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텃밭시인학교 시창작 교실 / 토요일 직장반 개강(5월 첫째주)
텃밭의 정신은 각양각색의 씨앗을 존중하는 터입니다. 개인의 창의와 개성을 꽃 피울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갈 사람을 기다립니다. 《텃밭시인학교》는 2024년 시창작교실 토요일 직장반을 개강합니다. 즐거운 시 창작이론과 행복한 시쓰기를 통한, ‘나와 세상과의 멋진 연애하기’,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 꿈꾸기’에 함께 할 詩의 동반자를 찾습니다.
일시 : 매주 월요반 · 화요반 · 토요일 직장반 (10시 30분~12시 30분) / 첫째 시간 시 이론 / 둘째 시간 퇴고 및 토론 수업 /
월 9만원 / 이메일 수업 진행
장소 : 텃밭시인학교 사무실(수성구 무학로 187 (지산동, 녹원맨션) 101동 102호
강사 : 김동원 시인( 010-3276-8034)
특강자로 모신 분 : 김상환, 김석, 장하빈, 홍승우, 이승주, 이진엽, 박지영, 이자규, 변희수, 박소유, 김창제, 김청수, 박이화, 박정남, 이규리, 이하석, 이태수, 정하해, 류인서, 이진엽 , 김도향 시인
교재 : ◆ 김동원 평론집 『시에 미치다』 ◆ 김동원 편저 『신춘문예 100년사』
◆김동원 편저 『한국서정시 200선, 1권 2권』 ◆ 김동원 평론집 『시집사리詩集思理』
『시집사리詩集思理』 강의
이 책을 구상한 지도 벌써 십 년이 흘렀다. 이는 오로지 내 시 공부의 신독(愼獨)과 독락(獨樂)을 위한 저간의 날들이었지만, 한국 현대시 100년을 탐색하는 작업은, 애초에 내 능력 밖이었다. 주옥같은 시인들의 작품과 시론집을 밤새워 통독하며 예술에 대한 그들의 광기와 울분, 언어와 언어 이전의 치열한 갈등에 흠뻑 취했다. 시대를 초월하여 시인은, 시를 찾다 길을 잃었고, 길을 찾다 홀연히 시를 들었다. 내가 읽은 시들은 모두 절정이었다. 심연의 노래가 아닌 시가 없었다. 달빛에 적신 아름다운 서정시도 있고, 모국어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진실이 담긴 시도 있다. 외로운 자, 가난한 자, 아픈 자, 그리고 몸 없는 자들을 위해, 나는 그 시에 뿌리를 내리고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대지에 찬란한 아침이 오면,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Earth's the right place for love. / I don’t know where it's likely to go better.” (R·프로스트,「자작나무Birches」) 하여, 사랑의 전당인 이 세상에서 시를 알고 느끼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시 읽기는 결국 세상의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신비에 다가서는 일이다. 하지만 좋은 시 읽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고 작가와 독자, 비평가들마다 다양한 가능성과 해답이 존재한다. 특히 한 편의 시 속에서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와 의미, 질적인 특성을 새롭게 읽고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비평의 일차적인 즐거움이다. 이런 비평이란 어의는 예로부터 비점(批點), 평점(評點), 관주(貫珠)라 하여 잘된 시구에 특별한 표기를 하여 판단,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서양의 경우 비평에 해당하는 말로서 Criticism은 Critic에서 왔으며, 이는 그리스어로‘식별할 수 있는(κριτικός. kritikós)이란 말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하여 비평가는 ‘사리에 맞는 판단이나 분석을 제공하거나, 해석 또는 관측의 가치를 매기는 사람’을 뜻한다.
