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들풀과 들꽃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내 주변의 풀과 꽃들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불편한 일이 생겼다. 예전에는 산길이나 들길을 걸을 때에 무심코 밟고 지나던 풀들을 행여나 밟을까 조심하게 되었고, 무심코 들어가 밟던 풀밭에서도 내 발 밑을 살피게 된 것이다.
지난 봄 상동 호수공원 산보에서도 그랬다. 세포아풀, 쑥부쟁이(싹), 개망초(싹), 뽀리뱅이, 소리쟁이, 봄까치풀, 꽃마리, 꽃다지, 봄맞이, 갈퀴덩굴…… 예전에는 내게는 이름 모를 풀들이었고 그러니 그저 잡초이거니 했는데 그 풀들의 이름을 알고부터는 감히 밟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장미 한 송이 혹은 개나리 한 묶음이 길에 떨어졌다고 치자. 지나는 사람들은 결코 장미나 개나리를 밟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미 혹은 개나리란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된 것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의 실체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냥 알고만 있어도 밟지 않을 텐데, 그 이름을 불러주는 사이가 된다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생각에 이르러 떠오른 시 -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냥 몸짓이었지만 이름을 불러주니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이다.
김춘수의 시 <꽃>은 시인들이 가장 즐겨 암송하는 시라고 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면 윤동주의 <서시> 다음으로 널리 애송되기도 한단다. 그만큼 우리들에게는 익숙한 시이다. 흔히 이 시를 해설하면서 평자들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나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과정’ 혹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들 한다. 다 일리가 있는 해설들이다. 결국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 추구’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며 꼭 ‘존재론적’이란 용어를 써가며 철학적인 개념만으로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애편지를 쓴 세대라면 편지 속에 몇 구절 인용한 경험이 있듯이 사랑을 노래한 시로 읽을 수도 있고, 인간관계 속에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픈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을 담고 있기에 얼마든지 독자마다 다른 뜻으로 해석하고 느낄 수 있는 시이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몸짓’이었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 비로소 ‘꽃’이 된다. 그것처럼 나도 누가 내게 꼭 맞는 이름을 불러주어 나만의 꽃이 되고 싶다. 이는 너와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의 소망이다. 그렇게 우리는 ‘눈짓’이 되고픈 것이다. 즉, 몸짓이 눈짓으로 되는 과정에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가 결부되고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 ‘꽃’이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시인은 왜 구체적인 꽃 이름을 말하지 않고 막연하게 ‘꽃’이라고 했을까. 아니 어떤 꽃을 보며 이 시를 구상했을까. 어느 평자의 연구에 따르면 시인의 고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 게다가 시인이 그의 시 속에 자주 노래했던 꽃 – ‘산다화’라고 한다. 산다화는 ‘동백’의 속명이다.
이 시의 제목이 ‘꽃’이 아니라 ‘동백’ 혹은 ‘산다화’였다면 어떤 평이 나올까. 실은 제목이 그런 구체적인 꽃 이름이고 시 속에 그 꽃 이름이 표현되었다면 독자들의 느낌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막연하지만 그냥 ‘꽃’이라 했기에 독자들은 자신만의 꽃을 머릿속에 그리며 자신이 그린 그런 꽃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 대학원 공부하던 시절, 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 – 시인은 이 시를 처음 쓸 때에 대학노트 한 장 빽빽하게 썼다고 한다. 원고지로 따지면 열 장은 족히 넘었을 것이란다. 그 글이 줄어들고 줄어들어, 축약과 생략이 반복되며 우리가 만나는 단촐한 네 연의 시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시는 결코 단숨에 써지지 않는단다. 줄이고 또 줄이고 압축과 생략이 반복되며 비로소 한 편의 시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시 창작 초심자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