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제나 누구든지 무병장수를 소망하며 살아 왔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6.77세였고 양반의 평균 수명은 54세였으며 평민은 35세, 내시 71세, 스님은 73세를 기록했다.
내시나 스님들이 장수했던 비결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단다.
반대로 조선의 대부분 왕들과 고관대작들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 정쟁속에서 왕은 자리를 지키고 신하들은 높은 벼슬에 오르기 위한 몸부림으로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을 해치는 큰 요인이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조혼 보다는 만혼이나 귀양살이를 다녀온 자들이 더 장수했음이 나타난다.
소년 등과 보다는 늦은 나이에 급제해 벼슬에 오른 경우가 더 오래 살았다. 일찍 벼슬에 올라 기름진 진수성찬의 잦은 술자리가 오히려 몸을 해쳤던것 같다.
그 한 예가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음악과 풍류로 마음을 다스렸다. 몸은 유배지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한가로운 자연 속에서 오우가를 부르며 대대로 내려온 비자나무 열매로 만든 강정을 즐겨 85세까지 건강을 지켰고 숙종때 우의정을 지낸, 본관이 김해인 김우항은 48세 늦은 나이에 등과해 여색을 멀리하고 검약해 75세 까지 잔병도 없이 수를 누렸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조선 왕 27명의 사망 원인은 운동부족, 업무 과로, 후궁들로 인한 과색, 1일 5식의 영양과다에서 발병된, 당뇨병, 울화병, 불면증의 성인병과 등창, 피부병, 성병과 같은 성인성 질환에다 폐결핵, 폐렴과 같은 선천성 유전병이 사망의 주요원인이었다.
여기에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인 정치적 스트레스도 크게 수명에 작용했고 타고난 유전자도 한 몫 했다. 조선의 전기보다 후기에는 왕의 수명이 더 짧은데 후기로 갈수록 서인 노론의 일당독재로 왕권이 취약해지고 신권이 강해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왕들의 사망 원인에 대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의 기록을 보면 사망 원인을 유전자보다는 과음, 과식, 과색 등 성인성 질환을 꼽았다. 50을 못넘긴 왕들은 대부분 무절제와 운동 부족이 사망의 큰 원인이었다.
영조 이금처럼 장수한 왕들은 꾸준한 운동과 1식 3찬의 소식과 채식 위주의 음식을 섭취했으나 세종 이도나 효종은 고기를 즐겼던 육식으로 장수하지 못했다 한다. 그러면 역대 조선 왕들의 주요 생활과 기호음식, 가족사, 성품, 질병을 대충 살펴보자.
태조 이성계는 신장이 장대해 궁술에 능한 선천적으로 강건했으나 신덕왕후 강씨가 죽고 왕자의 난으로 아들 방석과 방간이 비명에 죽은 뒤 이방원과의 갈등으로 울화병, 알츠하이머병, 중풍으로 73세에 청심환 1알도 삼키지 못한채 사망했다.
제2대 정종 이경은 이방원이 내세운 허수아비 왕으로 격구와 사냥을 즐겼으며 재위 2년 2개월 동안은 신변불안에 의한 불면증에 시달리다 상왕으로 물러나 천수를 누리다 노환으로 사망했다.
제3대 태종 이방원은 드라마와는 달리 허약한 체질로 성격이 소심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많고 평생 목이 뻐근하고 두 팔이 시리는 풍치에 여색을 탐닉하다 매독으로 사망했다.
제4대 세종 이도는 육식을 좋아했던 대식가로 소고기, 흰닭, 꿩, 양고기를 즐겼고 건삽증, 소갈증.안질과 과색으로 인한 임질에다 척추염증,비만 등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제5대 문종 이향은 체력이 허약했으나 어린나이에 아버지 세종이 건강쇄약으로 대리청정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등에 큰 종기가 나 사망했다.
제6대 단종 이홍위는 천성적으로 몸과 마음이 유약한 가장 단명한 왕으로 불안 공포로 구역질을 앓다가 세조가 내린 사약의 약사발을 내동댕이쳐 의금부 도사 왕방연에 의해 활줄로 목졸림을 당해 사망했다.
제7대 세조 이유는 천성적으로 과격하고 무소불위로 어린 조카 단종과 형제들까지 살해하고 왕이된 후 죄책감으로 인한 불안, 불면, 피부병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제8대 예종은 성정이 유약하고 효성이 지극했으나 지병인 족질을 앓다 일찍 사망했다. 복상사였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제9대 성종 이혈은 독서와 경연을 즐기는 학구파였으나 과음, 과색, 종기로 고생하다 반위(대장암)로 번져 52세에 사망했다.
제10대 연산군 이융은 세자시절 사슴을 활로 쏴 죽일 정도로 잔인한 성품에 음주가무와 사냥에 능했고 과색으로다 소변을 자주 보는 전립선을 앓다가 중종반정으로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
제11대 중종 이역은 음낭이 붓고 통증을 동반하는 산증과 종기를 앓아 똥물을 많이 마셨고 대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다 결국 종기로 사망했다.
