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반도 종단 537 회상(1)
하나, 종단 출발 전에 더 많은 휴식을 필요로 했다.
설악산 클럽 단체산행에서 종아리 통증이 발생했다는 것은 5월에 매주마다 산악 울트라를 했던 것이 피로가 누적되어 이미 몸이 극도로 지쳐있었다는 것으로 몸이 빨간 불을 켠 것이었다, 하지만 강도 높은 훈련에 버금간다고 느끼며 이를 미쳐 인지하지 못했었던 게 불찰이었다. 그래서 대회 때까지 남은 3주일이면 충분한 휴식기간이라 여기며 클럽산행에 대해 전혀 부담을 갖지 않았었다. 훈련으로 본다면 과 훈련을 한 것이다. 단체산행은 빠질 수 없는 행사이기에 종단 참가를 염두에 뒀다면 5월 산행을 일부 줄였어야 했다. 종단에 갈려면 6월 들어서는 장거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확인한 셈이다.
둘, 동료들과 헤어지며 마음이 들떠 평정을 잃었다.
2012년 7월 7일 오후 5시
“회장님 어디세요?”
“여기 태종대인데 종단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정모 오는 줄 알고 출정식 해 줄려고 했는데 …… 꼭 완주하세요”
진희님 고마워요, 양재천은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이다.
93명의 건각들과 대회조직위원들이 태종대 입구 숙소 마당에 모였다.
윤장웅 기술이사의 대회운영, 주의사항 전달에 이어, 코스 이탈이나 외부 지원 없이 페어플레이를 하자고 당부한다. 육체적, 정신적 극한 상황에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면 이 또한 진정한 마라토너가 아니겠는가.
이번 대회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된 부산지맹 회장 이도희, 그는 울트라 100회 완주라는 대 기록을 달성한 울트라 마이스터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달리고, 모두 완주하자!”라는 선창에 모두 따라 구호를 외치고 오리엔테이션을 마친다..
<종단 537 오리엔테이션-우측 오영표님>
부산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전병홍, 서울에서 먼 길 달려 온 송두록과 김성환, 친구 녀석들이 태종대에 왔다. 태달사 오영표 선생님은 홈 그라운드라며 보양식 장어구이 한 턱을 쏘았고, 그들은 금방 친해져서 완주를 기원한다는 핑계로 한 잔 더 하러 간다. 출발부터 응원을 받으니 어깨가 무겁다.
<응원 온 친구들>
태종태 끝자락 모자상, 절벽 아래가 자살바위라 불리는 곳,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대장정의 첫 발을 딛는다. 영도입구 대교까지 10Km는 완만한 내리막길, 종아리 부상 후 3주간 달린 적이 없기에 초반 몸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천천히 달리니 맨 후미 주자들과 그룹이 된다.
<태종대 모자상 출발>
남포동역을 지나서는 지하철역을 따라 부산시내를 통과하여 18Km 지점 하단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약 18Km나 되는 낙동강 뚝방 길, 이 길은 매점하나 없는 웰빙 길로 낙동강 물사랑 200Km 골인 직전의 주로이며, 국토종단 자전거길 종착지이기도 이기도 하다.
구포대교를 건너며 3시간여의 쾌적했던 뚝방 길과 헤어지며 김해로 접어드니 주자들에게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자가 있는데 바로 이후근님이다. 그는 2009년 횡단 때 나와 함께 동반주 했던 사진작가 조연자님을 서포터 했던 울트라맨으로, 횡단과 종단을 모두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다. 곧이어 조연자님으로부터 응원 메시지가 도착했다.
“석배씨 파이팅!”
<김해에서 이후근님이 찰깍>
정오가 가까워지자 슬슬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늘을 찾아 휴식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땡볕이 더 심하기 전에 가로수 그늘을 따라 달리며 50Km CP에 도착한다.
핸드폰이 말썽을 부렸다. 출발 3일전부터 터치가 먹히지 않아 수신 폰이 되어 버렸다. 미쳐 새 폰으로 바꾸지 못해, 가끔 운 좋게 성공할 수도 있으나 메시지를 한참 입력하고 나서 전송 할려면 멈춰버리는 고물딱지다. 그래도 통화 버튼을 꾹 누르면 최근 기록으로 신호가 가니까 쉴 때는 기대를 걸고 부지런히 열어 본다.
