虞美人•春花秋月何时了
(우미인• 춘화추월 하시료)
/ (北宋) 李煜(이욱)
朴今玉 讲解
* 들어가기
오늘은 나라의 불행이요 시인의 행운이라 불리는(国家不幸诗家幸,赋到沧桑句便工) 오대(五代) 시기 남당의 후주 이욱(李煜)의 사 한편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살면서 어느 누군들 가슴 아픈 사연 한두가지가 없겠습니까? 이 사를 읽다 보면 그런 꾹꾹 눌려져 있던 마음속 깊은 곳의 애수와 슬픔이 다 작품속의 글귀처럼 정말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다 훨훨 털어 버리기를 원합니다.
https://youtu.be/QpYUtXcqL9c
https://youtu.be/mQb9HmNF898
https://youtu.be/HJ8z2ly5wmE
* 설명(注释)
1) 虞美人:우미인, 원래는 당나라 시기의 교방곡(教坊曲)이었다가 후에 사패명(词牌名)이 되었다. 또한 “一江春水”“玉壶水”“巫山十二峰” 등 이라고도 한다. 쌍조(双调)이며 56자이고 상하편(上下片) 각 네 구절이다. 우미인: 중국 초나라 왕 항우의 애첩, 늘 항우를 따라 다녔다는 절세의 미인이다.
2) 了:(마칠) 요, 마치다. 끝내다.
3) 故国:고국, 남당의 옛 수도 진링(金陵, 지금의 난징(南京))
4) 雕阑玉砌:조란옥체, 꽃을 조각한 난간과 옥석으로 쌓은 계단을 말하며 여기서는 남당의 궁전을 가리킨다. 阑: 난, “栏”이라고도 한다. 砌: 체, 계단. 应犹:응유, 응당 여전히. “依然”이라고도 한다.
5) 朱颜改:주안개, 그리워하는 사람이 이미 노쇠함을 가리키며 암묵적으로 망국(亡国)했음을 의미한다. 朱颜: 주안,홍안(红颜),젊은 용모, 즉 미인을 가리킨다. 혹은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6) 君:군, 시인의 자칭(自称). 能:능, “都”라고도 하고 ,“那”,“还”,“却”라고도 한다.
* 번역문(译文)
봄꽃은 해마다 만개하고 가을의 달은 어김없이 매년 밝거늘
시간은 언제 되어야 끝날 수 있으려나?
지난 세월속에 아픈 과거가 너무 많아 작은 루각에 어제 저녁 다시 동풍이 불어오니
루각에 올라가 달을 바라보며 머리를 돌이켜 고국 생각에 빠진다
옛날 진링성에 화려하게 조각한 난간과 옥돌로 쌓아올린 계단은 아직 있으려나
단지 그 안에 사는 사람만 바꿨을 뿐이거늘 마음속의 애수와 한이 얼마나 있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그것은 동쪽으로 흘러가는 도도한 봄물과 같이 하염없으리라.
* 창작배경(创作背景)
이 사는 이욱이 죽기 전의 마지막 작품으로 978년에 지었다. 이때 이욱은 이미 송나라 도성인 변경(汴京)에 이미 거의 3년을 구금당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이욱은 7월 7일 생일인 저녁에 옛 기녀들을 불러 이 사를 노래하게 했으며 송태종이 전해듣고 독약을 하사해 죽였다. 송나라 王铚의 《默记》에 의하면 송태종은 줄곧 이욱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으며 죽이고저 하는 마음을 품은 지 오래되었는데 이 사는 이욱이 죽게 만든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 작품감상(作品鉴赏)
이욱의 이 사는 광범위한 공명을 불러 일으키는데 그 이유를 꼼꼼히 따져보면 결말 속의 상징성 있는 비유와 감화력때문이다. 애수를 형상화하게 썼을 뿐만 아니라 추상화되게도 했다. 시인은 명확하게 애수의 진실적 함의가 무엇인지 쓰지 않았다. 단지 과거의 호화롭고 사치스런(纸醉金迷) 향락한 생활을 그리워했고 단지 그 표면인 형태만 전개했다.