제12대 인종 이호는 성품이 착하고 유약하며 효성이 지극해 주다례를 지냈고 어진 신하를 귀히 여긴 왕이었으나 계모 문정왕후가 보낸 찰떡을 먹고 급체로 사망했다.
제13대 명종 이환은 마마보이 왕으로 학질과 감기, 허혈성 심장질환을 앓다 합병증으로 후사 없이 사망했다.
제14대 선조 이연은 방계승통의 첫 왕으로 얼굴이 곰보였다.
학문에 밝았으나 의심과 변덕이 많아 위장병과 이명을 앓다 심장병으로 돌연사 했다.
제15대 광해군 이흔은 김해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승계했으나 서인의 전횡으로 화증과 심질을 앓다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제주로 유배되어 병사했다.
제16대 인조 이종은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한 졸군으로 성질이 급변하는 조현병과 학질로 사망했다.
제17대 효종 이호는 체력이 강건해 활과 청룡도를 잘썼으나 급한 성질과 과식,비만, 머리에 생긴 종기를 앓다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제18대 현종 이연은 마음이 유약해 왕비 명성왕후 김씨가 두려워 후궁 한명도 취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다가 위장병과 안질에 종기로 사망했다.
제19대 숙종 이순은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신하들을 벌벌 떨게 하는 환국정치로 가장 재밌게 왕노릇을 즐긴 왕으로 인현왕후.장희빈. 최빈 등 젊은 여인들과 즐기다 종기로 고생하다 사망했다.
제20대 경종 이윤은 생모 장희빈의 비극적인 죽음 으로 평생을 마음고생하다 노론측이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고 발작성 경련과 간질로 사망했다.
제21대 영조 이금은 두 얼굴을 가진 무서운 왕으로 변덕이 심했으며 채식에 무명옷을 입고 인삼 수 백근을 복용해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다 치매로 사망했다.
제22대 정조 이산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11세에 목도했으며 학구적이고 담배골초에 애주가였다. 고질병 종기로 정신이 혼미하자 약물과다로 급사 했다.
제23대 순조 이공은 신경질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가위눌림과 종기로 사망했다. 특히 영명한 아들 효명세자가 23살의 나이로 죽자 울화병에 식음을 전폐하고 불면증이 큰 원인이었다 한다.
제24대 헌종 이환은 얼굴이 조선왕중 가장 미남이었으며 궁녀들의 선망이었다 한다. 세도정치에 의한 스트레스와 과색으로 사망했다.
제25대 철종 이변은 강화도 농군출신 허수아비왕으로 왕의 자리가 싫어 마음도 몸도 지쳐버린채 막걸리와 과색으로 걸음도 걷지 못하고 사망했다.
제26대 고종 이희는 밤마다 파티를 열고 커피와 야식을 즐긴채 나이어린 궁녀들과 당구를 치면서 제멋대로 살다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시달리다 식혜를 먹은 후 사망했다.
제27대 순종 이척은 천성적으로 유약해 수두와 두창을 앓으며 음식물에 체해 설사를 자주하다 지병인 다리의 부종으로 후사없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조선의 왕들 중 60세를 넘긴 왕은 태조(74세), 정종(63세), 광해군(67세), 숙종(60세), 영조(83세), 고종(68세) 6명이다.
40세 이전에 사망한 왕은 문종(39세), 단종(17세), 예종(20세), 성종(38세), 연산군(31세), 인종(31세), 명종(34세), 현종(34세), 경종(37세), 헌종(23세), 철종(33세) 11명이다.
조선의 왕 들은 종기로 가장 많이 사망했다. 소독약과 항생제가 없던 때라 치명적 질병이었다. 의관들에게도 치료가 어려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12명이 종기를 앓았다. 문종, 성종, 연산군, 중종, 광해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정조, 순조, 헌종이다.
특히 문종은 어의 전순의가 침으로 종기를 따 세그릇이나 고름을 짜냈으나 사망했다. 성종도 심하게 앓았는데, 성종의 입술 위에 종기가 터져 피가 났으며, 죽을때까지 종기로 고생했다.
정조는 즉위 초부터 종기로 고생했는데, 대부분 얼굴 부위에 생겼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코, 눈꺼풀, 미간, 눈썹, 머리, 귀밑머리, 턱까지 종기가 나서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 질병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왕의 생활은 아무리 건장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병에 걸리지 않고 버티기가 어려웠다.
신하들의 끈질긴 상소나 집단 항의로 세조는 물론이요. 연산군, 중종, 광해군, 숙종 등은 스트레스로 인해 울화병을 끼고 살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과음 했고 세조는 죽기 전까지 술을 마셨고 성종은 ‘주요순 야걸주'(晝堯舜夜桀紂)로 불릴 정도로 술과 여자를 좋아했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