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대회(英雄大會)-1,2
①
"호호호호호......! 과연 불인검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더니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감히 이곳까지 겁없이 찾아오다니 말이에요."
염화빈은 눈꼬리에 염기를 가득 실은 채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녀
는 평소보다 더욱 요염한 옷을 입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입고 있
는 옷은 속살이 은은히 비쳐 보이는 망사의였다.
그로인해 그녀가 웃을 때마다 망사를 뚫고 나올 듯이 풍만한 젖가
슴이 출렁이고 있었다.
홍선루의 객청(客廳)에는 온통 살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염화
빈의 뒤에는 열 명의 시녀들이 서 있었고, 대청의 둘레에는 삼십
여 명의 천사교 고수들이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장무진은 추호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가슴을 편 채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불초는 귀교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전할 것이 있어 온 것입니
다. 부인께서는 이 점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정중히 포권을 했다. 그는 다만 두 사람만을 대동하고 홍선
루로 찾아왔다. 그의 뒤에는 주작단주 백문혜와 그녀의 시종인 영
아가 서 있었다.
실로 뜻밖의 방문이었다.
염화빈은 처음 명첩을 받았을 때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하니
기라성같은 천사교의 고수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홍선루에 고작 이
인만을 대동하고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호호호! 그래, 무슨 말을 전하러 왔나요? 장무진 대협?"
염화빈이 요란하게 허리를 흔들며 묻자 장무진은 약간 당혹한 표
정을 지었다. 터질 듯이 풍만한 젖가슴이 눈 앞에서 흔들렸기 때
문이다.
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귀교와 중원무림은 여러 가지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는 사이요. 더욱이 본인은 귀교가 각파에서 잃어버린 보물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소이다. 차제에 그간의 오해를 풀고
물건을 돌려받고자 해서 찾아왔소이다."
염화빈은 흥, 하고 코웃음치며 말했다.
"설마 말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겠지요?"
장무진은 담담히 말했다.
"길이 다르면 함께 가지 않는다고 했소. 물론 우리는 무예를 익힌
사람들이니 상호간에 무학을 비교하여 인증함으로써 해결을 하는
것이 오랜 관례라는 것 쯤은 알고 있소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양민이 사는 시진의 한복판이오. 이곳에서 도검을 부딪친
다면 백성들이 놀랄 뿐 아니라 관가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오. 또 그 와중에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면 어찌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의 말은 광명정대했다. 염화빈은 허리를 묘하게 비틀며 말했다.
"호호! 꽤나 군자인 척 하는군요? 그래서요?"
장무진은 낭랑하게 말했다.
"일시와 장소를 정하여 무림인의 방법으로 해결을 하자는 것이 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염화빈은 눈에 간교한 빛을 띄었다. 그녀는 장무진을 바라보며 고
혹적인 웃음을 흘렸다.
"호호호호! 저는 정말 몰랐군요. 대명이 쟁쟁한 불인검이 이렇게
영준하고 멋진 분이신 줄을 말이에요. 이럴 줄 알았다면 우리는
보다 가까운 사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예요."
그녀는 허리를 좌우로 흔들며 다가왔다.
"......!"
장무진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설마하니 상대가
이렇게 노골적인 색녀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이때였다.
"흥! 더러운 요부 같으니라고!"
문득 싸늘한 콧방귀가 들렸다. 바로 장무진의 뒤 쪽에 서 있던 백
문혜가 외친 것이었다. 그녀는 염화빈의 행동에 구역질을 느껴 빈
정거린 것이었다.
염화빈은 백문혜를 보고 입가에 더욱 요사스런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이제 보니 장대협의 뒤에는 제법 쓸만한 미녀가 있었군
요. 호호, 그러고 보면 장대협의 풍류 취미도 대단한 것 같군요?"
