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아름다운 5060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수필 수상 남한산성 가는 길
최윤환 추천 0 조회 482 22.11.21 18:10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2.11.21 19:55

    첫댓글 남한산성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조.
    저는 인조의 삼전도 굴욕보다 더 마음 불편한 것은
    아들 소현세자가 청의 황제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친밀한 관계가 되자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해서 소현세자를 독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서 정말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며느리 손자들까지 죽음으로 끝나게 했다니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인물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2.11.21 20:30

    댓글 고맙습니다.
    인조반정...

    1636년 12월의 병자호란...
    명청교체기에 명나라만을 떠받들던 조선조는 신흥 청나라군대한테 항복해서...
    50만 명쯤의 조선인이 청나라로 끌려갔고, 일부 여자는 화냥년이라고 일컫었고,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불과 380여년 전의 일이군요. 바로 코앞에서 전개된 굴욕적인 역사....
    지금은 2022년.. 이따금 중국인들이 지하전철 잠실역에서 나와 바로 인근에 있는 '삼전도비' 앞에서 위 빗돌을 올려다보대요.

    조선조역사...
    답답하기만 하죠.
    국사 공부를 하면 조선조 중기, 후기에 들어와서는 정말로... '쪼다'라는 인식이 들대요.
    조선조의 못난 3대왕은 임진왜란의 선조, 병자호란의 인조, 구한말의 고종...

  • 22.11.22 13:34

    <병자호란 47일의 굴욕>이라는 책을 쓰면서 많이 답사한 곳입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병자호란 당시 그 엄동설한,
    추위에 죽어가던 병사들의 고통과 비탄의 소리가 돌담 사이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픈 곳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해 4대문 안 골목골목이 시체로 쌓이고, 집은 모두 불탔는데
    왕과 대신은 산성으로 피신해 싸울 능력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쳐댔지요.
    결국은 수십만명의 백성이 엄동설한 눈길을 거적대기와 집신 맨발로 심양까지 끌려가 노예 시장에서 팔려나갔으니...

    인조와 선조는 조선조 최악의 왕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백성을 죽음의 질곡으로 내모는,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 지도자는 용서해서는 아니될 최악의 지도자일 뿐입니다.

  • 작성자 22.11.22 20:06

    댓글 고맙습니다.
    병자호란에 관한 책을 쓰셨군요.

    제가 사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오르면 동남편에 남한산이 보이지요.
    병자호란... 그 추운 겨울철 12월이 침략당했고, 인조는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했고, 남한산성 안에 뭐 그리 군량을 사전에 비치했을까요?
    왕과 대신들은 그런대로 굶주리지는 않았겠지만 일반백성들은 오죽이나 배고팠을까요?
    사람이 죽으면 작은 비밀문을 통해서 사체를 성밖으로 내보내면...그걸 몰래 살점을 져며서 먹는 백성들도 있을 터.
    청나라는 구태여 성을 공격하지 않고는 에워쌌고..
    고작 한달 남짓 버티다가는 항복해서.... 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 인근에 나와서 항복했지요.
    저는 이따금 송파구 석촌호수에 있는 삼전도비를 봅니다.
    답답한 국사이지요. 치욕의 역사이기에...

    최근사를 되돌아보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요?
    1950년 6월 25일. ...
    리승만대통령은 '달려가 런승만'이가 되어서 한강 이남으로 도망쳤고, 그 즉후에
    제1한강교를 폭파시켜서 숱한 피난민들이 폭파되어 죽었고, 강물에 떨어지고...


    화냥년...무슨 뜻일까요?

  • 22.11.22 22:32

    @최윤환 원래 병자호란 때 청에 붙잡혀 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라 했는데
    비록 돌아왔지만 몸을 더럽히지 않았나 해서 많은 차별을 받았고,
    그래서 결혼했던 여자는 시댁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 양반가에서는 자결을 강요하기도 했다 합니다.
    일설에 그 환향녀들을 비속어로 화냥년이리 불렀다는데, 역사학자들은 그 근거가 희박하다고 말합니다.
    단 중국에서는 기녀를 화랑녀(化娘女)라고 칭하기도 한답니다.

  • 작성자 22.11.22 22:50

    @단풍나무숲
    설명글 고맙습니다.
    화냥년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었지요.
    차마 차마 설명하기가 뭐해서....

    서울송파구 석촌호수는 동호 서호로 갈리지요. 호수 가운데 위로는 자동차도로가 있고
    서호도로 바로 근처에는 '삼전도비'가 있지요. 예전 삼전동에 이 빗돌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삼전도비 운운하지요.
    하지만 비석에는 '대청황제공덕비'라는 한자가 크게 새겨져 있지요.
    이 비석을 보호하는 지붕이 있는데 시설규모는 정말로 초라하지요.
    창피한 역사였으니까요.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그래도 그게 우리나라 역사이기에 가르치고, 배워야겠고, 이를 소재로한 문학 등이 더욱 활발했으면 합니다.
    국난극복으로 민족의 자력을 높혀야 하니까요.
    21세기인 지금도 남북한으로 양단된 찌질이 국가이지요.
    통일이 되어서 보다 강력한 국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동해의 독도문제... 일본은 '다케시마(죽도)'라고 하면서 또 넘보고 있대요.
    위 글 덕분에 국사공부를 더 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