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도 죽이고 하나님도 죽여라! ③
이상의 세 가지 ‘원죄’와 ‘우상’과 ‘부활’의 교리적 문제는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보태거나 빼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과 기독교의 특징인 의심하는 것이 곧 불경不敬이며,
죄가 되는 맹목적 믿음이 결합하면서 법집法執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법집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에 묶여있는 모든
인간의 일반적인 문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집착을 불교에서는 무명의 소치로 보고 아집과 법집이 모두 망념임을
강조하는 데 반해 기독교에서는 오히려 ‘창조주와 피조물’, ‘선과 악’, ‘죄와 벌’,
‘믿음천국 불신지옥’등의 이분법 속에 인간의 의식을 가둠으로써 불가佛家에서 흔히
경계의 뜻으로 쓰는 “법집法執에 걸리면 약도 없다”고 하는 그 법집에 따른 병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중 근기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어린아이에게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몰고 질주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죄인으로 확정 지음으로써
방법을 불문하고 그들을 믿게 하는 것만이 모든 가치보다 앞서는 선한 행위로써
정당화하며, 나아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선민의식으로 인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타 종교인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며, 스님들께 전도하고, 믿음천국 불신지옥을
강요하며, 나아가 우상을 섬긴다고 사찰에 들어가서 땅 밟기를 한다거나, 불을 지르거나,
심지어는 불상이나 단군상 등의 목을 자르고, 법당에 똥을 뿌리기까지 합니다.
또 휴거의 때가 왔다고 모든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고, 단체로 모여 부활을 기다리는
등의 일들이 있는 것 등입니다.
선가禪家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관념이요, 개념이요, 생각이요, 이름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의
요지는 바로 그 언어와 생각[관념]을 떠나 무심無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무심無心의 성취가 곧 참된 참회요, 거듭남이요, 부활이며, 천당이고,
구원이며, 니르바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속에 대단하게 떠받들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죽여 없애라!’고 주문합니다. 무심無心에 어디 부처가 있고,
조사가 있으며, 하나님과 예수님이 있고, 선악과 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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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福찾기 101 - 第8講 佛敎와 基督敎 (4. 부처님과 예수님 <부처님도 죽이고 하나님도 죽여라!>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