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씨가 굉장히 따뜻해졌습니다.
교회 오는 길에도 도로 가에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이 눈을 호강시켜 줍니다.
늘 그렇듯 이맘 때가 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벚꽃엔딩 노래 들으며 여수 밤바다에 가고 싶네요. 아직 제 감수성은 조금 남아있나봅니다.
봄이 되면 청년들에게 가장 많이 들리는 소식은 단연 결혼 소식일 것입니다.
2. 제게 소중한 청년이 있는데 지난주 4월 4일에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청첩장도 주러 직접 왔었습니다.
축하한다고 했는데 살짝 염려되는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뭐냐고 물어보니깐 날이 4월 4일이라 어르신들이 굉장히 불편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다니시는 분들도 그러더라구요.
더군다나 고난주간에 결혼식이 왠말이냐까지...
그러나 저는 그 자매에게 굉장히 많은 축복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사실 그날은 무교절 첫날 안식일이었습니다.
페싹, 유월절은 주님과 결혼함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날은 내 관점이 죽고 하나님 관점으로 사는 안식일, 무덤(케베르 קבר), 아들을 소망하게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확증되어 부활에 참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3. 4라는 숫자는 어떻습니까?
한자로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서 그런가 사람들이 굉장히 기피합니다.
히브리어로 '아르바(ארבע)'는 '넷(four), 사각형' 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강(나하르 נהר)이 에덴(עדן)에서 부터 흘러나옵니다.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우리가 페싹 절기를 보냈는데요, 반복(עוד)되는 절기(מועד)는 기쁨(עדן)이 되는데 그것은 영원(에드 עד)합니다.
그 강이 곧 네 근원, 머리(아르바 로쉬)가 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만백성이 너의 빛을 보고 사방에서 나아오네'
'아르바(ארבע)'는 사방, 즉 온 열방, 동서남북, 사계절, 번제단과 증거궤(עדות)도 사각형인데 이것의 숫자값이 4입니다.
4. 이 피조물들이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3이라는 숫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7(셰바 שבע) 완전, 완성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7은 관점으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은 철저히 3이 필요합니다.
3의 히브리어 '샬로쉬(שלוש)'는 주님의 형상을 훈련해서 그분의 형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아브라함, 이삭, 야곱, 온 이스라엘, 레위인, 제사장, 시작, 과정, 완성. 페싹, 샤부옷, 수콧
5. "여덟째 날에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 (레9:1)
이번주 토라포션의 제목은 '쉐미니(שמיני)', '여덟번째' 입니다.
히브리어로 '여덟'은 '쉐모네(שמנה)' 인데 여덟번째 날은 일곱번째(שבע) 날을 보낸 다음날입니다.
일곱번째 날, 안식을 보낸 뒤 첫 날입니다.
어제가 일곱째 날이었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오늘은 첫째날이지만 사실 여덟째 날입니다.
그래서 방주에 8명이 탔고 할례도 8일 만에 하게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안식 후 첫날 8일째의 예슈아의 부활은 새출발, 새창조를 의미합니다.
부활을 통하여 이전의 내 관점이 완전히 죽어지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이 출발하게 됩니다.
유월절은 새로운 출발, 시작입니다.
6. 8번째 히브리글자, 8의 숫자값을 가지는 것은 '헤트(ח)' 입니다.
바브(ו)와 자인(ז)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르 야샤르와 오르 호제르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똑바로 내려오는 빛과 그것을 반사하는 올라가는 빛이 연결되는 것이 헤트입니다.
헤트는 울타리를 의미합니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12:7)
바르고 라고 번역되었는데 히브리어로 '나탄(נתן)'은 '주다, 맡기다, 놓다, 세우다' 입니다.
마탄 토라, 주님이 토라를 주셨지 우리가 토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피를 취해서 문설주에 주라는 것입니다.
문설주는 바브와 자인의 모양, 울타리 모양(헤트) 입니다.
