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설계도, 게놈] 태초에 말이 있었다. 그 말은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복사하여, 바다를 생명이란 의미가 깃든 곳으로 만들었다. 말은 화학물질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끌어내어 생명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 말은 먼지로 가득찬 이 행성의 표면을 푸르름으로 가득찬 천국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사람의 뇌라는 물렁물렁한 놀라운 장치를 만들어 냈으니, 뇌는 말 자체를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었다. 40억 년이라는 지구 역사 속에서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며, 500만 종의 생물 중에서 인식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이 지구상에 동물이 존재하기 전에 식물이 번성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동물이 있기 전에 다른 동물들이 많았을 것이다. 모든 유기체 생명들은 공통된 하나의 시조 생명체에서 실타래처럼 이어져 나왔다고 추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시인이며 의사였던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이 한 말이다. 그의 손자 찰스 다윈 (Charles Darwin)이 생명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기 65년 전에 한 그의 이 말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상상이었다. 놀라운 것은 모든 생명이 하나의 동일한 기원을 가질 것이라고 추정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묘하게도 '실타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생명의 비밀은 사실 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타래가 어떻게 살아 있는 무엇을 만든다는 것인가? 생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매우 어렵지만, 두 가지의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복제 능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질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과 매우 유사한 복제품을 만들어 낸다. 토끼는 토끼를, 민들레는 민들레를, 그러나 토끼는 복제 이상의 것을 한다. 에르빈 슈뢰딩거 (Erwin Schrodinger)의 말을 빌리자면, 살아 있는 것들은 환경으로부터 '질서정연함을 마신다'. 생명의 이러한 두 가지 특징들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정보다. 복제를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생물체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정보인 그 비법이 있기에 가능하다. 토끼의 난자는 새로운 토끼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지침서를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사를 통하여 질서를 만들어 내는 능력도, 질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구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침서인 정보가 있기에 가능하다. 대사활동을 하고 복제할 수 있는 성숙한 토끼는 그의 생명의 실타래 속에 그의 모습이나 행동이 정해져 있다. 이러한 생각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닭의 '모습'은 알 속에 내재해 있고, 도토리는 상수리나무의 계획에 따라 문자 그대로 '지시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막스 델브뤼크 (Max Delbruck) 는 우스갯소리로 DNA 발견의 노벨상은 사후나마 그리스의 현자가 받아야 했다고 하였다. 끈 형태의 DNA는 하나의 화합물이 하나의 문자를 의미하는, 화학적 암호로 적힌 정보다. 이러한 암호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쓰여 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유전암호는 영어처럼 일직선상에 나열할 수 있는 언어다. 이것은 디지털 방식으로 모든 문자가 거의 같은 중요성을 지닌다. 더욱이 DNA 언어는 영어보다 단순하다. 이것은 A, C, G, T의 단 4개의 문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생물학계는 온통 '유전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도저히 풀 수 없는 미스터리처럼 느껴졌다. 1953년 DNA가 대칭형 구조라는 것이 밝혀지기 10년 전인 1943년 당시 10년 후 그 미스터리를 풀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은 포츠머스 근처의 해군 탄광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제임스 왓슨 (James Watson) 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여, 조류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모리스 윌킨스 (Maurice Wilkins) 는 미국에서 원자폭탄 만드는 일을 돕고 있었다. 로잘리 프랭클린 (Rosalind Franklin) 은 영국 정부를 위해 석탄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었다. 1943년 아우슈비츠에서 조세프 멩겔레 (Josef Mengele) 는 과학적 탐구라는 그럴 듯한 명목하에 쌍둥이들를 고문하여 죽이고 있었다. 멩겔레는 유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지만, 그의 우성학 연구는 잘못된 방향으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었다. 1943년 더블린, 멩겔레의 일당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유명한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트리니티 대학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규정하려고 애썼다. 그는 염색체 속에 생명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어떠한 방식으로 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 개인의 발달 상황이나 성숙한 상태에서의 기능 등은 어떤 형태의 암호화된 대본 속에 있다......