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같은 엔저 효과
1980년대까지 일본은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변화가 일어났는데, 정점을 기록한 이후 성장하지 않았다. 일본의 성장률이 정점을 찍은 시점은 IT 혁명 덕분에 인터넷이 보급된 시점과 일치한다. 199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95를 발매하여 누구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실현한 배경에 IT 혁명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미국뿐만 아니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눈부신 성장을 시작한 나라가 아일랜드다. 산업혁명을 못 하고 농업국가로 빈곤한 나라였던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도 공업화에 성공했다. 선진국이던 일본의 지위는 하락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여 산업구조를 개편했는가이다. 일본도 산업구조 개혁을 진행하여 변화를 실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제조업 비율이 낮아지기는 했으나, 대신에 IT 경제를 견인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지 않았고, 제조업의 팹리스화 역시 진행되지 못했다.
생산성 향상에는 반드시 디지털화가 필요하다. 디지털화가 진행되지 못하면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임금을 끌어올리려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펼쳐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이는 경제의 기본 메커니즘을 무시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행정 서류가 창구에 가서 종이 서류에 내용을 반복해서 써야 하고, 도장 없이는 프로세스가 끝나지 않는 일본이다. 심각한 부분은 행정절차이다. 왜 관공서에 가서 서류에 몇 번이고 도장을 찍어야 하나?. 왜 이런 과정이 필요한지 모두가 의문을 품었지만,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의식 같은 행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본인은 없었다. 서류를 전달할 때 PDF를 사용하지 않고 팩스를 쓰고, 메일은 안되고 전화로만 업무를 하는 방식이 남아있다. 조금 불편하지만 기존 방식으로 버티고 바꾸는 일이 귀찮다는 이유로 예전 세대의 유물을 계속 사용하는 기업이 많다.
왜 한국이 일본보다 풍요로워졌는가, 이유는 명백하다. 한국은 기술개발에 힘썼고, 생산성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기술이 정체되었다. 한국은 고속통신규격인 ‘5G’ 상용화에 성공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가 발표하는 ‘세계경쟁력 연감’에 의하면 2021년도 기준 한국은 23위, 일본은 31위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상위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인의 영어 향상은 엄청난 수준이다. 저자와 비슷한 세대의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TOEFL iBT 평균 점수는 한국은 아시아국에서 11위, 일본은 아시아 29국에서 27위다. 한국의 KAIST는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도 인재 채용에 영어 능력을 요구해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망가뜨린 엔저 20년사는 일본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2002년 1$당 130엔에서 2003년 110엔으로 상승한다. 주가는 장기 내림세에 들었고 닛케이 평균 지수는 1만 엔대로 떨어졌다. 2010년 유로화 위기에 따른 영향으로 일본 국채 이자는 0.7%까지 떨어졌다. 2012년 76.3엔이던 환율은 천천히 상승하여 2013년 90엔대까지 올랐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하자 2015년에는 120엔대가 되었다. 2021년에 일본은 급격한 엔저에 시달렸다. 10월에 114엔을 기록했다. 엔화약세는 수입 물가를 끌어올린다. 전년 대비 31.3%가 상승한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면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고 주가가 오른다. 그리고 수입 물가와 수출 물가는 같은 비율만큼 상승한다. 기업은 수출 물가가 상승하는 효과를 얻어 결과적으로 이익이 증가한다. 엔화 약세가 진행되는 시기의 주가는 하락했다. 닛케이 평균 지수는 9월 14일 30,670엔에서 10월 7일 27,678엔으로 하락했다.