예슈아께서 자신의 피를 우리의 삶(헤트)에 주시는 것으로 더이상 우리의 삶이 아닌 주님의 삶으로 같아지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나의 삶의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7. 헤트의 본질은 바브(오르 야샤르)와 자인(오르 호제르)이 결합된 13입니다.
13, 여전히 깨름직한 숫자이십니까? 서양에서는 이 숫자 또한 굉장히 기피합니다.
금요일이 겹치면 더더군다나 싫어합니다.
13일이 금요일이면 무슨날이죠? 샤밧을 준비하는 날이죠.
TGI 프라이데이,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라는 뜻이더라구요.
감사합니다. 하나님, 금요일 저녁에 맛집 가는게 아니라 샤밧하러 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8. 13은 사랑을 의미합니다(고린 13장).
히브리어로 '아하바(אהבה)', 사랑의 숫자값도 13입니다.
야훼(יהוה)의 숫자값은 26입니다.
13+13,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가 된 것이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로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으뜸 계명인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도 이와 같은 으뜸 계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 비중을 더 둘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이 되는, 토라와 선지서의 으뜸 사상입니다.
하나가 되는 에하드(אחר)의 숫자값도 13입니다.
9. 사랑하는 여러분, 헤트, 죽음의 울타리로 들어갑시다.
그 죽음의 울타리는 내 것이 다 죽고 주님의 것이 다 살아나는 울타리입니다.
내 관점, 경험, 지식이 다 죽고 온전히 주님의 관점, 경험, 지식이 사는 울타리입니다.
오늘은 오메르 카운팅 8일째입니다.
이번주는 게부라(이웃사랑과 훈련) 주간입니다.
오늘은 '게부라 중의 헤세드' 입니다.
10. 훈련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통로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지만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쉽게 연애에 대한 모든 메뉴얼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내 삶에 변화가 옵니다.
혼자일 때와는 확연히 다르죠.
말투, 행동, 식성, 취향 사랑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내 삶 속에서 훈련이 되어갑니다.
순대국 이런걸 어떻게 먹냐 했던 그녀가 어느새 아주머니 여기 들깨가루좀 더주세요 이러고 남김없이 한그릇 뚝딱 해치우는
이웃사랑을 위한 훈련은 다 하나됨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위해 훈련되어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여기는 내 원수 속에서 내 악을 직면하게 되는 또는 내 원수에게서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 그것이 헤세드입니다.
11. 히브리어로 '여덟'은 '쉐모네(שמנה)' 입니다.
'쉐모네(שמנה)'는 '쉐멘(שמן)' 에서 유래되었는데 '기름, 살찐, 풍부한' 을 의미합니다.
일곱이란 뜻의 '셰바(שבע)' 는 '완전함, 완성됨, 안식'의 날을 상징합니다.
여덟이란 뜻의 '쉐모네(שמנה)'는 완전함과 완성됨에서 넘치는 풍부함이 있는 날을 상징합니다.
12. 레위기 8장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은 7일간의 위임식을 마쳤습니다.
히브리어로 '위임식'은 '말루(מלא)'라고 합니다.
'말루(מלא)'는 '말레(מלא)' 에서 유래되었는데 '채우다, 가득차다, 충만하다' 를 의미합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제사장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과정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는 과정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시작한 것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다는 진리를 훈련해가는 과정입니다.
13. 8일째 되는 날,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첫 제사를 주관합니다.
제사장들은 기름이 넘치는 풍부함(מלא)을 가지고 첫 제사를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드리는 첫 제사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납니다(레9:4, 6).
14. 각각 2천년의 '혼돈(תהו)의 시대', '토라(תורה)의 시대', 메시아(משיח)의 시대' 가 있습니다.
그 시간을 보낸 뒤 야훼의 날(יום יהוה)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주님의 재림(The Second Coming)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메시아의 시대, 천년왕국을 맞이하게 됩니다(계20:4-6).