염색체 속에.' 또 유전자는 너무나 작아 거대 화학 분자 이상은 아닐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러한 그의 통찰력은 크릭, 왓슨, 윌킨스, 프랭클린 등 당시의 과학자들에게 그것이 해결 가능한 문제로서 다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슈뢰딩거는 정답에 아주 가까이 왔으나 다음에서 약간 빗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유전적 능력을 가진 분자의 비밀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양자역학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그 후 전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생명이 비밀은 양자역학적 상태와는 아무 연관이 없었다. 답을 물리학에서 얻을 수는 없었다. 1943년 뉴욕에서, 66세의 캐나다 과학자 오스왈드 에이버리 (Oswald Avery) 는 DNA라는 화합물이 유전물질임을 증명할 결정적인 실험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의 교묘한 실험을 통하여 어떤 단순한 화합물이 병원성이 없는 폐렴균을 병원성이 강한 폐렴균으로 형질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1943년에야 비로소 그는 형질을 변환시키는 그 화합물을 분리하고 그것이 DNA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론을 발표하는데 매우 조심스러운 표현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그의 진의를 알아채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릴 정도였다. 같은 해 5월 그가 형제인 로이 Roy 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좀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만약 우리의 결론이 맞다면, 핵산(DNA)은 단순히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포의 특정 형질과 생화학적인 활성을 결정하는 기능을 가진 물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에이버리는 거의 사실에 가까운 추론을 하였지만, 그 역시 화학적인 의미에 무게를 두고 생각을 전개하고 있었다. 1648년 장 밥티스트 반 헬몬트 (Jan Baptist van Helmont) 가 '모든 생명은 화학이다'라고 추측했던 것처럼, 1828년 프리드리히 뵐러 (Friedrich Wohler) 는 염화암모늄과 시안화은 (silver cyanide) 에서 요소를 합성한 후 "적어도 생명의 일부분은 화학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그 동안 화학적 세계와 생물학적 세계를 갈라놓은 신성한 경계점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생명은 크게 세 개의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생물의 98%는 수소, 탄소, 산소의 3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생명의 독특한 특징은, 유전현상으로 이것을 이루고 있는 구성성분보다 흥미롭다. 에이버리는 DNA가 유전이라는 비밀을 유지해가는 물질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해답은 화학적 분석에도 있지 않았다. 1943년 영국의 블레칠리에서 천재적인 수학자 앨런 튜링 (Alan Turing) 은 극비리에 자신의 가장 놀라운 통찰력을 물리학적 현상에 적용하였다. 튜링은 숫자가 숫자를 계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군의 로렌츠(Lorentz : 암호)를 해독하기 위하여, 튜링의 원리를 이용하여 콜로수스(Colossus) 라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것은 변화 가능한 프로그램을 저장한 보편적인 기계였다. 당시에는 튜링조차 자신이 생명의 신비에 가장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유전은 변화 가능한 저장된 프로그램이며, 대사는 보편적인 기계다. 이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암호이며, 이것은 화학적이고 물리적이며 때로는 물질이 아닌 형태를 가진 압축된 정보이다. 생명의 신비는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의 물질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것을 살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사용할 만한 가장 가능한 형태가 숫자나 단어와 같은 디지털 암호이다. 1943년 뉴저지에서는 온화한 성격의 과학자인 클로드 샤논 (Claude Shannon) 이 몇 년 전 자신이 프린스턴 대학에서 처음 떠올린 생각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는 정보와 엔드로피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둘 다 에너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어떠한 계에 엔트로피가 적으면, 계는 그에 상당한 만큼의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된다. 증기 엔진이 엔트로피를 뿜어내고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제작자가 엔진에 정보를 주입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보에 대한 원리와 뉴턴의 물리학이 샤논의 머릿속에서 만나고 있었다. 샤논 역시 생물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통찰은 화학이나 물리보다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더 연관이 있었다. 생명 역시 DNA 속에 기록된 디지털 정보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그 말은 DNA가 아니었다. 생명은 이미 생성되어 있었고, DNA는 화학적 일과 정보의 저장, 대사와 복제라는 두 개의 활동이 구분된 이후에 나타났다. DNA는 말을 기록하였고, 그 말은 영겁의 세월을 거쳐 오늘날까지 충실하게 전해 내려왔다. DNA가 먼저 생겼을까, 단백질이 먼저 생겼을까? DNA가 먼저 생겼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DNA는 화학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생동력 없는 수학과 같기 때문이다. 