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나갈 예정인 이 고조선 유적지에서 출토된 청동기 금문해독은 우리 게시판 ' 신지녹도전자 천부경해독' 에 보관중인데 필자는 워낙 오자 탈자가 많아 아무리 살펴 보았어도 글이 나간뒤에 다시 살펴보면 다시 오자 탈자가 나타납니다.
또 더러 보강할것도 있으므로 다시한번 읽으실 분이나 퍼가실 분은 반드시 이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에 보관된 글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금문 해독은 어려울것 같아도 실은 아주 쉽고 재미난 것인데 이번글은 원론적인 서론이므로 좀 지루할지 모르나 다음부터는 순 생식기 어용와 거시기 하는 이론으므로 좀 재미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의 말이나 글자는 모두 생식기 용어에서 출발 했으므로 노골적인 생식기 용어와 거시기 하는 말이 나간다해도 이는 어원을 찾다보니 할 수 없는일, 양해 바랍니다)
2.청동기 금문 해독 서론 2.(이병도 보더 더한 역사 왜곡자들)
" 여보세유! 여보세유! 단군왕검님 핸드폰 맞지유? 전 우리란 놈인디 개천절을 맞이하여 한 말씀 올리려구 혀유. 요즘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침략하고 있고 미국은 FTA로 우리를 먹으려 하고 있는디 소위 지식인들은 미국에 미쳐서 영어가 아니면 말은 못하고 나라꼴이 너무 어수선 해서 좀 도와 주십시사 하고 핸드폰을 첫시유"
" 단군이 어떤 놈이냐? 중국놈이냐?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난 밝달임금이다."
" 아 예. 밝달임금님을 한자로 쓰면 檀君인데 그것도 모르시남유?"
" 인석아 나 있을때는 한자가 없었으니 난 단군을 몰라. 그건 네녀석들이 나중에 중국 글자만 신봉하여 만든 이름야"
" 예 예 죄송허유. 하여간 우리의 초최 국가 朝鮮을 세워 주셨으니 동해물과 백두산이마르고 닳토록 보우해 주셔야지유"
" 朝鮮? 난 그런 나라 전혀 모른다. 그건 어느놈이 세운 나라냐?"
" 에구. 바로 밝달임금님이 아사달에 도읍을 하고 세우신 나라 아녀유?"
" 인석아. 아사달에서 선 나라면 아사 선> 앗선 이지 왜 朝鮮이냐?"
" 한문으로 그렇게 썻으니까 그렇지유..."
" 얼 빠진 놈들. 나 있을때는 중국놈의 한자가 있었대도 안썼겠지만 그땐 한자가 있지도 안았다고 했쟌여. 내가 세운 나라는 분명 아사선> 앗선 이여"
" 아 이젠 알았시유. 아사달, 아사선의 '아사'의 뜻은 처음, 새것이라는 뜻이니 아사달> 앗달은 처음땅, 새땅이고 아사선> 앗선은 처음, 새로 선 나라란 말이지유?"
" 그랴 네놈 말 마따나 그 앗 에 우리말 갑돌이 갑순이 하는 접미사 '이' 가 붙으면 앗이> 아시가 되지 않냐? 그래서 너그덜이 지금도 처음 빨래를 아시빨래, 처음 김매기를 아시김매기라고 하지 않냐?"
" 아 그러니께 일본넘은 朝日新聞을 아사히新聞라 하는것 같이유? 그럼 앗선도 아침에 선 나라라면 朝鮮이 될 수도있겠네요"
" 이런 맹꽁이....내가 아침에 나라를 세워 그것이 조선이라면 그럼 고구려 신라는 점심때 세웠고 고려, 이씨조선은 저녁에 세웠으며 너희 대한민국은 밤중에 세웠냐? 내 앗선의 '앗' 의 원래 뜻은 처음, 새로야. 그러니께 하루의 처음도 해당되어 아침이 될 수도 있긴 있지. 그러니까 조선이라는 朝자는 처음, 새로 란 말 중에 겨우 하루의 아침이라는 뜻만을 빌린것이고 '선' 다는 '선'은 鮮자로 음을 빌려 이두식 문자로 朝鮮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건 우리 글자인 가림토를 다 없애고 우리말을 한자로 적을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절름발이 말인 이두로 쓴게야. 내 나라는 새로, 처음세웠으니 아사선> 앗선이란 말이다.
" 아 예 하여간 나라꼴이 하두 이모양이니 좀 도와 주셔유"
" 멍청한 넘들. 그러니까 환숫 내 아버님과 내가 마련한 그 넒은 중국땅을 다 빼앗기고 이제는 손바닥만한 한반도로 쫏겨났지. 그것도 지금 미국놈과 쏘련놈들의 농간으로 반으로 갈리어 빠움박질 한다며? 나보고 도와 달라고 하기전에 하늘을 연 날인지 개천절인지 되면 내 나라, 내 이름부터...아니지 네놈들 나라, 네놈들나라를 세운 핼비 이름부터 제대로 찾아라! 더 이상 역사를 왜곡시키는 중국놈의 장단에 맞장구를 치지 말란 말이다."
* 이병도 보더 더한 역사 왜곡자들
먼저번에 말 했드시 지금 중국의 고구려 침략인 동북공정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는 지난 과거 일이 아니다.
중국은 얼마전 티벳의 역사를 침범하더니 티벳을 무력으로 장악했고 달라이라마와 티벳민족주의자들이 외국으로 피신하자 얼마전 달라이라마의 제 2 인자와 교섭하여 망명한 사람들을 달래고 역사를 왜곡, 쇄뇌를 시켜 그들을 다시 티벳으로 돌아오게 하였으며 이제는 그들 입에서 우리의 역사는 중국 역사란 말이 나오니 이제 티벳이란 나라는 영원히 지상에서 살아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그 나라를 완전히 먹으려면 그 역사부터 침략해야 국민이 속아 넘어간다. 따라서 이번 중국의 고구려 침략역시 이런 차원으로 봐야 한다.
이는 얼마전 일제가 우리를 점령했을때 먼저 한것은 조선사 편수회라는 것 이었고 이것이 우리 역사 침략이었다.
우리는 일제하의 조선편수회에서 단군실화를 단군신화로 격하시킨 이병도 박사를 역사의 반역자로 몰고 있고 또 대부분 그 제자들인 현재 강단사학자 역시 역사의 반역자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을 비판하는 학자역시 같은 역사의 왜곡자라고 본다.
* 지금 우리는 임진왜란의 원흉인 豊臣秀吉을 풍신수길 이라 하지 않고 도요도미 히데요시 라 하며 신사참배나 하는 小泉純一郞 을 소천순일랑 이라 하지 않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라 하고 毛澤東은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뚱, 鄧小平은 등소평이 아니라 덩 샤오핑, 또 北京은 베이징, 상해는 샹하이 등 그 나라 말을 써야 한다면서도 막상 우리는 우리 말을 쓰지 못하고 한자로 된 발음, 그것도 절름바리 표현인 이두식 발음을 그대로 써서 박달임금이 檀君이며 '앗선' 이 朝鮮이고 신라 장군 거칠애비가 거칠부( 居柒夫)인것 까지는 좋은데 이 거칠애비를 요즘은 터프가이 라고 한다.
이런 절름발이 말을 우리는 지금 고쳐 쓸 생각도 하지 못한다. 민족사 어쩌구 하는 사람이나 한글 전용 어쩌구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면서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
* 위 밝달임금님과의 대화에서 그런 대답이 나올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밝달임금때는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도 없었고 또 금문등을 원시한자라 하고있으나 그것은 요즘 교통표지판처럼 그 뜻은 있었으나 음은 없는 그림 이었다는것은 금문을 조금만 해독해 보면 안다.
이 금문은 당시 글자가 부족하고 또 일반서민이 쉽게 그 뜻이나 알아 볼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이 그림을 그려 보충한 것을 글자가 없었던 중국인들은 거기에 음을 붙이고 발전시킨것이라는것은 역시 금문을 조금만 해독해 보면 안다. 즉 아래 암벽화 같은것들이 금문 그림으로 발전했단 말이다.
* 국보 제147호
울산광역시 울주구 두동면 천전리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암각화.
* 이번엔 고조선 유적지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을 보자.
이 금문은 원방각님이 하바드대 박물관에서 찍어온 사진들중 몇개만 보자.
그러니까 금문이란 처음 부터 지금 한자처럼 어떤 음이 있는 글자가 아리라 악각화 같은 그림들이 발달한 그림이었으므로 그 그림에 어떤 음이 있을 수 없는것이었다.
또 이 금문을 해독하다 보면 중국인들의 말이 왜 우리말과 그 어순이 다른지? 즉 예 한가지를 들면 우리는 천부경의 析三極을 번역하면 "세쪽으로 쪼개다" 인데 중국말로는 "쪼개다 셋으로" 하는지 그 이유도 그들이 애초 문자가 없어 뜻만 있고 음은 없었던 우리 그림을 빌려다가 음을 그들말로 발전시켰다는 증거가 나온다.