“恰似一江春水向东流。”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아주 쉽게 이 가운데서 어떤 마음상의 호응을 받게 되며 그것을 빌어 유사한 감정을 토로하게 된다. 왜냐 하면 사람들의 애수는 함의가 각양각색이지만 모두 ‘봄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듯 하다’는 그러한 외부적 형태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사상보다 더 크기때문에 이욱의 이 사는 광범위한 범위내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천고에 전해지게 된다.
이욱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어쩌면 동정할만 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가 그리워하는 과거는 꽃조각을 한 난간과 옥돌로 쌓아올린 계단인 제왕의 삶과 사사로운 정이 난입하는 궁중비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자되는 명작은 예술적으로도 독특한 부분이 있다.
“春花秋月何时了”는 시인이 옥살이하는 신세를 밝히며 봄꽃과 가을 달빛이 과거지사를 생각나게 해 마음 아파할까 걱정한다. “春花秋月”는 대개가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나 시인은 그가 빨리 끝나기를 “了”에서 간절히 소망한다. 루각의 동풍은 봄의 정보를 가져오지만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불러 일으켜 시인의 한탄을 불러온다. 예전 같지 않음으로 인해 그가 타향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애수를 돋보이게 했고 화려한 강남의 군주가 갑자기 옥살이 하는 눈물 나는 심경을 묘사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이욱은 군주가 되었을 당시 매일 노래와 춤과 여자에 빠져 조정을 살피지 않았고 간신(谏臣)을 함부로 죽였다. 이 시구를 통해 과거에 위엄이 대단했던 군주가 옥살이하면서 마음속에는 슬픔과 쓰라림과 분개만 있는 게 아니라 적게나마 회한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小楼昨夜又东风,故国不堪回首月明中。”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작은 누각에 다시 봄바람이 불어오고 봄꽃이 만개한다. 남당의 왕조를 돌이켜 생각하고 이씨 가문의 승계를 생각하니 본인의 고국은 이미 멸망이 되었다. 봄바람이 부는 것을 들으면서 달을 쳐다보며 애수에 빠지고 밤에 잠 못 이루게 되어 ‘또’(又)라 했고 이 상황은 여러번 나타났으며 정신적인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듦을 나타냈다.
하편에서 “雕栏玉砌应犹在”로 이어 가면서 고국의 상황을 뇌리속에 상상해 본다. 위에서 “故国不堪回首”라 함은 머리를 돌이켜 견뎌야 하는 비통은 견디지 못함을 의미하나 여기의 “雕栏玉砌应犹在”는 비록 돌이키기 견디기 어렵지만 부득불 돌이켜야 하며 시시각각 돌이킴을 의미한다. “只是朱颜改”는 이미 예전과는 완전히 다름을 의미한다. 인생은 짧고 변화무쌍함을 나타내며 과거지사와 고국, 홍안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애통을 표현했다. 여기서는 이욱이 나라가 성이 바뀌고 강산이 색이 변하는 것에 대한 감개무량을 암시적으로 표현한다. “朱颜”은 물론 옛날 궁중의 미인들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과거의 모든 아름다운 사물, 아름다웠던 생활을 상징한다.
이상의 여섯 구절에서 시인은 전력을 다해 아름다운 장면과 슬픈 감정, 과거와 현재, 경물과 사람의 비교를 하나로 융합했다. 특히 자연의 영원함과 인간사의 파란만장을 강렬한 비교를 통해 마음속의 슬픔과 애수, 회한을 완곡하게 쏟아 내었다. 그리고 마지막 천고의 절창 “问君能有几多愁?恰似一江春水向东流。”가 된다. 시인은 분방한 필치로 문답의 형식을 이용해 마음속의 긴 애수와 한을 토로한다. 먼저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질문을 해서 추상적인 ‘애수’(愁)를 드러내며 생동한 비유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로 답을 한다. 넘치는 봄물로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넘실거리는 애수와 한을 비유해 아주 생동하고 적절하다.
