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모빌리스* (외 1편)
권수진
카톡, 오랜 침묵을 깨는 스마트폰의 노크소리
패턴 잠금장치를 푼 한 쌍의 연인이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대화창 밖으로는 흰 눈이 내리고
카페 여주인은 액정화면 속의 환한 불을 밝힌다
매뉴얼을 들고 온 종업원에게
플립커버를 펼친 여자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카카오톡 두 잔을 주문한다
테이블 위에 따뜻한 수다가 담긴 찻잔을 올려놓고
사장이 시키는 일에만 열중하는 안드로이드 같은 여종업원
커플들은 자신의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누르던 시절로 잠시 돌아간다
곁에 있어도 은하계 저편에 있는 것처럼
각자의 블랙홀에 푹 빠져 살아가는 모바일 시대
소셜 네트워크 그물망에 갇힌 세상 속에서
엄지손가락이 빛의 속도로 파닥거린다
대화에 굶주린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서로의 친구들을 홀짝홀짝 마신다
연락처에 새로운 친구 목록이 추가될수록
점점 얇아지는 슬림형 인간관계
페이스북에 심취한 두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찻잔 속에서
끊임없이 주파수를 던지는 사랑이 차츰차츰 식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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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세대.
천상열차분야지도*
밤하늘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들로 가득하다, 북극성 주변을 맴돌며 오차 없이 정확하게 돌고 도는 별들의 운행, 한 번도 궤도를 이탈해 본 적 없는 뭇별들이 타원을 그리며 지구별에 반짝인다
천원을 빼곡히 둘러싼 성좌들의 간이역을 지나 계수나무 하얀 쪽배를 타고 그녀가 온다, 덜컥덜컥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어둠을 가르며 한 줄기 미리내가 떨어진다, 그러나 광활한 우주를 비상해야 할 새들의 날갯죽지가 내게는 없다, 배냇시절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가야 할 은하철도999를 감상할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까
그녀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린 적이 있다, 깊은 심연에 빠진 그리움의 시간들이 어둠 속 저편으로 저물 때까지 수억 광년을 행성처럼 떠돌았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포악한 짐승 한 마리가 중천에 떠 있는 달을 한입 베어 물자 그믐이다.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캄캄한 세상, 저 멀리 고요한 밤의 정적을 일깨우는 기적 소리만 서럽게 운다
그대 남기고 간 흔적들을 돌에 아로새긴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했던 기억들이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물처럼 흐릿하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나는 늘 흔들렸고, 철길이 되어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한 두 직선의 거리만큼 나란히 서 있는 그대를 바라본다, 뼛속 깊이 음각으로 새겨진 잊지 못할 추억들은 먼 훗날 전설이 되어 밤하늘의 별자리로 촘촘히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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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년 조선 숙종 때 돌에 새긴 천문도의 탁본(보물 제837호).
—시집『철학적인 하루』(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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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진 / 1977년 경남 마산 출생. 경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2011년 최치원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제8회 한국농촌문학상 대상. 시집『철학적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