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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몽골 전통 음악에 ‘흠’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요. 제가 국악방송에서 들었는데 소리를 들이마시면서 내는 소리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 하모니카에 들어 마시는 것처럼 생각하면 되는데요. 그 흠이 정확하게 말하면 훔, 쿠미라고 합니다. 쿠 자체가 들이마시는 소리예요. 그 소리를 내는 게 내뱉는 소리와 들어 마시는 소리의 중간에서 나는 충돌로 내는 소리예요. 그래서 묘한 경계를 못 찾으면 소리를 못 내요. 요들송보다 어려워요. (뱉는)아하고 (들이마시는)아하고 만나는 경계점에서 혀떨림을 통해서 내는 소리예요.
이게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한테서 이렇게 혀에 손 넣어가지고 자리 잡고 해줘야 돼요. 현재 몽고에서도 쿠미를 할 줄 아는 사람이 100여 명이 안 될 거예요. 100여 명 훨씬 안 될지 몰라요. 그나마 제대로 하는 분들은 열 분 이내일 것 같아요. 그걸 왜 했느냐 그러면 몽골 사람들이 늘 신경 쓰는 게, 뭐 기마민족들의 만주족도 그런데요. 이 (머리 상단에 있는) 정문을 늘 열려고 해요. 정문이 정수리죠.
정수리가 어릴 때 열렸던 것처럼 그래도 음향의 반응이라도 꼭 있고 싶어 해요. 그 소리예요. 원래 그걸 하면서 기도하고 제사할 때 내는 소리였어요. 그 소리는 동북아시아의 모든 민족에게 조금씩은 남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중국에서도 이것 이렇게 하라고 딱 판결이 내리잖아요. 그러면 ‘우에-‘ 하잖아요. 그것도 같은 의미예요. “정확하게 받들겠다”라는 의미로 내는 소리에요. 그러니까 머리로 받들겠다라는 의미인데, 우리도 보면 그 무곡들 중에 그런 것들이 남아 있어요. 제가 그건 할 수 있는데 창피하니까 안 하겠습니다. 박수 쳐도 소용없어요. 나중에 할 수 있으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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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욕망과 욕심이 같은 건가요? 다르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건가요?
선생님: 욕(慾)은 일단 한자로 표현한 것을 두 자로 억지로 늘린 게 욕심(慾心)이죠. ‘욕’하면 끝날 건데, 보통 단어가 하나인 욕하면 어려우니까 그냥 욕의 늘린 말이 욕심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일단 욕이라고 줄여가지고 하는 욕심은 우리가 견물생심처럼 앞에 있을 때 그것을 내 쪽으로 당겨놓고 싶은 거예요.
내가 가지고 싶은 것, 그러니까 있는 식욕이라 그러죠. 그다음에 색욕이라 그러죠. 뭔 탐욕이라 그러죠. 욕이라고 붙으면 현재 눈앞에 보이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이 감촉할 수 있는 걸 내 것으로 만들려고 당기는 행위예요.
욕망이라 그러면 그렇게 그려지지 않는 관념적인, 철학과 과학과 의식이 만들어낸 개념적인 어떤 욕이죠. 현재 없는데 앞에 없는데, 뭔가를 해서 엄청난 박사가 되고 싶고 그런 거죠. 약간은 좀 멀리 가 있는 건데요.
아주 가까이 눈앞에 있고 감각 수단 앞에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욕이고, 그것이 일반적인 욕심으로 표현되고 그것의 연장선에 있긴 하지만 이 욕에 망을 붙였던 것은 바라는 거잖아요. 그리는 거잖아요. 없으니까 그리는 거죠.
꿈속에나 있을 법한 것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 욕망인 거죠. 그래서 큰 차이는 없을 수 있는데, 그 욕망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욕심도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욕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욕하느냐! 하는 건데요.
<논어>에도 보면 그 얘기들이 너무 많아요. 이건 욕심 낼 바가 아니다! 이거는 뭐 원할 바가 아니다! 또 어떤 때는 이걸 원한다 하더라도 설령 부유한 걸 원한다 하더라도, 이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는 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원하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지, 욕 자체를 하면 죽는 거예요. 욕망 자체를 내려놨다는 얘기는 머리 안에서 이 시각과 청각과 미각, 후각 등을 관장할 수 있는 이 가소성 재료가 이미 다 됐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게 있는 한은 욕망은 있어요.