그녀의 제멋대로 지껄이는 말에 장무진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
러나 백문혜는 얼굴은 완전히 새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그녀가 누
구인가? 명가의 후예로 머리에 털이 난 이래로 듣드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마터면 그녀는 발작할 뻔 했다. 그러나 곧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니야, 저 요녀가 내 화를 돋구는 것은 구실을 찾으려는 교활한
속셈이야. 흐흥! 누가 넘어갈 줄 알고?'
사자(使者)의 자격으로 왔다면 온 이상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이 원
칙이었다. 그러나 염화빈은 교활한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 삼 인이 홍선루로 찾아온 것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어떻게든 상대를 격발시켜 먼저 손을 쓰
게 한 다음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손 하나 대지 않고
승기를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장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도 염화빈의 계략을 눈치챈
것이었다.
그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사실 이렇게 될 것을 구천서는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 전 신신당부했었다.
......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화를 내시면 안됩니다. 그 요녀에게
구실을 붙여주면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장무진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정중히 말했다.
"저 분 소저는 옥환맹의 주작단주이신 백여협이시오. 부인께서는
오해마시기를......."
"호호호! 남자와 여자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인데 굳이 감출 필요가
있나요? 장대협은 준수하고 저 백낭자는 꽃같이 아름다우니 누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군요."
장무진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염화빈에게서 심한 말이 나올까봐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불초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위해
귀교와의 영웅대회를 건의하는 바입니다."
염화빈의 눈썹이 상큼 치켜 올라갔다.
"영웅대회?"
장무진은 가슴을 펴며 당당히 말했다.
"일시와 장소는 부인께서 마음대로 정하셔도 좋습니다."
염화빈의 눈에 한 가닥 간특한 빛이 지나갔다.
"자신이 있다는 건가요?"
"불초는 다만 배운 바를 이행할 뿐이오."
"호호호호! 그것 참 이상한 말이군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배운 것
이 보잘 것이 없단 말인가요? 흐흥! 사마외도의 무학이야 별 볼일
없단 뜻이겠지요?"
장무진은 엄숙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소이다. 부인께서는 현명하신 분이니 이 제
안이 공평하다는 것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염화빈은 잠시 염두를 굴렸다.
'이 어린 놈은 생각보다 침착하구나. 뭐라고 격동해도 요지부동이
기만 하구나.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이 자들은 묶어 두어야만 해.'
그녀는 시선을 들어 장무진의 뒤에 우뚝 서 있는 거구의 사나이를
보았다. 그는 구 척에 달하는 거대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를
보자 염화빈의 뇌리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쨌든 손님이니 대접은 해야겠지요. 얘들아, 귀빈을 모실 준비
를 해라!"
장무진은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올시다. 불초는 폐를 끼칠 생각이 없습니다."
염화빈은 눈웃음 쳤다.
"호호홋! 무슨 말씀을? 아무리 사마외도라 해도 예의마저 무시하
진 않아요. 손님을 박대해서야 쓰나요? 더욱이 장대협같은 영웅호
걸을 만났으니 술 한 잔을 대접해야 이 몸의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요."
장무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소생은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호호! 그거 참 아쉽군요. 하지만 설마 차도 못마시는 건 아니겠
지요?"
장무진은 한 시라도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으나 일
이 이쯤 되었으니 더 이상 사양할 수도 없었다.
"그럼 부인께 잠시 폐를......."
②
일행은 염화빈의 안내로 내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염화빈은 주석에 앉고 객석의 상좌에는 장무진이 앉았다. 그의 곁
에는 백문혜가 자리했으며 영아는 자리를 사양한 채 백문혜의 뒤
에 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차가 나왔다. 차를 날라온 것은 염화빈의 시녀였다.
장무진은 그녀의 얼굴이 보기 드문 미인일 뿐더러 눈빛이 맑은 것
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이 여인이 바로 천기가 말하던 사향 소저가 아닐까?'
그의 예측은 맞았다. 시녀는 바로 옥사향이었다.
한편 백문혜도 옥사향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경이로운 느
낌이 들었다.
'정말 아름답구나. 유가가의 옛 여인이 바로 이 여인이 아닐까?'
