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2
참성단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마리산을내려가
계룡산으로, 금강산으로, 지리산으로,
묘향산으로, 설악산으로, 한라산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삼년 뒤인 임신년(壬申年, 1572) 9월 9일,
약속대로 전국의 역학자들이 다시
강화도 마리산참성단으로 모여들었다.
이번 회의에는 삼년 전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 명 더 끼었다.
정여립.
호를 정감(鄭鑑)이라고 쓰고 있는 그는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난 스물일곱 살의 젊은이였다.
스물두 살 나던 해에 진사가 되었고,
스물다섯 살에
과거에서 문과 을과에 두번째로 급제한 뒤
일세의이목을 끌었다.
이를 계기로 율곡과 좌의정 박순이그를 적극 후원해주고
정개청과도 막역한 사이가되었다
이것이 토정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여립이 젊은 나이로 너무 곧은말을 잘하고,
사사건건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난하고다녔으며,
남 비방하는 것을 삼가지 않아 적이많았다.
그는 특히 송강 정철을 호되게 비판했다.
한번은 기근이 심해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높자
정여립의 거친 입이 정철을 물고 늘어졌다.
정철을삶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비가 올 것이다
주색에빠져 정사를 올바르게 보지 못한다고
정철을 매양이런 식으로 질타했던 것이다.
이 감정이 뒷날 커다란사건으로 터지게 된다.
다들 한자리에 모이자 약속대로 각자 맡았던
방비책을 제시했다.
정작은 <용호비결>을 토대로 지은
의서를 내놓았다.
"사람의 신체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온 우주만물의 섭리가 사람 몸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앞으로 북창이 말씀하신 내용을 저희가 더 궁구하여
마침내 그 비밀을 다 밝혀내면
우리나라에서도 대의왕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제가 더 실험을 하고
향약(鄕藥)을 계속 연구하다보면
틀림없이 이루어질일입니다.
앞으로 난세마다 큰 질병이 닥치고,
악질이 더욱 창궐할 것에 대비해,
미리 준비를해두어야겠습니다."
정작은 도사들이 은밀한 비법인 양 책을 지어
후계자에게만 몰래 전하는 조선의 풍토를 개탄했다.
그래서 북창이 체험 끝에 써낸 책을 바탕으로
의서를준비했던 것이다.
비로소 이 책에서 조선 동의약의
새로운 전기가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정작을 데리고 직접 도가 수련을 한박지화가
북창의 주요 의견들을 정리해서 좌중에발표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북창의탁월한 실험 정신과 지혜에 놀랐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오.
정작, 자네는 더 열심히연구하여
장차 질병 때문에 고생하는 백성들을
구해주도록 힘써 주게.
지금 우리나라는 중국에서배워온 의술과
중국에서 배워온 약으로 사람들을치료하여
쉽게 낫지 않는 경우가 많다네.
우리나라에맞는 의학을 세우게."
"국가 존망이 풍전 등화와 같은데 그깟 의술이요
단전수련이 어디에 쓸 비법이란 말이오!"
정개청이 성을 발끈 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토정이정개청을 나무랐다.
"우리가 있는 한 조선은 망하지 않을 걸세.
망하지않은 조선을 지키려면 꼭 필요한 것일세
설사 망한다해도
동인 서인으로 나뉘어 있는 조정의 사림들보다
못하지야 않으리."
정개청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토정은 박지화와정작의 발표를 칭찬한 후
남사고의 말을 들었다.
"토정 선생님, 조정에는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주는사람이 없습니다.
눈앞에 정권이 왔다갔다 하는데
무려 20년 뒤의 일을 누가 믿으려 할 것이며,
더구나국운이 다 했다고 말하는 데에는
그 역정이 대단해서감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천문을 보면서 관측한 사실을 놓고
국운을 돌릴 방도를 생각해보았습니다마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설사 임진 대환난을 무사히 넘긴다해도
조선 백성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렇다면 대환난이 또 있다는말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그동안 쭉 우리나라의 앞날을따져보았습니다.
또한 어려서 토정 선생님과 같이보았던 신서도 있고,
관상감에서 익히고 봐두었던것도 있으니 말씀드립니다.
