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104 : 楚漢誌 47, 智略家 李左車 2
李左車는 韓信의 극진한 禮遇(예우)에 감동하여 머리를 숙이며 말문을 열었다. "將軍께서는
魏豹(위표)를 생포하고, 夏悅(하열)과 張同(장동)을 제압 하고, 이제는 趙 나라까지 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간의 긴 행군과 전투로 병사의 피로도가 높고 군량 또한 충분치 않아, 지금 당장 燕나라를 공략 하신다는 것은 무리가 될 것입 니다. 燕이 비록 작은 나라지만, 하루아침에 亡할 나라는 아니옵니다. 만약 공격했다가 쉽게 제압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齊나라가 장군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오니 燕을 武力(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도모하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고마우신 말씀, 그러면 어떤 智略(지략)을 쓰면 좋을지, 大夫의 高見(고견)을 말씀해주소서." "장군께서는 군사 를 일으키실 생각을 아예 마시고, 그냥 趙나라에 머물러 계시면서 군사들의 훈련만 열심히 시키시 옵소서. 그러면 燕나라의 민심이 크게 요동칠 것이 오니, 그때에....."
이좌거는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뜸을 들인다. "그때에 가서 어떤 計略(게략)을 쓰는 것이 좋겠습니까?" 한신은 다음 말을 기다린다. 이좌거는 "燕나라의 民心이 요동치는 것을 기다렸다가, 유능한 說客(세객) 을 보내 燕王을 利害得失(이해득실)로 설득하면 좋을 듯하 옵니다. 燕나라만 굴복하게 되면, 齊나라는 저절로 氣가 꺾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굳이 싸우지 않고 두 나라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韓信은 李左車의 탁월한 計略(계략)을 듣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韓信은 李左車의 건의를 받아들여 군사들을 훈련과 휴식을 교대로 시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후 어느 날, 한신은 변론에 능숙한 隨何(수하)에게 편지를 써주며, 燕王을 만나보고 오게 하였다. 燕王
은 韓信이 사신을 보내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불안해하였다. 그리하여 重臣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니, 謨士(모사)
蒯徹(괴철)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韓信은 오랫 동안 전쟁을 계속하여 왔음으로 매우 지쳐있을 것이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싸울 여력이 없으니, 대왕을 설득해 보려고 사신을 보내는 것이 분명 합니다. 하오니 韓信의 요청을 쉽게 받아들여서 는 아니 되옵니다." "그러 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대왕께서는 한신이 보낸 서한을 받아 보신 후, 臣을 韓信에게 보내 주시옵소서. 그러면 臣이 한신을 직접 만나보고 난 後, 그 결과에 따라 차후의 방침을 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燕王은 내심 蒯徹의 의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데, 마침 韓信의 사신이 書翰(서한)을 가지고 도착했다고 한다. 燕王은
隋何를 만났는데 수하가 燕王에 게 내민 韓臣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漢나라 大將軍 韓信, 燕王 휘하께 書札(서찰)을 보내오. 楚覇王(초패왕) 항우는 잔학무도 하기가 이를 데 없어, 義帝(의제)를 시해하고 帝位를 찬탈하였으니, 이는 천인공노할 일이오. 이에 漢王께서는 正義(정의)의 旗幟(기치)를 들고 일어나 이미 三秦을 석권하고 魏와 趙도 평정했던바, 이는 힘이 강해서가 아니고 하늘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오. 이렇게 漢軍이 가는 곳마다 天意(천의)를 순응하지 않는 나라가 없거늘, 유독 燕王만은 우리에게 순응해 오지 않으니, 이 어찌 된 일이오? 내 지금 趙나라에 머물면서 貴王(귀왕) 께서 귀순해 오기를 기다 리는 바이오. 만약 나의 권면이 거절되면 나는 武力(무력)으로써 貴國(귀국)을 제압할 것이니,
後에 千秋(천추)의 한이 남지 않도록 처신하기 바라오.
