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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중세도시 발레타
그리스 아테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지중해를 가로질러 몰타공항에 내린다. 1시간 남짓 짧은 비행이다. 몰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남쪽으로 약 93km 지점,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지중해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래 전부터 숱한 외침을 받은 곳이라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랍 문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섬 곳곳에 선사시대 유적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고, 비취빛 지중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몰타. 수도 발레타가 있는 남섬과 북섬(고조섬)이 있고, 그 사이에 블루라군으로 유명한 코미노섬이 있다. 섬 전체의 크기라야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인 316㎢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ta)는 요새도시다. 도시를 둘러싼 견고한 성은 16세기 초 성요한 기사단이 오스만제국(지금의 터키)의 침입에 대비해 만든 것이다. 제1차 십자군전쟁 당시 예루살렘을 되찾아 지키던 성요한 기사단(The Knights of St. John's)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그리스 연안 로도스 섬으로 물러나게 된다. 그러다 1522년 오스만 투르크와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고, 치열한 싸움 끝에 패하여 여기저기로 떠돌다 마침내 정착하게 된 곳이 발레타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회암으로 견고한 성을 쌓아 기사단의 요새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발레타에 자리 잡은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발레트(Valette)는 1552년 이곳까지 침공해온 투르크와 벌어진 싸움에서 몰타를 보기 좋게 지켜낸다. 이를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따 부르게 되었고 수도로 삼았다. 섬 곳곳에서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마크를 한 성요한 기사단의 상징을 볼 수 있다.
발레타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가 성요한 성당이다. 16세기 후반에 지은 이 성당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마침 일요일이라 미사가 열리고 있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기둥과 바닥, 천장의 세밀한 조각과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본당 양옆으로는 기사들의 예배실이 아라곤,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나라별로 분리되어 있고, 역대 기사단장의 대리석 묘도 찾아볼 수 있다.
성요한 대성당에서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향하면 바라카 정원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그랜드 항구와 반대편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스리시티(Three City-센글리아·코스피쿠아·비토리오사를 묶어서 부름)가 장관이다.
이곳을 방문한 날 마침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몰타중앙은행 아랫길로 내려가 만난 벼룩시장. 노래하는 카나리아부터 16세기의 동전이며 최신의 티셔츠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여행객의 눈길을 끌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코스피쿠아(Cospicua)를 지나고 비토리오사(Vittoriosa)로 향한다. 과거 발레타가 군사도시였다면 이곳은 군사들의 주거지가 있었던 곳으로 몰타 사람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비토리오사에 들어서자 연노랑 석회암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건물 사이로 좁고 긴 골목길이 이어진다. 군사들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직선으로 만든 발레타 골목과는 달리 이곳의 골목길은 모두 유연하게 굽어 있었다. 전투시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기 위함과 쉽게 숨기 위한 목적이란다.
마침 부활절 전의 금요일에 해당하는 수난일(Good Friday)이라 세인트 로렌스 교회에서 긴 행렬이 펼쳐진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십자가와 예수상, 마리아상이 올려진 들것을 바쳐 들고 행진을 펼치고 있다. 몰타의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교도라 골목 곳곳에서 부활의 축복과 기쁨을 만끽하는 분위기다.
해가 저물 무렵 3,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 임디나(Mdina)로 향했다. 임디나는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이 몰타를 침범했을 때 은신처로 만든 곳이자 16세기 성요한 기사단이 발레타에 견고한 성을 쌓을 때 만든 귀족들의 거주지였다. 그래서 귀족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도 그 자손들이 살고 있다. 또 발레타 이전의 수도로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몰타 사람들이 관광객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곳이란다. 해자(성을 둘러싼 연못)를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간다.
3000년 역사 지닌 귀족도시 임디나
마을은 큰 광장인 피아자(piazza)와 가톨릭 성당을 중심으로 장중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바다로 향해 큰 대포들이 배치되어 있어 요새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유연하게 굽어 있는 골목을 걷다보면 어느새 중세의 도시를 방문한 느낌이 든다.
임디나 아래쪽은 서민들의 터전인 라밧(Rabat)이다. 기원후 60년에 사도 바울이 탄 배가 난파되어 이곳에 정착하면서 초기 기독교가 전파된 곳이다. 이곳 중심가에는 성바울을 기리는 성바울교회와 카타콤(지하묘지)이 있어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
옛 지하묘지를 개조해 만든 지하식당에서 이곳 전통음식인 토끼요리와 이곳에서 생산되는 마르소빈(Marsovin) 와인으로 식사를 했다. 남편은 요리사, 아내는 지배인이란다. 안주인은 먼 동양에서 온 반가운 손님이라며 무척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몰타 여행이 끝나갈 즈음 몰타 제일의 수산시장이 있는 마사슬록(Marsaxlokk)으로 향했다. 지중해 한가운데 박혀 있는 섬나라 몰타에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항구에는 배의 선수에 커다란 눈을 그려 넣은 고기잡이배들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지중해에서 잡은 커다란 물고기와 해산물을 사고 파는 수산시장을 중심으로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물론이고 몰타를 여행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이곳은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여행자에게는 섬 전체가 훌륭한 관광지요 천혜의 휴양지로 보이지만, 이곳에 사는 몰타 사람들은 페리를 타고 북쪽에 있는 고조섬으로 휴양을 간다. 선사시대의 유적지인 쥬간티야 유적지와 17세기의 고조섬의 주도인 빅토리아의 요새가 남아 있다. 또 작은 성당과 성채, 작은 집들이 모여 있어 몰타에 비해 여유로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조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처키와(Cirkewwa)항에서 고조섬 임자르 항구로 연결되는 페리를 타면 된다. 아침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6~7회 운항하며 40분 남짓 걸린다. 차가 있는 사람들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배가 움직이자 곧 블루라군(푸른 산호초)으로 유명한 코미노(Comino)섬이다. 아름다운 산호초가 사는 맑은 바다라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항구에서 곧장 섬의 중심가인 빅토리아로 향했다. 몰타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높이 솟은 언덕 사방으로 라임색 석회암을 쌓아 성벽을 만들고 그 안에 마을과 성당, 시장이 들어서 있다.
야트막한 고개를 몇 개 넘어 임자르 항구의 반대편 드웨이라에 도착했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침식되어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시아치(Sea Arch)가 인상적인 곳이다. 파식대(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평평해진 바위)에서 보는 시아치의 일종인 아주르 윈도(Azure Window)가 장관이다. 담청색 바다에 코를 박고 몸통은 쪽빛 하늘에 머리를 둔 거대한 코끼리 같은 모습이다.
고풍스런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 조화 이룬 곳
그 아래로 넘나드는 담청색 물빛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위로 걸어가 볼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붕괴위험 때문에 통행이 금지되었다. 바로 옆에는 해식동굴을 통해 바다와 연결되는 인랜드 시(Inland Sea)가 있다. 요트를 정박시켜 두거나,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에 그만인 곳이다.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이곳에서 보트를 타고 외해로 나가 시아치를 둘러볼 수 있다.
몰타는 작은 섬이라 더 매력적인 곳이다. 경기도 크기만한 작은 규모의 국가이지만 6개 문화재가 유네스코에 등록될 정도로 곳곳에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거석사원을 비롯, 성요한 기사단의 요새와 대성당, 지하무덤 등 고풍스러운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룬 매력적인 곳이다.
여행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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