이 금문이 은허갑골문> 진시황때 소전 대전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이 자기네 음에 맞추어 발달 시켜 한자를 만든것이고 그 한자와 그 음이 우리에게 들어온것은 우리 글자를 다 없애고 국토까지 다 빼앗긴 다음 그 중국이나 숭상하던 삼국초가 되어서야 들어왔다는것도 금문과 한자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세종때 까지만 해도 우리 한자 발음은 위진(魏秦. 유현덕 조조가 나오던때) 의 중국음 이었고 그래서 훈민정음 서문에도 " 나랏말쌈이 듕귁(中國)과 달라..." 이다. 즉 세종때 까지만 해도 중국이 아니라 듕귁 이었다.
또 세종후 100 년후에 나온 한자사전 훈몽자회만 봐도 朝鮮의 음은 조선이 아니라 '됴션'으로 위진때 발음이 그대로 쎴던것이고 지금 조선이라 하는것은 불과 200 년전 정조때 유희에 의해서다.
즉 우리는 듕귁이나 됴션을 발음하자니 발음이 잘 되지 안으니까 우리가 쉽게 할수 있는 음으로 바꿔 발음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렇게 우리음으로 바뀐다음 생긴 단군이나 조선소리가 이미 우리 말로 정착됬으니 고조선때 우리가 조선이라고 말 했다는것은 정말 뚱딴지 캐먹는 이야기 이다.
그러나 이미 그 말이 정착 됬으므로 필자도 할수 없이 단군, 조선 이라고 말을 해야 일반이 쉽게 알아들을수 있어 그렇게 쓰지만 누구던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입장에서는 될수 있는한 원어를 쓰고 거기에 토를 달아야 할것이다.
즉 밝달임금( 檀君), 앗선( 朝鮮)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 新羅라 하던것이 이제는 서라벌 > 섯벌이 되었으며 지금 전철역 阿峴이 아오개> 애오개가 되었고 고속고도로가 뚫린직후 인터첸지는 지금은 나들목 이라고 하는것 같이 우리 말이 환원된다.
또 얼마전 골든벨은 보니 우리가 흔히 쓰는, 일본에서 들어왔으니 다마내기라 하던것을 북한에서는 둥근파라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우리가 洋파라 하는것 보다 훨신 좋은말이다. 그렇다면 텔레비젼도 그림틀 이라 하면 될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울것 같아도 사실 별로 어렵지 않다. 필자는 이미 애국가도 순 우리말로 번역하여 올려 놓은것이 우리카페 게시판 ' 책에 추가할글...' 166 번에 있다. 이 애국가의 순 우리말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궁금하시면 위 번호를 가지고 찾아 보시라.
*** 愛國歌
나라 사랑노래
1.東海물과 白頭山이 마르고 닳토록
샛파물과 힌오름이 마르도 닳토록
2.하느님이 保祐하사 우리나라 萬世
하느님이 보살피어 우리나라 온곱해
3.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환한꽃 세즘말 환곤가람뫼
4.大韓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환한사람 환한으로 길이 지키이세
5.南山위에 저소나무 鐵甲을 두른듯
앞뫼위에 저소나무 쇠옷을 두른듯
6.바람서리 不變함은 우리 氣象일세
바람서리 안바뀜은 우리 날씨일세
7. 가을하늘 空豁한데 높고 구름없어
가을하늘 비고넓어 높고 구름없어
8.밝은달은 우리가슴 一片丹心일세
밝은달은 우리가슴 늘한마음일세
9.이氣象과 이맘으로 忠誠을 다하여
이얼씨와 이맘으로 나라를 위하여
10.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 또 원문이 한자뿐이고 그것도 난해한 노자도덕경도 순 우리말로 풀어서 우리 카페에 올려 놓았다.
지금 한글학회에서 한글전용만을 떠들고 있는데 그 전에 순수한 우리말 부터 찾아서 쓰다보면 위 新羅가 서라벌이 되듯 자연스럽게 우리말로 환원할 수가 있을것이다.
이와같이 지금 민족의 뿌리를 찾겠다는 학자들은 전연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환숫을 桓雄, 밝달임금을 檀君이라 하며 앗선을 정 한자 발음으로 하고 싶으면 됴션(朝鮮)이라 해야 해야 하는데 조선이라 하고 그 조선이 변음이되어 쥬신대제국 어쩌구 하고 있는 주제에 오직 중국의 동북공정만 탓 하고 있지만 이는 실로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에 맛장구를 치는것이 된다.
필자는 앞으로 단군 신화가 실화가 될 수 있는 수 많은 금문을 해독하여 독자님에게 전체 메일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우리 말의 뿌리가 한자음에서 시작 되었다는 언어학자들의 언어 해석을 정면 비판해야 되고 특히 그간 중국인들이 역시 우리말의 뿌리가 한자에서 시작되었다는 금문 해독가들의 학설을 뒤엎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강단사학이건 재야사학이건 언어 학자들도 마찬가지 이며 금문 학자들도 마찬가기 이다. 물론 이 글을 보시는 당사자 들은 필자에게 항의 하거나 반론을 할것이다. 그러나 필자도 지상 공개토론이라도 할 각오로 이 그을 쓴다.
진리란 어디 어느대학 박사등 권위가 있는자가 말 했다고 진리가 아니다.
여호아가 땅을 만들고 태양과 달을 지구위에 만들어 놓아 돌게 했다는 창세기의 천동설과 그 천동설을 그대로 답습하던 캐도릭의 교리와 교황님의 말씀에 감히 하찮은 갈릴레이가 지동설로 맛장뜨다 화형처분을 받았으나 지구가 도는것은 진실이다.
지금 모든 유식한 학자 들이 최치원 81 자를 천부경으로 알고 음양 오행설, 무슨 도표로 해독했으나 말이 되질 않으니 오죽잖은 필자가 해독한 신지녹도전자 천부경해독에 감히 맛장을 뜨지 못한다.
금문은 엄연히 고조선 유적지 청동기에서 출토됬고 그것은 단군실화를 그대로 그려놓은 그림이다.
이것을 그간 낙빈기등 중국학자들은 자기네 역사로 둔갑 시키자니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도 또 하나의 역사 침략이다.
그러나 그것도 모르는 우리 한국의 금문학자들은 지금 그 낙빈기의 엉터리 해독에 뇌하부동 맞장구를 치며 그를 사이비종교 신도들이 교주 바뜰듯 하고 있다고 보기에 그들의 이론을 100% 뒤집고자 한다.
금문 해독은 누가했다고 정답이 아니다. 그저 4-5 천년 전 선인들이 사건, 사물의 뜻을 알리기 위해 추상화를 그린것 뿐이고 이 추상화는 그 당시 사람이면 아무나 보고 알았어야 함으로 이 금문 해독역시 지금 우리는 박사가 아닌 아무나 할 수 있는것이며 더구나 순박한 생각을 가진 선조들이 그린 그림이라면 지금 해독자는 어느 박사가 아니라 차라리 어린 아이가 낳다고 본다.
이 금문 그림들은 거의 환숫(桓雄)이 하늘에서 내려와 곰네(熊女)와 만나 밝달임금(檀君)을 낳고 앗선(朝鮮)을 세우고 그것을 기념하는 청동기에 새겨진 그림이다.
이것을 낙빈기는 완전 중국 삼황오제의 역사로 둔갑 시키자니 그림과 그 해석이 맞질 않게되고 또 그 이론을 신봉하는 한국 금문해설가 들은 오직 그의 말만 추종하자니 환웅, 단군은 완전 허상인 유령이 되었으며 그래도 고조선만은 살리고 싶었는지 조선소리를 하고는 있으나 환숫, 곰네, 밝달임금이 빠진상태로 조선을 말 하자니 조선의 황제들을 중국 신화의 인물인 삼황오제로 둔갑 시키는 수 밖에 없는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또 이 애초부터 틀린이론을 설명하자니 우리 말이 한자음에서 ...그것도 옛 중국인들의 한자음이 아니라 불과 정착된지 200 년밖에 되지않는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음에서 고대사를 설명하려니 코미디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금문학자들의 말은 마치 아래 언어연구소의 이론과 동일 하므로 먼저 아래 언어 연구소의 이론부터 살펴 보기로 한다.
이론이란 앞뒤 말이 정연한 논리가 성림 되야 할텐데 그들은 자기네 이론을 정면으로 뒤엎은 필자의 이론이 틀렸다 할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감히 남의 연구실적을 비판하고 뒤엎는 처사는 필자역시 선뜻 내키지 않으나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또 지금 시급한 동북공정을 막기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누구 이론이 옳고 그른가의 판정은 독자님 몫이기에 감히 아래에서 언어학자와 금문학자의 글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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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의 뿌리를 왜곡시키는 언어학자들
단기 4338년(2005) 9월 22일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옛 경희궁터) 에서 행한 한글날과 우리글자의 세계화 대회에서 발표한 박종대 언어연구소의 발표문 요지른 본다.