단 어떤 욕망? 그 욕망을 어떻게 하면서도 무언가 안에 있는 것에 지향점을 찾아가는 그런 것! 그러니까 유전자 너머의 유전자를, 유전자 너머의 유전자라는 말이 현재는 실감 없는 개념 같습니다만, 저는 제 나름대로 그림으로서 유전자 너머 유전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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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요즘 빈대가 창궐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도 심지어 하도 의식화가 돼 가지고 제 집도 의심스럽습니다. 모기가 물어도 막 빈대가 문 것 같습니다. 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은 없지만,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은 있는데요. 이 속담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속담이 속담 같지가 않아요.
정말 빈대 때문에 이게 우리가 초가삼간 다 태워야 되는 상황 오는 거 아닌가 싶어요. 빈대는 도구거든요. 빈대 안에 뭐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바이러스는 최소 단위입니다. 적어도 지구상에서 인간과 만날 수 있는 모습으로서는 자기를 더 해체할 수는 없어요. 들어와서 해체하죠. 그러면서 뭔가를 주고 지는 소멸하죠. 그리고 증식하죠. 근데 바퀴벌레는 그 안에 자기를 해체하지 않고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수레의 구조를 가진 생명이잖아요. 그 안에 어떤 바이러스를 담을 수도 있는 것이죠.
옛날에 페스트를 쥐만 옮겼을까요? 쥐가 다 덮어썼다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90년대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새가 병을 옮길 것이고 고양이와 개가 병을 옮길 것이다. 고양이가 옮길 때가 오면 제일 심각해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냥 짐작이지만 제 나름대로 추론이었어요. 근데 그때 까지만 해도 새가 병을 옮긴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나서 바로 인간에게 옮기는 조류독감 돌아버렸습니다. 조류 바이러스죠. 지금 고양이가 옮긴다는 것도 지금까지 거부되다 이젠 모두 일어났죠.
빈댄들 못 옮기겠습니까? 뭔가를 싣고 올 수 있는 충분한 수레의 크기는 된다! 그래서 저는 꺼림직한데, 같이 살아야 될 것 같아요. 전 세계적으로 이번에는 박멸이 안 될 것 같아요. 이제는 박멸하기에는 얘들이 너무 많이 진화했어요. 제가 예전에 그런 농담했거든요. 한 10년 전에 쓰던 모기약 갖다가 10년 후에 뿌리면 약효가 그대로 있어도 안 죽는다고. 모기들이 픽픽 웃고 도망가요. 이미 얘들은 1년에 몇 번씩 나고 죽고 하기 때문에 몇 세대를 거듭해서 거기에 적응해 왔는데 죽겠습니까? 근데 그보다 더 센 걸 하려고 그러니 사람도 다치죠.
그런 약들은 일반 약국에서 살 수가 없죠. 전문가들이 장비를 갖추고 뿌려야만 되는데 전문가들이 와서 얼마나 섬세하게 이불 칸이며 뭘 다 뿌려줄까요? 우리 집에 바퀴벌레 빈대 있다고 신고를 해도 와서 소독을 해줘도 3일이면 또 나올 거예요. 3일 후에 또 부를 수도 없고 성질 나서 또 불러 잔소리하면 이번에 좀 꼼꼼하게 해가지고 일주일 만에 나오는 거죠. 그러다 포기하는 거죠. 결국 그래 되지 않을까!
그 빈대가 한 번은 휩쓸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게 한 15년 전에 홍콩에서였어요. 홍콩의 YMCA가 운영하는 솔즈베리라는 호텔이 있습니다. 저는 묵지 않았는데 거기 묵었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베드버그에 물렸다는 거예요. 그때는 빈대가 사라져서 베드버그가 빈대인 줄도 몰랐던 거예요. 그냥 베드버그는 그냥 나쁜 벌레였던 거예요. 그냥 동그랗게 물고 직선으로 물고 그게 빈대라고 몰랐던 거예요. 잃어버린 이름이었죠.