이때 옥사향은 찻잔을 내려 놓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짧은 순간에
재빨리 손가락으로 탁자에 글씨를 썼다.
그것은 단 한 글자였다.
- 동(東).
장무진과 백문혜는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글자가 무엇을 뜻하
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옥사향은 고개를 숙인 후 뒤로 물러나
고 있었다.
"호호호, 독은 없으니 안심하고 드세요."
염화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사가 실종된 이후로 사실 홍선
루에서는 독의 전문가가 없었다.
한편 장무진은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독의 대가인
영아가 버티고 있는 한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부인께서 소인배나 하는 그런 짓은 결코 하지 않으실 줄로 믿고
있습니다."
염화빈은 내심 코웃음치고 있었다.
'흥!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 애송이야!'
장무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담담히 말했다.
"불초는 영웅대회를 통해 귀교와 친교를 맺은 후 한 가지 부탁을
드릴 생각입니다."
"무슨 부탁인가요?"
"그건 차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장무진의 얼굴에는 한 가득 음울한 기색이 어렸다.
그는 실종된 사부 옥향진인의 행방을 물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는 차를 마신 후 몸을 일으키며 정중히 읍했다.
"차는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부인의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호호호호! 뭐가 그리 급한가요? 설마 이곳에 올 용기는 있어도
잠시 머무르며 환담을 나눌 용기는 없단 말인가요?"
장무진은 손을 마주 잡았다.
"부인의 환대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건 다음 기회에......"
그러나 염화빈은 들은 척도 않고 손을 들며 말했다.
"귀빈들께서 지루해 하신다. 누구 즐겁게 해 드릴 아이가 없느냐?"
그러자 즉시 우렁찬 응답이 들렸다.
"하하하핫!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소인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손
님들에게 잠시 실례를 범하겠습니다."
고막을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과 함께 마루가 쿵쿵, 울리며 한 명
의 거한이 내전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가 나타나자 내전이 비좁아
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타난 사람은 벽안을 가진 포국인(葡國:페르시아인)이었다. 그는
키가 구 척에 머리가 노랗고, 가슴이 곰처럼 두터운 거인이었다.
영아는 포국인을 보고 빗자루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도 거인
축에 들었다. 그러나 키는 비슷해도 몸무게는 거의 두 배나 더 될
듯 싶었다.
"호호홋! 넌 누구지?"
염화빈은 포국거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거인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헤헤헤! 소인은 마굿간의 하인입죠!"
"그런데 넌 뭘 보여주려고 나왔느냐?"
"소인이 다른 재주는 없으나 힘 하나 만큼은 자신이 있습죠."
"호호호, 여기 계신 귀빈들은 무림의 기인이신데 너의 그런 재주
가 어디 눈에 차겠느냐?"
장무진 일행은 그들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는
절대로 마굿간의 하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자는 필시 외문무공을 소유한 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네 뜻이 가상하구나, 그렇다면 어디 재주를 보여 봐라."
"옛! 명을 받들겠습니다."
거한은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대청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벽안을
희번뜩이며 주위를 둘러 보더니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석등(石
燈)으로 다가갔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염화
빈마저 호기심에 찬 표정이었다.
"엽!"
거한은 허리에 불끈 힘을 주더니 단번에 무게가 오백 근은 실히
나갈 듯한 석등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것도 마치 지푸라기를 드
는 듯이 가뿐한 모습이었다.
"와아......!"
그 광경에 대청 아래 있던 천사교의 인물들은 함성을 질렀다. 거
한은 이번에는 석등을 한 손으로 들어 머리 위로 번쩍 올려 보였
다. 그러나 염화빈은 깔깔거렸다.
"네 힘이 대단하다마는 그 정도 가지고는 귀빈들이 만족하지 않을
것 같구나."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자는 석등을 공중으로 던졌다.
석등이 오 장 가량이나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번개같이 자리를 옮기더니 맞은 편에 있는 나머지
석등마저 한 손으로 들어 공중으로 휙 던지는 것이 아닌가?
