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걸어온 지리산둘레길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봄에 걷기 시작했는데...
겨울이 내려앉은 방광마을에서 산동면 탑동마을까지 싸목싸목 걸었다.
지리산국립공원을 이웃하며 걷는 임도와 마을을 잇는 옛길이 정겨웠다.
방광마을 – 난동갈림길(4.2km) – 구리재(3.7km) – 탑동마을(3.7km) – 산동면사무소(1.4km) 《총 13km》
지난 달에 걸음을 멈추었던 방광마을 소원바위 앞에 섰다
오늘은 특별히 박병준 필립보 신부님께서 함께하셔서 더욱 좋았다
19구간 시작점에서 도로를 건너면 곧바로 참새미골 캠핑장으로 간다.
이곳은 천은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지나는 곳으로 경치가 제법 수려하다.
아직도 빠알간 열정이 살아있는 산수유나무 밑으로 지나갔다.
길은 끝없이 이어진 감나무 농장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감을 완전히 수확하지 않고 조금씩 남겨놓은 너그러움이 참 좋다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이재무 <감나무> 부분
울창한 숲속에서 전각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전각 안에는 전남도 유형문화재(제186호)인 대전리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었다
석불은 바른손으로 왼손 검지의 윗부분을 감싸는 '지권인(智拳印)'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석불은 인의(仁義)에 따라 중생을 다스린다는 비로자나불이다.
눈·코·입이 훼손되긴 했지만 양쪽 볼이 풍만하고 소박한 미소를 띠고 있다.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석불이 있는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미륵골로 부른다
나는 금칠을 한 고급스런 불상보다 민중의 애환이 깃든 이런 불상이 더 좋다.
석불 입상을 지나 감농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당동마을로 내려선다
지리산 남악사당이 이 마을 북쪽에 있었다고 해서 '당동마을'이란 이름을 얻었다.
당동마을은 최근 화가들이 많이 이주해와 ‘화가마을’로도 불린다.
마을 앞으로 긴 띠를 이룬 안개가 흐르고 있어 신비로운 정경을 보여주었다.
예술인마을은 구례군이 인구 유치와 문화예술 진흥 차원에서 2008년도에 조성하였다.
화가, 조각가, 도예가, 옻칠공예가 등 은퇴를 앞둔 30여 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산다.
현재 토요일마다 집을 개방하는 ‘토요 오픈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Open 예술 In’ 깃발이 걸린 집의 문을 두드리면 작품을 감상하거나 작가와 차 한 잔 나눌 수 있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례의 일부로 지리산 둘레길의 마을로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예술인마을 한 가운데에 '몬떼(MONTE)'라는 모피 전문점이 있다.
안에 들어가보았더니 비싸보이는 모피 제품이 가득하다.
남자들은 이런 곳을 얼른 빠져나오는게 상책이다 ㅋㅋ
앙증스런 모과가 길손을 유혹하는 난동마을을 지나간다.
당동마을처럼 산 중턱에 자리해 들판 내려보는 전망이 좋다.
지리산 둘레길은 마을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난동마을에는 수형이 아름답고 기품이 있는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군 보호수로 지정된 이 소나무는 수령이 4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해마다 이 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단다.
이곳에선 10여 년 전까지 당산제를 올렸다.
지금은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이 옛 소식만 바람결에 전한다.
민중들의 애환을 어루만졌던 이런 풍습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이곳은 17구간(오미~난동)의 시종점이다
우리 팀은 이 구간을 빼먹었는데 시간을 내어 이을 작정이다
국가 장기 생태 연구시설 앞에서 쉬어갔다.
이곳은 환경부 및 국립생태원이 관리하는 연구시설이다
강우량, 기온, 풍향, 풍속, 토양 호흡 등을 측정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구리재를 넘어가기 위해 임도를 오르다 보면 구례생태숲이 나온다.
구례군에서 난동마을 뒤편 지초봉에 조성하고 있는 생태숲이다.
이곳은 지난 2000년 산불이 나 흉하게 변했던 곳이다.
구례생태숲에는 다양한 테마숲과 길이 조성되고 있다.
