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존재의 의미를 잃은 채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립되고 소외된 모습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계 문학사상 가장 빛나는 첫 문장 30선’에 선정된〈변신〉의 첫 문장이다. 〈변신〉은 1912년에 집필을 시작해 1915년에 발표한 중편소설로, 카프카가 표현하고자 한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레고르는 벌레의 몸에 인간의 정신을 갖고 사는 모순적 존재다. 어느 순간 몸에 서서히 적응되면서 벌레의 삶에 익숙해지는 반면, 가족의 냉대로 정신은 점점 고통에 시달린다. 이제 그레고르에게는 이대로 벌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인간으로 살 것인가라는 선택이 남는다. 어쩌면 그를 다시 인간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가족의 관심과 애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족들의 눈에 그레고르는 없어져 주기를 바라는 끔찍한 물건일 뿐이다. 그렇게 가족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그레고르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정신의 양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지치고 병든 몸을 내려놓고 희미한 새벽빛을 받으며 평화롭게 숨을 거둔다. 이후 가족들은 안도감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무척 당혹스러웠다”는 말로 시작하는〈시골 의사〉또한 꿈과 같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난데없이 가상의 존재들이 튀어나오고, 상황에 맞지 않는 이상한 말들이 오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독자들에게 더 당혹스러운 이 소설은 겉으로 드러난 자아 아래 무한한 무의식이 숨어 있고, 그 무의식의 핵심은 동물적 충동이라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발표한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당당히 고전 명작으로 사랑받는 이 짧은 소설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카프카의 문장과 행간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어쩐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는 듯하다.
목차
변신
시골 의사
작품 해설
작가 연보
독후감―배수아(소설가)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저: 프란츠 카프카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방대한 양을 남겼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되어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역: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사냥꾼, 목동, 비평가』를 포함하여 『콘트라바스』, 『승부』, 『어느 독일인의 삶』, 『9990개의 치즈』,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1백 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출판사 리뷰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과 부조리를 초현실적인 문장으로 파헤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중산층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카프카는 평탄치 않은, 소외되고 배척된 삶을 살았다. 몸은 유대계 체코인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독일인이어서 체코인들에게 배척당했고, 제국 시민인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변방의 보헤미아인으로 무시당했으며, 독일인들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살았고, 기독교인에게는 유대교도라는 이유로 유대인에게는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외면받았으며, 작가로서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결국 카프카는 유대인이라기에는 너무나 독일적이고, 독일인이라기엔 너무나 보헤미아적이며, 보헤미아인이라기에는 너무나 유대인적인 경계선상의 존재였다. 그럼에도 카프카를 독일 작가로 분류하는 것은 독일 문학과 사상, 문화에 뿌리를 두고 독일어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법학 박사학위까지 받지만, 문학을 자기 삶의 유일한 의미이자 탈출구로 여겼다. 그렇게 평생 작가의 꿈을 놓지 않았고, 일을 하면서도 밤새 글을 썼다. 그러나 부조리한 삶과 고독한 죽음의 이미지, 슬픈 정서로 가득한 글은 난해하고 기괴한 것으로 평가되어, 마흔 살로 요절할 때까지 그를 소설가로 기억하는 체코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작가로 부활시킨 사람은 유명 작가이자 평생지기인 막스 브로트다. 브로트는 대학 시절부터 카프카의 재능을 알아보고 글을 쓰라고 독려했으며, 그의 작품을 출간하고 알리는 데 앞장섰을 뿐 아니라 사후에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원고들을 모아 직접 출판하기도 했다.
독일어에 ‘카프카스럽다kafkaesk’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터무니없고 불가사의하고 위협적인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가리키는데, 카프카 문학과 관련해서 보면 부조리한 세계와 거대 권력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개인의 무력함과 두려움, 좌절, 실존적 위협을 의미한다. 카프카는 그런 무력감을 있을 법하지 않은 초현실적인 사건과 대상을 빌려 아주 명료하게 표현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지극히 구체적이고, 대상을 추상화하거나 서술이 감상적으로 흐르는 일이 없으며, 묘사는 언제나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건조하다. 그러나 세부 묘사가 아무리 치밀하더라도 사건 자체는 기괴하기 짝이 없고, 독자는 그런 기괴한 당혹감 속에서 한발 떨어져 실제 현실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변신」은 지극히 카프카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꿈과 같은 비현실적인 일을 빌려 현실을 투영한,
자화상 같은 이야기
카프카는 관료로 취직해 14년 동안 근무하면서 관료 기구의 문제점과 노동자의 위험하고도 열악한 환경, 자본주의의 냉혹함, 그 체제 아래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소외를 절감하는데, 그때의 경험이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의 상황에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채 깨어난다. 이게 꿈일까, 현실일까?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일벌레인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도산한 후 ‘전국을 떠도는 외판원’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정확한 시간에 일터로 간다.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았고, 퇴근한 뒤에도 개인 생활 없이 오직 회사만 생각했다. 심지어 벌레로 변한 뒤에도 출근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에게는 일이 전부다.
현대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삶이다. 자본주의는 인간 삶을 외형적으로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배 원칙을 개인의 내면에 각인시킨다. 그래서 개인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일을 해야 하며, 거대한 공장의 부품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평가된다. 만일 이 시스템에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그런 인간은 벌레나 다름없다. 그건 그레고르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노동력을 상실해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그레고르는 단순한 무능력자를 넘어 가족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레고르처럼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인간이 죄악시되고 도태된다.
다른 한편으로 카프카는 가족을 비롯해 아무리 깊고 끊을 수 없는 인간관계도 결국 미혹에 불과하다는 무서운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레고르의 변신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이 보인 태도는 가정조차 수고와 보상이라는 응분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 순수한 애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레고르는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데, 그의 죽음이 가족에게는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그레고르의 변신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에게 씌워놓은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때까지 자신을 옥죄던 부양의 의무를 벗어던지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내면의 무의식적 소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