<50Km CP 도착 >
진영읍을 통과하여 62.7Km 지점에서 밀양으로 향하니 차량 통행이 번잡한 국도로 나무 한 그루 없는 땡볕 길이다. 몇 발짝 뛰다 걸어 보지만 걷는 것 조차 힘들어 금방 지쳐버리고, 토시로 팔을 보호했지만 햇빛만 차단할 뿐 뜨겁게 달아 오른다. 머리와 몸에 물을 끼얹으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고,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고, 편의점에 들러선 음료수 한잔 마시곤 에어컨 바람을 쏘인다.
밀양IC에 좀 못 미친 80Km 지점에 이르자 발가락 1개가 벌겋게 달아 올랐다. 신발끈이 너무 느슨했던지 내리막길에서 발가락이 밀리면서 충격이 가해졌던 모양이다. 그래도 후끈거리는 아스팔트 열기에도 불구하고 발바닥 물집이 생기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주유소가 나타나자 염치 불구하고 화장실 문을 닫고는 훌러덩 벗고 샤워를 하여 열기를 식혔다. 종일 메시지 하나 날리지 못했기에 주유소 직원에게 양해를 구해 양재천 홈피에 접속해서 댓글을 달았다. 그러는 사이 금쪽 같은 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이나 휑하니 지나간다.
김해까지 약 40Km까지는 맨 후미에서 달리며 몸 상태를 점검했고, 서서히 몸이 풀리면서 오후에는 무더위 속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달려서 밀양의 100Km CP에는 중하위그룹으로 들어왔다. 계획했던 시간 보다는 늦었지만 더위 탓인지 도착 순서로 봐서는 크게 늦지 않았다. (16시간 41분 소요, 58번째 도착)
<100Km CP 도착>
가마동의 김동해 형님, 나 보다 열 살이나 많은 그는 매년 종단에 참가해서 아직 한번의 완주도 못했지만 절망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 열성파다. 나 하고 페이스가 비슷해 횡단 때도, 그리고 이번 종단에서도 50Km CP에 함께 들어갔고 100Km CP도 함께 출발한다.
<100Km CP 출발>
그러나 출발한지 얼마 못 가서 내가 복장을 고치는 사이에 동료들과 헤어졌다. 그들이 휴식하는 것을 지나친 줄도 모르고 따라 잡는다며 가끔 스트레칭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부지런히 달렸다. 또 한편으론 마땅히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한 것도 있지만 시원한 밤에 거리를 줄여 놓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청도를 지나 120Km 지점의 남성현 재를 넘으면 경산, 새벽 찬 이슬을 맞으며 재를 넘으면서는 달려 오르고 내리막길 또한 기분 좋게 달렸다. 청도~경산~대구는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곳이라 옛 추억들을 되살리며 멋지게 달려보고 싶었고, 동생과 친구들이 응원을 오기로 약속되어 있었기에 부지런을 떨며 갈 길을 재촉했으니, 아~ 어찌 몸이 배겨낼 수 있었겠는가. 동료들과 헤어져 혼자 달리면서 평정을 잃고 오버 페이스를 한 것이다. 결국 125Km 지점에서 왼쪽 무릎 안쪽 인대(차렷 자세 때 두 무릎이 겹치는 부위)에 통증이 나타나 절뚝거리며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고향 땅을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한 순간의 방심이 일을 그르쳤다.
대구 148Km CP에서 중도 포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은 390여Km는 너무 부담되는 거리였다. 응원 온 동생과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여전히 대단한 우상 같은 존재, ‘나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접을지도 몰라’라고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삼켰다. 휴식하면 좀 나아 질 수도 있다는 울트라 마이스터 이도희 조직위원장의 제안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자리에 누웠다.
여기서 그만 둬야 한다는 건 서글프기도 하고,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더니만 한 시간 이상이나 잤다. 무릎 통증은 매 한가진데……어찌하나…… 200Km CP에 가야 배낭을 찾을 수 있고, 시간도 충분하니 천천히 가 보라고 권한다. 가다가 도저히 못 가겠다면 그때 포기하라고 한다. 사실 여기서 팬티 바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간다는 게 모양새가 우습고, 아직 걸을 수는 있으니 운 좋게 통증이 약해진다면 다행일 수도 있다는 기대와 함께 길을 나섰다.