예전에 어느 선배가 아이 이름을 건보라고 짓고 저한테 고민을 얘기하시는 거예요. 아들 이름을 건보라고 지었는데 나중에 곰보라고 놀리면 어떡하지? 제가 그랬어요. “아드님이 자라서 성인이 됐을 때는 곰보라는 용어를 아는 애들이 없다 걱정 마시라” 그랬거든요. 근데 빈대도 그렇게 잊어버린 거예요. 이제 다시 복각판 빈대가 나왔어요. 이제 레플리카(replica)가 나왔어요. 근데 이 레플리카가 분명히 다를 거예요.
아까 아메리카지 얘기 나왔으니까요. 옷 만드는 친구들이 1942년 미군 장교복 그대로 복각한다고 미싱까지 그대로 갖고 오고 직조기까지 갖고 오고 그대로 만들어도 달라요. 아무리 해도 복각은 복각이고 달라요.
지금 나타난 빈대는 20세기의 빈대와 분명히 다를 겁니다. 거기에 대한 부분은 아직 이야기 없고, 빈대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데요. 핵무기를 만들어 놓고 원자력 발전소 갖고 고민하는 거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질문: 하나만 더 질문해도 됩니까?
선생님: 예. 선생님 하루 종일 같이 얘기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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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르나 차하르툭치(Urna Chahar Tugchi)의 상지도르지(Sangjidorji)란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무슨 뜻인가요?
선생님: 그 노래는 엄밀하게 말하면 내몽고 노래입니다. 저도 몽고를 조금 압니다만, 저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 사거리에 몽고 캐시미어를 파는 가게가 있어요. 거기 주인 분이 어육과라는 이름을 가진 분인데, 몽고에서 한국의 대학으로 국문학을 공부하러 왔다가 신랑을 만나서 한국인으로 주저앉은 분이에요.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를 하다가 주저앉아버렸어요. 근데 부업으로 캐시미어집을 하더니 갑자기 돈을 좀 벌었는지 몽골 투어 여행사까지 차렸더라고요.
예전에 우르나 차하르툭치의 노래를 그분에게 한번 물어봤어요. 가사를 한번 풀어보라고 그랬더니.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는 거예요. 자기는 못 알아듣겠다고. 내몽고어 아니냐고 하더군요. 내몽고 맞죠. 그거 부르는 분이 내몽고 출신이니까. 그래서 내몽고 분한테도 물어봤어요. 자기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어느 몽고 사람이 알려나! 몽고가 넓잖아요. 사투리도 심해요. 사투리가 심한 거는 뭐 너무 당연한데, 그래도 기마민족이면 어느 정도 통할 텐데요. 적어도 두 계통의 몽고족에 물어봤을 때는 그 가사를 모르겠대요. 그래서 모르겠다 그러길래 제 나름대로 해가지고 예전에 페이스북에 풀어놓은 게 있는데요. 그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우르나 이분이 어릴 때 몽골을 떠나 독일인과 결혼해서 독일에 살고, 또 어릴 때 중학교 시절부터 상하이에서 보내면서 자신의 언어가, 자기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약간 왜곡돼 버린 게 아닌가! 그리고 주변에 그걸 바로잡아줄 몽고인이 없고, 주변에는 독일인과 중국인만 있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게 아닌가! 그래서 여기 가사를 보면 개인의 몽고어, 개인화된 몽고어로 느껴져요.
특히 그 자장가 같은 경우에는 원래 가사가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가 있는데, 3분의 2가 다른 단어예요. 그런데 다른 단어의 출처를 알 수가 없어요. 독일에서 활동하는데 우르라를 만나서 물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지금 페루 가서 제가 가수로 한다면, 한국어를 되든 말든 어떻게든 한국어라고 하면 뭐 하는 거지 누가 알겠습니까? 페루에서 그것도 한국어 고어라 하면 끝이죠. 그런 느낌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감성으로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하나의 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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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겁이 많다 적다 할 때 겁도 몸하고 관계되는지 하고, 아까 ‘거부’라는 이름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요?