( 좌로 부터 구길수 (고대문자 연구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저자), 김계곤(한글학회장, 전 인천교육대 국어학과 교수), 대종언어연구소 소장대리 사무차장.성명?, 최민자(성신여대 교수, 국사협 차기회장),고준환(경기대 교수. 국사협회장 ) , 김수업(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대표, 전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
사실 필자는 항상 거지 삼시랭이 같은은 모습을 하고 다니는데 그래도 여기서는 양복에 댕기까지 매고 좀 폼 이 나므로 한번 으시대 보자고 이 사진을 올린다. 히히
*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장의 발표문 요지
........영어어원연구의 실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암소를 뜻하는 cow라는 영단어가 있습니다. 이 cow에 대한 지금까지의 어원학계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cow는 고대 영어 cū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영어 cū는 고대 게르만인이 쓴 언어인 게르만조어(Proto-Germanic)에서 *kō(u)z인 것으로 추측되는 바이다. (*표시는 A. Schleicher 이래 그 말이 문서로 증명되지는 않으나 이론상 추정할 수 있는 말의 형태임을 나타낸다.)
이것을 다시 원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산스크리트어 go-(암소)와 밀접한 인도유럽기어 *gwō(u)-s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이 gwōu라는 말도 학자들이 추정해놓은 말이다.(gw 표시는 입을 오므리며 내는 발음인 입술연구개음을 의미한다.)
일설에 따르면 인도유럽기어 gwōu는 언어의 계통이 분명치 않은 수메르어(sumerian) gu에서 빌어들인 말로써, 원래 의성어였다고도 하고, 또 중국어 ‘소[牛: ngō, ngū]’도 수메르어에서 빌어들인 말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 관계는 아직 확실치 않다.
위의 내용에서 보듯 cow에 대한 어원연구는 인도유럽기어까지 가서는 더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cow 이외의 영단어들도 대부분 이런 형편입니다. 인도유럽기어보다 더 이전의 어원에 대한 올바른 방향이 아직 설정되어 있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런데 저는 cow의 고대어음이 go라는 서양 언어학계의 연구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cow의 고대어음인 go가 ‘암소’를 뜻하는 동방문자 牯의 정음 ‘고’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의 뇌리에는 “서양학자들이 ‘소’를 뜻하는 牛[ngu]까지는 접근하였는데, 왜 조금 더 나아가 ‘牯(암소 고)’까지 미치지 못하였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속칭 ‘한자’라 불리는 동방문자의 세계는 방대하고 심오하여 한국, 중국,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동방문자에 정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바, 비록 칼그렌이라든지 네덜란드의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같은 학자들이 있긴 하지만, 서양 언어학자들이 한중일의 고대 어음을 포괄한 자음․자형․자의 부분을 망라하여 총체적으로 동방문자를 인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바, 이것이 바로 주로 서양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영어어원학자들의 큰 한계점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끝에 도출된, cow의 어원변천(정확히는 어음변천)과정에 대한 저의 연구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cow ← 고대영어 cū ← 게르만기어 *kō(u)z ← 인도유럽기어 *gwō(u)s
중국어 gŭ, 일본어 ko(コ) ← 고대한국어 go(牯암소 고) ꀦ
…(상동)… 인도유럽기어 *gwō(u)s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다시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한국어 고(牯암소 고; go)에 이르게 되는데, 이 牯의 음 고는 古(옛 고)에서 비롯되었고, 古의 음 고는 口(입 구)에서, 口의 음 구는 ‘구구구’하는 비둘기, 닭 따위의 새소리에서 비롯되었다.
이상 글을 보면 고대에서 우리는 소(牛) 를 한자음인 고(牯암소 고; go)라 했으며 그 고는 口(입 구)에서, 口의 음 구는 ‘구구구’하는 비둘기, 닭 따위의 새소리에서 비롯되었다. 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그때 사람들은 쇠머리를 고머리하 했으며 , 또 소의 뿔 같이 솟았다는 뜻의 '수메르'를 고메르하 했단 말이고 또 원시말이 거의 그대로 기록된 세종후 100 년후에 써진 훈몽자회에서 牛 만 보더라도 " 고 우" 라 하지않고 " 소 우" 라 했는데 이는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 다음 글을 더 보자. 이 글은 사실 고준환 박사의 발표문이지만 실은 위 박대종 언어연구소의 글을 인용 했던걸로 본다.
.....그밖에 영어의 여러 가지 말이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실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視(시) → see
誦(송) → song
費(비) → fee
病(병) → pain
地(지) → geo
民(민) → men
旦(단) → dawn
液(액) → aqua
萬(만) → many
汝(여) → you
願(원) → want
阿斯達(아사달) → avatar
達(딸 달, 땅) → tata(terra)
朴(박) → bark
戀(연) → yearn
愉感(유감) → euphoria
鉢(발) → bowl
桶(통) → tank
ㅅ백 → 白(백) → speak
腿(퇴) → thigh
送(송) → send
畏(외) → awe
鋒(봉) → point
涕(체) → tear
光(광) → candle
索(색) → search
色(색) → sex
拉(납) → rap, nap
굿 → good 오르가슴(가슴에 오름) → orgasm
肋(륵, 갈비) → rib
樂(락) → love
職(직) → job
宿(숙) → sleep
室(실) → cell
戶(호) → house
숯 → soot
怖(포) → fear
이상 말을 검토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의 원 말이 이 한자로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영어가 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말이 별로 없어 사람의 눈도 눈이고 하늘에서 오는 눈도 눈이며 불어오는 바람도 바람이고 그 바람을 막는 벽 도 바람 (壁- 바람벽) 이라 하던 시절 우리는 우리말과 한자로 된 음 두가지 말을 썻다는 것인가?
환숫때는 한자는 그만두고 아무런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천부경을 적을 글자가 없어 신지는사슴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글자를 만들고 당시 그림글자에 불과한 금문은 마치 지금 교통 표지판 처럼 그 뜻만 있었지 음은 없었으며 그래서 그 글자를 중국인들이 자기네 말과 맞추다 보니 그 금문 한 글자에서 지금 한자 10 자 이상의 나오고 또 음 도 여러개가 됬다는 사실은 금문을 조금만 해독해 봐도 금방 알 수가 있다.
여기서 그 위 글이 틀렸다는 중거 몇가지만 우선 검토해 본다. 맨 먼저
視(시) → see
그러니까 우리 민족은 그때, 그 말이라곤 몇 마디 되지도 않아 먼저 말 했드시 눈(目) 도 눈이라 하고 눈(雪) 눈이라 하며 불어오는 바람도 바람, 바람을 막는 벽(壁)도 바람 이라고 하던 그 시절 우리는 "본다" 는 말을 " 시 한다" 라고도 했단 말인가? ㅎㅎ. 그렇다면 지금 우리말에서 본다는 말은 시 라고 하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말은 있을 수 없고 다만 한문으로 말할때만 視聽, 視力 視覺 등에 쓰여 지고 있다.
誦(송) → song
우리말에 노래를 '송' 이라고도 하는가? 우리가 "노래부른다" 고 하지 " 송 부른다" 고 하는것 보았는가?
이 誦(송) 역시 詩誦등 한자를 한문, 즉 문장을 만들때만 쓰는 글자이다. 그런데 이 발음도 훈몽자회만 보더라도 송이 아니라 숑 이었고 그 발음은 위진때 발음이며 이 숑이 지금 송으로 정착된것은 불과 200 년전 정조때 유희에 의해서다.
그렇다면 우리 말이 만들어 지던 원시 우리 조상들은 노래 부른다를 숑 부른다 했단 말인가? ㅎㅎ
그리고 이 숑이 서양으로 건너가 song 이 됬단 말인가?
宿(숙) → sleep - 그러니까 우리말에 잠을 잔다는것을 '숙' 이라 했다는 것인데 이 숙도 원래는 숙이 아니라 슉 이었다. 그러니까 선조들은 잠을 잔다 할때 " 슉 한다" ㅎㅎ. 했다는 말인데 필자는 이런 말을 들어 본 일이 없다. 아무리 한자에 미친 선비들의 말에도 이런 말은 없다. 다만 숙박시설(宿泊施設), 여인숙(旅人宿)등 한문으로 말할때만 쓰여진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자 풀이들도 모두 저급 코메디로 본다.
* 또 우리가 한자로 된 말을 쓰지 않았다는 증거는 땅이름을 보더라도 알수 있다. 즉 지금 5 호선 공덕역과 충정로 역 가운데 있는 역이 애오개역 인데 필자는 처음에는 왜 이 역이 애오개 인지 궁금했다.
필자는 일부러 전철을 내려 역무원에게 물어 봤다. 그러나 역문원은 애오개가 무슨 뜻인지 모를다고 했다. 필자는 전철역 밖으로 나와 그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뒷골목에 들어가 장기를 두던 노인들을 만났다.
" 할아버지. 저 역이름이 애오개 인데 왜 애오개 인가요?"
" 잉. 여기가 원래 애오개 니까 애오개 역이라 하지."
" 애오개가 무슨 뜻 인가요? "
" 그건 나두 물러"
" 여기 동 이름이 뭔가요?"
" 잉. 아현동이지"
" 아현동 이라고 이렇게 쓰나요? "
필자는 땅에 한자로 阿峴洞 이라고 썻다.