동료들과 그룹을 하고 싶지만 도저히 보조를 맞추기가 어려워 혼자만의 외로운 여행길에 접어 들었다. 길 건너 아파트 지역에 병원 하나쯤은 있겠지만, 무조건 쉬라고 할 것 같기에 차라리 속 편하게 에어파스를 뿌려가며 일시적이나마 통증을 완화시키면서 간다. 이열치열 삼계탕으로 에너지 충전하고 한 낮의 대구 시내 길을 통과한다. 누가 대구 아니랄까, 열기에 온 몸이 익어 버리는 것 같다. 주유소 마다 들러서 물을 끼 얹으며 식혀보지만 잠시뿐이다.
대구를 통과하니 민가도 주유소도 하나 없는 국도 10여Km, 더위와 갈증, 가도가도 제자리 걸음 같으니 지겹기도 하고 외로움마저 든다. 주로 감독관이 날씨가 더워 200Km CP 제한시간을 새벽2시로 1시간 연장한다는 안내와 함께, 동료 한 명이 갓길로 갔는데도 트럭이 스쳐 지나가 부상을 입었다며 갓길도 주의하라며 환기시킨다.
<약 171Km 지점>
180Km 지점, 왜관에 접어드니 그 지글지글하던 해가 서서히 서산을 넘어간다. 통증이 새벽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지칠 만큼 지쳤다. 정말로 여기서 멈춰야 하나….. 석양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아~ 술이나 한잔하고 싶다. 시내에 들어서며 치킨 호프집을 찾았다. 금방 나타날 것 같은데도 쉬 눈에 띄지 않아 편의점에서 2캔이나 내리 마시고 나니 꿀꿀한 기분이 사라진다.
<200Km CP 도착>
구미 200Km CP, 여기서 멈추려고 했지만 지해운 연맹 사무총장의 독려로 다시 출발 준비를 한다. 한 여름이지만 화장실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얼음같이 차갑다. 샤워와 무릎을 냉 찜질하고 나니 조금은 기분 전환이 된다. 땀에 찌들어 냄새 나는 상하의를 모두 갈아 입고 양말을 신는데 뭉클하게 잡히는 게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발 뒤꿈치에 모두 물집이 잡혀 있었다.
어두 침침한 가로등과 랜턴 불빛에 의지해 바늘에 실을 꿰기를 수 차례, 겨우 꿰고서도 물집이 시야에 보이지 않으니 상처가 날까 봐 조심스럽다. 왠 놈의 모기는 이리도 설치는지 모기 쫓으랴, 물린데 긁으랴, 아픈 무릎 구부리랴 진땀을 흘린다. 출발 때 신었던 쿠션이 좋은 신발, 첫날에는 발톱 하나가 죽었고 오늘 물집까지 생겼기에 한 사이즈가 큰 것으로 교체하여 출발한다.
셋, 통증은 휴식을 빼앗아 버렸고 체력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3일째는 선산, 상주, 점촌을 지나 문경 새재까지 가야 한다
가로등 불빛도 졸고 있는 심야, 함께 가던 동료 하나가 졸음이 온다며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선 인도에 드러눕는다. 낮에 달궈진 온기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찬 이슬 맞으면 좋지 않을 것 같아 터벅터벅 걸어 가 보지만 나 또한 이내 졸음이 엄습한다. 버스 정류장에 머리를 진행 방향 쪽으로 두고 눕는다. 행여 방향 감각을 잊을까 해서다. 이내 밀려오는 한기에 눈을 뜨고, 또 가다 눕고,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눈꺼풀은 무겁기만 하다.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 ‘선산읍 표지판을 지나면 우회전…’
근데 우측길이 없다. 앞으로 가 보지만 전혀 나타나지 않고, 뒤 돌아 가서 확인해 봐도 조그마한 소로길 밖에 없으니 비몽사몽간에 길을 놓친 것 같다. 진퇴양란이다. 한참 동안이나 넋 놓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새벽 일을 나오 시길래 선산가는 길을 물었더니 그냥은 못 간다며 조금 뒤로 돌아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라는데 첫 차가 오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란다.
