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박구리가 사는 은행나무.
이중섭 -
책 한권이 도착했다.
첫 장편소설 '포토타임'을 집필한 이중섭 작가가 일년만에 새로이 선보이는 '직박구리가 사는 은행나무'다.
이중섭 작가가 살아온 삶은 참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인생, 산전수전을 겪어 본 달관자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다.
한 사람의 스토리는 누군가의 삶이고 세계이며, 새로움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꿈꾸고 탐험하며,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놀라움을 경험하며 삶의 지혜를 얻곤 한다.
기다렸던 책이기도 하거니와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작가의 고통을 알기에 책장을 함부로 넘기지 못하고,새벽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고나서
스승을 대하는 것처럼 정갈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한 글자,한 글자를 또박또박 읽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책의 문을 여는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도 뛰어난 이야기꾼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단원은 '숨은 벽,아데니움,직박구리가 사는 은행나무,실비집,검은등뻐꾸기,압록,풍습의 속도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자연과 사물에 대해 성찰하고, 이를 통해 삶을 반영해보는 능력이 출중해보인다.그의 다재다능한 면모 때문에 책은 빛의 스팩트럼같은 다양한 색상을 지니고 있다.
신의 섭리를 논하는 거대담론이나 위대한 영웅들의 대서사시같은 얘기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유려하게 풀어나간다.
각각의 주제로 구성된 이야기지만 맥락은 죽음이라는 공통된 단어를 내포하고 있으며 단원의 이음새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오던 죽음이란 단어를 '은어는 강으로 돌아오고 참게는 바다로 나간다는(29P)' 말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대하면서 죽음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사와 거기에 파생되는 아픔을 다독거리듯 치유해주는 책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허청댁을 대신해 다른 아낙에게서 아들을 얻음으로서 발생하는 갈등을 뱁새에게 탁란하는 '검은등뻐꾸기'로 묘사한 대목은 연극 소재로 써도 손색없을 정도로 글이 치밀하고 섬세하다.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감나무 잎에 달빛이 총총 튕기던 밤,
금탑사 오층탑에 어리는 채수 작은 허청댁의 그림자가 탑과 점점 하나가 되었다(147P)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소설가로서 필력이 정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새 울음소리가 시끄러워 학원수강생들의 원망이 잦아지자
긴 작대기로 새 둥지를 내리치는 무심한 어른과 새집을 지키려는 아이의 작은 외침, 그 난리 속에서도 영역을 지키려는 직박구리와 까치의 다툼이 일어나고,싸움과는 상관없는 엄한 직박구리 새끼만이 죽음을 맞이한다
'직박구리가 사는 은행나무'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두 개체에게 투영해 강자가 군림하는 세계와 그 실상을 알지 못하는 장삼이사들의 아귀다툼을 극적인 자화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책 한권에 종달새 같은 작은 부리에서 나오는 소리를 담아 외치고 있지만 그 안에는 냉정하고 비정한 세상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호랑이처럼 표효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격식을 갖춘 레스토랑에서 품위있게 포크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먹는 게 아니라 '실비집'이라는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하늘에 달이 기울 때까지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담소를 나누는 듯 부담없고 편안한'직박구리가 사는 은행나무'라는 책 한권은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셔줄 단비가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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