전반적으로 맑고 응집되었으며 아름답고 청초한 언어로 비유, 의인, 설문 등 여러가지 수사기법을 이용해 고도로 개괄하고 남김 없이 시인의 진실한 감정을 표현했다. 이 사의 감정은 깊고 강렬하며 도도한 강물과 같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제방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를 가지고 있다. 도마위에 사는 망국의 군주가 이렇게 대담하게 망국의 한을 토로하다니 이는 역사에서도 보기 드물다. 그래서 시인은 생명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프랑스 작가 뮈세(缪塞, Musset)는 ‘제일 아름다운 시가는 제일 절망적인 시가이며 여느 불후의 작품은 순수한 눈물이다’(《五月之歌》)라고 말했는데 이 사는 바로 이러한 작품이다.
* 이욱 (李煜)
중국 오대(五代) 남당(南唐)의 마지막 왕(937~978). 중국 오대 남당의 군주로 세칭. 이후주(李后主)라고 함. 자는 중광(重光). 호는 종은(鍾隱). 송나라에 패하여 유폐되었다가 독살되었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무능했으나 예술적 재능은 탁월하고 비범했다. 서예에 뛰어나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음률에 정통하였으며 시와 문장은 모두 일정한 조예가 있었고 특히 사(詞)의 창작에 뛰어나 “千古词帝”라 불림. 후세에 대한 영향이 큼. 사(詞)를 서정시로 완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전기의 작품은 주로 궁중의 향락적인 생활을 묘사하며 풍격은 연약하였음. 현재 보존돼 있는 사는 확정된 것이 38수, 시는 16수이다.
* 우미인(虞美人)
우미인은 진나라 말기 사람으로 우희(虞姬)를 말하며 항우의 여인으로 군중에 늘 함께 동행했다. 사면초가의 곤경하에서도 항우 곁을 지켰고 항우는 그녀를 위해 《垓下歌》를 지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그녀는 용모가 뛰어나 도성이 무너질 정도 였고 재능이 뛰어나고 춤 추는 모습이 매혹적이여 ‘우미인’이라 불렸다. 하지만 항우가 패배하게 될 때 초나라 군영에서 그녀는 자결을 했고 그래서 패왕별희(霸王别姬)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다.
항우가 죽은 뒤 한나라 황제 유방은 예를 갖추어 우미인을 다시 매장해 주었다. 후에 우희가 피를 흘렸던 곳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 아름답고 다정하며 협객의 기운을 가진 우희를 기념하기 위해 이 꽃을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렀다. 한국에서는 그 꽃을 꽃양귀비라 부른다. 약용가치가 있다. 진통, 진해, 지설할 수 있으며 기침, 이질, 복통에 사용이 된다.
사패명, 이욱(李煜)과 毛文锡의 사를 正体로 하며 이욱의 사는 쌍조 56자, 전후 각 네 구절이며 毛文锡의 사는 쌍조 58자, 전후 각 다섯 구절이다. 대표작은 이욱의 《虞美人·春花秋月何时了》, 《虞美人·风回小院庭芜绿》 등 이다.
* 소감
망국의 군주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애수와 한이 엄청나지만 현 상태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는 시인은 그럼에도 다시 한번 분투해 보려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기세를 가지고 있으며 만천하의 본인의 한을 드러내고저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사를 듣고 송태종이 죽일 결심을 굳히고 시인은 목숨을 잃는다. 조용하게 죽은 듯이 살았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까 생각해 본다. 또한 와신상담했던 월나라 왕 구천(勾践)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어떤 치욕도 이겨내고 힘을 키워 다시 나라를 복구한 구천과 비교하면 이욱은 참으로 문인의 섬약한 마음과 몸을 가진 약자이다.
그래서 그의 운명은 송태종이라는 다른 권력자의 손에 달려 있고 결국은 목숨을 빼앗기게 된다. 강자가 되는 길만이 스스로의 운명을 장악하고 조상에게서 넘겨받은 나라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 나가기
따뜻하고 새가 지저귀는 봄날의 끝자락에 봄꽃과 봄바람을 맞이하며 슬픔에 잠겼던 나약한 망국의 군주를 생각하며 그의 작품을 뇌리속에 떠올려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갑니다. 깨달음이 있는 의미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음에는 단오에 관련된 소식의 사 한편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