大 漢國 大將軍 韓信 ]
그야말로 협박장과 다름 없는 書翰(서한)이었다. 韓信의
편지를 읽어본 燕王은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수하에게 말한다. "漢王은 얼마 전, 項王에게 大敗(대패)하고 지금은 영양성만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데, 무엇을 믿고 이런 無禮(무레)한 편지를 보낸 거요?" 隋何가 대답한다. "漢王이 楚覇王에게 일시적으로 敗했으나, 그때도 漢王께서 楚軍에게 겹겹으로 포위를 당하셨을 때, 돌연 하늘에서 성스러운 白光(백광)이 내리비쳐서 漢王을 구출하셨으니, 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사오리까? 자고로 聖王(성왕)이 되려면 百靈(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법이온데, 漢王께서 지금은 잠시 영양성에 계시오나, 그분의 휘하에는 智略(지략)이 풍부하신 張良(장량) 선생을 비롯하여, 百戰 百勝(백전백승)의 名將, 韓信 장군과, 軍政(군정)에 탁월하신 簫何 丞相(소하승상) 같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하옵니다.
楚覇王 항우가 비록 武力(무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항우는 폭정을 거듭해 온 관계로 민심이 완전히 이반되어 머지 않아 반드시 亡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지금 결정을 미루시다가 楚覇王 항우가 滅亡(멸망)하는 경우, 누구를 믿고 어디로 가실 것이옵니까? 대왕께서 철썩 같이 믿고 계시던 趙나라가 이미 滅亡한 이 판국에 대왕께서 홀로 안전을 도모하시려는 것은 천하대세를 너무도 모르시는 것 같사옵니다."
燕王은 隋何의 말을 듣자 사태가 심각함을 절감하고 謨士 蒯徹을 불러 긴급 지시를 내린다. "수하의 말을 들어보니 사태가 매우 심각하오. 그러니 貴公이 韓信을 직접 만나보고 오시오. 그 후에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기로 하겠소." 괴철이 머리를 조아리 며 말한다. "하오면, 臣이 韓信을 만나 漢나라의 虛實(허실)을 소상하게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괴철은 수하와 함께 韓信을 만나러 떠났다. 한신은 연락병을 통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燕王이 나에게 사신을 보냈다고 하니, 燕나라는 우리에게 굴복 하러 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며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내보내 괴철을 융숭하게 영접하였다.
蒯徹이 융숭한 영접을 받으며
이 융숭한 영접을 받으며
營內로 들어오니, 韓信은 중앙 높은 단상에 의연하게 앉아있고, 많은 장수들은 左右에 질서 정연히 揖(읍)하고 侍立(시립)해 있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도 장엄하여 말문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韓信은 단하의 괴철을 굽어보며, "大夫께서 나를 찾아온 것은 나를 설득하여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모양인 데, 내가 大夫의 辯說(변설)에 넘어갈 것 같소이까?" "......"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韓信의 첫 마디에, 괴철은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韓信이 "만약 燕王이 城門을 활짝 열고 우리에게 순순 히 항복해 온다면, 그 뜻을 고맙게 받아들여 무고한 생명을 살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지금 六國 중에서 우리에게 항복해 오지 않은 나라는 오직 燕나라만 있을 뿐이오. 모든 나라들이 漢王의 威德(위덕)에 순응하여 스스로 귀순해 오고 있거늘, 유독 燕나라만 항우에 의지하여 우리에게 맞서온다면, 부득이 燕나라를 武力 으로 정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오. 그리고 내가 군사를 일으킨다면, 燕나라는 일시에 焦土化 될 것이오."
韓信은 여기까지 말하고, 이번에는 좌우를 돌아보며 새로운 지시를 내린다. "諸將(제장)들은 잘 들으시오. 나는 이제부터 燕나라와 齊나라를 모두 정벌하겠소. 그리고나서 내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大夫가 알도록, 사신으로 온 蒯徹대부를 그때까지 客舍(객사)에 정중하게 모시도록 하시오." 괴철은 꼼짝 없이 객사에 軟禁(연금)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해보고 고달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뜻밖에도 趙나라의 大夫 李左車가 찾아왔다. 趙나라와 燕나라는 동맹국이 었던 관계로, 두 사람은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다.