선생님: 음가가 비슷해요. 원래 겁이라는 말 자체가 거기서 왔어요. 겁이라는 것은 마음 심(心)에 갈 거(去)를 쓰죠. 마음은 가버린 거예요. 껍데기만 있는 거예요. 달리 겁이겠습니까? 겁이 겁이죠. 그래서 우리가 겉만 설치는 걸 까분다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거부’의 또 다른 이름이 ‘알분’이에요. 우리가 ‘알분스럽다‘ 그러죠. 지 이름 알리려고 설친다는 걸 말하죠.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내가 높네 하고 설쳐보려고 하는 걸 알분스럽다고 하죠. 들어보셨나요? (대답: 아니요.)
선생님: 아직 유치원을 졸업 못하셔서 그래요. 빨리 지유유치원을 졸업하시고 ‘알투스 인디’하세요. 아무튼 알분스러운 것도 있는데요. 요즘에 하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 봤는데, 제가 딱 뭐가 와 닿았어요.
특히 그 시간에 저는 전주에 있잖아요. 전주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 있죠. 못 보죠. 돈을 주고 사서 이제 봤어요. 세 회 치를 봤어요. 예전에 했던 두 시즌도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긴가민가 노래 잘하네 이랬어요. 그런데 지금 것을 보면서 ‘어, 문화의 중심이 바뀌고 있네! 강남 문화에서 강북 문화로 중심이 바뀌고 있네. 오랫동안 성수동 성수동 하더니, 오랫동안 홍대 홍대하더니 드디어 하나의 문화가 돼 가네! 하나의 무드가 돼 가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제 옷을 제가 늘 사 입고요. 평생 제가 사 입는데요, 그래서 옷을 선물 주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옷을 놓을 장소는 한정돼 있고 제가 사 입고 싶은 거 사 입어야 되기 때문인데요.
옛날에는 옷을 판다는 편집샵에 가면 전부 소위 명품 행세하는 것이었죠. 일종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자본과 결탁해서 커지면 그걸 명품이라고 그러잖아요. 엄밀하게 보면 명품이 아니라 고가품이죠.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것은 자기만의 감성으로 뭔가 만들어낸 거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게 되면 그 다음부터 열심히 로고 플레이를 하잖아요. 그냥 하트 붙이고, A 붙이고, 여우를 큼지막하게 붙이고… 이렇게 이상한 걸 붙여 가지고 다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그러죠. 그러면 디자이너 브랜드가 큰 게 샤넬이고 프라다고 그런 것들이죠.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디자이너 브랜드의 고가품인 것이지 그게 결코 명품은 아니죠. 그런 명품 플레이를 하는 편집샵들이 위주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독특한 옷을 찾는 게 나왔어요. 그게 뭐였느냐? 패턴을 중심으로 자기 옷을 찾는 데가 나왔어요. (이전에는) 샌프란시스코 마켓, 그 다음에 앤드리앤레슬리(ANDREW&LESLEY), 그 다음에 또 강남 같은 데도 많은데 뭐, 부기홀리데이(BOOGIEHOLIDAY) 등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걸 보면 아직까지 흉내내기로 옷을 편집해 놓고 파는 거예요. 살 게 없어요.
그런데 요즘에 나오는 것들을 보니까, 가령 서촌의 바버샵 이런 데는 아예 무드가 돼 있는 거예요. 자기 무드를 파는 거예요. 홍대 앞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느 사이에 디자이너가 되고 그러면서 자기만의 무드를 가진 옷이 나오고 있는 거예요. 강남은 그걸 못 만들어내고 따라가다가 번성기를 다 보냈어요. 그런데 강북의 홍대와 성수동은 그걸 만들어내고 있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옷들이라면, 20대 후반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앵글런(ANGLAN) 같은 이런 브랜드들이에요. 그런 게 좋아요. 신발도 보면 그라더스(grds) 같은 게 좋아요. 물론 제가 늙고 나이가 들어서 발이 덜 편할 수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아치가 낮고 발등이 덜 높으면서 서양화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발끝도 다르죠. 저는 산에서 자라고 그러다 보니까 아치가 높고 발등도 높죠. 발 볼도 산도둑 같죠. 그러니까 예쁜 신발에 발이 잘 안 들어가지만 그래도 불편하지 않다면 꾸역꾸역 집어넣어서 신어요.