문학이나 학문적 맥락에서 비평이란 용어는 문예비평을 말하며, 이는 예술, 학문 등에서 미학적 목적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요구한다. 김수영의「시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시의 존재」에 의하면, 시를 논한다는 것은 시를 쓴다는 것과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시의 내용으로서 현실성과 동의어가 되고, 후자의 경우는 시적 대상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말이 된다. 시인의 관심은 형식의 미학과 틀 속에서 주어지는 반면, 비평적 관심사는 시의 내용과 리얼리티의 실현에 방점이 찍힌다. 따라서 비평가는 창작의 주체가 소재를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며, 한 편의 시가 전체의 틀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구조화되어 있는가에 착목해야 한다. 그리고 텍스트가 갖는 의미와 의의를 분석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이 비평적 글쓰기의 관건이다. 여기엔 무엇보다 시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행간을 구성하고 파악하는 능력과 전체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텍스트 분석, 컨텍스트성(contextuality)에 대한 이해와 비평적 감수성에 기반하여 한국 현대시 100년을 몇 가지 주제와 관련하여 구성하였다. 시의 주제와 방법론에 대해 지나친 논리 중심의 전개와 문체는 피하고 작품의 의미와 행간 읽기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 근현대시 100년은 결국 새로운 시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암중모색의 시간이었다. 흔히 말하는 계몽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상징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와 시의 흐름이란 것도, 기실은 그 시대 사회마다 예외적 개인으로서 창작 주체들이 염두에 둔 새로운 시에 대한 이념과 방법론적 접근이다. 이러한 이념과 방법은‘전통 서정시, 피지컬한 시, 메시지가 강한 시, 실험성이 강한 시’(김춘수,『김춘수의 사색사화집』)의 네 계열로 분화된 양상을 지니며 보다 구체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문학에 있어 1910년대를 전후한 시기는 혼돈과 모색의 시기였다. 개항 이후 파급된 외래 문학의 유입과 전통적인 시가 문학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과거 어느 시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성격과 양상이 혼돈과 무질서 그 자체에 있기보다는,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한 새길 찾기였다. 하여 한국 근대 초기시의 양상은 이전의 시가 형식에 새로운 시대 의식과 새로운 노래의 시도가 있었다. 1910년대에 접어들어 계몽적 시가들이 사라지고 자유시로의 지향과 좀더 다듬어진 서정시의 형태가 전개된다. 서구문학의 수용과 함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과 의지가 표출된 시기도 이 무렵이다. 프랑스 상징주의를 비롯한 일련의 외래 사조 유입은, 근대시의 면모를 더욱 일신하고 다채롭게 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1920년대에 들어와 개인과 사회, 전통과 근대의 측면에서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된다. 근대시를 정초한 만해와 소월, 삶의 치열한 정신을 담은 카프 문학의 시대가 새롭게 펼쳐진다. 이 시기는 특히 근대적 전통, 혹은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란 측면에서 외래 문학의 영향과 자극을 계기로 하여, 우리 문학의 근대성을 시도하고 수립하는 중요한 시기로 볼 수 있다. 특히 1925년 신춘문예의 등장은, 한국 문단에 신선한 문풍을 불러일으켰다. 1930-1940년대에는 주지적이고 이미지즘의 시가 대거 등장한다. 감각적, 회화적, 도시 문명에 대한 고독감을 밀도 있게 그리는가 하면,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비극과 공동체의 삶을 노래한 시인도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백석의 경우 북방 정서와 궁핍한 유랑민의 삶을 서사시의 형태로 승화시킨 점은, 암울한 시대 사회의 산물이다. 특히, 이상의「오감도」와 같은 실험시의 등장은 전위시의 촉발이 된다. 생명파 또는 인생파로 불린 일군의 신진 시인들 또한, 원시적 생명력의 충동과 관능을 탐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다양한 시의 조류와 순수시의 지향, 모더니즘의 실현, 생명파와 자연파(청록파)의 등장, 그리고 이육사 윤동주 시인을 중심으로 한 민족 역사의식의 시가 1940년대 전반에 출현한다. 이후 해방 공간과 1950년대는 극심한 좌우 대립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기였다. 문단은 조선문학가동맹과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좌우익 단체로 크게 양분된다. 현실 인식과 창작 방법에 있어 민족문학론과 순수문학론 간의 대립과 논쟁은 뜨거웠으며, 이러한 구도는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한편, 광복을 전후해 등장한 청록파 시인들은 서정시의 간결한 압축미와 여백미를 추구한다. 1948년 후반기 모더니즘의 기치를 내건 시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문단의 새로운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다. 현대시조의 출발도 이와 때를 같이한다.