두 개의 석등이 공중에서 교차되며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떨어
졌다. 그는 석등이 내려오면 다시 받아 던지고, 또 하나가 내려오
면 다시 받아 던졌다. 석등은 정확히 그의 손에 떨어졌다가 점점
높이 올라갔다.
"와아아......!"
함성이 더욱 커졌다. 거한은 타고난 괴력의 소유자였다. 보통 사
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가볍게 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가볍게 받았다가 내던지는 거대한 석등이 흡사 공기돌 처럼
보였다. 그 자는 그것도 싫증이 났는지 이번에는 석등보다 훨씬
큰 석사자(石獅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으얍!"
천둥같은 고함과 함께 석사자가 던져졌다. 휘잉! 하는 돌풍이 일
어나며 석사자마저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 개의 거대한 돌덩이가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마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현신한 것 같았다.
그가 시전해 보인 이러한 힘은 설사 절정의 내력을 지닌 고수라해
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선천적인 근력의 소유자가 아
니고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쿵!
마침내 거한은 석등을 내려 놓았다. 그러나 석사자만은 내려놓지
않은 채 시선을 돌려 대청 위를 바라보았다. 그의 벽안은 곧장 영
아에게도 향해졌다. 그러자 염화빈이 교태롭게 말했다.
"호호......! 네가 저 분 손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은 게로구나,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요. 마님."
장무진은 흠칫했다. 그는 상대가 어떤 식으로든지 시비를 걸어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다.
무공이라면 몰라도 힘 자랑에는 그도 별로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상대방은 가히 천부적인 역사였다.
이때 영아가 앞으로 나서더니 백문혜에게 무릎을 꿇었다.
"소인이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아가씨?"
백문혜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염화빈이 물었다.
"저 분 거한은 누구인가요? 아가씨?"
백문혜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영아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소인은 아가씨의 신발 끈을 매는 하인입니다요."
영아는 자신의 신분을 최대한으로 낮추어 설사 패한다 해도 누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즉시 밖으로 걸어내려
갔다.
거한은 아직도 석사자를 들고 있었다. 그의 벽안이 영아를 경시하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두 거한은 정말 세상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거인이었다. 보통 사
람은 그들의 근처에 서면 난장이로 보일 정도였다.
마침내 영아는 포국인 앞에 섰다.
"으헤헤헤헷!"
거한은 갑자기 괴소를 터뜨리며 석사자를 냅다 집어 던졌다.
"아니?"
장무진과 백문혜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발했다. 석사자의 무
게만 해도 천 근이 넘는데 집어 던지는 힘까지 합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무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아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태연히 우뚝 선 채 두 손으로
석사자를 받았다. 그는 석사자를 가슴에 안고 말했다.
"형씨의 힘은 아우가 도저히 따를 수 없소이다. 아우는 힘이 부족
하니 패배를 자인하겠소이다."
그는 석사자를 내려 놓았다. 그러나 그대로 내려놓는 것이 아니었
다. 그는 땅에 놓은 후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석사자가
조금씩 땅 속으로 박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쿠쿠쿵.......
흙먼지가 자욱히 피어 오르며 석사자는 서서히 땅 속으로 밀려 들
어갔다. 잠시 후에는 석사자가 지면으로 완전히 꺼져 들어가 버렸
다.
그의 이런 힘은 공중으로 던지는 것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더욱 어려운 일일지도 몰랐다.
"......!"
포국거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안면을 씰룩이더니 석등 하
나를 번쩍 집어 들고 다가왔다. 영아는 그저 그를 바라볼 뿐이었
다.
거한은 석등을 기울여 영아에게 한쪽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 힘을 겨루어 보자!"
얼떨결에 석등의 한 쪽을 잡은 영아는 곧 무지막지한 힘이 밀려오
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엄청난 힘이었으므로 그는 버티지 못하고
연달아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밀려나갔다.