이 날은 일곱번째(שבע) 날이며,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완성과 완전의 때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15. 그리고 그 이후 다가올 세상(올람 하바 עולם הבא)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름지고 풍부한 '쉐모네(שמנה)'의 영원한 삶을 보내게 됩니다.
재결합되는 완벽하고 영원한 부활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여덟이란 뜻의 '쉐모네(שמנה)'는 '영원'을 상징합니다.
16.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שבע)하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죄의 대속으로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안식(שבת) 후 첫째날입니다.
예수님은 완전(שבע)과 완성된 이후에 여덟째(שמנה) 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 그분은 오르 야샤르와 오르 호제르의 완벽히 결합할 '쉐모네(שמנה)'의 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에하드 된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증거(에드 עד)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증인(עדה) 이 됩니다.
17.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10:1-2)
아론의 아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 앞에서 금지된 불을 사용하다가 그 불로 벌을 받습니다.
개역개정에서는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 이라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야훼께서 지시하신 것과 다른 불' 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주르(זור)'는 '다른, 낯선, 외부에서 온' 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타인인 사람에 대하여 사용되는데 기본 개념은 '친하지 않음'이나 '관련이 없음' 입니다.
18.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레6:12-13)
사실 성소에서 불이 필요한 곳은 번제단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항상 지켜야 할 명령(צוה) 입니다.
내 악한 경향성, 거짓에서부터 항상 나와야 합니다.
내 욕망, 정욕은 번제단에서 날마다 태워야 합니다.
19. 나답과 아비후가 가져온 불은 '다른 불(אש זור)' 이었습니다.
이것은 번제단에서 가져온 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불은 거룩하지 않고 정결하지 않으며 '금지된'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자기 관점, 자기 고집, 자기 사랑이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거짓된 불에 거룩한 분노를 담은 불로 응답하십니다(레10:2).
20. 히브리어로 '에쉬(אש)'는 '불'입니다.
불(אש)은 하나님(א)의 형상(ש)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금지된 하나님(א)의 형상(ש)을 가져옵니다.
이것은 마치 금송아지 신상을 세운 일(출32장)을 상기시켜줍니다.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צוה) 그 길로부터 그들은 급속히 치우쳐서 그들을 위한 송아지 주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고 그것에 제사하며 말한다." (출32:8)
"이제, 나를 내버려 두라. 내가 그들에게 노하여 그들을 끝장낼 것이다." (출32:10)
21. "불(אש)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אכל)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10:2)
히브리어로 '아칼(אכל)'은 '먹다, 삼키다, 소비하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먹는(אכל) 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답과 아비후 사건 뒤에 무엇을 먹도록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의 종류를 정해주십니다.
먹는(אכל) 것은 신성(א)을 적용해서(כ) 훈련하는(ל) 것입니다.
'불(אש)'은 '소멸(אכל)' 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 거룩한(קדש) 곳에서 먹을 때는 죄가 소멸됩니다(אכל).
거룩하지 않은 제사장은 불(אש), 즉 하나님(א)의 형상(ש)이 제사장을 소멸시킵니다(אכל).
하나님(א)의 형상(ש)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불(אש) 가운데 들어있는 손(י), 그 한 남자(איש)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4:24)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히12:29)
22. 히브리어로 '주르(זור)'는 '멀어지다, 멀리하게 되다, 소원하게 하다' 는 뜻도 가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8째날에 어떤 불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오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여전히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는 여전히 내 관점, 내 감정이 앞서게 됨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는 않으신지요?
헤트는 참 빛이신 예슈아가 주신 그대로의 사랑을 내 안에만 두는 것이 아닌 반사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반사합시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훈련될 것입니다.
제사장은 7일간의 위임식을 통하여 훈련되었고 실제로 첫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주님, 사랑과 진리가 에하드 되게 하소서.
이해와 의지가 에하드 되게 하소서
여전히 받기 위한 존재였던 내가 교정되어 이제는 주기 위한 존재와 에하드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