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만이 살 길입니다.(2024년 2월 7일 수요일 설교)
성경 : 이사야 22:1-25(구약 991)
유다 주변 지역에 위치한 열국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던 선지자는 22장에서 갑자기 여호와의 언약의 당사자인 다윗의 집 유다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 관한 경고라고 하지 않고 ‘환상(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예언이 이스라엘의 근접 국가들에 대한 심판 예언이나 원방의 나라들에 대한 심판 예언보다 후에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관심의 주 대상이 유다임을 알게 됩니다.
아모스 선지자도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기록함에 있어서 먼저 이스라엘 주변국들에 대해 언급한 후에 마지막에 이르러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의 구조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집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첫째로 결박당한 예루살렘 주민들(1-4)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국을 향한 심판을 선포하던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교만을 언급하고 멸망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임박한 진노를 짐작하지 못하고 전쟁에 대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2절을 보면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이러한 교만은 급기야 멸망과 수치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사야는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주민의 관심을 끌어 모으며 그 도성의 즐거웠던 과거와 비참한 현재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특히 현재의 비참성은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하였던 유다의 관원들과 주민들이 모두 잡혀 결박당한 채 끌려가는 광경을 통해 묘사되어 있습니다.
3절에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이러한 비참한 광경은 선지자로 하여금 슬퍼 통곡하게 만들었으며 유다의 멸망함에 대해서 어떤 위로로도 그를 위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사야의 눈물 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둘째로 회개하지 않는 유다의 주민들을 보게 됩니다.(5-14) 예루살렘에 대한 적군의 대대적인 공격 준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오직 전쟁 준비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다의 패역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간구하는 유다는 더 큰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키게 됩니다.
앗수르군은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앗수르군의 공격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읍이 파괴될 것을 5절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다는 앗수르와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을 의지해서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기대하시지만 어리석게도 회개하기보다 자신들의 힘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셋째로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5-22) 유다 백성 전체에 대한 심판 예언에 이어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 가득 찬 탐욕적인 지도자 셉나에 대한 개인적인 심판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협상의 책임을 담당하기도 했던 셉나는 탐욕을 일삼는 유다의 지도자로서(국고를 맡은 궁내 대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유다 왕들이 묻혀 있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 위에 자신의 묘를 팠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셉나를 공같이 단단히 말아 싸서 광야에 멀리 던지므로 결국 영광스럽게 타고 다니던 수레와 함께 수치스럽게 죽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셉나를 대신해서 엘리아김을 세워서 셉나의 일을 대신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는 회개에 대한 선포는 두 가지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상황은 유다 민족에 대한 선포이고
두 번째는 셉나에 대한 선포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사야 시대의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회개만이 살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불법과 탈법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메시지를 선포할 때의 상황은 민족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입니다. 특별히 앗수르의 공격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유다 민족이 하나님께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민족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왜 그들이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사야 시대의 유다민족과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영적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유다와 오늘의 우리 한국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공통의 메시지는 바로 너희의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시대의 유다 민족과 오늘 우리 시대의 한국교회를 향해서 주시는 메시지는 불법과 탈법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21-23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불법을 행함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불법이란 율법을 근거로 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을 성도들의 행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그것에 대한 결론적인 이야기로 불법을 행함에 대해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정치인들의 공통점이 바로 불법과 탈법에 대한 문제입니다. 법을 어겨서 땅을 사고 가짜 서류를 만들어서 제출을 하고 그렇게 해서 부동산을 통해서 부를 축척한다거나 법을 어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 일들이 드러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 땅 값이 올라서 부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대형교회 중에서 건축을 하면서 적당히 불법을 저질러서 법원에서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지만 원상복구하지 않고 버티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불법을 행하고 축복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 부를 축척했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불법과 탈법이 난무한 집단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불법과 탈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비판하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상황에 된다면 우리도 똑같이 적당히 법을 어기고 불법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이 비판을 하면 억울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이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비단 우리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도 그런 불법과 탈법이 자행되고 있었고 그것이 곧 국가의 멸망의 원인 중에 하나가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유다의 죄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민족이 그리고 한국의 교회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했다면 그것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거대한 이익 단체가 되어서 모든 것을 교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 한국의 종교인구 1위가 되었다고 자랑을 하면서 성도들을 교회의 이익을 위한 집회에 동원을 하거나 정치적인 일에 동원을 하면서 동원된 사람들의 숫자로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재개발 지역에 있는 교회가 성도들을 동원해서 재개발이 지연되게 만들면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엄청난 액수를 받아내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그런 엄청는 액수를 받아내고 공사를 지연시켜서 건축비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어서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분은 성도들을 정치집회에 동원을 해서 한국교회를 정치집단으로 비춰지게 만들었습니다. 한쪽에선 보수 정치 집회에 성도들을 동원하고 한편에서 진보 정치 집회에 진보적인 교회와 성도들이 동원이 되고, 목회자들이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당신들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렇게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할 일은 정치적인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고 나와 다른 정치적인 견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데 선거철이 되면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교회는 정치적으로 중립입니다. 교회에서는 누구를 지지하자 누구를 반대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교회에서는 기도하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얼마나 진지하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는지를 돌아보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눈물로 나의 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던 연약한 믿음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사야가 예언할 때 예루살렘을 앗수르에 위해 둘러 싸여 있는 상황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과 애굽의 도움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선지자의 경고를 비웃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선지자가 회개하라고 촉구하니까 13절에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멸망 예언을 듣고 회개하라고 하자 그들은 세상이 멸망해도 좋다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하면서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내 힘과 의지와 생각과 세상과 사람들을 의지하려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위기에 처한 민족에게 회개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회개만이 살길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일입니다.
이 민족이 사는 길은 먼저 위정자들과 교회와 성도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는 길도 진정한 회개이며, 성도가 사는 길도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먼저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이 임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며 우리의 회개 속에 치유와 회복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치유와 회복의 은총과 함께 넘치도록 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