 골목친목회는 모두가 장사를 하는
지독한 무리들의 계모임이었다. 일년 내내 하루도 쉬질않는 오로지 돈만 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모임이 언제나 밤 열두시가 되어야 겨우 소집될 정도였다.
서로가 다른 업종이어도 장사를 하면 모두가 경쟁의식이 생기는가 부다.)
사람들 틈에 나만 홍일점으로 봉급쟁이였다. W.도 마찬가지였고---그들로선
부러울만하지.
"회장님이 너무 부러워요"
한 마디씩 한다. 다만 돈을 못벌어서 그렇지! 게다가 형제 둘 다 기명색 상의의
(갈색 계통의 상의) 議高가 아닌가! ---난 비록 백화점 점원에 불과하지만
아들 둘다 한수 이북의 최고 학교에 다니고 --- 긍지를 가졌다고 했었다.
그러면 뭣해? 지금은--- 둘다 "S전문대" 출신의 빈둥빈둥과의 "이태백" 인걸---
야! 큰 애야. "아이스 크림" 먹고 속 차려라.
되지도 않을 발표 기다리지 말고 장사나 하지! 암 장사가 최고야! ---
올해 초순에 시험친 "국립암센터"(일산) 1차 합격 발표가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떨쳐버리질 못하고 있다. 뭐 저 말로는 팔백명이 응시해서 이십명이 1차 합격하고
나머지 2차 면접을 기다리는데---세명을 뽑는다나-여태 발표가 안났다나,
싹수가 노란대두 철이 없는지?
"아빠 우리선배는 8개월만에 합격 발표를 받았데요."
이모 아들이 전문의를 하면서 (대전)개인 병원에 임상병리사로 취직을 시켜주겠단대도
큰 병원만 찾는다.(작은병원은 경력에도 들어가질않는다고---)
나라가 망할려니 별 거지 않은것도---하여간 의고 선배겸 이종사촌형과 전화 통화
몇 마딜 하드니 진로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러게 애시당초에 너완 노선과 방향이 틀리다니까---짜~식, 아직 배가 부르구면.
그럴줄 알았으면 주영이 처럼 축구나 시킬걸 그랬나?
인천 공항 근처에 외국계통의 병원이 생기면 그곳서 세계최고의 임상병리사가 되는게
꿈이라고 한다.
" 미친 넘"---그럴려면 우선 영어를 해야만 하는데 겨우 그 점수갖고 뭘해!
고생좀 하게 캐나다나 뉴질랜드로 유학(?) 좀 보내줄까해도 겁이 많은건지?
자신이 없는건지? 마다한다. 애초 정신 자세가 틀린 넘이다.
제 친구들은 사우디니 쿠웨이트니 일본이니 잘두 가드만---이넘 때문에 흰 머리가 는다.
정재성: 홍전우님의 보성 차밭 여행기 의미있게 읽었습니다.여기저기서 홍전우님의 다부지신 가장의 모습이 줄줄히 베어
나오는듯 합니다. 티 없이 맑아 보이고 또 건강해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을 뵈니 무엇 보다도 제일 부럽습니다. -[06/08-17:55]-
수색대: 홍하사님 가족사진을 보니 참 화목해보입니다. 사진도 능숙하게 잘 올리고 글도 잘 쓰고...많이 발전했습니다. -[06/08-18:30]-
bat29: 단란한 가족의 나들이 모습이 보기 좋군요! 사진도 잘 나오고, 시원한 녹차 밭 배경이 멋집니다.
