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물길과 철길이 남긴 아련한 추억 ① 논산
연합뉴스 2024. 2. 10
'감성 자극' 관광 명소 많은 매력적인 도시
[※ 오랜 세월 금강 유역의 거점이었던 충남 논산과 전북 익산은 철도와 물길이 발달했던 곳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헤어졌던 오랜 교통 중심지는 철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새로운 교통수단이 나오면서 쇠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선 빛바랜 사진에서 본 듯한 아련한 풍경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논산=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논산훈련소와 딸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논산. 그러나 금강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물자가 풍부했던 논산은 알고 보면 볼 것, 즐길 것들이 널린 곳이다. 옛날엔 서해안 해산물들이 뱃길로 강경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나 철도의 등장으로 번영을 누리던 곳은 쇠락해져 갔다. 그래서 논산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 많다.
강경포구 [사진/성연재 기자]
한 세기를 거슬러 오른 듯한 강경 풍경
논산을 이야기할 때 강경을 빼놓을 수 없다. 강경은 원산과 함께 조선의 2대 포구로 불릴 만큼 많은 해산물이 모이던 곳이었다. 강경에는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적산가옥이 즐비하다. 대표적인 것이 강경읍 옛 연수당 건재한약방과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등이 있던 건물이다.
2층 높이인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은 현재 강경역사관으로 쓰인다. 내부에는 주민들로부터 기증받은 옛 물품들이 즐비하다. 이 건물 뒤쪽에는 논산시가 조성한 근대역사거리가 들어섰다. 다만 실제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적산가옥이 아니라 예전 건축 양식으로 건물 여러 채가 들어섰다.
논산 강경구락부 [사진/성연재 기자]
이곳의 이름은 '강경구락부'다. 이곳에 최근 여관과 돈가스집, 찻집 등이 들어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어쩌면 드라마 세트장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줬다. 이런 분위기를 즐기려고 돈가스집에서 식사하거나, 찻집에서 차와 디저트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인근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을 찾으면 예전 강경 모습을 파악하기에 좋다.
1925년 세워진 이 건물의 옛날 사진을 자세히 보니 돛대가 한쪽 귀퉁이에 보인다. 사진에는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조합 건물 아래쪽에 배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현재 조합 건물 앞은 잘 포장된 도로다. 김무길 강경문화연구원 부장은 "당시 조합 건물 앞쪽은 배가 드나들 정도로 깊은 하천이었다"고 설명해 줬다. 지금은 복개돼 자동차가 다니고 있다. 예전 강경 읍내엔 S자로 굽은 천이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정말 강산이 몇 번은 바뀐 것 같았다. 강경 읍내에는 적산가옥이 많다. 강경읍 옛 한약방 건물은 대표적인 곳이다. '강경 구(舊) 연수당건재한약방'이라는 명칭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제10호)된 이 건물은 강경이 당시 얼마나 발전한 곳이었는지 알려준다. 1923년에 세워진 '남일당한약방'은 경성을 뺀 지역에 있는 한약방 중 가장 큰 곳으로 손꼽힐 정도였다.
강경은 어떻게 '젓갈 천국'이 됐나
내륙인 강경이 젓갈로 유명해진 것은, 경상북도 안동이 간고등어로 유명해진 것과 같은 이치다. 강경 상인들은 서해에서 들여온 해산물들을 저렴하게 사들인 뒤 천일염으로 젓갈을 담갔다. 일제강점기에는 농지 수탈을 노린 일본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1904년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여관이 들어섰으며, 1906년에는 군산으로 전화도 개통될 정도로 발달했다.
강경 젓갈 [사진/성연재 기자]
강경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정말 '젓갈 천국'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젓갈 집이 많다. 모두 '100년 전통', 또는 '200년 전통' 같은 문구를 써 붙이고 영업 중이었지만, 팬데믹 영향인지 썰렁한 모습이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저물녘 강경포구가 있던 금강 변으로 나가봤다. 당시 붐비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지만 석양에 붉게 물든 넓은 금강의 모습은 이곳에 수많은 배들이 오고 가던 곳이었음을 실감케 해줬다.
강경성당 [사진/성연재 기자]
곳곳에 개신교와 가톨릭 흔적
뱃길은 사람과 물자 통로뿐 아니라 종교가 유입되는 통로로도 기능했다. 논산에 수없이 많은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중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을 빼놓을 수 없다. 특이하게도 한옥 목조양식 건물로, 강경읍을 포함해 금강 연안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교두보가 됐던 곳이다.
현재 남은 한옥 교회가 극히 드물어 국가등록문화재 4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1924년 완공된 이 교회는 6·25 때도 주일 예배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강경성결교회가 개신교의 대표적인 건물이라면, 천주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도 있다. 독특한 뾰족아치형 얼개로 건축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아온 강경성당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보드뱅 신부(1897∼1976)가 설계하고 감독한 건물로, 1961년 준공됐다. 문화재청은 이곳을 등록문화재 제650호로 등록했다. 이 성당은 최근 젊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예쁜 건축물로 입소문이 나면서,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마치 로켓 같은 모습이다.