거한은 계속 힘주어 밀었다. 영아는 계속 밀려나가며 힘을 주어
보았으나 일단 기선이 제압당해 사정없이 뒤로 밀려 나갔다.
이런 힘겨룸은 기선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그는 미처 대
비를 못했으므로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장무진과 백문혜는 손에 땀을 쥐었다. 연신 뒷걸음질 치는 영아의
등이 건물 벽에 닿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패배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포국 거한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밀어 부치고 있었다.
영아의 얼굴에 심줄이 툭툭 돋아났다. 그는 안간 힘을 쓰고 있었
으나 역부족인 듯 더욱 혈관이 돋아나고 있었다.
영아의 힘도 천부적인 신력이었으나 포국인은 천축에서 유래한 외
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영아는 만검장에서 검군 백시량으
로부터 무공을 전수받았다. 그것은 외공이 아니라 내공 방면이었
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외공 방면으로만 대결한다면 그는 포국 거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와르르르!
마침내 벽이 허물어지며 그는 벽 속으로 처박혀 버렸다.
"영아!"
백문혜가 벌떡 일어나며 부르짖었다. 그녀는 영아의 가슴에 석등
의 뾰족한 부분이 박히면서 선혈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던 것
이다.
"멈추지 못하겠느냐!"
마침내 백문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날카로운 교성과 함께 신형
을 날렸다. 그러나 이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황색 인영이 그
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헤헤헤! 솜털이 보송보송한 귀여운 아가씨야. 일대 일의 정당한
대결인데 어째서 끼어들려는 거냐?"
그 자는 황색 가사를 입은 라마승이었다. 그의 용모는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코는 한껏 위로 치켜 올라간 들창코였고, 움푹 꺼진
눈은 실처럼 가늘었는데 쉴 새없이 음탕한 빛을 번들거리며 백문
혜의 아래 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백문혜는 다급했다. 그녀는 다급한 시선으로 영아를 바라 보았다.
막 포국 거인이 벽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영아를 향해 석사자를
번쩍 들어 내리치려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되면 영아 아니라 영아의 할아버지라도 피떡이 될 것이 틀
림 없었다.
이때 장무진은 주변에 살기가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청을 둘러
싸고 있는 자들은 서서히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구실을 잡고야 말았구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그도 일전을 각오하고 공력을 일으
킬 준비를 했다. 한바탕의 악전(惡戰)을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
다.
만일 백문혜가 라마승에게 출수하기만 하면 그것인 신호가 되어
천사교의 무리들이 일제히 공격을 펼칠 것이 틀림 없었다.
한편 백문혜는 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섬섬옥수를 치켜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돌연 귀청을 뚫는 것 같은 처참한 비명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중인들은 대경하여 고개를 돌려 보았다. 순간 그들은 한결같이 아
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영아가 벽 속에서 나와 있었다. 그는 석등의 한쪽을 잡고
있었는데 다른 한쪽은 포국 거한의 복부를 뚫고 들어가 있었다.
"끄으으......."
포국 거한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석등을 안은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벽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자
신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고 있는 석사자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이...... 죽일 놈......."
그는 석사자를 영아에게 집어 던지려 했다. 그러나 영아는 이제
지푸라기 하나 들 힘도 없었다. 그는 그저 멍청히 바라만 볼 뿐이
었다.
그런데 막 석사자를 던지려던 거한이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쿠웅!
석사자는 그대로 그의 머리를 짓눌러버리고 말았다. 실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포국 거한은 석사자에 스스로 눌려 피떡이 되고만 것
이었다.
"으으... 저럴 수가!"
천사교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때 백문혜가 빙글 돌아서며 염화빈을 향해 말했다.
"정말 안됐군요. 하긴 힘을 겨루다 보면 왕왕 이런 불상사는 일어
나기는 하죠."
그녀는 잽싸게 선수를 쳤다. 과연 염화빈은 안색이 몇 차례 변했
을 뿐, 차마 발작을 하지는 못했다. 잠시 후 영아와 백문혜는 아
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