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1
점심 식사 후 아리가 유이리와 예진을 안내한 곳은 도시의 밖에 있는 허름한 판자마을이었다. 꾀죄죄한 옷에 때국물이 흐르는 비쩍 마른 아이들이 아리가 도착하자 반가이 달려들었다. 아리는 아이들이 달라붙어 고급 옷이 더러워지던 말든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었다.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인사를 한 주아리는 독고평에게 눈길을 보냈다. 독고평은 등 뒤에 지고 온 지게에서 보자기에 싸여 있는 것들을 한 짐 내려놓았다. 아이들은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보자기 꾸러미에 아귀마냥 달려들었다. 평소보다 더 많고, 고급인 음식에 아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송아 연이는 좀 어떠니?”
“거게……. 어저니 쩝쩝, 꿀꺽. 차도가 없어요. 정주님이 보내주신 의원들도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어요.”
송이라 불린 소년은 입안 가득 음식을 문채 주아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아리는 소년의 대답에 안타까운 표정이 일었다. 유이리는 그 표정에서 주아리가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눈치 챘다.
“연이라는 아이가 누구죠? 어디가 아픈가요?”
유이리의 말에 어두운 아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다음의 담화정을 이끌 아이로 마음에 두고 있는 아이야. 어디선가 몹쓸 병에 걸려왔는데, 의원들도 도저히 그 원인을 알 수 없대. 다만 산짐승에 당해서 그런 것으로 추측만 할뿐이지.”
“그럼 언니가 말한 부탁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군요.”
“그래. 처음 만난 사이에 염치가 없지만, 부탁해도 괜찮을까?”
아리의 표정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어떤 병인지 전염성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병을 남궁세가의 귀한 집 아가씨에게 봐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이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응?”
“언니는 담화정의 주인으로써 많은 돈을 벌고 계세요. 이 아이들을 돕고자 한다면 더 편한 방법도 있을 텐데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는 거죠? 거기다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아이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글쎄. 내가 이 아이들을 돕고자 한다면 간단하지. 돈을 바리바리 싸 안겨줄 수도 있고, 담화정에 고용을 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그러나 그건 이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고 생각을 했어.”
“어째서요?”
“이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뛰어난 강점은 끈질긴 생명력과 자립의지야. 내가 이 아이들을 돕는 것은 쉬워. 그러나 그 순간 이 아이들의 강점은 사라지게 돼. 내가 무슨 일이 생기는 순간 이 아이들은 생활력을 상실하게 되지.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기도 해. 단지 나는 그 아이가 내 후계자였으면 하는 것일 뿐이지, 그 아이의 미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열어 나가는 것이야. 단지 이 아이들을 담화정의 점소이와 시비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아.”
“아리 언니는 이 아이들을 그냥 이대로 묵히지 않으세요. 무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중소 방파나 군부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고 장사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각 상단에 소개를 해 주는 등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요. 단 자신의 의지를 보이는 아이들에게 만요.”
아리의 대답과 예진의 보충설명에 유이리는 만족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네요. 송 이라고 했니? 누나를 연이에게 좀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유이리의 부탁에 송이라는 소년은 먹는 것을 멈추고 아리를 바라보았다. 아리는 그런 송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송은 아쉬운 듯 아리가 싸온 요리에 시선을 주었으나 이내 유이리를 안내했다. 유이리는 그런 송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송이 유이리를 안내한곳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허름한 집이었다. 아리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밤이슬을 피할 곳이 있는 아이들은 그래도 행복한 것이라 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썩는 내와 비린내가 연수합공을 펼치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에 유이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인상을 폈다. 휴렌에서도 이보다 더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던 자신이다. 그런데 고작 이런 정도로 평정을 잃다니.
반성을 하는 와중에서도 위니아가 그리워 졌다. 고귀하고 순결한 아름다운 숲의 딸.