명재고택 [사진/성연재 기자]
지혜·배려·과학으로 지은 명재고택
논산 여행에서 노성면의 명재고택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중요민속문화재 190호인 명재고택은 17세기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 선생이 팔순을 맞은 1709년 무렵에 세운 집이다. 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집은 풍수가 완벽하게 반영된 고택이다. 풍수는 바람을 품고 물을 얻는다는 뜻의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명재고택의 앞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한여름 남쪽에서 부는 더운 바람을 식혀준다. 또 뒤쪽에는 해발 348m의 야트막한 노성산 자락이 있어 한겨울 삭풍을 피할 수 있다. 고택의 많은 방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은 누마루로, 창문이 세 개가 있다. 창문 하나하나가 액자가 되는, 차경(借景)의 멋을 살린 건축물이다.
차경은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차경은 명재고택 바깥의 작은 초가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명재고택은 고택 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고택 왼쪽에는 작은 초가집이 한 채 있는데 초가집 뒤쪽 창문을 열면 수백 개나 되는 장독대들이 한눈에 보인다. 명재고택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안채의 아낙네들이 바깥손님의 지체와 신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명재고택 대문 앞에 서면 벽 아래쪽에 높이 30㎝가량의 틈이 있다. 안채 대청에 앉아 있으면 이 틈을 통해 손님의 신발이 보인다. 방문자의 신분과 성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초가집 위쪽에는 작은 책방인 노서서재가 있다. 명재고택에 머무르는 손님들이나 방문한 손님들이 잠시 머무르며 책을 마시거나 차를 한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온빛자연휴양림 [사진/성연재 기자]
산책하기 그만인 온빛자연휴양림
벌곡면의 온빛자연휴양림은 숙박 시설이 없는 개인 소유 숲이 매력적인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걷다 보면 길가 편백 나무 짙은 향이 느껴진다. 약 500m쯤 걸어 들어가면 작은 사방댐을 만날 수 있다. 건너편에는 노란색 2층 목조 주택이 자리 잡고 있는데,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조화가 아름답다. 이 집은 숙박시설이 아닌, 휴양림 주인의 개인 별장이라고 한다.
겨울이라 호수가 얼어 안타까웠지만, 고즈넉한 풍경은 여전히 좋았다. 사방댐 위로도 죽죽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있어, 산책하기 그만이다. 입장료는 없다. 반려동물 출입도 자유로우니, 반려동물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온 듯'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덕분에 방문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김종범사진문학관 뒤쪽 대나무 숲의 작은 교회 [사진 성연재/기자]
한겨울에도 푸르른 김종범사진문학관
벌곡면에는 김종범사진문학관이 지난해 개관했다. 이곳에는 사진작가 김종범 씨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촬영한 풍경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풍경을 접하는 작가의 시각이 독특하다. 장엄한 자연 속에 극히 작은 피사체가 자리 잡은 광경이 흔하다. 운이 좋으면 작가 김씨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갤러리 뒤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걸으면 엄청난 규모의 대숲을 만날 수 있다.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그 끝에는 역시 동화에서나 만날 법한 작디작은 교회가 있다. 사람 키 높이 정도밖에 안 될 만큼 작은 교회다. 빨간 문을 한 흰색 교회는 대나무 숲 위에서 쏟아져 오는 광선 덕분에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문을 열면 의자 하나에 성경이 놓여있다. 기도하든, 명상하든, 기념 촬영을 하든 자유다. 갤러리 맞은편 2층에는 작은 찻집이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도 푸근하다.
논산 연산역 [사진/성연재 기자]
급수탑 남아있는 연산역
호남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김수희의 가요 '남행열차'를 떠올리게 된다. 일제 강점기 남행열차를 탔던 사람이라면 연산면의 연산역에 정차했을 것이다. 이곳에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급수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 길 달리느라 목이 마른 증기기관차가 시원한 물을 들이켰던 곳이다. 연산역 급수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다.
1911년 12월에 설치된 뒤 1970년대까지 60여 년간 사용되었지만, 디젤기관차의 등장으로 잊혀갔다. 연산역의 급수탑은 아주 보존 상태가 좋다. 대한민국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높이 16.2m의 원기둥 모양 급수탑에는 30t의 물을 채울 수 있었다.
충남지역에는 서대전역과 강경역 등 3곳에 급수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연산역만 남았다. 연산역은 대전과 논산 사이에 있어 대전으로 통학하거나 업무를 보러 가는 사람들로 열차가 콩나물시루처럼 복잡한 때도 있었다고 한다. 여전히 무궁화호가 정차하긴 하지만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연산역 급수탑 [사진/성연재 기자]
연산역 개찰구를 통해 나오면 새마을호 객차를 활용한 열차 카페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탓에 카페가 운영되지 않아 아쉬웠다. 이곳의 열차 카페에서는 넓은 차창 너머로 무궁화호와 화물 열차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급수탑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앞쪽으로 알루미늄 캔을 재활용해 만든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시계 초침의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세월의 흐름 앞에 우뚝 서 있는 급수탑의 모습이 고맙고 소중해 보였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