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3.축구에 대한 의문
3-1.K리그는 처음부터 언론에 배척당했다?
-일부 K리그 팬들은 말한다.K리그는 시작부터 야구를 외치는 언론에 배척당해 클래야 클 수 없었다고.또한 이로 인해 K리그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위 문장의 뒷부분 말은 사실이다.사실 국내 주요 스포츠신문,일간지,TV 스포츠뉴스의 탑 기사나 메인 기사는 주로 야구 관련 소식이 많다.국내 야구 관련 소식이 없다면 저 멀리 미국이나 일본에서 뛰고 있는 우리나라 야구 선수들 소식이 탑으로 뜨고 축구가 탑 소식일 경우는 해외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소식이 대부분이다.K리그가 탑으로 뜨는 건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K리그가 시작부터 야구를 외치는 언론에 배척당해 클래야 클 수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오히려 K리그가 언론을 통해 더 클 수 있었다는 찬스를 가졌지만 그 찬스를 스스로 놓쳤다고 말하고 싶다.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냐고?그렇다면 K리그가 시작되는 80년대로 넘어가 보자.
최근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K-1,아니 UFC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난투극 끝에 대리투표와 재투표 효력 유무 논쟁이라는 상처를 안은 채 말이다.미디어법을 통과시킨 쪽에서는 그런 말을 했다.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생긴 지금의 언론 환경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서 통과시켰다고,그리고 자신들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지나가던 개가 웃다 뒤집어질 소리다.그런 양반들이 특정 인물과 세력에 대한 왜곡을 일삼고 민족 언론이라 주장하지만 사실은 친일 언론인 주요 신문들이 민주주의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을 하는가?어이없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1980년 언론통폐합이 무엇인가?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들과 광주 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고 정권을 잡은 세력은 그들에 대한 비판이 언론에서 나올까봐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을 시행하여 언론을 길들여 버렸다.당시 우리나라에는 3개의 방송사와 주요 일간지,지방지들이 존재했었는데 당시 정권은 지방지는 1도 1지로(부산을 예로 들면 부산 지역 신문은 단 1개라는 소리다.),3개 방송사 중 하나였던 동아방송은 KBS와 합병시켰다.이 같은 결과로 국내에 남은 언론은 MBC와 KBS,10여개의 지방 신문,그리고 주요 일간지만이 남았다.그리고 보도검열 제도를 실시하여 언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놓았다.
정권의 손에 만들어진 K리그는 1983년 시작되었다.문제는 K리그를 어떻게 홍보하고 방송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정권은 고민하고 있었다.그 때 나선 것이 바로 KBS다.
당시 출범한 프로야구를 MBC가 중계하면서 KBS는 MBC에 인기에서 밀리고 있었다.(MBC는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던 MBC 청룡 경기를 주로 편성해서 중계했지만 매주 10번에 가깝게 프로야구를 중계하면서 인기를 모았다.)물론 KBS도 MBC와 마찬가지로 프로야구를 중계했지만 시청률에서 크게 밀렸기 때문에 KBS에 위기감이 닥친 건 당연했다.그 때 그들에게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당시 수퍼리그를 만들고 있던 축구협회는 KBS에 중계를 요청했고 KBS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아울러 KBS는 축구협회에 수퍼리그 중계권을 독점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축구협회는 이 같은 제의를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K리그가 시작한 1983년.당시 수퍼리그는 총 40경기를 치뤘는데 KBS는 이 40경기를 모두 생중계했다.이 경기들은 모두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시청률을 자랑하면서 프로야구 중계에서 MBC에 밀린 KBS를 되살렸다.여기에 KBS는 틈나는 대로 수퍼리그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어 축구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또한 1980년대 말까지 K리그 개최 주최자로 K리그 경기를 중계했다. 따라서 K리그가 시작부터 언론의 외면을 받았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K리그가 홍보가 되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바로 축구협회가 KBS에 중계 독점권을 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당시 KBS는 프로야구 중계와 함께 프로축구 경기 중계를 독점하면서 말 그대로 전가의 보도를 2개나 쥐고 있었다.하지만 K리그가 진행되면서 원년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자 점점 K리그 중계를 줄이는 대신 프로야구 중계 비중을 높였다.그렇지만 그들은 K리그 중계권을 타 방송사와 공유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로 인해 프로축구 중계는 가뭄에 콩 나듯 중계되었다.그로 인해 K리그는 홍보가 되지 않았다.실제로 1990년까지 프로축구는 KBS에서만 중계가 되었고 MBC는 1990년까지 프로축구 중계에는 얼씬도 못했다.(이는 필자가 MBC 연감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다.)
축구협회는 원년의 중계만을 위해 중계에 대한 권리를 KBS가 독점하도록 허용하는 실책을 저질렀다.KBS뿐만 아니라 MBC에도(당시 방송국은 2개였으니까) 중계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는 협상을 했었어야 했지만 그들은 당장의 작은 이익을 위해 미래의 큰 이익을 포기하고 말았다.이러한 축구협회의 결정은 매스컴의 힘을 통해 발전한 프로야구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올 초 중계권료 협상이 결렬될 당시 케이블 4사는 프로야구를 중계하지 않았었다.그러자 전국의 야구 팬들은 들고 일어났다.그러자 중계권 협상은 팬들의 압력에 의해 재개되어 타결되었다.)
연맹 역시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1995년과 1996년,월드컵 유치 시즌이 다가오자 KBS와 MBC,SBS는 앞다투어 K리그 경기를 편성하여 중계방송하여 제 2의 축구 붐이 일어날 찬스가 있었다.하지만 프로축구연맹은 그런 찬스를 살리지 못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해부터 축구 중계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이후 K리그 열풍은 한 번 찬스를 놓친 연맹에게 주어진 찬스였다.그러나 연맹은 한 번 놓쳤던 것처럼 다시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그 결과 2002년 7,8월을 강타한 프로축구 열기는 9월이 되면서 사그라들었고 기회는 신기루처럼 멀어지고 말았다.
물론 중계권에 대한 독점을 믿고 엿가락처럼 프로축구를 편성하고,축구 열풍이 반짝 일었을 때 이때다 싶어 축구 경기만 집중적으로 편성한 뒤,열풍이 사라진 뒤에 언제 그랬냐는 듯 축구 중계를 끊어 버리고,월드컵 시즌 때마다 우리는 축구를 사랑한다며 그 때야 중계하는 시늉을 하는 방송사들에게도 책임은 있다.또한 K리그에 대해 타 종목보다 적게,그리고 부정적으로 보도하여 K리그는 못 볼 것이라는 이미지로 만든 언론의 책임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찬스를 날린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K리그가 원래부터 언론 때문에 못 컸다는 주장이 옳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다음에 계속)
첫댓글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