" 잉. 맞어. 근대 왜 그런걸 자꾸 묻는거여? 나 지금 장기 두기 바뿐디..."
필자는 번개같은 생각이 들었다.
" 죄송해요. 그럼 이 근처에 大峴洞이라고도 있나요?"
" 잉. '큰고개'가 대현동이 되었지. 예전엔 큰 낭구도 많았고 호랭이도 나왔어"
" 큰 낭구에 호랭이 까지요? 예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상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노인들은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 땅 이름조차 순수한 우리 말을 써다는 증거이다. 즉 우리는 평소 대화에서 한자를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큰고개는 큰 大 자와 고개현(峴) 자를 써서 대현동이 되고 작은 고개인 애고개(아 + 이= 애)의 '아' 는 원래 뜻은 하늘천부인 ㅇ 으로 만든글자이니 ㅇ 의 뜻은 필자가 항상 말하듯 하늘이며, 하늘은 언제 누가 만든것이 아닌 원래 부터 있었던 것이고 이 원래는 애초 이며 이 애초는 새로운것, 어린것이 되어 우리말 아이(兒)는 어린것, 작은것이 되며 이 아+이가 '애' 가 되므로 '아' 는 작은 뜻도 있다.
따라서 아현의 '아' 를 정 한자로 쓰고 싶었다면 그 뜻과 발음이 같은 兒 자를 써야 할것을 아마 동민들이 " 이 동에는 애새끼만 사는 동네냐?" 고 왕왕 댈테니ㅎㅎ 兒자 대신 어덕 阿 자를 쓴 모양이다.
다음 애오개의 '오개' 는 우리말에서 고개 가 전음된 말로 지명에 무수히 나타난다.
따라서 애오개란 작은 고개란 뜻 이고 작은 고개가 있다면 그 근처에 큰 고개도 있을 것이데 이것이 대현동이다.
또 이런 지명은 한자가 들어왔건 말건 순 우리 말로 한것은 너무도 많았다.
필자는 6.25때 충남 당진, 부모님의 고향으로 피란을 갔었다.
당진군 소악면에 틀무시 라른 里 가 있다. 이 작은 里 가 왜 市인가?
지금은 그 里 이름을 기지시리( 機池市里) 라 하지만 6.25 당시만 해도 기지시리 하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들 '틀무시' 라 했다.
" 아자씨 워디 가슈?"
" 잉 난 틀무시 간다. 넌 워디가냐?"
" 전 버그내(合德) 장터에 가는디유"
여기서 기지시란 機池市이고 이 뜻은 틀(베틀등 기계)못(池) 이란 말이다.즉 전에서 부터 어떤 베틀등 어떤 기계를 를 만들었고 기계를 만들자니 못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틀못' 인데 여기에 접미사 '이' 가 붙어 틀못이 가 됀 모양이다. 이것이 발음상 틀못이> 틀모시> 틀무시가 되어 사실 里 에 불과한 마을에 접미사 '이'에 불과 했던것이 市자까지됐다.
하여간 지금은 그 지명 덕분인지 이 기지시 부근에는 제철, 자동차 공업단지가 들어서 우리 선산있는데 까지 공업단지로 위협 받고 있다.
다음
" 버그내가 합덕(合德)이 된것은 '버그'는 '벅' 이며 이것은 박이 모음이 돈홍된 말이고 박은 밝 이다. 따라서 지금은 모두 오염되고 개발로 의해 흔적을 찾기가 힘 들겠지만 전에 거기에는 작은 개울들이 모였고 그 모아진 개울은 합덕 평야를 적셔 주므로 밝은땅, 즉 밝달을 만드는 덕이 있었던 모양이라 그 뜻을 따 合德이 된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막상 틀무시에 살면서도 틀무시를 모르고 버그내에 살면서도 버그내 하면 어딘지 모른다.
왜 필자가 이런 말을 자세히 쓰느냐 하면 우리말을 유식한체 하고 한자로 표시 하려 하나 우리말이 한자로는 표시할 수 없으니 절름발이 표현인 이두를 쓴것이고 위 박달임금, 앗선을 단군, 조선 이라 하는것도 이와 같다는 말이다.
이상과 같이 우리는 불과 6.25 때 까지도 우리 말을 써 왔는데 위 글에서 우리는 보는것을 시(視) 라하고 노래 부르는것을 송(誦) 이라 했단 말인가? 그렇지 안으면 일반 백성들은 우리말을 쓰는데 위것들은 우리 말이 아닌 중국음의 중국말을 썼다는 말인가? 또 지금 위에서 발음되는 음은 모두 세종 이후 더 정확히 말하면 200 년전 정조때 유희가 고친 한자음인데....
즉 우리는 우리 말을 우리 글자로 적을수가 없으니 듕귁 음으로 발음되는 ...그것도 어순이 다른 한자로 밖에 쓸 수가 없으니 그걸 빌려 쓴것이 아닌가?
또 위 글에 너무 과장된 말도 있다.
" 숯 → soot"
soot 의 뜻은 검댕, 매연, 유연(油煙).이다.
즉 †soot [sut, suːt] vt. 검댕으로 더럽히다[그을리다], 검댕투성이로 하다.
그렇다면 환숫(桓웅)이란는 '숫' 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기서 숫,숯,숮의 어근은 모두 ㅅ 이니 모두 같은 말이다.
우리 말에서 숫이란 서 있는것이고 더 엄밀히 말하면 남근이다. 그러니까 환웅의 우리말은 환한나라 숫 이란 말이고 필자는 이 숫 > 슷 에서 스승, 스님등의 말이 나왔다고 햇다.
그리고 말이 별로 없던시절 불에탄 재 속에서 서 있는것을 말하다 보니 목탄(木炭)도 숫 이라 한다고 했다. 그런에 위 영어권의 사람들은 이 우리의 목탄이라는 숫 만을 가져다가 자기네말 검뎅이를 만들었단 말인가? 너무 아전인수격 비약이 심한것 아닌가?
필자 생각에는 이런식으로하면 우리 뿌리를 찾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학계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오히려 비웃음이나 사고 말 국수주의에 빠져 이병도 처럼 우리 역사와 우리 뿌리를 왜곡한다고 본다.
* 우리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 왜곡시키는 금문 학자들.
필자의 목적은 위 언어연구소의 글이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어원을 한자에 두려는 현재 사학자 들이나 금문학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우리 말의 뿌리와 환숫, 곰네, 밝달임금, 앗선등의 우리 역사의 시발점을 고조선 유적지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의 금문으로 바로 잡아 보려는 것이다.
필자가 신지녹도전자, 기림토 그리고 금문을 해독한다 하니까 비웃는 사람이 많을것이다.
" 제까짓게 하바드대 박사라도 되나? 어떻게 금문을 해독해?"
그러나 세종도 하박드대 박사가 아닌데도 훈민정을 창제한분이다.
금문(金文)이란 대략 4-5 천년전 우리 조상이 사시던 고조선 유적지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새겨져 있던 그림이라 했다.
먼저 말 했드시 말과 글자가 부족하여 사물, 사건의 의사표시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순박한 우리 선조들은 부족한 말, 글자를 그림으로 보충해 남에게 알리고자 했고 이 그림을 자꾸 그리다 보니 그림이 점점 간단하게되어 추상화 처럼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을 읽는 방법도 어떤 유식한 학자가 할것이 아니다. 유식한 학자는 오히려 자기가 전에 배운 선입감 때문에 오히려 옛 그림을 이해 하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따라서 지금 세상에 금문 그림을 제대로 이해 하기 위해서는 유식한 사람보다 배운것이 없는 순박한 사람일 수록 좋고 더구나 어린이 일 수록 좋다.
필자는 금문을 해독해 보다가 선입감 등이 들어가면 손자놈인 밤톨이 한테 물어본다.
" 밤톨아 너 맨 위 그림이 뭐 같으냐?"
" 글쎄? 연못인가? 아니다. 하늘이다."
" 왜 하늘이지?"
" 다음그림이 천사 같거든. 막 날라다니고 있잖어?"
" 천사는 연못위에는 안 날라다니나?"
" 그런 천사가 어디있어? 천사는 하늘을 날라 다녀야 천사지"
" 그래? 그럴듯 하군. 그럼 맨 마지막 그림은?"
" 그건 그림이 아니고 한자야. 임금왕자. 할아버진 그것도 몰라"
이게 밤톨이가 해독한 내용이다.
그럼 이번엔 낙빈기등 중국학자들의 해독을 보자.
먼저 맨위 둥근 그림을 사마천의 사오본기 에서는 전욱(顓頊) 이라 했는데 顓자는 오로지 란 뜻이고 頊는 멍청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이는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 글자라 하였다.
이는 아마 사람은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즉 "ㅁ"과 같이 모가 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가 없이 둥그러니 멍청한 사람으로 본 것 같다. 이는 원만한 "ㅇ" 같은 것이 좋고 "ㅁ"같이 모가 져서는 못됐다...안 된다는 우리의 천부경 사상과는 다른 생각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는 옳은 일을 많이 하고 다녔고 그래서 그런지 한서(漢書)를 엮은 반고(斑固)의 백호통(白虎通)에는 "謂之顓頊何 顓字專也 頊字正也 言能專正天地道也"라 하여 어찌 멍청한가? 顓자는 오르지란 뜻이고 頊자는 바르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능히 천지의 도 이거늘... 이라 하고 있다.
