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신부
성경본문:4: 10-15
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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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물러가면서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여 심술을 부린 한 주간이었습니다.
"꽃샘 추위에 반 늙은이 얼어죽는다"는 속담이 있다더니 새벽과 저녁으로는 얼마나 매서운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이 아무리 물러가기 싫어해도 봄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겨울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봄의 계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문인들이 봄을 노래하였고, 봄의 예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렸던 솔로몬도 봄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아가서에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봄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가서를 본문으로 정하였습니다.
아가(雅歌)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시랃-시림]이라고 하여 노래 중의 노래라고 합니다.
아가서의 주제는 솔로몬 왕이 그의 신부인 술람미라는 여인에게 베푼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노래를 저작한 사람은 솔로몬 왕입니다.
다른 사람이 쓰고 솔로몬에게 헌정된 것이 아니라, 솔로몬 자신이 저술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그는 왕상4:32에 기록된 것처럼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노래는 일천다섯 편이며, 그는 식물에 대하여, 여러 동물에 대하여 조예가 깊었습니다.
이 아가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신부는 술람미 여인입니다.
솔로몬 왕에게는 후궁이 7백 명이요, 첩이 3백 명이었습니다. 그의 정부인은 애굽의 바로의 딸이었는데, 그 외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도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 아가서를 기록할 때의 솔로몬에게는 왕비가 60명이요, 후궁이 80명이었고 시녀들은 무수하였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맞아들인 많은 여인들 중에 진정으로 사랑하였던 여성이요, 솔로몬의 신앙이 아주 좋았을 때에 사랑했던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면서 사랑해본 여성은 술람미라는 여성이었습니다. 한 남자로서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의 노래를 남길 정도로 사랑한 여성이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보이지 않자 안타까워서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애타게 부르며 찾았습니다. "돌아오고 돌아 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 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가서라는 성경은 히브리 성경의 제3부인 성문서 즉 게투빔에 속하는 성경이며, 다섯 두루마리 책이었던 아가, 룻, 애가, 전도, 에스더의 첫 번째 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아가서의 솔로몬 왕을 하나님으로, 그리고 신부 술람미 여인을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초대 기독교의 교부들 오리겐, 제롬, 어거스틴 이런 분들도 비유적으로 해석하였는데 신랑을 그리스도로, 신부를 교회와 성도들로 해석하였습니다.
아가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성경입니다.
아가서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력이 약한 눈이라고 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눈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아가서를 통하여 심오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보려는 저자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여인을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아가서를 읽어보면 신랑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야외로 인도하시고, 시골 촌락으로 인도하시고, 싱그러운 포도밭으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푸른 숲이 우거진 산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백합화, 수선화, 고벨화, 나도와 같은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고 사과나무, 무화과, 석류, 포도나무가 있는 동산, 노루가 뛰어 놀고 사슴과 암양과 염소가 한가하게 노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아가서는 결혼의 신성과 남녀의 애정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랑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으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또 우리 주님의 사랑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남녀간에도 연민과 연합과 사랑과 하나됨이 있는 것처럼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연민과 연합과 사랑과 하나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가장 진지한 신앙을 아가서에 담아놓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절기에 필히 읽어야 하는 성경이 있었는데, 유월절에 읽는 성경이 아가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다가 해방된 절기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아가서를 읽었습니다.
유대의 랍비들이 심사숙고하여 여러 거룩한 문서들을 모아서 정경으로 인정할 때 솔로몬의 하찮은 연애 시라고 생각하였다면 성경 안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깊이 음미하면 성경에서 이보다 더 거룩하고 신성한 책은 없다고 극찬하게 될 것입니다.
아가서 전체가 다 중요하지만, 4:10-15절의 오늘 본문 말씀도 아주 중요한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목을 "아름다운 신부"라고 정해보았습니다.
무슨 소설이나 영화 제목 같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인간이 추구하는 선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적이고 외모에 신경을 써서 아름답게 하려고 힘을 씁니다.
시내에 나가보면 선남선녀들이 모두 모델 같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외모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릅니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보이는 정도를 넘어서 다 뜯어고치고 치장하는데 어려서 헤어진 친구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고 하셨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렇게 하얀 피부를 가졌거나 그렇게 매력적인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게달의 장막 같았으며, 피부는 햇볕에 그슬려서 거무스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여인이었는데 솔로몬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적인 아름다운 조건이 아닌 영적인 준비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설교하는 성목사는 남자가 되고 보니 신부라는 용어를 그렇게 실감 있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시기를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비유를 들어보면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62:5)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이 처녀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처럼,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바울 서신 중에 특별히 에배소서에는 주님과 우리 성도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마치 신랑과 신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주님이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죽으신 것처럼 하라고 하셨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정결한 처녀, 준비된 신부로서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드려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들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남편과 아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신부가 준비해야 하는 몇 가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아름다운 신부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0)
10절을 봅니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술람미 여인, 신부의 사랑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사랑하는 것을 보니 포도주보다 더 진하고 그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로웠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예쁘고 귀여운 그의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의 진한 맛보다 더욱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을 준비하여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신부된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사랑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맛이 있고, 향기롭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물어봅니다.
복종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울 것이냐고 물어봅니다.
복종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이지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것은 창조적이기에 끝도 없이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고 하는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입니까?
사랑이 사랑을 불러오고, 사랑이 사랑을 키워주고, 사랑이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방통행적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높은 언덕 위에 달리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우리 주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우리 또한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찬송145장)
시집온 신부가 신랑만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고, 진지하고 변화된 의식을 가지고 시집을 살아야 합니다.