1960년대는 이전 시대와의 전환기적 국면을 맞게 된다. 말하자면,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현실비판과 사회의식의 문제가 문학의 중심부로 편입된다. 그런가하면, 불안과 부조리, 존재와 언어에 대한 순수시의 대두 또한 한 축을 담당한다. 전통과 모더니티, 분단 문제, 산업화와 근대화, 이농과 도시노동자의 현실, 자유에 대한 열망 등으로 당시 시단의 풍향은 순수시파와 참여시파로 크게 양분된다. 1970년대는 민주화 운동과 민족문학, 지식인의 고뇌와 자기 성찰, 산업사회와 도시의 비인간적 구조 속에서 느끼는 개인의 무력감이 더욱 첨예화된다. 창작 기법에 있어서도 반어와 패러디가 난무한다. 특히 김지하의「오적(五賊)」이 그러하다. 이 시기는 군부 개발독재로 인한 막대한 외국자본의 유입과 기술 혁신은 문화 예술을 급변시킨다. 빈부의 격차, 독재에 대한 저항, 인권 유린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 구금과 탄압, 감시와 처벌은 산업화의 빛과 그늘을 던졌다. 김지하 이후, 거대 담론과 현실적 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든 작품들이 시단을 장악하게 된다. 물론, 기왕의 시에 매이지 않고 매너리즘을 극복한 일련의 작품군도 있다. 현대인의 불안의식과 가면 의식에 천착한 시, 재기발랄한 언어, 낯설게 하기의 시법, 유니크한 감성의 시편들이 젊은 층을 사로잡는다.
1980년대 한국시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따른 부채 의식과 분단 문제, 민족 문학을 표방한 민중시가 전면에 등장한다. 시대에 대한 풍자라든가, 민중을 주인공으로 한 서사시도 새롭게 표출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난과 아픔과 외로움을 형상화한 작품이 각광을 받기도 한다. 민중문학의 약점은 정치적 발언은 진보적이지만, 문학 작품에는 보수적이다. 반면, 모더니스트의 한계는 정치적으론 외면하면서, 예술 미학만은 진보를 추구하는 모순을 보인다. 80년대 후반에 오면, 도시적 감수성과 아방가르드, 해체주의와 실험시들이 다양하게 전개되지만, 여전히 민족 문학의 담론으로 수면 하에 놓이게 된다. 1990년대는 공산주의 몰락으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표방한 민중문학이 퇴조한다. 신자유주의의 대두는, 문자 문명에서 전자(정보) 문명으로 옮겨가는 과도기다. 인터넷의 등장은 채팅, 표절 시비 등 익명성의 사회로 진입을 의미한다. 시대를 읽는 독법이 다양할 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역동적인 상상력은, 새로운 시들의 등장을 예고한다. 환상성과 감수성을 고루 갖춘 작품이 주목을 끌며, 현대 사회의 물신(物神) 숭배를 비판적 시선으로 성찰한 시도 조명된다. 한편, 환경·생태시의 본격적 출현과 시 속에 영화적 기법을 도입한 시기이기도 하다. 세부 현실에 대한 관찰과 현미경적 투시법은 기왕의 시에 대한 다른 눈과 마음을 요구한다.
2000년대에 들어와 스마트폰의 등장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의 디지털 혁명을 불러온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타고 혜성처럼 등장한 ‘미래파’의 시는, 한국 시단을 순식간에 점유한 아방가르드의 전사다. 전시대의 서정시를 전복시킨 그들의 감각적 언어와 묘사, 산문적 화술과 개인적 상징은 매우 이채로웠다. 특히, 소수자의 성차별과 불평등한 사회의 부조리, 폭력과 야만, 2020년 팬데믹 이후의 고통과 죽음 이미지 등을 주제로 한 시는, 가상현실을 토대로 환상성과 우주적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이런 포스트휴머니즘(Posts Humanism)은, 우주와 지구, 자연과 인간의 초연결 시대를 열었다. 이른바 동일성과 통합의 시학은 퇴조하고, 차이와 해체의 시학이 도래한다. 일인칭 화자의 자리에 다층적, 분열적 주체가 대체되며, 부조리한 현실, 그리고 언어를 방법론적으로 파악하고 해체한다. 언어를 음절과 형태소의 최소 단위로 쪼개고, 단어와 기호를 혼합하고, 색채와 시선의 이미지를 분산하여, 수많은 낯선 점으로 찍어 놓은 ‘주체’가 그러하다. 행(行)과 연(聯) 의 급박한 단절과 비약은 미래시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거칠고 모호한 언어 습관, 외래어 및 외국어의 과다한 사용 등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미래파는 분명 21세기 한국 시단의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었다.