남쪽이 열리고 북쪽이 열리는 난리가 두 번 있으니
왜란, 호란인 듯 싶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나서서
나라 망하는 것쯤은 막는다 해도
두 번 다 백성이많이 다칩니다.
나라의 정기가 다 빠져나갑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기운을 못 쓰게 됩니다.
민족정기는 이미 고갈되어 목숨 부지하는 것으로
백성들끼리 아귀다툼만 하게 됩니다.
그런 뒤에 수백년이 못되어 왜란이 다시 있어
나라가 통째로넘어갑니다.
융희라는 연호를 쓰는 해에 조선 이조는 끝이납니다.
마지막 왕은 태조 이래 스물여덟번째일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빼앗은 왜는 동에서는 이기고
서에서는 질 것이니 왜구를 칠 큰 나라가 따로있습니다.
그래서 왜가 망하는 날
그 큰 나라가 다시우리나라를 빼앗아
북쪽에 있는 나라와 나누어갖습니다.
나라가 갈립니다.
천년의 통일 국가가 쪼개집니다.
그리고 허리가 끊겨 왜란, 호란보다
더 끔찍한 살륙이자행됩니다.
온 세상 군대가 다 모여들어
이곳에서싸움을 하기 때문입니다."
좌중에는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도끔찍한 미래가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심초사하여 방비하려는 것도
다쓸데없다는 것이오?"
박지화가 남사고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막을 방도가 있겠지요.
그러자고 두번씩이나 이 자리에 모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본시 국운이라는 것은 죽을 것을 다치게 하고,
다칠것을 구설에 머물게 하는 정도이지
죽을 사람에게 갑자기 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
대신 치러야 할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무엇이오? 대신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게?"
박지화가 몹시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나라가 망하든 망하지 않든 왜란에 삼백만이죽습니다.
왜가 끌어가는 숫자도 수만이 넘습니다.
아녀자는 왜의 씨를 받아 왜인을 낳게 됩니다.
왜란에 용케 나라를 부지했다 해도 호란이 기다립니다.
호란에 역시 삼백만이 죽습니다.
아녀자 이십만을오랑캐가 끌어갑니다."
남사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시 왜란에 나라를 빼앗겨 나라를 되찾을 때까지
오백만이 죽습니다.
백만을 왜가 끌어가 노역을 시킬것입니다.
이십만이 넘는 아녀자를 끌어다가 왜의노리개로 삼습니다.
이런 끔찍한 형벌은 아직 어떠한 나라에도
내려진적이 없었습니다.
그 뒤 온 세상의 군대가 다 모여싸움을 할 때
무려 오백만이 이 땅 위에서 목숨을잃게 됩니다.
너무도 끔찍하고 처참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앞날을 차마 내다보기조차 두렵습니다."
토정은 눈을 지그시 감고
남사고의 말에묵묵부답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백성들이 수백만씩죽어 없어지는 데도
할 일이 없단 말인가?"
박지화가 울먹이는 소리로 좌중에게 묻자
서치무가모기 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일부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 있긴 합니다만..."
"무엇인가? 어서 말하게."
토정이 서치무를 채근했다.
"대환난중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곳이
열 군데있습니다.
이 열 군데를 십승지라고 합니다."
"그까짓 것으로 온 겨레를 어찌 숨긴다는 것인가?"
"그렇지만 뒷날 겨레를 이을 사람은
보존을 하는것이 옳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어떤 전란에도끄떡 없는 곳입니다."
"일러나보게."
"십승지를 말하겠습니다.
십승지라면 첫째가 풍기에있습니다.
소백산 아래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입니다.
두번째가 내성(乃城) 동쪽 즉 태백산 남쪽입니다.
세번째는 속리산 증항 근처,
네번째는 지리산운봉(雲峰) 동점촌(銅店村)입니다.
다섯번째는 예천의 금당실(金塘室),
여섯번째는공주 유구와 마곡 사이의 물줄기 갈라지는 곳,
일곱번째는 영월의 상동(上東) 상류,
여덟번째는 무주덕유산,
아홉번째는 부안 변산의 동쪽이고
열번째가 가야산 만수동입니다."