시집 온 첫날부터 친정만 생각하고 결혼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들이 만나고 다닌다면 그것은 신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는 자나깨나 신랑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히3:1에 보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초점이 신랑이신 우리 주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돈 많은 부자가 아니고, 어떤 명성을 날리는 사람이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 우리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면 목소리라도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루도 안 만나면 허전한 것 같고, 아주 중요한 무엇이 빠진 것 같습니다. 신랑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의 취미는 무엇이며 그가 잘 먹는 음식은 무엇인지, 사랑하는 두 사람은 어느 듯 한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들이, 여러분의 생각하는 일들이, 여러분의 추구하는 모든 사업이, 우리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아름다운 신부는 바른 행실을 가져야 합니다. (11)
11절 말씀입니다.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부된 성도들의 올바른 행실을 말합니다.
신부들은 지혜로운 언어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입술에는 꿀 같은 지혜로운 말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음담패설을 말하지 말고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잠16:24)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18: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우리의 혀라는 것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혀에는 꿀과 젖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야고보 선생님이 말씀한 것처럼 우리의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합니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우리의 혀에 재갈 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신부들입니다.
우리의 하는 말들이 꿀과 같고 젖과 같이 사람을 살리고 유익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들은 바른 행실로 주의 향기를 드러내야 합니다.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의복의 향기, 요한계시록에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19:7-8) 고 했습니다.
옷을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신분에 알맞은 생활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느냐 하는 것으로 그의 신분을 말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귀족은 귀족이 입는 옷이 달랐습니다. 그는 귀족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신부들은 의복에서 향기가 나는데 레바논의 향기 같다고 했습니다.
레바논에는 레바논 산맥이 있고, 헐몬산에는 사철 만년설이 쌓여있고, 산에는 침엽수가 많아서 백향목, 잣나무가 잘 자라서 침엽 향기가 진동하는 곳입니다. 침엽수가 많은 산 속에 들어가면 얼마나 향기롭습니까?
우리 신부들은 바른 행실로 주님의 편지가 되고,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하셨습니다.
신부수업을 받고 있는 처녀들이 더럽고 추한 행실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신랑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까?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 (롬6:11)
3. 아름다운 신부는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
12절입니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여기서 잠근 동산,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울타리로 둘러싸인 비원을 말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주님과 동행하고 거니는 동산이어야 합니다. 덮은 우물과 봉한 샘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쓰임을 받겠다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면 사용하지도 않겠다는 심정으로 잠근 동산이어야 하고,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처럼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선 왕조의 궁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일반 시민들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습니다. 비원이라는 곳입니다. 옛날 임금님이 궁녀를 거느리고 산보하던 곳입니다. 잠근 동산은 성별(聖別)된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있어야 하고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4. 아름다운 신부는 열매맺도록 성숙하여야 합니다. (13-15)
(아4:13-15)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라고 했습니다.
"네게서 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과수와 같고 아름다운 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생수요, 우물이요 시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사람 살만한 사회로 만들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합니다.
석류와 같은 열매, 각종 아름다운 과수를 맺어야 합니다.
고벨화는 "샤프론"이라는 붓과의 식물인데, 방향제로 쓰이고, 염료로도 쓰입니다. 나도는 순수한 기름을 냅니다.
창포는 기름과 향수를 만들고, 계수는 그 껍질을 향료로 사용합니다. 각종 유향목과 몰약은 죽은 사람의 몸에 발라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신부수업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 신부수업을 톡톡히 받아낸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사의 왕후가 된 에스더라는 분입니다. 바사의 황제 아하스에로에게는 왕비 와스디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와스디는 대단한 용모의 여성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베푸는데 왕은 왕궁 후원에서 신하들과 전국의 방백들을 청하여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왕후는 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한 주간동안 잔치를 주관하였습니다. 왕이 잔치의 마지막날 왕후를 불렀는데 나오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와스디 왕후는 참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여성이었는데 심성이 좋지 않았습니다. 왕은 자기 부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거역하니 그 날로 폐위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새로 왕후를 간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왕후의 후보로 뽑힌 여성이 에스더였습니다. 처녀들이 왕 앞에 나가기 위하여 일년을 준비합니다. 여섯 달 동안은 몰약 기름을 온 몸에 바르고 몸매와 피부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달 동안은 온갖 화장품으로 다듬어 이렇게 1년이 지나야 왕이 부르는데 또 다시 부름을 받지 못하면 그녀는 후궁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임금이라는 사람들, 참으로 몹쓸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하나의 쾌락을 위하여 그렇게 수많은 처녀들을 괴롭히고 고생시켰습니다. 에스더 차례가 되었는데 왕이 어떤 여자보다도 에스더를 사랑하므로 왕후의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세상 왕 앞에 나아가는데도 그렇게 준비한다면 우리의 인생을 지으시고 이 땅에 내려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는데 준비없이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선하신 왕이요, 선하신 목자요, 희생적인 신랑이십니다. 우리도 그분을 만날 신부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답고 흠이 없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언제나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같이 즐거운 찬양과 기쁨이 있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면서 임금이 참석한 손님들을 바라보니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22:12-13)
사랑하시는 여러분,
신랑되신 주님을 만날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준비하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 봉사하다가 신랑이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즈음 무식한 신부를 좋아하는 신랑이 없습니다. 날마다 철없는 짓만 골라하는 신부를 좋게 보지 않습니다. 준비하지 않고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죽는 것은 다 죽으니 섭섭하지 않으나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사실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믿어 우리는 당당히 나아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셨습니까?
아직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신부라는 확신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그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사랑 받고 준비하는 신부로, 신랑이신 우리 주님 앞에 아름다운 신부로 다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