근데 문제는 흉내내기가 아니더라는 거예요. 한국 걸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만든 옷으로 개량한복이 있다면 개량한복은 고집의 연장선에 있는 거예요. 그거는 새 창조가 아니라, 새로운 무드로의 전환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무드는 빨리 못 가죠. 개인이 하루하루 바뀌더라도 사회라는 차원에서 그것이 생산되고 형성되는 기간이 필요하니까. 그걸 일종의 한 10년 즉 한 세대 이러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개량한복은 제가 볼 적에는 과거 한복에 대한 고집이에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자기들이 뭔가 한국 옷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무드대로 만들었는데, 제가 볼 때는 신한복이에요. 자기들은 볼륨 팬츠로 생각해요. 와이드 핏으로 생각해요.
제가 볼 때는 와이드 핏이 아니라 진짜 50년대나 40년대 핫바지가 신한복으로 볼륨 팬츠가 되어서 와 있는 거예요.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바뀌는구나! 얘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나라가 망하든가, 얘들이 먼저 자리를 잡든가 둘 중에 하나겠구나! 그럴 듯싶은데 부정적인 쪽으로 현실은 타진이 됩니다.
그런데 정말 이 친구들이 고집이 없다는 게 남의 브랜드를 그렇게 칭찬을 해요. 제가 볼 때 도저히 칭찬하기 힘든 브랜드인데도 실제 칭찬하는데 입으로 칭찬하는 게 아니에요. ‘아, 다르구나!’ 어떨 때 보면 귀엽고, 어떨 때 보면 멋있고, 어떤 때 보면 자신감 넘치고… ‘이런 친구들이 ‘알투스 인디’가 돼 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투스 인디 운동에 그런 친구들이 빠지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들이 지구 인구 4억 속에 들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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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가소되는 과정에서 후회는 계속 일어나겠죠? 가소가 되고 있다면 후회는 계속 일어나나요?
선생님: 계속 후회는 일어나죠. 후회라든가 이런 것을 이전에 만들어진 다른 무드의 도덕적 잣대나 다른 사회 문화가 만들어 놓은 것에 의해서 너무 예속되면 안 되죠. 끌려가면 안 되죠. 그렇게 끌려가면 어우동 욕하는 무리에 들어가게 돼요. 그리고 신사임당도 욕 먹어야 되고요. 저기 난설헌 같은 경우 얼마나 욕을 먹어야 될까요? 거기 맞춰서 할 것 같으면 그냥 자리 메꾸기죠.
여기 와 있는 사람의 숫자 채워 주기죠. 후회하는 일도 생길 수 있어요. 그래도 가는 거죠. 후회를 덜하기 위해서도 가는 거고, 후회스러워도 가는 거고, 후회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거죠. 가다 보면 자기에게 어느 순간 벼락처럼 들리는 소리가 저는 있다고 봐요. 내가 ‘이 나이에 더 앞으로 가랴!’ 하고 멈춘 그 순간, 한 걸음만 나갔더라면 소식을 들을 차례였는데, 소식을 들을 한 걸음 앞에서 멈췄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럴지도 모르기 때문에 끝까지 가야죠. 금 긋지 말고요. 안 그럴까요?
질문: 근데 제가 직관적 삶에 대해서 관심이 좀 많은데요. 그게 가소성에 반하는 건지 아니면 직관적 삶에도 가소성이 있는 것이 가능한지?
선생님: 일단은 가세요. 그리고 가면서 만난 좋은 친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에게 물어보죠. 내가 이렇게 가려고 하는데, 이번 길은 어떨까? 의견을 구하는 정도로요. 의견을 구하다가 정말 아끼는 사람이 아끼는 마음으로 해주면 참고할 것도 있을 수 있죠.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갈지라도 어디론가는 가야겠죠. 그런 친구는 꼭 필요해요. 그런 친구가 우리가 붕우라고 했을 때, 진짜 붕(朋)이죠. 함께 자기를 책임질 수 있는 동기간 같은 붕이죠. 그런 친구가 없으면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해서 어느 순간 불안해하고 불안하면 외로울 수 있어요. 아니면 거꾸로 외로우면 불안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친구는 필요해요.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그러잖아요. 유류(類類)를 만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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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선생님 저번에 상인의 옷을 입으려고 굉장히 애를 쓰셨다고 표현을 하신 적이 있어요. 많은 옷 중에 왜 상인의 옷이었는지 궁금하고요.
