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제목을 입력하고 난 또 속이 울렁거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세 글자이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인데 가끔 나를 몸서리치게 하는 기억이다.
<오래된 기억>
그 녀석의 이름은 기덕이다. 성이 박인지 김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초등학교 5학년.
그 놈은 툭 하면 내 치마를 깠다. 그리고는 코끼리 빤쓰래요, 아이들에게 무늬며 색깔을 일러주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놈은 살짝 나오려고 애쓰는 중인 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기도 했다.
엄마도 없는 놈, 이빨도 안 닦는 놈, 비 오는 날 우산도 안 쓰고 오는 놈. 학교 담 근처에 살던 놈.
어느 날 선생님이 눈을 감고 손을 내밀라 하셨고, 눈 감은 아이들 사이로 선생님은 왔다 갔다 하셨고, 선생님이 손바닥에 선물 준 사람은 그 선물을 꼭 먹어야 배가 안 아프다고 하셨다.
난 알고 있었다.
소녀들이 열광하며 읽던 하이틴 잡지에서 생경스런 sex라는 단어를 처음 만나고도 그게 어떤 결합인지 눈치챘던 것처럼.
그게 기생충 약인 것도 알았고, 내 뒤에. 기덕이가 앉아 있는 내 뒤에서 선생님이 맘췄던 것도 알고 있었다.
똥 누면 벌레 나오는 드런 놈.
나는 그 놈이 가출해서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도 더러웠다.
<더 오래된 기억>
당진 터미널 앞 대호탕.
샤워 꼭지를 차지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던 작은 목욕탕.
너무 빡빡 밀어 아프다고 빼는 내 등짝을 철썩 때리며,엄마 힘들어 죽겠어. 하던 소리가 아직도 생생한 그 목욕탕.
지금은 없어졌는지 궁금하다.
훈군한 목욕탕에서 딸기 우유를 빨고 있는데..
저 앞에서 긴 머리를 엎드려 감고 있는 여자 다리에 뭐가 있다.
엄마... 저것 봐...
아이구, 하면서 엄마는 씻다 말고 때도 안 민 나와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그 여자의 엉덩이에서 다리로 이어진 것은 기생충이었고,
난 기생충이 그렇게 길다는 것, 이쁜 여자한테도 기생충이 있다는 걸 알고 우리 엄마만큼이나 놀랐고...속이 쌔 했다..
한동안 나는 목욕탕에서 모세혈관까지 민 듯 빨개지는 곤욕을 치르지 않았지만..
20년이 훌쩍 지나도록 봄,가을미면 꼭 어느 날은 엄마의 약 먹으라는 소리와 함께 메슥거려하며 빈 속에 구충제를 삼켜야했다.
가끔씩 식구를 못알아보기도 할 만큼 나빠진 엄마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사왔는지 모르겠지만 , 그래도 구충제는 꼭 챙긴다.
허리를 끊는 듯한 생리통만 빼고는 거의 약을 먹지 않는 나인데
어른들과의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송어회를 삼켜야 할 때는 돌아올 때 구충제를 산다.
1년 동안 내가 제일 많이 먹는 약이 아마도 타이레놀 다음으로 구충제일걸. 서너번은 먹으니까..
나한테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기생충이 1위다.
욕도 그렇다..
교차로에서 신호가 빠뀌어서 출발하는데 신호 위반하고 쌩 달려드는 차 때문에 화들짝 놀라도 나쁜 놈 하고 욕하는데...
진짜 나쁜 놈한텐 , 진짜 울렁거리는 놈한텐 기생충 같은 놈 하고 욕한다.
오늘은 일진이 사나웠다.
기생충 같은 놈을 100번은 했나 보다.
잠깐 외출했는데.
도에 관심 있는 청년이 나 보고 남편 잡아먹겠단다.ㅋㅋㅋ
별 기생충 같은 놈 다 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