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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퀸즈(Queens)의 으리으리한 고급 중화식당에서 조군 가족을 만났습니다.
중학교 동기인 조군이 마침 뉴욕주 이타카(Ithaca)에 있는 아들네에 가 있던 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초대를 해서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들이 사는 뉴욕주 북쪽(Upstate) 이타카(Ithaca)에서 뉴욕시까지는 승용차로 4시간 반이 걸립니다. 아침 일찍 떠나 맨해튼을 구경하고 저녁을 약속한 중식당으로 찾아갔습니다.
조군은 부부와 작은아들 내외가 나왔고, 나는 우리 부부와 아들내외 그리고 젖먹이 손자까지 다섯입니다.
조군의 친구사랑은 익히 알려진 터이지만 미국사회에서 아들부부까지 불러내어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시겠지만 미국사회는 개인생활을 매우 중요시하는 까닭에 비록 아들이지만 아버지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 함께 불러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부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네 가족이 모여 두 시간여 멋진 식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군의 둘째아들은 UN에 근무하는데 스위스에서 2년, 뉴욕 본부에서 2년, 벌써 4년차 직장인이고, 우리 아들 녀석은 나이는 한 살 위(35)인데 아직 학생(코넬대 대학원)이고...
조군 와이프는 여전히 건강하셨고, 나는 중학교 단짝친구였던 조군과 이야기하는 내내 서로 어깨를 감싸 안고 옛일을 회상하며 그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었습니다.
<조군과의 특별한 에피소드>
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후 형편이 어려워 일 년을 쉬고 강릉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조군이 3회, 내가 4회로 졸업을 했다.
1학년 때 봄 소풍을 갔는데 1,2학년이 함께 진재(長峴)저수지 위 여찬리의 굵은 소나무 밭으로 갔었다. 어머니가 싸 주신 벤또를 덜렁거리며 거기까지 걸어갔는데...
도착하여 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는 참인데 뒤에서 급우가 쿡 찌르며 2학년 형이 나를 찾는다고 한다. 돌아다 봤더니 중학교 단짝이었던 조군이 거기 서 있었다. 얼결에 일어나서 갔더니 슬쩍 빠져나오라고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네가 진학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진학해서 너무 기쁘다. 우리 가서 한 잔 하자. 내가 자네 입학 축하주를 살터이니...
아직 아침을 조금 지났을 즈음인데 두 놈이 어슬렁거리며 면사무소께로 올라가다보니 마침 구멍가게가 하나 보인다. 어려운 시절에 어디서 돈이 났는지 쐬주 한 병과 이까(오징어) 한 마리였던가...
축하한다, 고맙다, 어쩌구 하면서 한 잔씩 주고받다 보니 조군은 말짱한데 내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한 병 더 시켜서 두 놈이 소주 두 병을 해 치웠는데 나는 완전히 취해 버리고 말았던 모양이다.
‘야! 너 술 잘 못먹는구나.’
‘몰라, 언제 술을 먹어 봤어야지...’
조군은 나를 보더니
‘안 되겠다. 너는 집으로 바로 가야겠다.’
그 때부터도 고지식한 나는
‘야, 그래도 담임한테 얘기하고 가야지 날 찾으면 어떡허냐?’
‘내가 슬쩍 얘기할 께 그냥 가’
‘안돼, 내가 직접 담임선생님께.... ’
조군은 할 수 없었던지,
‘그래 그럼 맘대루 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담임을 찾았더니 새파랗게 젊었던(이름은 기억안남) 우리 담임도 홍당무가 된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빙그레 웃으신다.
‘선생님, 저... 머리가 갑자기.... 아파서....’
‘어, 그래 그럼 먼저 집에 가거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는 반 친구들을 뒤로하고 돌아서니 조군은 그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얼른 집으로 가라고 하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비척거리며 사람들 눈을 피해 먹지도 못한 벤또를 덜렁거리며 얼마쯤 오다가 결국 길옆에서 조금 떨어진 산소 옆의 잔디위에 뻗어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세상모르고 잤는지 갑자기 정신이 드는데 오들오들 한기가 난다. 눈을 떠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다 쉬어빠진 벤또를 덜렁거리며 집에 오니 식구들은 소풍간 녀석이 저녁이 늦도록 오지 않으니 온통 난리가 났고....
그런 이야기를 뉴욕 한복판 식당에서 털어놓으며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다.
'사모님(조군),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고요..... '
<근데 조군은 기억을 못하겠단다. 머리 나쁜 녀석,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
<참고>
우리는 관동중학교 1회 졸업(63년)이고 조군은 해양대학을 나와 마도로스생활을 시작해 현대상선 영국, 호주, 지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금은 뉴욕 퀸즈에서 네일 아트(Nail Art) 가게를 크게 운영한다. 그리고..... 무지 술을 좋아한다. ^^
첫댓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 행복 하시지요 ?..
저의 친한 친구 11년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가끔은 하늘 나라로 편지를 쓰곤 하지요
정말 착한 친구였는데...
지금 살아 있다면 ..같이 어디든 갈 수 있고 하하 호호 하면서..
삶이 어쩌고 저쩌고 할텐데...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나고 돌아 오면서 사온 화초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강릉고에서는 우 열반이 있었다면서요?
있었지요. 나는 이과 우반...^^. 전설이 많습니다.
우리 반에는 영어 콘사이스를 외고는 한장씩 뜯어먹어 한 권을 통째로 먹어치운 친구도 있었고,
또 학교는 오지 않고 영어회화를 익힌다고 하루 종일 영화관에서 같은 미국영화를 반복해서.... 눈을 감고.... 미친 놈들이 많았지요.
제일 좋을 때.... 서울 대학만 101명이 합격하여 전국 1위를 한 기록도 있습니다. ^^
근데.... 정말 자랑스런 모교였는데....올해부터 평준화가 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