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97신]사돈과의 호남湖南의 서원書院 순례
‘서원 순례巡禮’에 기꺼이 동참해준 익재益齋사돈께.
장마 끝 제법 더운 날씨에도 장시간 운전을 하느라 애썼습니다.
지난 4월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에 이어 두 번째이고,
사돈과 문화재 순례는 탐매여행을 포함, 네 번째이군요.
첫 번째 간 곳이 정읍의 고운孤雲 최치원 崔致遠(857∼?) 선생을 배향하는 무성서원武城書院이었지요.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문집인 『계원필경桂苑筆耕』과 『고운집 孤雲集』이 그의 저작입니다.
12세에 당나라로 유학한 우리나라 유학생 1호, 「황소토격문」으로 유명하죠.
얼마 전 번역된 글을 처음으로 읽고 놀랐습니다.
통일신라 전북 정읍군의 옛이름 태산군泰山郡에서 8년간 군수를 하며 선정을 베풀었다지요(890년대).
운이 좋아 최치원선생의 영정을 볼 수 있었구요. 사당 뒤의 거북등 소나무동산이 운치를 더했지요.
친절한 문화해설사 덕분에 서원의 가치를 더 알 수 있었습니다.
병오년(1906) 최익현, 임병찬 주도로 이 서원에서 호남지역 최초로 의병이 창의한 것을 기린 기념비도 있었지요(병오창의기념비).
홍살문을 지나 서원 입구에 외삼문을 대신하는 ‘현가루’누각은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따온 것으로 “우리나라에 ‘풍류風流’라는 현묘한 도가 있다”는 그의 풍류정신을 엿보게 했습니다.
또한 그 마을 출신이 국문학 시간에 배운 ‘상춘곡 賞春曲’을 지은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1401∼1481)이었지요.
일자一字로 배치된 까닭에 제향공간과 유식遊息공간만 있고, 바로 그 옆에 강학공간이 있는 게 특징일 듯합니다.
마침 정읍 칠보가 고향인 친구가 서원 근처에 있는 호화분묘를 보라고 했지요. \
장학사업을 한 어머니의 봉분과 신사임당 동상만큼이나 우람한 좌상坐像
그리고 애견의 묘까지 해놓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줄 모르겠더군요. 꼴불견인 듯했지요.
2019년 7월 유네스코에서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을 ‘세계유산World Heritage’으로 등재했는데,
무성서원은 호남지역에서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과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통칭 ‘세계유산’에는 세계문화유산, 세계자연유산, 세계복합유산 등 3종류의 유산이 있지요.
문화유산은 인공人工적인 유산(예: 창덕궁), 자연유산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유산(예:제주 용암동굴),
복합유산은 자연에 인공이 가미된 유산을 말하지요.
우리나라는 2019년까지 모두 14건이 등재되었구요.
참고로 북한은 개성역사유적지구와 고구려고분군 등 2건,
중국은 만리장성 등 55건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고,
일본은 23건이 등재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세계기록유산만큼은 우리나라가 ‘기록의 나라’라는 명성답게 16건으로 아시아에서 으뜸이며,
중국이 13건, 일본이 7건 등재되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1995년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과 불국사
1997년 수원 화성, 창덕궁
2000년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경주역사유적지구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2009년 조선왕릉 40기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2014년 남한산성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부여와 공주)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2019년 한국의 서원(무성서원,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필암서원, 돈암서원)
등재인증서에는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할 문화 또는 자연유산의 탁월하고 보편적인 가치(outstanding and universal value of a cultural or national property)를 인증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1시간여 달리니, 산 속이 아닌 평지마을에 있는 필암서원이더군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 ∼1550) 선생은 조선 중기의 큰 학자이자 문신이었지요.
성균관에 배향된 ‘동방18현(겨레의 스승 18분)’중 유일하게 호남 출신으로,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 선생과 동문수학을 하며 왕세자(인종)을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인종이 재위 9개월만에 붕어하자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인종이 그려 하사했다는 ‘묵죽도墨竹圖’가 광주시립미술관에 보관돼 있다고 하는데,
정조임금이 선생을 특히 존경하며 쓴 ‘경장각 敬藏閣’이라는 초서편액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물관에는 평생『소학小學』을 중시했던 김굉필과 김안로의 학맥學脈을 이어받아
양자징(소쇄원 주인 양산보의 아들이자 하서의 사위) 등 제자를 기른 ‘호남유학’의 계보도가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있었지요.
재밌는 것은, 그 계보도에 스승이라는 신재新齋 최산두崔山豆(1482∼1536)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은 중종때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20)의 ‘낙중군자회’ 멤버로서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지향하며 개혁을 주도하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로 화순에 귀양,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현지에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
‘호남예학湖南禮學의 종장宗匠’이라고 불립니다. 신재 선생을 연구한 석사·박사 논문도 있습니다.
광양이 낳은 큰 인물로 화순 동복서원에서 배향하고 있지요.
그 제자 중에 열흘 동안 배운 하서가 있었다더군요.
신재 선생이 돌아가신 후 1년 후에 문상을 와 쓴 하서의 제문祭文이 남아 있습니다.
신재 선생이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나귀 등에 양쪽으로 통개술을 달고 갔다는 어느 소설 속 구절을 보고 웃은 적이 있지요. 그분이 바로 초계草溪 최가崔哥로 저의 중시조이거든요.
하서 선생은 울산 김씨의 중시조격인데, 동아일보 지면에 하서 선생 기사가 자주 실리는 것은
경영주가 하서 선생의 후손인 까닭이랍니다. ㅎ흐.
익재 사돈.
한번 마음 먹은 김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나머지 서원(소수서원, 옥산서원, 도동사원, 남계서원, 돈암서원)도 모두 돌아보는 게 어떨까요?
고매한 선비정신이 무엇이고, 성리학의 세계와 그들이 남긴 교훈이 이 시대 우리에게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호남의 여러 문학관文學館을 도는 게 어떨까요?
전남북 통틀어 우리가 모르는 문학관이 40개도 더 되더이다.
여러 문학관을 소개하는 글과 문학가들의 작품세계를 요약하여 사돈이 찍은 사진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구미가 당기지 않으신지요? 하하.
내달말 『가례집람家禮輯覽』으로 빛나는 ‘동방18현’으 한 사람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사계의 아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1574∼1656)을 배향하는 돈암서원遯巖書院과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 고택 참관을 기약하며 줄입니다.
전담 운전도 고마운 일인데, 점심밥값까지 현역이므로 당연하다며 접대를 하고,
문화해설사에게 "사돈 잘 만나 겁나게 배우고 있다"며 겸양해 하는 익재사돈,
큰 마음 먹고 입문한 서예書藝의 길에 큰 진전 있기를 기원합니다.
7월 11일
임실에서 우천 씁니다
첫댓글 신재 최산두가 눈에 확 들어오네. 조광조 낙중군자회 멤버이고, 개혁파이면서 술을 억수로 좋아하네. 과거 50대까지의.우천을 떠올ㅛ리게 만드는구만.
역시, 우리 벗님의 중시조! 피는 목 속이는구만.
이젠, 벗님은 6학년 신재보다 더 오래사셨는데, 냉천부락과 어르신께 보은은 당연지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