구불구불한 임도가 지루해질 무렵 오붓한 쉼터가 나타났다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살고 있는 마을들이 한눈에 보였다.
돌로 만든 의자 위에는 다양한 싯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거거야
드디어 임도의 오름길 끝에 있는 구리재(487m)에 다다랐다.
구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고 그 이름이 붙여졌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이 이곳에 와서 불로장생의 약을 찾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구리재에는 멋진 정자가 있어서 쉬어가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있는 구절들을 돌에 새겨서 벤치로 만들어 놓았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구리재 정자의 위와 아래에서 정겹게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하였다.
트레킹이 너무 빨리 끝날 것 같아 계획에 없는 지초봉에 들르기로 했다.
생태숲이 조성중인 지초봉 아래에 짚와이어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아직 개장은 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여기까지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산에 가거든
그 안에 푹 젖어 보아라
가만히 귀를 대고
산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세상의 모든 언약이 서서히
깨어지고 있는 소리를
산에 가거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풀바람이 되어 보아라
고만고만한 인연들이 모여
제각기 만들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아라............................................................................김지헌 <산에 가거든> 부분
지초봉 바로 아래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었다
젊은 여성 서너명이 탑승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타면서 내려다보는 지리산의 풍경은 어떠할까?
활공장 바로 위에 지초봉(601m) 정상이 있었다
이곳은 철쭉과 운해가 장관인 곳으로 소문나 있다.
지초봉 일대는 수목원과 생태숲이 조성중이어서 기대가 된다
진눈깨비가 날리는 숲길을 걸어 구례수목원에 당도하였다
작년 5월에 개장한 이곳은 전라남도 제1호 공립수목원이다.
겨을의 수목원은 황량할 것 같아서 입장하지 않고 통과하였다.
탑동마을에 들어서니 구례성당 산동공소가 나타났다
신자가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안타깝고 애잔하였다.
성모님의 인자한 미소가 지리산 곳곳마다 전해지길 기도하였다.
효동마을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건물은 ‘화충법단(和衷法壇)’이란 편액을 달았다.
간판은 ‘재단법인 국제도덕협회 일관도 산동지부’로 걸었다.
일관도(一貫道)’란 유불선(儒佛仙)을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건너온 종교로 신앙 대상은 명명상제(明明上帝)와 미륵불이다.
명명상제는 우주의 최고 주재자고, 미륵불은 석가의 뒤를 이어 앞으로 올 미래불이다.
그 밖에도 유교·불교·도교·기독교·이슬람교의 제불제성(諸佛諸聖)을 공경한단다.
‘다 모아교’라고나 할까?
산동마을을 걷다 범상치 않은 풍광을 만났다.
서시천이 몸집을 부풀리는 두물머리 한가운데서 거대한 정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근사한 정자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물에 잠기지는 않는 모양이다.
드디어 오늘의 트레킹 종점인 산동마을로 들어섰다.
산동(山洞)이라는 이름이 ‘산골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들은 만복대와 노고단 사이 계곡에서 발원한 개천을 따라 모여 있다.
이 개천이 바로 서시천이다.
건물에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일상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어 정겨웠다.
19구간(방광-산동)의 시종점인 산동면사무소 앞에서 모였다.
지리산둘레길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동지들의 얼굴에 기쁨이 서렸다.
'지리산 산동두부집' 벽에 그려진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그림과는 달리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벽화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라도 한 걸까?
시간이 넉넉하다면 산동두부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싶었지만...아쉽다
막걸리맛을 제대로 아는 글라라가 잔을 잡았다
젊은 오빠가 두부 안주를 입에 넣어주려 하는 순간 버스가 출발하였다
오늘 먹지 못한 산동두부는 내년에 와서 꼭 먹고 말거얌 ㅎㅎ
첫댓글 다소 쌀쌀하였지만 풀바람이 되어 싸드락 싸드락~
담소나누며 걷는 발걸음에 한해의 노고를 반추하며
2022년을 마무리 하였네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는 임원분들 감사드리오며
격조있는 산행기로 그날의 체취 음미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