어느 미친놈이 아니면 이 꼭두새벽을 달릴까,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로서는 당연한 대답이다. “그러면 차가 어느 방향으로 갑니까?” “그야 이쪽으로 쭉 가지” 코스도에 1.2Km 를 가야 삼거리가 나오는데 200m로 착각하고 한바탕 해프닝을 벌렸다. 이정표만 믿고 가는 길, 깜박하는 순간에 놓치면 돌이키기가 어렵다. 그래도 할머니를 만난 게 행운이었다. 벌써 대자뷰가 오는가?
219km 선산읍에 도착하니 허기가 진다. 200km CP에서 출발을 망설이다 주먹밥 하나 챙겨놓지 못한 게 아쉽다. 선산 버스터미널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식당을 물었더니, 여긴 문을 연 곳이 없으니 저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 찾아 보라는데 주로를 벗어나기가 싫다. 그냥 인도에 퍼질러 배낭을 뒤졌다. 파워젤, 연양갱, 쵸코렛, 육포, 약밤등 만일을 위해 배낭이 좀 무겁더라도, 언제 먹을지 기약 없어도 꼭 챙겨 다녀야 하는 게 바로 비상식량이다. 223.8Km 생곡삼거리에 가서야 국밥으로 따뜻한 식사를 한다.
이 길은 과거길이라고 팻말이 붙어있다. 얼마 전까지 만 해도 꽤 붐볐는지 군데군데 주유소나 음식점들이 대부분 폐허로 남아있다. 아마 중부내륙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 같다. 선산군 옥성면에 이르니 김효근 미순 부부가 쉬고 있다. 그들도 더위에 많이 지친 모습으로 EBS 희망풍경 녹화팀이 함께 따라가고 있다. 식당을 찾으니 가게의 라면뿐, 마당 수돗가에서 쪼그려 몸을 씻으며 2개를 주문했더니, 벌써 끓였다고 식은 밥을 한 공기 불룩 담아 주며 라면 값만 받는다. 아직 인심은 옛 그대로다.
<시각장애인 부부>
“석배야 파이팅!!”
취로사업인지 공동작업을 하다 그늘에서 새참을 먹으며 휴식하고 있던 노인들이 주먹을 쥐면서 응원한다. 그들에겐 자식이나 한 참 동생 뻘이겠지, 배번을 보며 이름을 부르기에 깜짝 놀랐지만 왠지 더 친근감이 간다. 흔히 우리가 생각했던 시골의 촌로들도 이젠 이런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걸까
243Km 지점에 이르니 오르막 내리막이 쭉 펼쳐진 자동차 전용 직선화 도로, 10여명의 후미그룹 주자들이 추월해 간다. 안간힘을 써가며 따라 붙는다. 내리막길은 뒤로 가는 게 더 편하니 어찌 같이 리듬을 맞출 수 있겠는가. 한참이나 함께 달렸던 것 만으로 만족해 한다. 상주 253Km CP에 이르니 뒤에 남은 주자는 9명, 그 중에 몇 명은 중도 포기가 예상된다고 한다. 간식도 동이나 얼린 홍시만 그득하니 이를 몇 개 챙긴다.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으스스 하다. 밤부터 장마 비가 내린다는 예보라 이젠 하늘도 뿌옇게 바뀌어 간다.
상주 시내를 흐르는 북천 뚝방 길을 따라 가는데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 한 분이 아침부터 주자들이 지나가고 있다며 이런저런 것을 물어오더니 자동차 전용도로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 해 주겠단다. 시간이 촉박해서 그러고 싶지만 허기를 해결해야 했기에 코스도의 상점을 거쳐 갈 거라며 사양하자, 친구들이랑 먹고 남았다며 왕사탕 만큼이나 조그마한 크기의 삶은 감자와 얼린 물을 건네주며 가신다. “감사합니다!”