다음 다른 중국학자들은 이것을 丁으로 읽고 있는데 그 이유는 丁巳年 에 왕이...이라고 읽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음 나오는 글자... 子자와 같이 생긴 글자를 뱀사(巳)로 보아 정사년의 丁 이라 한 것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그림이 둥그니까 정원 이나 못(澤)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낙빈기는 이 둥근것을 구슬(珠)로 풀었는데 우리의 소남자 선생은 박혁거세나 김수로 왕이 알에서 나왔고 또 신라 초 알지, 알천이니, 알영등 알씨들이 많다하여 알(卵)로 풀었더니 낙빈기가 깜짝 놀라며 너무 정확한 해독이라 했다 한다. (이상의 글은 김대성 저 금문의 비밀 에서 그 요점만 간단히 발췌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소남자 선생의 해석에도 좀 아쉬움이 있다.
즉 박혁거세나 김수로 왕 등이 알에서 나왔고 알지 알천등이 알씨를 고집한 이유는 선대로 부터의 전통 이었을 것이고 그 선대 에서는 새알이나 닭알 등을 부러워하여 알을 택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즉 알은 생명의 시원이고 이 생명의 시원은 알 이전에 하늘이며 태양인 것이고 이 생명의 정기를 받아 만들어 지는 것이 새들에게는 알 일 것이고 사람 한 테는 사내의 정액이 되어 정액의 우리말인 "알", "얼" 이 된다는 것이다.(이는 필자만의 이론이지만 책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에 자세히 써 있드시 우리말의 뿌리를 풀어보면 확정이 된다.)
그러니까 이왕 생명의 시원을 말하려면 하늘이나 태양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고 이는 바로 하늘 천부인 으로써 환웅이나 단군은 그 하늘의 아들들이며 그 후손이 바로 박혁거세나 김수로 왕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 두 번째 글자를 보면 필자의 이론은 더욱 명확해 진다.
위 丁巳년으로 보는 이론 말고는 다른 이들은 모두들 이 두 번째 그림을 "뛰는 아이"로 보아 子자로 해독 하고 있는데 필자의 생각은 밤톨이 놈의 생각과 같이 조금 다르다.
이 아이는 과장되게 큰 원을 머리에 이고 있기 때문에 이는 머리가 아니고 바로 하늘이나 태양이며 또 그 아이는 밤톨이 말마따나 날개가 달렸으니 이 그림은 "아이가 하늘이나 태양을 머리에 이고 날라 다니는것" 이며 그러므로 이는 아직 子인 아들이 아니고 천사, 즉 아들이 될 인자, 즉 정액, 정수를 표시한 것으로 본다.
* 다음 위 사진에서 세 번째 글자는 王자라고 다들 하는데 필자도 여기에 이의는 없다.
다만 지금까지 중국의 학자들은 그 글자 생김새가 王자 같이 생겼으니 그냥 王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몇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
우선 王자 맨 위 획인 하늘이 "一"자와 같이 평탄한 것은 좋다.
그러나 맨 아래 획 땅과 같은 것은 그냥 "一"자가 아니고 중간이 불룩하게 나왔다.
이는 땅 이란 "신지녹도문자 해독 하나" 에서 빛 받는 땅, 즉 "ㄴ"을 설명했듯이 땅이란 평지 뿐만이 아니고 산같이 높은 곳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하늘과 땅 사이에 十가가 아니라 大자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양팔을 벌린 사람이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사전인 설문해자에 太자를 사내라 했다. 즉 사람이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서 있으며 거기에 "숫" 까지 붙어 있으니 만물중에 가장 중요하고 큰 존재인 사내라는 것이다. 大자도 마찬가지로 사람이라 한다.
그렇다면 하늘아래 땅 위에 사람은 가장 큰 것이고 이 사람의 대표가 바로 王이 된다.
그러므로 원래 王자는 위 사진 금문에서 王자 처럼 하늘 (ㅡ)과 땅(ㅡ) 사이에 十자가 아닌 大자를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면 위 글자풀이를 가지고 위에서 말한 중국인들이 풀어본 대로 한번 해석을 정리해 보자.
* 우선 멍청 하다는 전욱(顓頊)으로 풀어 보면...
멍청이의 아들 왕이...
개성이 없는 놈의 아들 왕이...
(그러나 이 해석은 말이 되질 않는다.)
* 丁巳年에 왕이...
( 이 해석 역시 정사년 이라면 년대가 맞지 않는다.)
* 다음 정원이나 못
정원 (못)의 아들 왕이...
( 이 해석도 말이 되질 않는다)
* 낙빈기의 구슬 즉 주자왕(珠子王)
구슬아들(사위)왕이...
(이 해석도 매우 서투르고 말이 연결되질 않는다)
* 소남자의 알 (卵)
알(생명)의 아들 왕이....
소남자 선생은 낙빈기가 살아 있을때 그로 부터 사사 받았다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말 우리 상식으로 해독해야 할것을 중국인 낙빈기한테 사사 받아서 그런지 말이 어색하게 연결 된다.
* 이제 필자와 밤톨이의 해독 대로 한다면
"하늘(태양)의 '얼'(천사, 혼, 정액, )인 왕이... "
되는데 이는 우리말 임금 에서 그 말의 뜻과 일치 한다.
책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을 인용한다.
임금의 어원은 "잇큼" 이고 이는 한자로 쓸 수 없으니까 이사금(尼師今)이라고 쓴 것이며 그래서 이 잇큼이 임금이 된 것인데 삼국유사 일연의 이빨 금 이야기는 완전 뚱딴지 캐먹는 이야기이며 그 이유는 먼저 말한 하늘 천부인 "ㅇ"은 하늘이고 "ㅅ"은 솟는 뜻이 있으므로 하늘에서 솟는 것의 대표가 바로 해 이므로 이 해 솟음을 먼저 "앗" 이라 했으나 먼저 말했드시 원시 우리말에서 모음이 혼동 되므로 "앗"과 "잇"은 같은 말이다.
또 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우리 한민족으로 보이는 진시황때 불로초를 구한다고 도망갔던 서복(徐福:일명 서불(徐市))이 일본에 도착하여 당시 고대로 부터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살던 사람들에게 붙여준 이름이 바로 日本이다.
日本을 일본 사람들은 잇본, 닛뽄 이라 하는데 잇은 바로 日이며 뽄 은 本으로 뿌리란 말이니 잇뽄은 日本이된다.
다음 우리말 잇큼> 임금의"큼" 은 한자로 干으로도 표현 되는데 이는 역시 신라왕 馬立干( 머리 큰)이나 징기스칸의 '칸'과 같은 것이다.(자세한 설명은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194-195쪽)
이상 우리말 잇큼 > 임금의 뜻이 "태양같이 큰" 이라면 위 금문 해석을 " 태양의 정수인 왕" 으로 해야 한다. 즉 금문 해독은 그 해독 결과가 우리말 하고도 맞아야 정답이 된다.
독자님들은 위 밤톨이놈 해독과 중국 금문학자들의 해독 어느것이 옳다고 생각되는가?
필자가 왜 금문해독은 반드시 한국인의 상식으로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이, 그것도 배운 사람들 보다 배운것이 없는 순박한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독자님들이 만약 이 금문해독이 밤톨이놈 것이 중국의 대 학자들것 보다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밤톨이 놈이나 필자가 그 중국 학자들 보다 더 유식해서 그들의 해석보다 옳은게 아니다.
먼저 우리의 상식은 사람같은 모습에 날개가 붙었다면 하늘을 날라다니는 천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천사란 하늘에 살고 있다는 상식이 있다. 즉 물에 사는 물귀신에게 날개가 붙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鬼란 꼭 사늘에만 사는것이 아니라 산에도, 들에도, 연못에도 산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학자들이 子 자로 해석한것은 너무 아는게 많기 때문이다. 즉 있는 그대로 본 것이 아니라 선입견이 들어가 한자 子 자와 비슷하다 하여 한자로 해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금문 해독은 중국 어느학자나 하바드대 박사가 할게 아니라 우리 상식으로 우리 말은 하는 순박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했던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나올 수많은 금문 해독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한다.
이 금문핵독은 실은 공자님 도 하셨고 이아(爾雅-지금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백과사전) 에도 했으며 장삼식의 大漢韓辭典, 이가원의 漢韓大辭典에도 하고 있으나 이상 두책은 30-124년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 범위를 벗어자지 못하고 있다.