단백질이 먼저일 수도 없는데, 단백질은 스스로 복제가 불가능한 단순한 화학적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DNA나 단백질이 상대방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생명의 기원에서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알파벳의 흔적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수수께끼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닭보다는 달걀이 먼저 생긴 것을 아는 것처럼(모든 조류의 조상은 파충류이며 이들은 모두 알을 낳았다), RNA가 단백질보다 먼저 생겼다는 증거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 RNA는 DNA와 단백질을 잇는 화합물이다. 이것은 주로 DNA 속의 정보를 단백질로 해독하는 과정에 쓰인다. 그러나 이것이 작동하는 방법을 보면, 이것이 DNA와 단백질의 선구물질임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RNA가 그리스라면 DNA는 로마다. RNA역시 언어였다. RNA는 단백질이나 DNA보다 먼저 생겼다고 볼만한 5개의 작은 실마리를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DNA의 구성물질은 RNA의 구성물질이 변형하여 만들어지며, 직접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즉, T라는 DNA 염기는 U라는 RNA의 염기로부터 만들어진다. 현존하는 많은 단백질은 RNA라는 작은 분자가 있어야만 작동할 수 있다. 더욱이 RNA는 DNA나 단백질과는 달리 다른 것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복제할 수 있다. 적절한 구성물질을 섞어 주기만 하면 RNA는 이것을 연결하여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세포 속을 들여다보면, RNA가 대부분의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RNA로 된 메세지를 해독하는 것은 RNA를 가진 효소이다.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은 RNA를 가지는 리보솜이라는 기구이며, 유전자의 정보를 해독한 후 필요한 아미노산을 가지고 오는 것도 작은 RNA 분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RNA는 DNA와는 달리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분자를 자르고 붙이는 촉매 작용을 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 토마스 체크 (Thomas Cech) 와 시드니 알트만 (Sidney Altman)에 의해 밝혀진 RNA의 많은 특징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아마도 첫 유전자 'ur 유전자(ur-gene)'는 자기 주위의 화합물을 사용하여 복제할 수 있는 단어로서 복제자-촉매자의 복합체였을 것이다. RNA였을 수도 있다. 생명의 기원을 재현하듯이, 시험관 내에서 촉매 작용을 하는 능력을 가진 RNA를 지속적으로 선별함으로써, RNA를 진화시킬 수도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임의로 만들어진 이러한 RNA의 내용이 리보솜에 있는 1번 염색체 위의 5S 유전자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공룡이 생기기 이전 물고기, 벌레, 식물, 곰팡이, 미생물 등이 생기기도 그 이전에 RNA 세계가 있었다. 아마도 40억 년 전쯤 지구라는 행성이 생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고 은하계가 10억 년밖에는 되지 않은 그 때에. 이러한 '리보-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화학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 이전에 어떤 생명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현존하는 생물들 속에서 작동하는 RNA의 기능을 단서로 그들이 한때 존재했음을 확신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리보-생물체의 가장 큰 문제는 RNA가 단 몇 시간 안에 분해되는 불안정한 물질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체가 더운 환경에 들어가거나 덩치가 커지면, 유전자들은 급격히 분해되어 이른바 유전학자들이 말하는 실수의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하나가 실수를 거듭한 끝에 RNA의 약간 다른 형태인 DNA를 만들게 되었고, 이것에서 원시 -리보솜이라는 기구를 포함하여 RNA를 만드는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전적 복제는 세개의 문자를 하나로 묶었다. 세 문자의 각 묶음은 아미노산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원시-리보솜이 좀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얼마 후 이러한 꼬리표는 서로 엮여 단백질을 형성하고 세 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단어는 단백질을 형성하는 암호가 되었다. 이것이 유전암호이다. 유전학적 발견에서 아마도 가장 큰 물의를 일으킨 논쟁의 대상은 1993년 딘 해머가 발표한 내용일 것이다. 그는 X염색체 위에서 성적(性的) 경향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언론에서는 이 유전자를 ‘게이 유전자’라고 이름 붙이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해머와 비슷한 시기에 여러 편의 연구 논문들이 발표되었고, 그 연구들은 한결같이 동성애는 문화적 압력이나 의식적인 선택이 아닌 ‘생물학적’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연구 가운데는 자신들의 상황이 ‘타고난 것’임을 확신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한 동성애자에 의한 것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선택’이 아닌 타고난 성향 때문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편견이 조금은 적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DNA에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단백질을 기구로 하여 RNA를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좀더 복잡한 생명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루카 LUCA (the Last Universal Comon Ancestor : 최초의 보편적 생물체) 이다. 