그녀의 친구인 실프와 운디네라면 이런 악취를 청소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없는 지금은 참는 수밖에 없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시체가 썩는 냄새를 풍기던 때를 생각하면 이런 것은 악취도 아니었다. 유이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한 소녀가 누워 있었다. 10살이 되었을까.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소녀였다. 다만 씻지 못해 지저분하다는 것과 움직이지 못해 대소변을 해결하지 못해 온몸에 악취가 흐를 뿐이었다. 유이리는 소녀가 누워있는 침상 옆에 쪼그려 앉았다.
“연이라고 했니? 그래 어디가 아파?”
“...........”
소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송은 유이리의 옷소매를 잡아 당겼다.
“연이는 말을 못해요. 그전부터도 말수가 적었지만, 저 상처를 입어와서부터는 한마디 말도 안하고 있어요.”
“그래? 그럼 그 상처는 어디니?”
“다리요.”
송의 이야기를 들은 유이리는 다시 시선을 연에게 주었다.
“언니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능력 있는 의원이란다. 언니가 네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게 이 언니에게 상처를 보여주겠니?”
“.................”
연은 한동안 유이리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이불을 걷었다. 이불속에서는 썩어 들어가고 있는 다리가 드러났다. 소녀의 상처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신의 권능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여,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유이리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 상처 언제부터 이랬니?”
“처음왔을때는 그냥 긁힌 상처였어요. 그런데 상처는 아물지 않고 점점 심각해 졌어요. 정주님이 급창약을 보내 주셔서 발라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의원님도 오셨었지만 도저히 치료할 수 없다 하셨어요.”
송의 말에 유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송의 설명에 의하면 단순한 상처였다는 소리다. 그럼 상처가 이렇게 심각해진다는 것은 유이리로써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곳의 급창약이 포션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고는 하나 나름대로 뛰어난 약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급창약을 발랐음에도 차도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그저 단순한 긁힌 상처가 아니라는 소리다.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니?”
유이리는 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유이리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왜 이런 상처를 입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나, 상대가 말을 못하니 방법이 없었다. 유이리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포션과 성수를 한 병씩 꺼냈다. 일단은 상처 주위에 앉은 고름을 씻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성수는 여러 가지 용도가 있지만 포션과 마찬가지로 소독제로써의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이런 곪은 상처를 씻어내는 데는 오히려 포션보다 더 효과가 좋다. 다만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는 것만 뺀다면. 유이리는 성수의 뚜껑을 따며 연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걸로 네 상처에 있는 고름을 씻어 낼 거야. 대신 좀 아프거든. 참을 수 있지?”
연은 유이리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유이리는 연의 다리에 성수를 뿌렸다. 성수가 연의 다리에 닿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고름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연은 지독한 고통에 괴로워했다. 성수를 부은 유이리조차 눈앞에 벌어지는 사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상처에 소독약을 부으면 기포가 생긴다. 그러나 지금의 기포는 단순한 기포가 아니다. 상처가 씻겨짐에 따라 연보라색의 연기가 피어났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고름과 성수가 만나 발생하는 기포가 집안에 가득 차 올랐다. 유이리는 서둘러 연을 안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서니 연과 송은 연기에 질식했는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독?’
유이리는 연과 송을 자리에 앉게 한 뒤, 정신을 집중했다.
“전능하신 마제린이여, 당신의 권능을 내려 두 어린 양에게 안정된 호흡의 권리를 누리게 하소서. 독 중화(Neutralize Poison).”
유이리의 손에서 붉게 빛나던 빛이 연과 송의 몸으로 스며들자 파랗게 질려있던 연과 송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만 한동안 호흡이 막혔던 후유증에 계속 기침을 하였다.
“저게 뭐래요?”
“나도 모르겠다. 상처를 뒤덮고 있는 고름을 씻어내기 위해 약을 부었더니 저렇게 되더구나.”