-[06/08-19:01]-
오동희: 홍전우님 가족과 행복한 여행을 보내면서 녹차밭 풍경사진까지 올려주시니 -[06/08-21:57]-
오동희: 잘 봤습니다 가족사진 부럽습니다. -[06/08-22:00]-
수쇅대: 사람사는 게 별 건가, 행복한 게 별 건가. 홍전우네 별 거없이 행복한 걸 보고 나도 행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불행하게도 나는 이제까지 행복을 느낀 적이 없는 사람이랍니다. 아니, 전혀 없었던 건 아니고 잠시 순간적으로 느낀 적은 몇 번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보성 녹차 좀 주세요. 행복 좀 나눠주세요. -[06/08-23:04]-
최현득: 아버지 보다 훌쩍 자란 믿음직한 두아들과 짝꿍까지 같이 다니신 여행이 즐거웠겠습니다 티없이 맑은 미소가 너무나 행복해 보입니다 계획하시는 자제분들의 모든일이 잘이루어 지시길 바라고 빨리 며느리도 보셔야 되겠습니다 참 기분이 좋은글과 사진 입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06/08-23:11]-
홍 진흠: 지금다시 읽어보니 잘못된 글짜와 순서가 뒤바뀐곳이 몇군데 있군요. 전문가가 아닌 아마튜어니 이해하시고 대충 넘어 가십시다. 관심가져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06/09-23:09]-
권기주: 홍진흠님 가족과 함께한 여행이 정말 보기좋군요. 사모님과 두아드님 모습이 선하고 인상이 너무 좋습니다. 녹차밭 구경잘했습니다, -[06/11-19:25]-
홍 진흠: 권 기주 여사님께 죄를 짓는것 같아 송구합니다. 다음부턴 될수있는한 자제 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관심에 거듭 감사 드립니다. -[06/12-01:27]-
권기주: 홍진흠님 말씀 이해가 안갑니다, 죄를 짓다니요, 가족이 함께한 모습이 너무좋은데 저는 사진올리시면 무척 반갑게 봅니다, 저는 가족을 사랑하는 분을 존경하거든요 자주올리세요 -[06/12-18:42]-
홍 진흠: 아침에 통영에서 생신축하 한다고 전화왔었는데---조금전엔 어느틈에 목포에서 자고 내일이면 제주도로 갈것이랍니다. 형아가 아빠 생신이라 "송추가마골"(경기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소재 본점)에서 갈비 대접했다고, 그리고 네가 없어 서운해 했다고 제어미가 통활 하드군요. 서운은 자기가 해놓고 내가 무슨---권 여사님의 큰 그릇됨을 진작 알아모셔야 했었는데---전 다만 강 선배님과의 지난추억을 떠 올리실까봐---열심히 사시는 님께 건강과 축복이 언제나 함께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06/13-00:51]
無名: 홍진흠님! 제가 보기에 예리하신 분이라 가짜 숙이를 잘 알고 계신줄 알았는데,..."흑백티비"이야기를 쓴 숙이가 바로 저랍니다.인터넷상에서 이렇게 남의 아이디를 도용하며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을 처벌할수는 없는지요?단란한 가족이네요.아내되시는 분이 아주 미인이시고 애들도 엄마를 닮아 예쁘고,아빠를 닮아 반듯하게 보입니다 -[06/13-09:08]-
홍 진흠: 참으로 이상합니다. 큰애가 모직장에 첫출근 하던날-갑자기 1차 합격 발표가 나던날이기도 했습니다.(강남 코엑스 근처) 첫날 인터뷰 중에 연락이 왔다고 했는데--- 그러던 것이 엊그제 또 다시 다른 직장에 첫 출근 하던날(일주일간을 경주에 가서 근무)또 다시 연락이 온겁니다. 이번엔 단체로 가는 버스 안에서( 2차 합격했으니 면접보러 오라고 말입니다.) 날짜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말입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어쩌겠습니까? 칼자룬 저쪽에서(암센터) 쥐고 있으니 말입니다. 無名님! 그레도 부탁드리는 바는 계속 淑 이씨로 쓰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예리하질 못합니다. 그리고 가족 칭찬- 감사 합니다. -[06/15-03:51]-
홍 진흠: 고 문칠전우님-어쩜 오늘 아침에 저희 막내녀석이 인사차 (렌트카 반납차) 그곳을 들릴지도 모릅니다. 제주부회장님! 감사 합니다. 홧팅! -[06/15-07:38]-
