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 11일부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Mariah Carey의 Dreamlover는 이후 10월 30일까지 무려 8주간 정상을 고수하며 93년의 가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45833F57DA404834)
1993년 7월 27일 공개했던 Dreamlover는 앨범의 리드 싱글로, 이상형의 연인을 갈망하는 여성의 마음을 잘 담아
수많은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레전드 팝송이 되었다.
이 싱글과 후속타 Hero, bad fingers의 곡을 리메이크한 Without you 등등의 곡이 대박 터지며 그녀의 세번째 앨범 Music box는
전세계적으로 3,200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쾌거(미국에서만 700만장 이상 팔려나갔숨)를 기록했다.
일설에 의하면 국내에서도 백만장 이상 팔렸다고 하는데 그건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암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개쩔었다.
1993년 6월 5일 컬럼비아 레코드사 대표 Tommy Mottola와 결혼을 했던 머라이어 캐리는 그로부터 3집 앨범에 대한 전략을
하달받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하기 전부터 뮤직 박스 앨범을 녹음하는 기간 동안 모톨라로부터 엄청나게 혹독한 훈련
을 받았다. 모톨라가 자신의 신부가 될 머라이어 캐리를 지하실에 감금하고 무려 8시간 넘게 강도높은 트레이닝을 시키고
정신세계 또한 바꾼 이유에 대해서 잠깐 짚어보도록 하자.
다들 아시다시피 1990년에 공개했던 머라이어 캐리의 데뷔작은 전세계적으로 천오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하며 완전
초대박 히트를 기록했고 모톨라와 머라이어를 돈방석에 앉혀놓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91년에 공개했던 Emotions은 전세계적으로 팔백만장 밖에 팔리지 못하며 전작의 반도 안되는 상업적 실패에
이르고 말았다.
앨범이 실패한 이유는 전적으로 머라이어 캐리 그녀 자신에게 있었다.
그녀는 휘트니 휴스턴처럼 노래만 잘하는 여가수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곡작업을 도맡아했던 싱어 송 롸이터,
감히 아티스트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머라이어 캐리는 기획자에게 철저하게 굴복하는 식으로 만들어진 지극히 파퓰러한 감성의 1집 앨범을 또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 것은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들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었다.
뭐 뮤지션이라면 당연히 가질수 있는 올바른 생각이지.
50년대, 60년대, 70년대 스타일의 발라드, 가스펠과 알엔비, 소울 등을 두루두루 앨범에 녹여넣고 싶었던 머라이어 캐리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였고 그 결과물이 바로 Emotions였다.
하지만 이 앨범이 평단으로부터도 혹평을 받고 판매량도 현저히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머라이어 캐리는 다시 자본의 노예로
돌아가게 되었다. 컬럼비아 레코드사와 타미 모톨라는 그녀에게 다시 데뷔 앨범처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팝적인
음악으로 돌아가자고 정신교육을 시켰고 캐리의 창법도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음악을 면밀하게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1,2집에서 목소리는 매우 내추럴하고 거칠다.
약간 다듬어진 맛은 부족하지만 상당히 호소력이 있는 음성이였다.
타미 모톨라는 그녀의 이러한 보이스가 거슬렸고 요것을 거세하기 위하여 혹독한 훈련을 가해 창법을 바꾸었다.
흉성과 두성을 사용하여 목에 부담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믹스 보이스라는 창법을 그녀에게 쏟아부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를 지하실
에 매일 8시간 이상씩 가두어놓고 특수훈련을 시켰다.
이러한 목소리의 특성은 고음을 아주 쉽게 얻을수 있고 듣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로 인하여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앨범을 팔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대신 목소리가 지나치게 파퓰러화되어 원래 가수가 지니
고 있던 개성이 묻힌다는 단점이 있다.
타미 모톨라는 마눌이고 나발이고간에 일단 레코드 회사 사장 입장에서 돈을 존슨 벌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머라이어 캐리의 개성을 죽이고 그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하지 못하게 제한을 두었다.
가수를 단지 돈 버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타미 모톨라가 잘했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머라이어 캐리가 남편을 잘 만나 뜬거라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말도 사실 틀린게 아니다.
상업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타미 모톨라의 생각이 옳았다.
그의 생각과 실천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그 앞에서 머라이어 캐리는 다시 데뷔 앨범 시절의 폭발적인 인기를 되찾았다.
결국 그녀는 타미 모톨라와 결혼까지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순수 예술적인 면에서 보았을때 이건 좀 아닌듯 싶었다.
이모션스가 처녀작에 비해 분명히 많이 안 팔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죽을 쑨 앨범도 아니었다.
타미 모톨라가 진정으로 그녀의 예술세계를 인정하는 사람이었다면, 소위 말하는 아티스트적인 마인드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머라이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윤허했어야만 했고 캐리 특유의 창법과 목소리에도 관여하면 안되었다.
물론 그렇게 했다면 뮤직 박스의 어마무시한 상업적인 성공과 영예는 얻을수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머라이어 캐리가 쪽박을 차고 골드 앨범도 못 따고 그랬겠어??
어느 정도 중박은 쳤겠지...
글쎄,
글 쓰고 나니까 조금 찝찝한데,
타미가 머라이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사랑과 회사 씨오로서의 업무는 다르게 봐야하니까...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서 부하직원을 이용하긴 했수나 글타구 부인을 부려먹었다고 보진 않는다.
혹자는 타미가 머라이어와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지하실에 감금하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며 뮤직 박스를 녹음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진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타미가 머라이어와 결혼했을 시점엔 이미 뮤직 박스의 레코딩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타미가 머라이어를 트레이닝 시킨건 사실이지만,
그건 부부관계라기 보다는 사장과 부하 직원의 업무로 보는게 더 합당할듯 싶다.
암튼,
머라이어 캐리는 이곡으로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랐고 수많은 부와 명예가 그녀를 둘러싼 아우라를 환하게 빛내주었다.
수퍼스타도 되었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도 했고,
부러운게 전혀 없어 보이는 머라이어 캐리...
근데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자신 특유의 창법과 음색도 거세당하고, 하고 싶은 음악도 하지 못하게 제지당했는데,
마냥 즐겁기만 했을까??
만약 그녀가 전문 작곡자들이 주는 노래만 받아 부르는 일개 '가수'였다면 뭐 마냥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10대 시절부터 고된 일을 하며 곡을 만들고 꿈을 키워왔던 싱어 송 롸이터 뮤지션, 소위 아티스트 아닌가??
근데,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걍 음악을 돈버는 또 다른 직업으로만 치부하고,
남녀관의 관계 역시 섹스와 머니의 거래로만 치부하는 범인들은 머라이어 캐리를 남편 잘 만나 성공한 고급 창녀 정도
로 비아냥 거리겠지만.....
난 좀 다르게 본다.
타미와의 결혼은 인간적으론 그녀에게 행복을 주었겠지만,
아티스트로서의 머라이어 캐리에겐 적잖은 정신적 피해와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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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쇼 비즈니스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