또 문자의 성립과 원 뜻을 밝힌 중국 문자학의 기본 고전이며 易 詩 書 禮 春秋의 五經으로서는 허숙종(허신의 호) 과 맛설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을 정도로 고전에 능통했던 허신이 글자를 한데 모아 해석하고 음을 단 설문해자(說文解字) 가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역사상 신화로만 취급되 왔던 삼황오제를 금문해독으로 실화를 만들었다는, 그래서 중국의 금문해독가중 가장 권위가 있다는 '금문신고'의 저자 낙빈가가 나타나고 그의 책을 우연히 보고 그에게 사사 받고 또 그와 토론하여 朝鮮이라는 나라가 금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논리로 낙빈기에기 찬사를 받았다는 소남자 김재섭 선생이 있는가 하면 그 소남자 선생의 강의를 듣고 그분의 제자가 된 사람은 필자가 알기로는 '금문의 비밀'이란 책을 저술 하신 김대성 선생과 古朝鮮과 韓의 歷史(金文硏究會)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weizhaogen 가 있다.
그러나 그 카페에 들어가 보니 막상 고조선을 연구 하는 금문에서 환인, 환웅, 단군에 대한 말은 아예 없으며 특히 그의 말을 빌리면 단군이란 완전한 허상이며 그간 우리는 이 허상에 속아 역사를 논하고 있다는 것 으로 필자와 논쟁을 하다 논리가 맞지 않아 그만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독자님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은 그 카페의 글을 신입회원은 물론 모두 5 단계의 등급중에 3 단계나 등업되었어도 그 카페 금문에 대한 요지의글은 2 년이도 된 사람도 마음대로 일지 못하게해 놓았단다.
그리고 회원들이 그 금문 요지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등업을 부탁하면 먼저 게시판중 가입인사 및 쉼터공간 부터 읽고 또 본문 내용은 예비상식이 없이는 봐도 모를데니 그 전에 엥겔스의 "가족사유재산과 국가기원"이란 책 부터 보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입인사 및 쉼터 공간'은 그저 가입 인사일 뿐이니 별 특별한 내용이 없고 또 그 독자님은 그 카페에 가입하고 그 글좀 읽자고 부탁 했는데도 2 년이 지났어도 그 요지의 글은 읽을 수 없게 해 놓았단다.
그분 카페에서 신입회원도 읽을 수 있다는 글 몇가지를 소개하니 한번 들어가 보시라.
* 가입인사...12 ( 날짜 : 2002.09.05 19:33
....단군신화에 나오는 "神市"는 殷의 유민이 거주한 지역이었을 것이고, "천부인"은 이보다 앞선 문물의 상징이었을 수 있다.
우리 시원의 역사를 바로보기 위해서는 단군이라는 환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이런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방법의 그 당시(4500년전)의 문자를 명확히 해독함으로써만이 좀 더 가까이 갈 수가 있고, 고조선은 하은주이전에 고조선이 있었다는 것은 소남자선생님이 이미 문자학상으로 밝혀 내셨고, .....
* 동아 토론장에 올린 글 모음 7. (날짜 : 2005.11.04 11:36)
......고대사에 대한 공부한 것을 정리하고, 다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컴퓨터상에 지난 3년동안 고금문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도, 그리고 컴퓨터상에 금문신고를 치면, 제한적이지만 내가 쓴 고조선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도 역사를 다루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남겨진 문헌탓만 하고, 그냥 5000년역사를 말하면서 대륙에서의 3000년역사는 단군이란 虛神에 목메달고 언제까지나 단군에 대한 이야기만을 쓸 것인가? .....
이상과 같기 때문에 필자는 그 분의 카페에서 낙빈기는 사실은 우리 유물인 금문을 해독하면서 얼마나 많은 우리 역사를 말살하고 이것을 중국역사로 둔갑시켰는지 살펴 보려 해도 볼수가 없었다.
그러나 김대성 선생이 '금문의 비밀' 이란 책을 저술하여 그것으로 낙빈기의 금문 해독을 짐작은 할 수 있었는데 김대성의 '금문의 비밀'은 그래도 중국 역사의 원조라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실재성을 밝히는 낙빈기의 금문신고를 객관적으로 보면서도 고조선의 역사를 밝히려는데 심혈을 기우린 흔적은 보이지만 그래도 하느님을 염제신롱 으로 보고 있고 환웅, 단군은 그 상황오제 가운에 없으며 오히려 그 삼황오제를 우리 고조선의 선조로 편입시키려고 하고있다.
여기서 삼황오제란 정설이 없다.
우선 삼황은 天皇, 地皇, 人皇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하느님의 천부인이 天地人이라는 우리 민족의 사상이 동양의 보편적 사상으로 퍼진것을 중국인이 잘못 인용한 것이다.
그 증거는 皇 자란 태양을 뜻하는 힌것 즉 白아래 王 이므로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의 王 에게만 붙일수 있는 글자이다.
그리고 그 白자가 힌것 즉 태양의 빛 이라는것도 원래 고조선 유적지에서 수없이 출토되는 빗살무늬 토기의 빛살, 즉 / 밑에 해의 그림인 日을 그린것이 白자가 되었다.
금문에 나타나는 日자 그림
그러니까 위 그림은 日자 이지만 여기에 빗살이 붙으면 햇빛은 히기 때문에 白이 되며 우리는 이 빛을 얼마나 숭배 했는지 다음 조대기 기록을 보자.
朝代記曰古俗崇尙光明以日爲神以天爲祖...즉 조대기에서 말 하기를 우리의 옛 풍속은 광명을 숭상하였으니 해 로써 신을 삼고 하늘로써 조상을 삼았다...
그래서 하느님의 교훈인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에 나오는 첫 글자 하나 에서 나무들이 태양의 빛을 받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해를 숭상했고 그래서 우리민족만이 백의 민족이라는 점으로 볼때 이 白자나 皇 자는 우리 조상이 그린 그림이었으며 그래서 막상 황제헌원 조차도 감히 皇자를 붙이지 못했기 때문에 黃帝이고 진시왕 때에나 되어 이말이 도용되어 처음 사용되기 때문에 秦始皇이다.
그럼니까 만약 天皇, 地皇, 人皇이 삼황이라면 이는 분명 하느님을 대리한 환숫(황웅), 곰네(웅녀) , 밝달임금(단군)으로 우리 조상일텐데 중국인들은 자기네 조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낙빈기 등이 그들에세는 전설에 불과한 삼황을 지기네 역사상 실존인물로 만들자니 말이 꼬이고 만다. 그 이유는 다음번 신농의 족표 'ㅣ' 에서 말한다.
또 《사기(史記)》에서는 3황을 복희(伏羲)·여와· 신농(神農)으로 보고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황제 헌원씨로 보기도 하며 다른 학자는 복희, 여와, 신농을 삼황으로 하는가 하면, 또 그 중 여와를 축융(祝融) 또는 수인 (燧人)으로 대치하는 설도 있다.
그런데 복희는 보통 거북의 등 무늬를 보고 팔괘를 만들었아는 사람이고 여와는 복희의 여동생으로 복희와 거시기를 해서 인류를 만들었다고도 하여 무씨 사당에 있는 반인 반사 그림을 복희 여와 도라 하지만 이는 그 빈인반사 그림이나 또 그들이 들고있는 천부인 같은 그림으로 볼때 전연 착각한걸로 본다.
( 그림과 설명은 다음번에...)
또 여와는 황토흙으로 인류를 만드었으므로 여호아는 여와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 까지 있으며 염제신롱은 약초를 맛보아 한의학의 원조가 되었는가 하면 유목민에서 정착농으로 농사를 가리켰다 하는 인물이지만 위 天皇, 地皇, 人皇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다음 오제는 전에는 요순우탕하은주 ...의 요순우탕하 라 하기도 했으나 사마천(司馬遷)은 오제를 황제(黃帝)·전욱·제곡·요(堯)·순(舜)이라고 《사기》 첫머리에 싣고 있으며 다른 설 에서는 소호금천씨,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요임금), 제순유우(순임금)이라 하기도 한다.
즉 우리 역사상으로는 알 수 없는 인물 뿐이다.
이와 같이 삼황오제설은 많은 의심을 품어 어느 이론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3황이 《사기》에 첨가된 것은 당(唐)나라 때부터이다. 이와 같이 중국 고대사는 시대가 오래된 것일수록 나중에 첨가되었다. 이에 의하면 3황 5제시대는 중국 고대에 실재하지 않으며, 나중에 하왕조 앞에 접목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3황 5제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런데 이 삼황오제를 낙빈가가 금문을 해독하여 당당히 중국의 실존인물이었음을 밝혀냈다 하는데 그 낙빈기로 부터 전수받은 우리금문학자들은 그 삼황오제를 우리 조선의 조상으로 받아 들이자니 말이 되지 안는 부분이 너무 많다.