괴철은 李左車를 만나자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趙王께서는 생포되고 陣餘 장군은 戰死(전사)하고, 뒤이어 우리 燕나라는 韓信 장군으로 인해, 累卵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李左車가 침착하게 대답한다. "大夫께서는 무엇을 주저하시오? 자고로 <順天者(순천자)는 흥하고 逆天者(역천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漢王은 항우에게 시해된 義帝를 정중 하게 장사지내 드림으로써 천하의 義主(의주)가 되셨소. 게다가 韓信 장군의 용병술은 신출귀몰하여 그를 당할 사람이 당대에 는 없는 형편이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趙王에게 순순히 항복을 여러 차례 권고 했건만, 趙王은 끝까지 나의 충고를 무시 하고 막강한 漢軍에 맞섰다가 결국에는 나라도 망치고 자기 자신도 포로가 된 것입니다. 大夫 께서도 그 점을 충분히 감안 하셔서, 漢王 편이 되든가 楚覇王 편이 되든가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하시오."
李左車의 이 같은 말을 듣고 괴철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楚覇王은 義帝를 시해하고 帝位 를 찬탈했는데, 漢王은 義帝를
끝까지 받들어 모신 것을 보면, 漢王은 寬仁大道(관인대도)함과 慈愛(자애)로운 사람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만....."하고 말끝을 흐린다. 그러자 李左車 가 "項王과 漢王은 의로운 면에서는 비교 자체가 안 되오. 그러나 인격적인 면을 떠나 순전히 군사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漢王이 훨씬 우세하 다는 것을 아셔야 하오. 漢王
휘하에는 장량, 한신, 소하, 진평 같은 신출귀몰 한 賢士(현사들이 있지 아니하오? 항왕 휘하에도 범증, 용저, 계포, 종리매 같은 용장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들이 어찌 張良이나 韓信 같은 사람들의 지략을 당해 낼 수 있겠소?"
괴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范增 軍師는
張良의 智略을 당해 낼 수 없고, 龍狙(용저)와 季布 등은 韓信 장군을 당해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시면서 무엇을 주저하시오? 漢王은 興하고, 項王은 亡해 가고 있는 판인데 무엇 때문에 주저하느냐는 말씀이오!" "....."
괴철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결심이 섰는지 이렇게 말한다. "백번 생각해도 장군의 말씀이 옳소이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부터는 漢王을 섬기도록 하겠으니, 韓信 장군을 다시 한 번 만나보게 해 주시오." "참으로 옳은 판단을 하셨소이다." 李左車는 크게 기뻐하며 韓信을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괴철은 燕王에 게 항복을 권유하겠다고 韓信에게 분명하게 말하니 韓信은 매우 기뻐하며, "大夫는 단순한 사신일 뿐이니,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 燕王으로 하여금 정식으로 항복한다는 뜻을 명확하게 표명하게 하시오. 그리고 대부가 돌아 가실 때, 曺參(조참)과 樊噲(번쾌) 두 장수가 1萬의 군사를 거느리고 大夫와 동행하도록 하겠소."
한편, 燕王은 大夫 蒯徹 (괴철)을 韓信에게 보내 놓고, 그 결과가 몹시 궁금 하였다. 그러던 차에 괴철이 돌아와 지금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보고한 後,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項王을 버리고 漢王을 섬기는 것이 상책이 되겠사옵니다."하고 아뢴다. 燕王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그러면 曺參과 樊噲 (번쾌) 두 장수를 기꺼이 맞아들여, 진정으로 친선을 도모하도록 합시다." 하고 城밖으로 나와 두 장수를 융숭하게 맞아들 였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나 韓信이 몸소 燕王을 찾아오니, 연왕은 정식으 로 降標(항표)를 작성하여 韓信에게
올리니, 한신은 크게 기뻐하며 燕王을 깍듯이 王으로 받들어 모셨다.
이렇게 韓信은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李左車의 지혜로 燕나라를 접수하였다. 韓信은 바로 燕王의 降標를 隋何에게 주어 영양성의 漢王에게 보낸다.
그리고 齊나라를 치기 위해 다시 원정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