문풍지: 홍형! 문단에 등단하시여 여러 글을 사랑하시는분들과 함께 노년을 즐기시기를 빌면서, 너무나도 화목하고 다정한 가족 사랑에 고개가 숙여지는 구려,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만드는 멋진 가족 사랑을 느껬다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06/17-04:05]-
홍 진흠: 장형! 드디어 이곳을 방문하시게 되었구려. 환영 합니다. 정식으로 데뷔 하셔서 살아온 "삶"을 서로 얘기해 봅시다. 전우님들! 문풍지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합시다. 20 여년간 같은 회사에 근무한 친구이자 동료이며 참전전우이시며 수색대 안전우님과 갑장이며 가족 역시 딸,딸,딸 그리고 막내가 아들이며 우리막내와 동갑입니다. 지금살고 있는곳은 방학동이며 전북이리가 고향이며 십자성부대 소속으로 비둘기 부대에 파견나가 무슨 건물을 지은것으로 압니다만 본인이 정식 이름과 소개를 부탁합니다. -[06/17-23:48]-
홍 진흠: 수색대와 능히 상대가 될만한 주량과 가끔은 행방불명된 서방님의 안부를 저에게 되려 묻곤하는 (내무장관께
우리집에) 전화가 옵니다. 첫따님을 여읠때 전라도 순천까지 제가 갔었고 둘째의 미아리 예식장엔-올해초 일어난 일입니다. 동생이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하고 미국유학도 다녀온(항시 존경하는 지 만원 박사님과 같은 케이스임) 우수한 두뇌집안의 장전웁니다. 제게 처음으로 "경적필패" 라는 단어를 실감나게 만들어준 장본인입니다. 서로 상대의 실력을 모르고 "장기" 를 두었을시 제게 충격을 안겨준 전우이지요. -[06/18-00:43]-
홍하사가 일본 처음으로 간 '오오사카 여행' 을 소재로 쓴 "가이드 유성주군"(역시 삭제됨)이란 제목에서 우리 작은아이가 적성에 맞을거라고 택한 4년제 대학(이공3계열)에 합격해 삼백사십만원의 입학금을 주고 한달 다니더니 취미에 맞지않는다고 했다.
그레서 재수하겠단다. 오케이! 그대신에 아빠가 등록금은 책임못지니 "네가 벌어서 가라" 하였고 그과정에 역전 지하식당에서
석달동안 아르바이트(식당에서 음식배달하면서 고생 좀 시켰다)하는둥 몇곳을 헤메이었다. 18년전 막내(연일)가 제주여행을~
한 후, 유럽을 배낭여행 다녀와서 4년제 대학을 접고 2년제 대학(관광경영과)에 입학하여 결국 '하나투어' 에 입사해 길을 텃다.
거의 일년의 절반은 외국으로 출장다니며 비록 고생도하고 보수는 적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므로 보람을 느끼는 듯 했다.
언젠가 20명의 친목회에서 제주도 가기로 결정하고 시일이 임박하고 목돈이 모이니 아무도 안가겠다는 거였다. 모두
장사하는 친목계원이었는데 그럼 우리끼리라도 가자니 울淑 마저도 단골과 약속이 있다며 핑계대며 안가겠단다.
그럼 나혼자라도 간다며 한라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물론 한라산도 혼자 올랐는데 인증사진 찍어줄 사람없어 전전긍긍하였다.
눈이와서 사방이 얼어버려 내려올때 조심조심 주의하며 노래부르며 하산했는데 44곡을 부르니 "상판악" 출발점이었다. ㅎㅎ
고문칠전우님! 님의 덕분으로 막내(연일)가 지금은 자기가 선택한 길로 잘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국의
전우님 다 아우르시고 언제나 미소를 지으시는 전우님과 고두승님께도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전우님들! 들으신적 아주 오래되셨죠? "My Heart Will Go On"('타이타닉' OST곡 - 셀린 디온입니다.)
첫댓글 전우님들! "베트남참전 인터넷전우회 회장 최종상" 으로 돼 있는걸 발견하시죠? 그전우님은 해병이신데~
지금은 해병전우님이 아무도 안 들어오시니~참 저아래 "의로운 삶"의 글을올리신 "고담 김길랑" 선배님이 해병님
이시군요.암튼 이제 모두들 지난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다 툭 치시고 함께 가시면 좋겠습니다.이제살면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