* 뿐만 아니라 다른 학자들도 그 삼황오제가 우리 동이족(사실 동이족이란 말은 우리를 비하 하는말) 이고 우리 조상이란다. 그러나 그 들중 순 임금 만큼은 동이족 이라는 말이 맹자등 여러 서적에 너무많으니 그는 확실히 동이족인것만은 사실일것인데 다른 인물은 그냥 상황오제가 유명하다니 아전인수격으로 우리 조상을 만드는 모양인데 이는 참으로 뚱딴지 캐먹는 이론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동이족 이었다 하더라도 우리 조상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부모의 유전자를 정확히 반반씩 타고 난다. 따라서 조부모의 유전자는 1/4 씩 타고나고 증조부의 유전자는 1/8 씩...만약 조상을 100 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 100 대 조상의 유전자는 천문학 분의 일 이 되므로 그분의 유전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그 삼황오제가 우리 한민족인 고조선 군왕이 되어 우리와 피를 섞지 않았고 지나족(차이나족) 의 군주를 하며 그들과 피를 섞었다 하면 그들은 이미 지나족과 유전가가 섞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중국인의 조상은 될 망정 우리 조상은 아니다.
그런데 그 금문의 비밀에서는 낙빈기가 중국인 조상으로 확립시켜 놓았다는 그 삼황오제를 우리 고조선 제왕으로 만들려 애를 쓰고 있다.
꼭 전설에 불과한 인물들을 비렁이 자루찟듯 서로 자기네 조상이란다.
특히 밝달임금이 앗선을 세운것은 요임금 보다 50 년이 늦은 시기로 그의 사위인 순금은 밝달임금과 동시대 사람인데 그가 고조선 7 대 임금므로 해석하고 있어 년대등 맞이 않는것이 너무 많으며 또 황제헌원이 등장하면 그와 탁록에서 싸운 동두철액(銅頭鐵額) 의 치우천왕도 나와야 하는데 그런 이름은 그분들의 금문해독에는 없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동두철액의 치우천왕도 분명 금문에 등장 하는데 그 글에는 그저 귀신으로 해석할 뿐이다.
또 그 역시 소남자 선생처럼 우리 말의 시원을 한자에서 찿으려 하는데는 변함이 없으므로 필자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다.
또 김대성의 금문의 비밀에서는 고조선의 연대가 겨우 9 대가 이어지는 219년이고 그 고조선의 제왕들도 모두 중국인들이 자기네 조상으로 받드는 인물들을 고조선 제왕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그의 책 42 쪽에 보면 고조선 제왕들의 연대표가 있다.
1 대 신농 - BC 2517
2 대 소호 - BC 2474
3대 고양 - BC 2467
4대 고신 - BC 2420
5대 제지 - BC 2365
6대 제요 - BC 2357
7대 제순 - BC 2320
8대 제우 - BC 2311
9대 백익 - BC 2303
계 BC 2297
하 BC 2050-1550
은 BC 1800-1100
주 BC 1134-250
그런데 어떻게 계산 되었는지 그의 책 226쪽에서는 고조선의 연대가 겨우 219 년 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BC 2333년에 1 대 단군 밝달임금 께서 옛 앗선(고조선) 을 세웠고 무려 47대가 이어져 47대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古列加) 께서 BC 295년 나라를 닫으셨다는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록과 너무도 차이가 난다.
즉 환단고기에는 고조선이 무려 47대 2038 년이나 지속되는데 금문해독으로는 겨우 219 년 이란 말인가?
이 낙빈기를 주축으로 하는 금문학자들의 말을 들으면 환웅, 단군은 완전 헛개비 이고 또 고조선의 제왕을 억지로 중국 제왕들의 이름으로 끌어 붙인다
그러니까 만약 이 이론이 맞는다 하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완전 위서가 되는것이고 무려 2000 여년간 중원을 장악했던 고조선 역사는 중국역사에 빼앗기어 날라가고 만다.
과연 어느 이론이 맞을것 같은가? 이것역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장구를 치는것이다.
* 그런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바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됐고 확실한 기록이라는 산해경 기록이다.
이 산해경이란 중국 고대의 지리서. 모두 18권이며 <오장산경(五藏山經)> <해외사경(海外四經)> <해내사경(海內四經)> <대황사경(大荒四經)> <해내경(海內經)>의 5부로 되어 있고 대략 2 세기 이전에 에 써진것으로 보는데 그 시기와 작자역시 불분명하다.
이 책을 정리한 전한(前漢) 말의 유수(劉秀;劉歆)의 기록에 따르면, 이 책은 우(禹)와 익(益)의 치수사업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작자는 알 수 없다. 지금 전해오는 책은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 주석을 단 18권본이다. 뤄양[洛陽(낙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지리·산맥·하천 등의 모양을 기록하였다.
중국 기록에 조선이란 말은 이 산해경에 처음 등장하는데 매우 간단하다
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之
(동해의 안쪽, 북쪽 바닷가에 조선이라고 이름하는 나라가 있다. 하늘이 다스리는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며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사랑한다)
즉 고조선이 중국, 자기네 역사라면 이 산해경에 고조선 이야기가 남의 나라를 말하듯이 나올리 없다.
따라서 위 중국 삼황오제를 우리 조선의 선조로 끌어 들이려는 한국 금문 학자들의 말은 꼬일 수 밖에 없다.
* 다음 기록을 보면 더 확실해 진다.
역시 산해경에" 北有樹名曰雄常先八代帝於此取之" 라고 하고있다.
이것을 한자대로 해석하면 "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이 웅상(雄常)이라한다. 먼저 8 대의 제왕들이 이것을 취해왔다" 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게 무슨 말인지 저 유명하신 안호상 박사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다고 한단고기를 번역하신 임승국 박사는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한단고기 201쪽)
그러나 천부인으로 만든 ㄱㄴㄷ...ㅎ 속의 뜻으로 풀면 간단하다.
이 산상웅상이 한자로 山像雄常 이라고 써 있으니까 한자 해석대로 "山 형상의 숫컷 항상" 이라고 중국인들 상식으로 번역 하려니 말이 않된다.
이는 우리 옛 말에서 山은 "산" 이라 하지 않고 " 오름" 이라 했다.
지금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오름세가 "위세오름" 인데 이 "오름", 이것이 바로 우리 말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글에서 山은 무엇인가?
그때는 한글이 없었으니 ...아니 원시 한글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중국인들이 이 우리 원시한글로 자기네 글들을 쓸수도 없었겠지만...이는 틀림없이 우리 사내 > 산 이란말을 그 음만따 山으로적은것이다.
즉 처용가에서 "다리가 네개 어라 " 를 한글이 없으니까 한자로 "脚烏伊 四時於羅" 라고 이두로 적은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말 "산" 이란 무엇일까?
400년전 한자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丁을 "산뎡" 이라 했다.
즉 장정 (壯丁) 젊은 "사내"를 그냥 "산"이라 했다.이는 우리말 "사내"가 단축된 말이다.
그렇다면 늙은 남자나 애들은 왜 사내가 아니란 말인가?
이는 발기할 수 있는 숫(남근)을 가진 자가 바로 사내 > 산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 산해경의 대 석학들도 풀지 못한 "山象雄常"의 비밀은 풀린다.
바로 이것은 "남근 형상의 숫이 恒常하는것, 常態, 常形" 이란 말이고 이것이 당시 얼마나 귀중한 신앙이며 기도의 대상 이었는가는 그 웅상을 만들어 기도한 우리 민족이나 이 웅상의 풍속을 무려 팔대의 중국 제왕들이 취해갔다는 ( 先八代帝於此取之)는 기록으로 보아 짐작하수 있다.
이번에는 우리 기록게 그 웅상을 세웠다는 기록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관경 본기 제4의 마한세가 상)
...이때부터 소도1)가 세워지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 을 보게 되었다. 산 정상에는 사방에서 온 백성들이 동그랗게 둘러 부락을 이루었으니 네 집이 한 우물을 썼으며 이십분의 일의 세를 내었다. 해마다 풍년이요 언덕과 산에는 노적가리가 쌓이니 백성들은 즐거워 ‘태백환무’ 라는 노래를 지어 전했다....(...自時蘇途之立到處可見山像雄常山頂皆有四來之民環聚墟落四家同井二十稅一時和年豊露積邱山萬姓歡康之作太白環舞之歌以傳)
태백환무(太白環舞) - 태백은 태초부터 힌 것, 해, 환한 것을 말함으로 환님(桓因 = 한한님=하느님) 을 말하고 환무는 '강강 수월래' 같은 춤이다. 그러니까 그때무터 우리 민족은 강강수월래 가사를 지어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 이다.
* 이 웅상 이야기는 위서서 아니다.
즉 위서를 쓰려면 위서가나 일빈인들이 아는 말을 써야 한다.
이 웅상을 해독하려면 천부인으로 만든 ㄱㄴㄷ..ㅎ 속의 뜻을 몰라가지고는 위 안호상 박사나 임승국 박사까지 모르는 소리를 했다는것은 위서가 들도 모르고 전해 내려오는 글을 그대로 썼다는 말이된다.
또 우리의 옛 기록을보자.
환단고기중 삼성기전하편(三聖記全下篇)에보면 다음과 같다.
*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개천(開天=祭天) 하시어 생민(生民)에게 교화를 베푸시고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연하시니 무리들이 잘 따랐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천왕이 토지를 개간하고 구리와 철을 채취하여 병사를 조련하고 산업을 부흥시켰다. 그때 구환1)이 모두 삼신(三神)을 한 근원의 조상으로 하여 소도(蘇塗)를 관리하고 관경(管境)을 관리하며 벌 주관하는 일을 대중과 더부러 하나로 귀착하게 화백 2)을 하였다. 아울러 지혜와 생명을 나란히 닦아 영육의 삶을 온전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구환은 모두 삼한(三韓)의 관경3)에 통솔되었으며 천제의 아들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불렀다.
