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소풍갈 때나 맛 볼 수 있었던 사이다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뚜껑을 열면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와 함께 톡 쏘는 맛과 달콤한 맛은 보릿고개의 고단함을 한 순간이나마 잊게 해주었다.
하지만 병따개가 요즘처럼 흔치 않았다.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이었고 해외여행도 개방되지 않아서 빨강색의 스위스 육군나이프도 없었다. 그 땐 병따개가 없어도 별로 걱정이 안 됐다. 어금니가 병따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생활도 점차 나아짐에 따라 마시는 술도 막걸리에서 소주로 또 소주에서 맥주로 바뀌게 되었다. 소주는 병마개가 손으로 틀어서 열게 돼 있어 누구나 쉽게 열 수 있지만 맥주병은 병따개 없으면 쉽게 열리지 않게 돼 있다. 식당에선 병따개가 준비돼 있고 병따개가 없으면 스푼으로 열었다. 나이트나 큰 술집에 가면 웨이터가 병따개를 차고 다니면서 마술 연기라도 하듯이 '팡' '팡' 소리를 내면서 따 주었다.
야외로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어울려 캠핑을 갈 때나 소풍을 갈 때 아이스박스에 맥주를 넣어 갈 때가 있다. 병따개를 미리 준비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깜박 잊고 병따개를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난감해진다. 그런 경우에도 히어로는 나오기 마련이다.
어릴 때 어금니로 사이다병을 따던 실력으로 맥주병을 거뜬히 따는 친구도 있고, 또 어떤 친구는 맥주병을 양손으로 잡고 병뚜껑을 서로 걸어서 닭모가지 비틀듯이 힘을 주면 어느 한 쪽의 뚜껑이 오픈 되었다. 또 어떤 친구는 와르바시(나무 젓가락) 하나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열기도 하였다.
나는 배를 타면서 소주나 맥주가 동이날 것을 대비하여 미국에서 슈퍼에서 2L짜리 큰 병에 든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준비해 두곤 했다. 와인병은 소주 병이나 맥주병과는 달리 코르크 마개로 돼 있다. 일부 값싼 와인에는 소주병처럼 돌려서 여는 브랜드도 있긴 하다. 코르크 마개는 숫가락이나 와르바시로서는 열리지 않는다. 반드시 풀러가 있어야 한다. 풀러에는 와이너리나 수입상에서 홍보차 혹은 서비스 차원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돼지꼬리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겼는데 이것을 코르크 마개에 힘을 주어 밀어 넣은 다음 힘껏 잡아당기면 빠진다. 또 기어를 이용하여 새 날개 처럼 쫘악 펴진것을 누르면 코르크 마개가 위로 올라오게끔 돼 있는 것도 있고 바테리를 이용하여 스위치를 누르고 있으면 자동으로 올라오는 것도 있다. 와인 애호가들 중에는 와인풀러를 모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마치 파이프 담배 애연가들이 파이프를 모으듯이 말이다.
오늘 아침기사에는 맥주 병따개로 숫가락 모양을 본떠 만든 하이트 진로의 테라 스푸너가 등장하여 히트를 치고 있다 한다. 18일 식음료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굿즈는 하이트진로의 테라 스푸너다. 숫가락으로 병을 따는 문화에 착안해 숫가락 모양의 오프너 굿즈로 애주가들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으로 통한다. 3년 간의 연구 끝에 개발했고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를 광고모델 썼다는 점이'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튜브 조회수500만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2월 출시한 이후10만개 초도물량이 모두 소진되자 하이트진로는 추가로40만개를 유통시켰지만 아직도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한다. 스푸너를 생산하는 중국 제조업체가 최근 코로나19셧다운 영향으로 충분한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서 희소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이트진로 굿즈 판매매장인 두껍상회에서 1만원에 팔리는 스푸너는 최근 중고시장에서 1만5000원~3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셀럽들에게만 증정한 금색 스푸너는10만원에 구입하겠다는 글도 올라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