3번 국도 자동차 전용도로 진입하기 전, 100Km CP에서 함께 출발했던 한완우님을 만난다. 그는 두 다리에 온통 테이핑을 하고 달렸는데, 골인 지점을 30Km 밖에 남기지 않은 508Km 마지막 CP에서 다시 만났을 땐 통증이 심해 여기서 접었다며 침울해 했었다. 그와는 한참을 같이 달렸지만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다가 따라 붙으면 멀어지고, 또 따라 붙으면 멀어지니 그와의 동반주 열망은 꺽여지고 결국은 혼자서 간다.
<상주에서 동반주 했던 한완우님>
17Km나 되는 전용도로를 빠져 나와 274.5Km 문경에 도착하니 해거름이 진다.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편의점에서 훈제 닭다리와 김밥으로 해결한다. 아침 국밥 먹은 것 외에는 종일 간편식이다.
280Km 점촌에 이르니 앞서갔던 후미 그룹들이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선다. 따라 잡으려고 애를 써 보지만 어둠 속으로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287Km 지점에 이르니 맨 후미에 쳐져 있던 같은 강남지맹 소속의 김구현, 김길원님이 따라왔다. 296.8Km 문경새재 CP 제한시간이 임박했다며 정보영 재무부장이 차 몰이를 해주니 통증도 참아가며 쉼 없이 달린다. CP를 조금 앞두고 드디어 장마비가 세차게 내린다. 강남지맹에서 참가한 3명이 마지막 주자로 CP에 골인한다.
통증이 발생하고서도 200Km CP에 도달할 때에는 여유가 있었다. 벌어둔 시간이 있었음이다. 그러나 253Km 상주CP까지 진행이 늦었던지라 여기서 부터 296.8Km 문경새재 CP까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부지런히 달려서 겨우 제한시간 8분전에 도착했다. 이제 제한시간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정신 바짝 차리고 달리면 통증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300Km를 지났으니 남은 거리가 더 짧다는 희망적인 기대에 스스로 위안을 해 본다.
밤비가 차갑다. 비를 피해 야외 CP에서 식당의 방안까지 몰려드니 식사, 출발 준비에다 잠을 자는 주자들로 서로 엉켜서 빼곡하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상을 차려야 했고 또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 직원들 퇴근을 못 시켜서 주인장이 버럭 화를 낸다. 다음엔 절대 CP를 제공하지 않겠단다. 비에 대비해 휴식할 수 있게 CP를 좀 더 신경 써야 했었는데 우리 주자들, 봉사자들, 그리고 식당 종사자 모두가 입이 튀어 나왔다.
종단 경험자 연태흠님을 따라 나섰다. 김길원님과 김구현님은 한 잠 자고 간다기에 나는 그럴 여유가 없고, 또한 그들은 초반엔 충분히 쉬고 종반에 전력질주 하는 스타일로 내가 따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새재 정상 영남 제3관문까지 10Km나 되는 산속 길을 가야 한다. 어둠과 빗 속, 그리고 추위까지 헤쳐 가야기에 CP요원들이 출발 자들을 묶어주고 있다. 몇 번이나 왔었던 곳이지만, 가장 최근이 6년 전이라 주변이 옛 기억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으니 낙오하지 않으려고 종종 걸음으로 따라 다닌다. 제1관문 주흘관과 왕건 촬영장을 통과하자 또 다시 졸음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칠흑 속에 반짝이는 반딧불이등과 랜턴 불빛, 산길이지만 맨발로도 걸을 수 있게 잘 정리된 길, 콸콸 요동치는 계곡과 우의를 두드리는 빗소리, 분명 살아 숨쉬는 공간이지만, 쉼 없이 전진해도 어느 하나 변하지 않고 연속되는 이 공간은 어둠에 묻혀 멈춰진 공간이리라. 눈을 뜨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뒤 돌아 보며 여섯 그리고 나, 심 호흡을 한번 하고선 다시 간다. 간간히 길 옆 바위, 나무 둥치와 맞닥뜨리며 깜짝 놀라서는 또 하나, 둘, 셋 ….. 일곱이란 숫자 맞추기를 한다. 만취해도 집을 찾아가듯 필름이 뚝 끊어졌다 붙고를 반복 한다.