예진의 물음에 유이리는 간단히 답했다. 사실 그 이상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독고평은 아니었나 보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독? 하지만 뭔가가 틀린데.”
독고평은 혼자 말이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큰 목소리에 모두들 독고평을 돌아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독고평은 미소를 머금었다.
“총관 그게 무슨 말이지요? 시독이라니요.”
“그게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시독은 아시는지요.”
“알다마다요. 시체가 썩어 문드러질 때 채집된 물질에 특수한 약품을 처리함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으로 그 악독함과 살상력은 중원의 모든 독중에 일이 위를 다투는 극독이지 않습니까.”
독고평의 말에 의구심을 느낀 아리였으나 일단 아는 대로 대답을 했다. 아리의 말을 들은 독고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아시고 계시는 군요. 방금 저 연기에서 그 시독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저것이 시독이었단 말이에요?”
독고평의 말에 예진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독은 아닙니다. 시독이었다면 유이리님과 두 아이가 살아 나왔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저도 그것이 이상합니다. 시독이라 생각될 정도의 느낌을 받았고, 그 이상으로 사악한 기를 느꼈으나 현재는 사기는 모두 사라진 상태입니다.”
“시독으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한 기분이 들었지만, 시독은 아니었다?”
“그런 것이지요.”
아리와 독고평, 예진의 대화 중에도 유이리는 연의 상처를 돌보기에 바빴다. 다행히 성수가 상처의 고름을 모두 씻어 냈는지 연의 다리는 매끈한 피부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 두께는 정상적인 다리에 비해 반도 되지 않았다. 고름이 뒤덮지 않던 부분은 옆의 다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고름이 뒤덮고 있던 부분은 그 두께가 반으로 줄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였다.
“다리는 움직일 수 있니?”
유이리의 물음에 연은 조금이나마 다리와 발목을 움직임으로써 답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근육이나 힘줄이 약해지기는 했어도 끊어진 곳 없이 모두 정상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다리에는 전에 입었다는 상처가 가늘게 자리하고 있었다. 상처는 지금도 살을 찢어 벌린 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유이리는 상처에 손을 대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전능하신 마제린이여. 당신의 딸이 구합니다. 당신의 자상한 손길로 상처받은 이를 보다듬어 주소서. 큐어 운즈(Cure Wounds).”
유이리의 손은 신비로운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 광경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유이리는 연의 상처에 손을 가져갔다. 연은 빛을 뿜는 유이리의 손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엄습하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유이리 역시 당황했다.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움에 정신이 흐트러지려 했지만 다시금 정신력을 집중했다. 분명히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은 신성력이고, 이 신성력의 흐름은 상처를 치료할 때의 흐름이었다. 수백, 아니 수천 번을 시행한 힘이다. 신성력의 흐름을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절대 신성마법이 잘못 시전된 것이 아니다. 혹시나 하는 기분에 유이리는 현재 시전 되는 신성력을 거두어들이고 다른 주문을 준비했다.
“전능하신 마제린이여 당신의 권능에 구하오니 당신의 딸에게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를 부여하소서. 질병의 치유(Cure Disease).”
유이리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란 빛이 연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다시 상처치유의 권능을 행사했다. 마제린의 이름을 되새기며 정신을 집중하던 유이리는 안도했다. 상처가 점점 아물어 가는 것이 보였다. 연 역시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표정이 점점 안정되었다.
“후~~”
유이리는 과도한 신성력의 사용으로 피곤함이 느껴졌다. 연의 상처는 모두 아문 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평상시의 몇 배나 되는 신성력이 사용되었는데 흔적이 있으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얇아진 다리는 그대로였다. 유이리는 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참아 주었구나. 수고했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언니가 해줄 수 있는 여기까지란다. 이후에는 다시 운동을 통해 다리의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지팡이에 의지를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도 연이 정도의 정신력을 가졌다면 금세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유이리의 말에 연은 자신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기묘한 느낌에 이질감을 느꼈지만 다시 원래의 다리로 돌아왔음이 기뻤다. 온몸을 엄습하던 죽음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연은 자신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유이리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에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분위기까지. 이처럼 고귀한 분이 자신을 살려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들은 버림받은 존재였다.
