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권에서는 군사의 신이요, 촉빠들의 삶과 희망이며, 모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상식의 척도이자, 모 축구게임 사이트에서는 한낱 계집 고나우에 불과한(...) 관우(關羽) 운장(雲長). 한국사를 좀 공부한 양반이라면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조선에 군사를 파병한 이후로, 국내에도 군신 관우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신앙 시설이 전국곳곳에 들어섰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관우 관련 사당 건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남관왕묘(서울특별시 동작구)
선조 31년(1598) 왜란 당시에 지어진 건물로서, 한양 인근에 지어진 최초의 관우 사당이다. "동작구에 있으니까 남(南)관왕묘라고 부를만도 하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원래는 남대문(숭례문) 밖에 지어진 건물로 오늘날의 중구 지역에 위치했던 건물이다. 한국전쟁 이후로 박살이 난 다음, 유관단체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동작구에 재건된 것.
동관왕묘(서울특별시 종로구) 남묘의 뒤를 이어, 1601년(선조 34)에 동대문 인근에 건립된 건물. 흔히 동묘 시장으로 유명한 바로 그 '동묘'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관우 관련 건축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 건물의 양식도 17세기의 한국 고건축 중에서는 보기 드문 중국풍의 건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들을 인정받아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남원 관왕묘(전라북도 남원시)
춘향가에서 방자가 추천하는 남원의 3대 절경(광한루원, 교룡산성, 관왕묘) 중 한 곳이고, 정전 건축인 탄보묘는 용성관, 광한루와 더불어 남원의 3대 고건축이라고 불리는데... 용성관과 광한루의 웅장한 자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왕묘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삼문과 내삼문, 동재 서재를 갖춘 번듯한 사당 건물이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9호로 지정된 '적토마도'가 탄보묘 내부에 걸려있기도 하다.
안동 관왕묘(경상북도 안동시)
2층 누각으로 지어진 입구 광감루가 인상적인 사당. 무안왕묘라고도 불리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관우 석상을 모신 곳이기도 하다. 그외에는 특출난 점이 없다.
전주 관성묘(전라북도 전주시)
고종 32년(1895)에 지어진 관우 사당으로, 독특하게도 정전 건축이 정자각 형태를 하고 있다. 사당 내부에는 관우상이 있고, 삼국지연의와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지방의 관왕묘들과 달리 매우 관리가 잘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이는 전주지역이 안동과 남원에 비해 화교 세력이 강한 지역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화교들이 1년에도 여러차례 정기적인 행사를 연다고 한다.
관성묘, 성제묘, 와룡묘(서울특별시 중구)
관성묘와 성제묘는 중구 지역에 분포하는 작은 규모의 관우 사당들이다. 이 사당들은 규모는 작아도, 관우와 주창, 관평등을 묘사한 무신도를 보유하고 있어 조선후기 무속화 연구에 도움을 주고있다. 와룡묘는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사실 관우 신앙 시설이 아니라 제갈공명을 주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다. 중국의 인물만 모시기는 뭐했는지, 국조 단군을 함께 모시고 있다.
이외에도 강화도 관왕묘(동쪽의 관제묘, 남북의 관운묘), 여수 관왕묘(슬레이트 지붕과 콘크리트 구조로 된, 시골에서 흔히 보이는 당집 형태), 영동 십이장신당(관우를 주신으로 하며, 장비, 제갈량, 조운, 위연등 촉한의 12장군을 모시는 사당), 성주 관운사(원래 관왕묘가 있던 곳인데, 이곳을 지나가던 스님이 땅의 기세가 영험한 것을 알게되어, 관우 숭모회의 허락을 얻고 불교 사찰을 지었다. 사찰을 건립하는 대신 관우도 함께 모시기로 했기 때문에 사찰 경내에 관우 신앙 건물이 있는 특이한 곳)등 다양한 관우 신앙 시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