(桓雄天王조(戶攵聿-처음조)自開天生民施化演天經講神誥大訓于衆自是以後治尤天王闢土地採銅鐵鍊兵興産時九桓皆以三神爲一源之組主蘇塗主管境主責禍與衆議一歸爲和白並智生雙修爲居佺自是九桓悉統于三韓管境之天帝子乃號曰檀君王儉)
1) 九桓 - 중국의 가장오래된 사서 ‘이십오사’에는 구이(九夷)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고구려나 고려의 뿌리말인 굴이 > 구리 > 고리로 굴에사는 사람이란 뜻이고 이 말은 지금도 남아 멍텅구리, 작난꾸러기, 심술꾸러기 등에 쓰인다.
다음 檀君世紀 내용중 제 11대 檀君 도해(道奚)천제(天帝)께서 그 대신들인 오가(五加)에 명을 내린 내용이다.
* 경인원년(BC1891)에 천제(제11대 단군 도해)께서 오가에 명하사 열두 명산의 가장 좋은곳을 골라 국선소도1)를 설치케 하셨다. 많은 밝달나무를 둥글게 심고 가장큰 나무를 골라 환웅상2) 으로 모셔 제사 지냈으니 그 이름을 웅상3) 이라 한다. -중략-
(庚寅元年帝命五加擇十二名山之最勝處設國仙蘇塗多環植檀樹擇最大樹封爲桓雄像而祭之名雄常 - 中略-)
1) 국선소도 - 국선(國仙)은 祭政이 분리된후의 화랑(花郞)즉 남자무당인 ‘화랭이’를 말한다. 우리는 보통 화랑은 신라 김유신때 처음 생긴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엔 환웅(桓雄)도 화랑이고 단군도 화랑이다. 즉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사장이 바로 화랑이고 이 화랑이, 화랭이다.
2) 환웅상 - 환웅은 ‘환한숫’ 이며 ‘숫’은 생명의 창조신인 남근을 말하므로 환웅상은 거대한 남근상을 말한다.
3) 웅상- 웅상은 바로 환웅상과 같은말로 숫컷상인데 이 숫컷상에 매다는 북은 고환을, 방울은 씨앗을 말하며 이것이 현재 서낭당의 서낭나무가 되는데 여기에 울긋불긋한 천 등을 매다는 것은 신성한 음모(陰毛 )를 뜻한다.
* 단군세기 ...겨울 시월에 대시전의 건축을 명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기가 극치를 이루었다. 돌아가신 천제 환웅의 상을 바뜰어 모셨는데 머리의 광채 번득임이 큰 해와 같고 원광(圓光)이 있어서 우주를 비추(照耀)었다. 밝달나무 아래 환화(무궁화) 위에 앉아있음이 하나의 진신(眞神)에 원심(圓心)1)이 있음과 같더라. 천부인을 가지고 대원일의 그림을 누전에 걸었는데 ‘크고 밝고 환한이(巨發桓)’ 2)라 불렀다...
(冬十月命建大始殿極壯麗奉天帝桓雄遺像而安之頭上光彩閃閃如大日有圓光照耀宇宙坐於檀樹之下桓花之上如一眞神有圓心持天賦印標揭大圓一之圖於樓殿立號居發桓..)
1) 환웅의 상을 바뜰어 모셨는데 머리의 광채 번득임이 큰 해와 같고 원광이 있어서.... 하나의 진신에 원심이 있는 것 같더라. 사람의 상을 조각해서 세웠다면 대머리가 아닌한 어떻게 머리에서 광채가 날것이며(後光이면 몰라도) 또 진신에 원심은 무었인가? 이는 분명 남근상이 아닌가?
( 서낭나무가 실은 남근상이듯 여기 삼시랑의 당집 이었던 대시전 안에 있다는 환웅상은 나무나 돌로된 남근상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 남근상은 처음에는 노골적인 남근상 이었다 하더라도 외래 종교가 들어온 이후 우리 말을 비천시 하여 우리 생식기 용어가 모조리 욕으로밖에 쓰이지 않는 우리 풍토로 보아 노골적 남근상도 추상적 남근상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남근 형상의 숫이 恒常하는것, 常態, 常形" 이란 말이고 이것이 당시 얼마나 귀중한 신앙이며 기도의 대상 이었는가는 그 웅상을 만들어 기도한 우리 민족이나 이 웅상의 풍속을 무려 팔대의 중국의 제왕들이 취해갔다는 ( 先八代帝於此取之)는 기록으로 보아 짐작하수 있다.
* 이 기록말고도 다른 시기에 다른 기록으로 남긴 기록이 더 있지만 생략한다.
만약 이런 기록들이 위서가 들이 위서로 쓴 기록들이라면 그 년대나 또는 작자들을 달리하여 위서를 쓸 수 있는가?
* 따라서 웅녀가 신단수 밑에서 아이 배기를 빌었다는 그 신단수도 실은 이 솟터의 웅상이다.
* 우리가 남근 숭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또다른 증거는 고조선 유적지 청동기에서 출토된 다음과 같은 금문이다.
이 남근을 바뜨는 금문은 실은 환숫을 바뜨는 그림이고 이는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중국인들을의 상식으로는 그 이유를 알수 가 없을 것이다.
가재집고록 7책4중 을미고 속의 글자
남근을 받드는 손과 그아래 남근을 상징하는 업뱀으로 이 역시 환웅과 우리말 어비, 업뱀을 몰라가지고는 왜 이런 그림이 그려졌는지 우리말을 하는 우리 민족이 아니고서는 그 이유를 모를것이다.
가재집고록 21책 8중 아래 두 글자
< 위 남근을 싸인으로 쓴 청동기에 새겨진 그림들>
가재집고록3책 13-1 가재집고록18책16 금문총집3권2515 가재집고록22책 19-1
이상으로 보아 위 환단고기 기록이나 산해경 기록은 거짓이 아니다.
그런데 이 산해경에서 중요한것은 "先八代帝於此取之" 즉 선대8 대의 제왕들이 그것을 취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웅상을 모신것은 바로 고조선 황제들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얻어간 8 대 의 왕들이란 바로 삼황오제인데 어떻게 삼황오제가 우리 조상인가?
즉 당시에는 지나족의 나라와 앗선이라는 고조선이 각각 있었다는 말인데 어떻게 환숫, 밝달임금, 부르로 이어지는 고조선의 황제들이 낙빈기가 말하는 그 지나족 역사의 왕이 될수 있으며 그것이 아니면 반대로 또어떻게 삼황오제가 우리 조선의 제왕이 될 수가 있는가?
이렇게 한국의 역사학자와 한국의 금문학자들은 어거지로 그 중국제왕을 고조선 왕으로 편입 시키려 하니 환웅 단군이 헛개비가 되고 도대체 연대도 맞지 않는 역사 왜곡이 되며 또 고조선 제왕을 중국의 제왕들로 본다면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에 따라 춤을 추는 꼴이 된다.
또 이 금문해독가들은 사실 앗선이 원 우리말인 朝鮮의 현재 발음, 즉 옛 음 됴션 이 아닌 현재음인 조선 의 음이 생긴 이유를 금문해독에서 밝히고 있으며(금문의 비밀 60쪽, 135쪽, 207쪽) 또 이 이론대로 사내의 생식기인 자지를 금문해독상 自持, 즉 스스로 갖는것 이라하여 '자지'라 한다는데(60쪽) 그럼 보지는 스스로 갖는것이 아니라 남이 갖는것이란 말인가? ㅎㅎ. 또 부랄도 스스로 갖는것이 아니고 남이 갖는것이란 말인가?ㅎㅎ
이렇게 현재 모든 사학자 들이나 위 언어연구소 이론, 그리고 금문학자들이 말 하는대로 우리 말의 뿌리를 한자에서 찾는다면 이 보지, 부랄등 우리 신체기관 말을 왜 한자로 못쓰고 음낭(陰囊)등 한자로 쓴단 말인가? 즉 부랄등은 우리말이 아니고 오랑캐 말이라 한자로 쓸수 없다는 것인가?
* 따라서 필자는 이 중국인들이, 그리고 한국 금문학자들이 해독한 이론을 100% 무시하고 180 도 바꾸어 우리 한민족의 상식과 한민족의 말로 다시 해독하여 단군신화를 단군실화로 바꾸려 하는것이다.
다음회 부터는 우선 금문의 비밀에 올라있는 금문을 다시 한번 해독하고 독자님 중 가자님이나 원방각님이 보스턴 박물관, 하바드대 박물관, 뉴뇩 박물관등 사진 촬영이 금지되 곳에서 눈치를 보며 몰래 찍어온 금문중 우리 단군실화와 연관이 되는것 부터 해독을 하여 독자님께 이메일로 보내는데 그 글은 이번글 처럼 지루하지 않고 좀 재미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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