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케미컬
야누스의 두 얼굴
오늘날 소비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식품을 구입하는가?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바로 ‘맛’이다. 오늘날 음식물 비용의 90퍼센트 이상을 가공식품 구입에 사용하는 문명국의 소비자는 수많은 식품 브랜드들을 잘 기억한다. 또 그 제품을 만드는 식품회사에 대해서도 잘 안다. 그러나 자신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맛’에 대해서는 의외로 잘 모른다. 특히 그것이 다른 회사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맛을 만드는 향료업체들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따라서 향료에 사용되는 원료들을 일일이 확인 감독하는 일은 현재 기술로 불가능하다.
제품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신제품개발 담당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완제품의 최종 수분함량이다. 수분함량은 맛과 식감 등의 물리적 특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수분함량을 주목하는 더 큰 이유는 정작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바로 ‘보존성’이다. 대량생산이 경쟁력의 원천인 가공식품은 유통과정 중의 변질 문제가 아킬레스건이다. 보존료를 쓰지 않고 제품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특수포장을 채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원가상승’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하지만 보존료를 쓸 경우에는 이를 제품에 표기해야 하고 이는 소비자의 손에 선택될 기회를 반감시키게 된다.
그래서 제조업자들은 교묘한 방법을 생각해낸다. 원가를 절감하고 수분함량을 유지하고 보존성을 향상하되 보존료 함량을 표기하지 않기 위해서 ‘배합원료리스트’라는 편법을 쓰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제품 속에는 보존료 성분이 들어 있지만 그에 대한 표기는 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기막힌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과자에 가공 치즈를 원료로 사용하는 경우, 과자 포장지의 표기에는 단지 ‘가공치즈’라는 명칭만 기재된다. 가공 치즈는 각종 첨가물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지지만 어떤 기피 성분이 들어있는지 소비자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식품첨가물의 유해성
식품첨가물산업은 음지에서 태어난 업종이다. 이 불가사의한 산업은 가공식품의 판매증가로 그 생산량도 계속 증가한다. 물론 소비자들의 섭취량도 꾸준히 늘어난다. 식품첨가물에는 화학첨가물과 천연첨가물이 있다. 화학첨가물은 화학적인 합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천연첨가물은 천연소재에서 추출하여 만든다. 일반적으로 천연소재를 이용하여 만든 천연첨가물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연소재에서 성분을 추출할 때 사용하는 용제나 추출과정의 화학반응 등으로 인해 의외로 해로운 물질들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수백 종에 달하는 식품첨가물이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식품산업에서 첨가물 사용은 과연 불가피한 것일까. 식품업자들은 그들이 향료를 쓰는 목적은 식품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인공조미료도 같은 목적이다. 식품의 먹음직스런 색상과 외관은 합성색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스킷이나 빵을 입에 넣었을 때의 부드러운 감촉, 그것은 팽창제라는 화학물질 때문에 가능해진다. 게다가 유통기간을 늘려주기 위해 보존료를 쓰고, 생산과정에서 물과 기름이 분리되는 것을 막고 공장에서 제품이 기계에 달라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화제를 쓴다. 그러면 꼭 이들 화학물질을 써야만 하는가. 물론 ‘아니오’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바 있는 미국의 천재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 박사는 “유해 케미컬은 분자 한 개라도 인체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식품 케미컬은 행동독리(行動毒理)현상을 유발한다’고 덧붙인다. 행동독리현상이란 어느 특정 물질에 의해 뇌 기능이 저해됨으로써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박사는 첨가물을 비롯한 화학물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도록 고안한 식사법을 개발하여 많은 과잉행동 아동을 치료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이른바 ‘페인골드 식단(Feingold Diet)이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약 3만 종의 합성물질 가운데, 식품에 직․간접적으로 첨가되고 있는 성분은 3천800종이 넘는다. 식품첨가물 허가 절차는 의약품에 비해 터무니없이 허술하다. 우선 허가를 하고 나서, 사용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견되면 그때 빼낸다는 식이다. 얼마 전 한 약사가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이 오늘의 잘못된 현실을 크게 질타하고 있다. “오늘날 병․의원의 시럽제나 액제 등 소위 ‘물약’ 처방이 연간 천 수백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약에는 여러 목적으로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간다. 그것은 가공식품에 사용하는 수만큼이나 종류가 많다. 따라서 물약을 애용하는 어린아이들은 상당량의 색소와 향료, 보존제, 안정제, 유화제 등을 먹을 수밖에 없다.” 약사의 경고처럼 식품첨가물 문제는 약사들 사이에서도 걱정거리로 회자되는 시대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끓인 찌개는 며느리가 끓인 것보다 더 맛있다. 며느리는 양념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여 나물을 무치지만 시어머니의 손맛을 흉내낼 수 없다. 훌륭한 요리사일수록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첨가물 사용은 전형적인 ‘생산자 마인드’에 달려있다. 식품업체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소비자의 건강은 무시하고 있다. 화학물질 범벅인 식품들이 더 이상 발붙이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식품 아닌 식품들이 계속 장바구니에 들어가는 한, 우리의 미래는 없다. 소비자가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