이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이 망할 놈의 시〉에서는 시와 시인이란 무엇인가, 왜 시를 쓰는가에 천착한 글이다. 그런 만큼 시와 현실, 시와 언어, 시와 시인의 가치, 시와 독자 간의 상호 연결성을 파고든 문제작들을 살폈다. 광기와 시마에 들린 시, 불길한 예감의 시, 비참과 폐허와 예언의 시를 다루면서, 좋은 시는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진리와 내포를 모색하였다. 2장〈고양이를 바라보는 여섯 개의 시선〉에서는 고양이의 계보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근현대시 속에서 시대마다 개인마다 유다른 시선으로 고양이를 묘파한 시법은 신선하고 묘오하였다. 고양이의 감각적 이미지와 다이내믹한 메타포는, 시 행간에서 세련미의 극치를 보인다. 섬세한 고양이의 내면을 철학으로까지 끌어올린 일부의 시는 미학적이자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3장〈봄, 꽃의 시학〉에서는 현대시에 나타난 꽃과 색(色)의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탐색하였다. 꽃은 개인과 시대 사회 여하에 따라 각기 다른 문맥으로 읽힌다. 근대 이후에 들어와 꽃은 다채로운 색과 빛, 은유와 환유의 방식으로 다루어지며, 최근 들어 꽃은 몸, 혹은 모더니티의 제유적 방식으로도 수용, 재생된다. 색은 시의 감정이며, 시간의 말을 공간 속에 새겨 놓은 알레고리allegory이다. 4장〈에로티즘Erotism〉에서는 원초적 사랑과 성(性, sex)의 문제, 당대의 관념이나 형식을 깨부수고 금기에 도전한 섹슈얼리티한 시들을 다루었다. 알몸의 강렬한 이미지와 그로테스크한 애무의 시편들을 겹쳐 놓았다. 딴은,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서 여성성을 해학적 차원으로 에스컬레이션 시키는 시도 있으며, 이런 관능과 가학적 요설은 탐미의 세계로 시적 외연을 확장한다. 5장〈사랑의 진리와 존재 방식〉에서는 환희와 쾌락, 순수와 모순, 갈등과 욕망이 뒤엉킨 사랑과 이별의 방식을 엿본다. 때로는 질투와 광기의 누설을 통해, 때로는 상처와 용서의 방식으로, 우리의 심장을 떨림과 울림의 세계로 안내한다. 공허와 외로움의 절절한 비가(悲歌)는, 탄식과 눈물, 거짓과 원망, 죽음과 애증의 메아리가 되어 허공에 울려 퍼진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되고 이별을 하면 시가 된다. 하여, 사랑-이별은 생명-죽음과도 같이 문학의 중요한 테제로 기능하며, 이는 광기에 사로잡힌 자만이 구가할 수 있는 시인의 운명이자 천형이다. 6장〈사투리 시의 맛과 멋〉에서는 현대시에서 사투리를 활용한 다채로운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우선, 사투리 시는 맛깔스럽고 말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자유롭다. 수천 년 그 지형과 기후에 따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신체의 언어이자 소리의 시어다. 사투리 시는 사물 간의 미세한 감각의 차이와 오묘한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사투리 시야말로 한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다양하게 할 뿐만아니라, 해학과 유머를 통해 카타르시스의 세계로 끌어올린다.
