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군왕들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을 만큼 산과 물의 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인심은 지덕(地德)에 따르기에 경국(經國)의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중국의 우임금과 순임금은 치산치수를 잘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성왕으로 칭송받고 있다.
이 중에도 우왕은 고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치수의 영웅으로 후세 사람들은 우의 공적을 칭송해 사당을 짓고 우신(禹神)으로 추앙했으며 중화(中華)의 대지를 우성(禹城)이라고 불렀다.
단기고사에도 임금(단군왕검)께서 팽오(彰吳)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개척관(開拓官)이 되어,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전력을 다하여 침수와 도로가 막히는 일이 없도록 하여 백성이 살아가는데 안전하도록 하라.”하시고 ... 라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가까이서 치수로 덕치를 이룬 사례를 보자.
옛 대구분지는 용두산에서 건들바위를 돌아 반월당과 달성공원 앞을 지나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신천의 범람으로 인해 큰 비가 올 때 마다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이에 따라 1778년(정조2년)당시 대구 판관이던 이서공이 사제를 털어 지금의 신천을 따라 물길을 돌리는 대규모 치수 사업을 시행하여 홍수로 인한 피해를 막았다.
이러한 이서공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은 이공제비를 세우고 신천제방을 이공제라 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