그녀는 어떻게 생겼고, 어디서 살고 있었을까? (38억년 훨씬 이전에 출현) 일반적으로 그녀는 미생물처럼 생겼고 아마도 온천 부근의 따스한 연못이나 바닷가의 얕은 웅덩이에 살고 있었다고 상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녀가 좀더 기이한 장소에 살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다. 땅이나 바다 밑의 바위 아래 화학 연료를 사용하는 수많은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루카가 땅 속 깊은 뜨거운 돌 틈에서 황과 철과 수소와 탄소를 먹으며 살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까지 지구 표면의 생명은 외각만 살짝 덮고 있는 정도이다. 깊은 땅 속에 사는 호열성 박테리아들은 지구 생명권에 존재하는 유기 탄소의 10배 이상을 만들어 내는데, 어쩌면 이들이 우리가 천연 가스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칼 우즈 (Carl Woese) 가 지적하였듯이, 개체는 아직 형상 없이 다만 유전자가 일시적으로 모여 있는 집단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의 몸을 이루는 유전자는 수많은 다른 '종'의 생명체로부터 유래한 것이므로 그 계통을 분류하는 자체가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한 조상인 루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유전적 개체인 집단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의 종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집단에서 유래하였다." 어떤 생각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수많은 루카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여전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1998년 3명이 뉴질랜드 과학자들에 의한 천재적인 탐색 작업으로, 모든 교과서에 나온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뒤집을 수 있는 가설이 등장하였다. 모든 교과서에는 최초의 생명은 하나의 원형 염색체를 가지는 박테리아와 같은 단순한 세포였으며, 여러 박테리아가 서로 모여 복잡한 개체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새로운 생명체가 생겨났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것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태초의 생명은 박테리아 같지도 않았고, 온천이나 화산이 뿜어나오는 깊은 바닷속에 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패트릭 포르테르 (Patrick Forterre) 가 오랫동안 주장해 왔듯이, 박테리아는 DNA-단백질 세계가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생겨난, 루카가 극도로 특수화되고 단순화된 형태이다. 이들은 뜨거운 장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RNA 세계에 있던 도구들을 대부분 버렸다. 루카의 원시적 분자 구조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다. 박테리아는 우리보다 '훨씬 더 진화한' 형태다. 박테리아는 이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만들어 냈다기보다 그들이 버렸다고 하는 것이 더 가깝다. 박테리아는 RNA 게놈을 버리고 난 후 기생하거나 부유물로 먹고 사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복제를 최대한 빨리 할 수 이는 능률적인 새로운 세포 내 기구를 만들어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박테리아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대체되어 버린 RNA 기구를 아직고 가지고 있다. 무한 경쟁적인 박테리아의 세계와는 달리, 우리는 빠르고 단순한 것이 요구되는 무서운 경쟁의 세계에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문자를 가진 유전암호는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된다. 박쥐부터 벌, 너도밤나무 그리고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CGA는 아르기닌, GCG는 알라닌을 의미한다. 뜨거운 황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원시 대양의 깊은 바닷속에서 살고 있는 고대 미생물(이것은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과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현미경적인 형태의 생물에서도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 지구상에서 동물, 식물, 벌레를 포함하여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같은 유전 암호를 사용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섬모를 가진 원생동물에서 발견되는 극히 적은 변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생물은 같은 유전암호를 사용한다. 이것은 생명이 단 하나의 사건으로 단번에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 수천 개의 다른 생명이 생겼지만, 태고의 혹독한 환경에서 루카만이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1960년 유전암호가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곧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바닷말은 우리의 먼 사촌이며, 탄저병균은 우리보다 진보된 친척이다. 생명이 공통이라는 사실은 경험에서 이끌어 낸 것이다. 에라스무스 다윈은 놀라울 정도로 그러한 사실에 접근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의 동일한 생명에서 유래하였다." 우리는 98% 확률의 침팬지이며, 침팬지는 98% 확률의 사람이다. 침팬지는 고릴라와 97%가 같고 사람도 고릴라와 97%가 같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고릴라보다는 침팬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인간의 게놈이 태고의 환경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르쳐 준다면, 40억 년 동안 일어난 일들에 관해서도 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활동하는 생물 속에 존재하는 암호는 우리 역사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