선생님: 제가 입을 수 있는 게 일단 농부의 옷은 어려웠고요. 현실에서 저는 제가 이런 알투스 인디를 지향해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독 묻고 살고 싶었어요. 그걸 접어버리고, 그런 것이 거꾸로 하나의 고(固)가 되고 집이 되고, 저를 규정하는 외적 요소가 되니까요.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서 수양하는 사람이야’ ‘공부하는 사람이야’ 이런 게 싫었어요. 그것이 저를 가둘 수 있으니까.
가둬 지기 싫었고, 장사하는 사람을 누가 가두겠어요? 장사하는 사람이 이익을 쫓는 사람인데. 그래서 가둬 지기 싫고, 가둬 지기 싫었던 것은 저도 일일신 우일신에서 멈추는 동물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저가 그러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제가 좀 알려진 바가 있어서 저를 굳히기 들어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충분히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뭐 방송하던 것도 그만뒀고 책 쓰는 것도 사실상 그만뒀고, 성실하게 표국상인의 옷을 입고 살자! 그러면 될 텐데 아직도 다 벗지는 못했다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단 지금은 그것 때문에 구속스러울 만한 처지는 아니에요. 그래서 다시 이런 이야기 마당을 여는 거고 소위 말해서 '직업적인 수행인' 이란 쓰레기 취급받기가 싫었어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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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그리고 하나 더 질문을 드리는데. 변하길 원치 않는데 같이 사는 입장에서 변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어쩌면 상대방한테는 폭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그럼요. 따뜻한 햇살 같아야죠. 그런 자리는 기다리면 만들어져요. 혹시 누구 말씀하시는 건가요? 전화번호부에서 엄청 빨리 있는 분 말씀하시는 거죠? 두려워하지만 용기 있는 분이에요. 아직은 자신을 외롭게 하지 않았던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 마뜩하지 않은 선인 것이지.
MBTI라고 그러죠? 요즘에 자꾸 그런 걸 물어보는 분들 있어요. 살인마와 여기 계신 선생님이 MBTI가 같을 수가 있어요. 그렇죠? 뭐 하러 물어봐요? 얼마나 선량한가! 얼마나 일일신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며 타인에 대해서 증오를 없앤 사람인가가 이게 중요하지.
MBTI로 따지면 이재명과 윤석열 두 사람이 같아 보이는데요. 둘이 같은 사람인가요? 그리고 MBTI 해가지고 살인마 유영철 MBTI와 예수님의 MBTI 같으면, MBTI라는 걸 들이댄 게 결례 아닐까요? 그런 건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안 했으면 좋겠고,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가? 당신은 얼마나 향기로운 사람인가? 당신은 얼마나 내일을 향해서 열려 있는 사람인가? 당신은 얼마나 거침없이 앞을 향해서 나갈 수 있는가? 죽음이 올 때까지 당신은 멈추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뭐 그런 게 더 따져봐야 될 문제죠. 미리 금 그은 사람인가! 아닌가! 금을 그었다면 어디에서 금을 그었고 어떤 색의 선을 그었는가! 어떤 갈래의 길에서 금을 그었는가! 뭐 이런 것이 따져질 바이겠죠.
세상에 나오는 것들은 쉽게 할 수 있게 나오잖아요. 또 그걸 갖고 또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늘 반복하는 얘기가 좋은 건 따라하지 말라고. 좋은 것치고 나중에 안 좋은 게 강조돼서 나오는 것 없는 경우가 없어요. 일단 팔려고 하면 뒷면은 숨기고 앞면만 얘기해요. 그들의 동전에는 앞면만 있어요. 뒷면은 붙여놨기 때문에 속에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얘기해도 일상생활에 가면은 또 좋은 거 찾아요. 어디 가면 꼭 이거 사야 된다더라, 이거 좋다더라 자기도 모르게 또 찾아요.
하나하나 매일 그럴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이러면서 털어가는 거죠. 아이고, 할 때마다 하나씩 털리는 거예요. 빨리 안 털려도 답답할 필요 없거든요. 빨리 털리면 다쳐요. 다치면서 털릴 필요는 없어요. 정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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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좀 더 구체화된 말씀..마음에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