7장〈아방가르드Avantgarde, 혹은 미래파의 모험〉에서는 모더니즘(Modernism 근대주의),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 데카당스(Decadance, 허무주의), 키치(Kitsch, 천박한/대중취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탈현대주의/ 해체주의)의 다섯 가지 범주를 살폈다. 다분히 실험적이고 전복적(顚覆的)인 상상력으로 전통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정신의 첨병으로서 아방가르드 시는, 모호성, 불확실성, 주체의 붕괴와 비순수와 반예술 운동의 기치를 내건 바 있다. 미래시는 언어와 언어 사이에 크레바스(crevasse)가 존재하며, 위험과 긴장, 정형과 무정형, 안과 바깥의 대칭적 사유가 깊다. 난해와 카오스로 무장한 미래시는, 교란과 비약, 전복과 은폐의 한복판에서 다중 우주를 확장한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환(幻)의 세계이며, 언어 자체가 발화자가 된다. 8장〈신춘시 읽기의 몇 가지 방식〉에서는 현대시의 새로운 내일을 가늠하는 신춘문예 신인 작가의 작품을 분석한다. 참신하고 다층적인 언어 실험, 응시와 발견, 언어의 조탁(彫琢)과 감각, 현실의 부조리와 풍자, 압축 혹은 형상화의 미학 등을 추구한 개성적 작품이 주를 이룬다. 9장〈리듬과 한(恨)의 정서〉에서는 시와 리듬의 관계를 한국인의 한(恨)의 관점에서 겯고 튼다. 천문(天文), 지문(地文), 인문(人文)은, 그 자체가 시의 무늬이자 음악이다. 삼라만상은 생로병사를 통해 저마다의 업(業)과 한(恨)을 푼다. 물소리도 천둥도 바람도 사람도, 저승과 이승 사이에서 풀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푼다〉는 것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깨끗이 지워 생의 근원으로 다시 간다는 뜻이다. 리듬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생명 현상으로서 율려(律呂) 의식과 함께 우리의 전통 사상과 그 맥이 닿아있다. 10장〈부조리와 비극의 시〉에서는 부조리한 현실의 절망을 딛고 일어선 강렬한 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인간은 세계의 의미를 추구하지만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하여 세계는 합리적인 인간의 물음에 결코 대답하지 않는다. 이런 실존적 국면에서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의 죽음과 운명에 도전하며, 삶의 참된 의미와 현실성을 찾고자 부심한다. 그러나 여기엔 반드시 비극적 행위와 결말이 수반된다. 이를 토대로 한국전쟁 전후의 남북 분단과 극심한 좌우 대립과 민중의 저항, 유신 독재와 오월 광주에서 자행된 살인과 만행, 고문과 부당한 인권 유린, 평등과 불평등, 지배와 피지배 등을 형상화한 부조리의 시를 다루었다. 11장〈경계의 시학〉에서는 서로 다른 것들의 사이와 접점에서 본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동아시아 예술과 미학의 독특한 개념 가운데 하나인 경계는, 감각과 인식의 대상으로서 외계(外界)나 외물(外物)을 지시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시와 예술은 항상 현재가 아니라 도래할 미래이다. 그 미래는 안으로 문을 닫아 걸은 골방이 아니라 주체와 세계가 만나는 접점, 경계 위에서 피어난다. 하여 가시계와 비가시계의 사이와 경계를 예각적으로 묘파한 시, 절망에서 놀라운 해학과 페이소스를 발견한 시, 감각적 이미지의 다층적 시선을 환경문제에까지 확장한 시, 사물과 환타지를 리믹스하여 다차원적으로 사유한 시, 선(禪)의 모순과 비약을 통해, 현실의 고행과 도(道)의 수행이 불이(不二)함을 역설한 시를 집중적으로 모색하였다. 마지막 12장〈시와 깊이〉에서는 인간의 심연을 울린 슬픔과 아름다움이 깃든 그늘의 시학을 탐색한다. 시가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는지를 행간의 깊이를 통해, 그리움Sehnsucht의 시혼과 음영을 엿본다. 모든 시는 결국 몸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세계는 하나의 몸이며, 몸의 말이다. 시의 말과 행간은 소리가 형상으로 드러나는 과정이어서 멀고 아득하다. 최소한의 말로 최대한의 울림을 드러내는 게 시라면, 칼의 언어일수록 시의 피는 더욱 깊게 스민다. 은폐된 것들의 비은폐와 무의식이 시의 심층 언어라면, 이는 모호와 난해, 압화와 음영, 사물에 투영된 알레고리로 점철되어 있다. 아름다운 것이 위험한 거라면, 욕망의 언어는 죽음과 부조리에 대한 강렬한 저항과 반동, 모순의 극지다. 언어는 끌어안는 공(空)의 방식과 밀어내는 색(色)의 방식으로 인연 생기한다. 한편, 장자의 말처럼 ‘천하를 천하에 감추는 것, 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이 시다. 하여, 궁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하고(變則通), 통하면 오래간다(通則久)(주역, 繫辭下傳)는, 그 미완의 영역이 시의 깊이다. 내공과 시안(詩眼)이 얕아, 미처 다 담지 못한 흘러버린 귀한 시편은 훗날을 기약한다.
첫댓글
텃밭시학 토요반 개강
흠뻑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