일본은 인구 감소로 1인당 사회보장 부담이 40% 증가했다. 사회보장정책이 선거 쟁점으로 다뤄지지 않는 현실이다. 자민당이나 민주당이나 감세를 내걸었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이 분배정책과 공약으로 내걸지만, 사회 재분배를 고려할 때 영향이 지대하면서 심각한 사회보장 문제는 방치되었다. 이는 여야가 모두 장래에 대한 책임을 포기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보장제도는 재분배가 우선이다. 일본 GDP의 22.1%가 분배되는데 연금에 55.5조, 의료에 40.7조, 복지에 27.7조, 합계 123.9조 엔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비용은 2018년 GDP 대비 12%다. 수급자는 주로 65세 이상 고령자로 3,592만 명이 인당 평균 연간 154만 엔이다. 고령자는 사회보장제도가 없다면 생활을 할 수 없다. 사회보장급여비용은 과거 20년간 약 60% 증가했다. 15세~64세 인구는 7,462만 명으로 이 기간에 일본의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지만, 부담은 늘어났다. 20년 후 1인당 부담은 40% 증가한다. 2040년까지의 일본의 인구는 15세~64세가 5,978만 명, 65세 이상은 3,921만 명이다. 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부담이 늘어나므로 생활 수준은 떨어진다. 노동력 비율을 높인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후기고령자 의료제도는 일본의 75세 이상 고령자는 자동으로 기존의 국민건강보험에서 탈되되어 후기고령자 의료보험에 가입되며, 별개의 재원으로 운영하고, 본인의 부담은 10~30% 수준이며 피부양자가 인정되지 않아 연금에서 보험비용을 공제하는 제도다. 후기고령자 의료제도는 자기부담비율 인상이나, 연금의 거시경제 슬라이드(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감소하면 그에 맞춰 지급하는 연금액을 자동으로 삭감, 연금재정이 악화하면 지급하는 연금액이 감소하는 효과를 말한다) 적용 비율의 강화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래에 손쓸 수조차 없는 상황에 내몰려 엄청난 변화를 감당할 수도 있다. 그러면 후생 연금의 개시 나이를 70세로 올리는 방식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인재 부족 상황도 심각하다. 요양 관련 구인 경쟁률이 48배를 넘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체하려 해도, 더 이상 일본 내 임금은 상승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 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해외로 빠져나갈 우려마저 있다.
2019년 일본의 금융심의회에서 노후 생활(남은 생애 30년)에 대략 2,000만 엔의 저축이 필요하다 발표한다. 사실 일본의 연금만으로는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후생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50% 정도다. (소득대체율은 연금을 받기 시작한 시점 65세의 연금액이 현역 표준세대의 실제 수입액과 비교한 지표) 그러니 노후를 위해 일정액을 저축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순이 되어 당시 재무장관 ‘아소 다로’는 마치 공적연금으로 생활비가 부족한 것처럼 국민에게 불한을 줬다‘는 이유로 보고서 수령을 거부하였다. 이런 그의 도망 공작은 방치되었다.
일본 정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표준적인 세대의 노후 생활비 중 70%는 연금이 보장한다’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는 점이다. 평균적인 집이라면 약 2,000만 엔 정도 저축하면 충분하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은 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 때문에, 연금 감소는 소득대체율 50%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적용해 명목 연금액이 감소하는 경우는 조절 기능은 연금액 증가분이 0이 될 때 멈춘다. 일본은 196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 90%는 노후 자금 대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196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2035년에 70세로 연금 지급 개시 나이가 70세로 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2년마다 한 살씩 올리면 10년이 걸린다. 연금에 수급 직격탄을 맞는 이들은 1965년 이후 출생자들이다.
일본인의 노후 생활자금은 연금, 퇴직금, 저축 세 가지에서 나온다. 비정규직이나 열악한 근무자는 퇴직 이후도 연금도 없고 퇴직금도 없으니 결국 기초생활 보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전쟁에 패했다. 패전이유는 일본의 국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국가를 잘못 이끌었기도 자각했다. 일본인이 깨달은 것은 미국에서 배울 필요를 느꼈다. 일본인이 주판을 튕길 때 미국인은 전자계산기로 계산했다. 일본인들이 들고 싸운, 죽창과 소총으로 미국의 탱크를 상대로 싸움을 하면 패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공업화 강화와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번영을 이뤄 G7에 들었다. 시가총액이 미국을 초월해 일본이 세계 1위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품 경제의 찰나의 꿈이었고, 미국은 IT 혁명으로 새로운 경제를 향해 발전했고, 중국도 경이로운 발전을 했다. 한국과 대만도 실력을 쌓았다. 그러나 일본은 정체에 빠져 지난 20년에 1990년 후반 금융위기로 은행이 줄지어 도산하고, 거품이 빠지니 마약 같은 엔저 효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한국은 생산성 향상과 인재 능력 향상에 눈을 뜨고, 대학의 교육 연구 능력을 키우고, 영어 실력을 갈고닦았다. G7의 아시아 대표가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면 일본은 어떻게 대답할까? 저자는 염려한다.
2022.10.01.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2
노구치 유키오 지음
박세미 옮김
랩콘스튜디오 간행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