언제나 지저분한 모습에 모두들 가까이 하기를 꺼렸고, 다리에 고름이 돋을 때는 의원마저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었던 주아리뿐이었다. 그러나 저 고귀한 아가씨는 달랐다. 자신의 상처에 거리낌 없이 손을 대었고, 숨쉬기 어려운 순간에도 자신을 안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연은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유이리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양손을 집고,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드디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연의 행동에 유이리는 당황했다. 유이리는 허둥대며 연을 끓어 일으켰다. 그러나 연은 다시 머리를 땅에 대었다. 당황해 하는 유이리에게 아리가 설명을 해주었다.
“저 행동은 연이 자신의 목숨을 이리 동생에게 맡기겠다는 뜻이야.”
“예?”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대가로 그 목숨을 이리 동생에게 바치겠다는 뜻이지.”
“말도 안 돼요. 그런 대가를 바라고 도와준 것이 아니에요.”
유이리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유이리의 거부에 연의 안색은 어두워 졌다. 이를 눈치 챈 아리는 강수를 내놓았다.
“그러나 저 아이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어. 만일 동생이 받지를 않으면 앞으로 삶의 의지를 잃게 될 거야.”
“하지만.”
아리의 말에 유이리는 망설여졌다. 자신이 거부하면 연은 죽음을 택할 것이다. 아리는 빙글 돌려 말했지만 결국은 같은 뜻이다.
“어차피 동생의 시중을 들 아이도 필요하지 않아? 저 아이 저래보여도 갖은 교육을 다 통과한 인재야. 내 후계자로 낙점할 정도라 했었잖아?”
“그럼 언니가.”
유이리의 말에 아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이 택한 길을 존중해 주었어. 그리고 매우 유감스럽고, 섭섭하기는 하지만 오늘 연이 택한 것은 바로, 이리 동생 너야.”
“후우~~”
유이리는 한숨을 내쉬며 연 앞에 다시 쪼그려 앉았다. 연은 기대감에 가득한 눈으로 유이리를 바라보았다. 유이리는 연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귀여운 아이다. 동글동글한 눈동자에 잘 먹지 못해 마르기는 했지만 고운 얼굴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엿보게 하였다.
“미안해. 네 목숨은 받지 못하겠어.”
연의 얼굴은 실망감에 가득 찼다. 유이리는 그런 연의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대신 내 동생이 되어 주겠니? 나도 어머니-루시아 대사제-도 아버지-로이 신관전사장-도 모두 만날 수 없게 되어, 너와 같이 혼자가 되었단다. 그래 줄래?”
연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았던가. 지금은 동생이 되기로 했다. 유이리의 곁에 있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언젠가, 자신의 천한 목숨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내놓을 것을 다짐했다.
“언니 괜찮겠어요?”
예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물론. 우선은 남궁가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겠지만, 될 거야. 아마도.”
유이리의 낙천적인 생각에 예진은 할 말을 잃었다. 유이리의 동생이 된다는 것은 남궁세가의 식구가 된다는 뜻이다. 과연 남궁상욱이 허락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상대가 유이리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아니 가능할 것이다.
“그럴 거예요. 후훗. 그럼 나에게도 동생이 생긴 것이네. 잘 부탁해. 동생.”
예진역시 연에게 친숙하게 대했다. 아리와 독고평은 연을 바라보며 만족한 표정을 만면에 지었다.
“그럼 언니. 연이는 제가 대리고 가는 것으로 하겠어요.”
“그래. 잘 부탁해.”
유이리는 연의 손을 잡았다. 연은 자신의 손을 타고 오는 따뜻함을 느꼈다. 이 따뜻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마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