빗 줄기가 약해지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눈을 뜨다 감았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계속 빙글빙글 산길을 돌고 돌아 가는데 필경 자꾸 도돌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언제까지 돌아야 하나 휴~ 고대하던 제3관문이 나타나며 정상이다. 모두들 우의를 입은 채로 상점의 평상에 들어 눕는다. 밤새 한번의 쉼도 없이 오느라 많이 지쳤다. 그러나 금방 몸이 차가워지자 오래 누워 있지 못하고 하나 둘 일어나 출발한다.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 따라 붙으니 계속되는 내리막길, 잊고 있었던 통증을 다시 느낀다. 앞선 주자 하나 둘 시야에서 사라지고 뒤에서도 하나 둘 추월해 간다. 아, 오르막 길엔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좋았었다. 비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 길을 다 떠나 보내고 또 다시 나 홀로 간다. 멋 진 경치도 내 몸이 편해야 눈에 들어오는 듯, 다시 올 땐 이 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며 지나리라.
오늘은 음성을 거쳐 서울의 턱밑 이천까지 가야 한다. 314Km 지점 신풍삼거리에서 막 문을 여는 가게에 들러서 라면 한 그릇 먹고는 퍼세식 화장실서 진땀을 흘리고 기진맥진 한다.
연풍을 지나고 괴산을 향하는데 주로 감독관 인천의 임정규님이 차를 멈추며 “왜 혼자 가느냐”고 다그친다. “잠시 휴식 하느라고 ….” 통증이란 말이 맴돌지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라 그냥 손을 흔들며 반긴다. 벌써 이틀째나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외로움을 삼켰으니 얼마나 처량한가? 누구 하나 파트너 되어 줄 사람이 없을까, 서로를 의지하며 이 머나먼 길을 헤쳐갈 수 있는 동반주자가 그립다.
<표정이 굳어 있다>
상주 250Km CP 이 후 제한시간에 쫓겼고, 밤새 빗 속에서 문경 새재를 넘으면서 제대로 된 휴식을 갖지 못한지라 피로가 덮쳐온다. 날씨가 개면서 햇빛도 내리쬐고 웬수 같은 잠도 쏟아진다. 그러나 햇빛이 더 강해지기 전에 좀 달려보자고 주유소가 나타나면 계속 커피만 마셔댄다. 저기 전봇대까지 달리자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고 머리통을 쥐어 박아보지만 눈 앞이 캄캄해 지면서 금새 비틀거리며 멈춘다.
식당 간판을 보고 들어가서는 벌렁 누웠다. 눈 까풀이 자꾸 내려오니 칼국수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다리는 뻑뻑한 게 로봇 마냥 찡~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왜 비싼 밥 먹고 개 고생이냐, 이 미친 짓을 왜 하느냐고? 글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고 믿으니까, 응원해주는 지인들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구. 구도자의 고행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미약하겠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이 모든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완주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첫댓글 우째 622후기 쓰다가 그만 삼천포로 확 빠져 뿌렸습니다
쓰다가 제쳐둔 것을 재구성하고, 메모들을 모으고, 다시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진도가 거의 나가지 않는군요
이러다 또 해 넘길라ㅎ
이래서 울트라 마라톤은 육체적 운동이라기 보다 정신운동으로 ,,,, .
긴~~여정인 만큼 써야 할 글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두고 두고 써 주세요 가끔은 이 글을 보고 울트라 열정이 살아 나시는 분들이 행동으로 옮길지도 모르잖아요..
읽는 사람도 재미있고...
어점이리도 기억력이 뛰어나실까?
호박배 말대로 이번 글을 어찌 재밋게? 아니 보다 밀도? 있게 재구성하는
전문작가에게 맞겨서라도 책으로 꾸며 보시라고 권하고픈 생각이 스멀스멀 나긴하는디..
석배 대장이 그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 내는 것 자체가 울트라맨이라오
저는 해찰하면서 달리는 까닭에 ㅠㅠ
풀코스도 하루가 지나면 기록조차 잊어버리는 맹맹인디..
연재 시리즈는 나중에 끝나는 시점에서 연속 보기 편안하시라고, 글들을 이동시켜 묶어 놓겠습니다.
지금도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현재형이라. 지니 말대로 읽다가 달려나갈 사람들 있을듯.
이런 분을 아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