그러자 고순부가 고개를 저으면서 나섰다.
"그러나 그런 곳에 숨어
구차한 목숨을 이어갈 수는없는 노릇이외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이 땅을내어주고 그런 곳에 숨겠소?
그런 이야기는 널리 하지않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런 곳으로 숨어 목숨을부지한 사람이
무슨 기가 있어후세를 이끌어가겠소.
살아도 전쟁터에서 살아야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오.
우리나라의 미래가 딱 끊기는것이 아닌 바에는
절대로 그런 장소를 누설해서는 안되오.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항거해야 할 마당에
그런곳에 숨어 있는다는 것은
국력 낭비에 국민의 심성을
비겁하게 만드는 일이오."
그때 전우치가 나섰다.
"십승지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설영후도사와 함께 팔도를 두루 살폈는데,
역시 십승지는 전쟁의 피해가 미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그런 곳은 목숨을 보전하는 데에는
괜찮은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싸움을 해야 하는 장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깐 이를 말이 있습니다."
남사고가 전우치의 말을 끊고 나섰다.
"조선의 지리를 살피고 다니는
첩자가 잡힌 적이있습니다.
그자는 팔도의 산천과 지리를
낱낱이 서책에 적으며 다니고 있었는데
풍기군수가 수상하다하여 잡아올렸습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가 한낱 산과 강을 그린 책을 썼다 하여
첩자라 볼 수 없다며풀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벌써 <동국지도(東國地圖)>와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가 왜의 손에 넘어갔을 터,
이를 어찌 막아야 한단 말인가?"
명종주가 참성단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한탄했다.
"토정 선생님, 도대체 왜 우리나라만
유독 그런형벌을 받아야 합니까?
다른 나라도 이런 일이 있는것입니까?"
우리 조선이 도대체 왜 이다지도 큰 벌을 받게되는 것일까?
"화담 선생은 순수 시대가 끝나
역수시대가 오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지만
그러한 데에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일 텐데…"
토정이 탄식했다.
"지금 우리가 한탄만 하자고 여기에 모인 것이아니지 않소?
어서 방비책들을 내놓으시오."
박지화가 좌중을 둘러보며 채근했다.
그러자 정개청이 나서서 말했다.
"왜는 수국(水國)입니다.
토기가 승한 해에는군사가 크게 일어나는데,
이러한 까닭에임진수토(壬辰水土)에
왜가 극성을 일으키게 되는것입니다.
또한 장사에 능합니다.
임기응변이 많고잔재주에 능해서
초전에는 조선이 크게 당할것입니다.
그러나 토기(土氣)가 약한 것이 왜의 약점인데,
계사수화년(癸巳水火年)이 되면
그 힘이 떨어질것인즉
임진년만 막아낸다면
나라를 빼앗기는 큰변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싸우는 것은 조선이 불리하고,
계사년에 가서 바다에서 싸우면 오히려 승산이있습니다."
바다라 해도 조선을 둘러싼 바다가 손바닥만 하지않은데
어느 바다를 이르는 것이오?"
유정이 물었다.
"동해바다처럼 등이 곧아서 피아 식별이 용이한곳은
싸우기에 불리합니다.
다행히 남서 바다가조수의 높낮이도 몹시 크고,
해안도 복잡하므로
미리잘 익혀 두었다가 전법을 개발하면
싸움에 이길 수있습니다
몇 군데 제가 그려온 곳이 있습니다."
정개청이 해안을 그린 그림을 몇 점 품에서 꺼내
토정에게 밀었다.
"좋소. 그렇다면 군사도 없는 상황에서
누가 수군이되고
누가 수군을 이끌 장수가 되겠소?"
"제가 그런 인물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그게 누구인가?"
"저는 나라를 구할 만한 장수감을 찾기 위하여
설영후와 함께 무인 선발 시험장엘 갔습니다.
훈련원에서 실시하는 별과 시험이었습니다.
그곳에서뛰어난 젊은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비록 그는 무예시범 도중 낙마하여
시험에는 떨어졌으나
훗날 크게될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전우치는 설영후와 함께 무인 선발 시험장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