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와 주변 국공유지
300만㎡ 규모 도심 알짜 땅
주권 회복 상징뿐만 아니라
용산공원·고밀 개발 방향에
서울의 미래 경쟁력 좌우돼
별로 기억에 남기고 싶지 않지만 자대 배치받던 날의 인상과 선임들 표정은 좀체 잊히지 않는다. 1994년 1월 내가 배치받은 곳은 용산 미군부대 내에 캠프 코이너. 용산고등학교 맞은편에 게이트가 있었는데, 담장 하나 사이로 서울 한가운데 이런 넓은 땅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아스팔트 도로를 제외하면 막사와 사무실 등 건물 터는 대부분 잔디로 둘러싸였다. 캠프 중앙에는 넓은 잔디운동장과 군인식당(Mess Hall)이 있었다.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있는 인근 메인 포스트로 이동하려면 버스를 이용했다. 무료로 운행하는 버스는 30분마다 정류장에 정차해 용산 캠프 전체를 천천히 순환했다. 캠프 코이너가 군인들이 근무하고 생활하는 풍경이라면, 메인 포스트는 미국의 한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군인뿐만 아니라 그들 가족이 생활하는 민간인 시설도 대부분 메인 포스트에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도서관, 채플이 있었고 종합병원인 121병원과 면세쇼핑센터인 대형 몰(Mall)도 있었다. 맥주와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는 네이비클럽도 메인 포스트에 있었다. 고등학교에 부속된 야외수영장은 볕이 좋은 날이면 남녀 학생들로 늘 왁자지껄했다. 주말이면 외출하지 않은 미군들이 삼삼오오 막사 옆 잔디밭에 모여 한쪽은 록음악을, 한쪽은 힙합을 틀어놓고 여유 있게 맥주와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이런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마음 한구석은 그리 편치 않았던 거 같다. 마치 우리 집에 남이 들어와 편하게 쉬는 불편함이랄까.
2022년 10월 용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되고 있다. 한강에 인접한 위치에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이라는 서울 3대 도심의 교차지점에 위치한다. 여기에 대통령실 이전으로 서울의 행정·정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용산미군기지와 인근 국·공유지를 합친 약 300만㎡의 용산공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알려진 대로 용산은 교통·군사적 요충지여서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고려 말 몽고군의 병참기지를 시작으로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고, 임오군란 때에는 청군이 주둔하는 등 주변 강대국에 주권을 빼앗겼던 아픈 역사가 반복됐다. 1908년 조선 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설치되자 순종과 왕비는 경복궁에서 마차를 타고 오찬·만찬회에 종종 참석해야만 했다. 광복 후에는 미군 제24군단이 '캠프 서빙고'를 기점으로 용산에 자리 잡자 정부는 미군에 정식으로 용산기지를 공여하기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서야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정상 간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이 합의되면서 2005년 공원화가 결정됐다. 10월 현재까지 약 30%의 용산기지 반환이 완료됐고, 반환 용지 중 일부는 정식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 국민에게 임시 개방되기도 했다.
용산공원 조성이 갖는 의미는 단지 도심 속의 주민 휴식공간에만 그치지 않는다. 서울 중심에 뉴욕 센트럴파크(341만㎡)에 버금가는 녹지공원이 조성되면 주변 지역의 고밀 복합개발도 가능해져 국제도시로서의 품격을 한껏 높일 수 있다. 이미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의 40배, 여의도공원의 2배에 달하는 용산정비창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효과보다 주권의 완전한 회복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값지다.
지난 6월 주한미군 가족과 학생들이 생활했던 숙소와 학교가 있던 자리를 공원으로 임시 개방한 것을 놓고 일부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논란도 용산 땅이 역사적 수난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민 곁으로 돌아온 데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픔을 겪은 땅이기에 용산공원이 속도감 있게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용산도 환골탈태하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잘보고가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열공 파이팅😃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