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1부 3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사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쥐들은 더많이 죽어갔고, 매일 아침 수거되는 양은 더 많아졌다. 나흘째 되는 날부터 쥐들은 떼를 지어 거리에 나와 죽었다. 집의 구석진 곳이나 지하실, 창고, 수챗구멍 등에서 쥐들은 휘청거리면서 줄지어 올라와 빛을 보고 비틀거리며 제자리에서 맴을 돌다가 사람들 곁에 와서 죽어버렸다. 밤에는 복도나 골목길에서 최후의 발악을 하는 작은 소리가 열격하게 들리곤 했다. 아침마다 변두리 지구에서는 뽀족한 꼬쭝배기에 덕지덕지 피를 묻히고 어떤 놈은 퉁퉁 부어서 썩어 가고, 어떤 놈은 빳빳이 굳은 몸에 아직도 수염만은 꼿꼿한 채로 개천에까지 즐비하게 나자빠져 있었다. 시내에서조차도 층계참이나 안마당에서 무리를 지어 발견됐다. 그것들은 또 시청의 홀에서, 학교의 체육관에서, 때로는 카페의 테라스에서 딴 놈들과 떨어져 혼자 죽어 있기도 했다. 시민들은 가장 번화한 장소에서까지 그것들을 발견하고는 질색하곤 했다. 열병 광장이며 한길이며 바닷가의 산책길마저도 쥐들로 더럽혀졌다. 새벽에 그 죽은 쥐들을 깨끗이 치워버렸건만 낮 동안에 다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다가, 해 지기 전에 벌써 수두룩해졌다. 밤에 보도를 산책하는 사람이 죽은 쥐 얼마 안 된 쥐의 탄력 있는 몸뚱이를 밟는 일도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우리의 집이 서 있는 바로 그 땅이 속으로 곪은 고름을 짜내고 여태까지 그 내부에서 곪고 있던 응어리와 더러운 피를 내뿜고 있는 듯이 보였다. 건강한 사내의 짙은 피가 불현듯이 뒤집히기 시작한 것처럼, 여태껏 그렇게도 잠잠하다가 며칠 만에 발칵 뒤집힌 이 자그마한 도시의 당황한 모습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사ㄷ는 마침내 랑스도크 통신사(정보나 자료 수집 등 모든 문제에 대한 정보의 수집을 담당)가 스폰서 없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25일 하루 동안에 6천 2백 서른한 마리의 쥐가 수집되어 불살라졌다고 방송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시가지에서 매일같이 보고 있는 광경에 대한 명백한 의미를 제시해주었던 그 숫자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좀 구역질이 나는 사건이라고 불평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그 전모를 명백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원인도 규명할 수 없는 그러한 현상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 해수병을 앓는 스페인 영감만은 여전히 손을 비비면서 “나온다, 나와”라고 망령이 든 노인답게 좋아하며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4월 28일에 랑스도크 통신사는 약 8천 마리의 쥐가 수거되었다고 발표함으로써 시내의 불안은 절정에 달했다. 사람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며 당국을 비난했고, 해변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벌써부터 그리로 피해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통신사는 그 현상이 돌연 멎었고, 서해대책과에서는 죽은 쥐를 무시해도 좋을 만한 숫자밖에는 수거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정오에 의사 리외가 자기 집 앞에다 차를 세웠을 때, 길모퉁이에서 수위가 고개를 숙이고 팔다리를 휘청거리며 마치 인형 같은 자세로 가까스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노인은 의사도 아는 한 신부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파늘루 신부였다. 그는 박학하고 열렬한 제수이트 파의 신부로서 리외도 전에 가끔 만난 일이 있었으며, 이 도시에서는 종교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까지도 그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었다. 리외는 그들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미셸 영감은 눈을 번득이며 쌕쌕 숨을 쉬고 있었다. 영감은 몸이 별로 안 좋아서 바람을 쐬려고 나왔었는데, 목과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심한 통증이 와서 견디다 못해 돌아와야 했기에 파늘루 신부에게 부축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종기들이 터지나 봐요. 참느라고 아주 혼이 났습니다.” 그가 말했다.
리외는 자동차의 창문으로 팔을 내밀어 미셸 영감이 내민 목 밑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일종의 나무 마디 같은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가서 누우십시오, 체온을 재보게요, 오후에 가서 봐드릴 테니.”
수위가 떠나자 리외는 파늘루 신부에게 쥐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오! 아마 유행병일 겁니다.” 신부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의 두 눈이 둥근 안경 너머로 웃고 있었다.
리외는 점심을 먹고 나서 아내가 잘 도착했다는 내용의 전보를 다시 읽고 있었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에 치료해준 적이 있는, 시청에 다니는 사람에게 온 전화였다. 오랫동안 대동맥 협착증으로 고생한 사람인데, 빈곤했기 때문에 리외는 무료로 그를 치료해준 일이 있었다.
“네,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그런데 이번에 다른 사람 때문입니다. 빨리 좀 와주십쇼. 제 이웃에 일이 생겼습니다.” 그가 말했다.
숨 가쁜 목소리였다. 리외는 수위를 떠올렸으나 일단 뒤로 미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분 후에 그는 변두리 구역에 있는 페데르브 가의 나지만ㄱ한 집의 문으로 들어섰다. 서늘하게 구린내가 나는 계단의 중간쯤에서 그는 자신을 마중하러 내려온 서기인 조제프 그랑을 만났다. 그는 길게 턱까지 내려오는 콧수염을 기르고 어깨는 좁고 수족이 빼빼 마른 50대의 남자였다.
“좀 낫어요. 근데 그 사람이 꼭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그려.” 그가 리외에게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는 코를 자주 풀었다. 마지막 층인 3층에서 왼편의 문턱에 선 리외는 붉은 분필로 쓴 “들어오시오, 나는 목을 매달았소”라는 글을 읽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은 한구석으로 치워져 있고, 뒤집힌 의자 위로 천장에서부터 동아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동아줄에는 아무것도 매달려 있지 않았다.
“때마침 제가 와서 풀어주었지요. 제가 외출을 하려던 바로 그때, 소리를 들었어요. 저 글자를 보았을 때, 뭐랄까요, 저는 장난인 줄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이 괴상한 신음 소리를 내더군요. 말하자면 언짢은 소리랄까요.” 가장 단순한 말을 하면서도 늘 어휘를 고르는 듯 보이는 그랑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 행동이 고통스러울 것 같았어요. 물론 들어와봤죠.”
그들은 문을 하나 밀어서 열고, 밝긴 하지만 살림살이가 초라한 방의 문턱에 섰다. 얼굴이 둥글고 작달만한 남자가 구리로 만든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가쁘게 숨을 쉬다가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의사가 멈칫 섰다. 그가 숨을 내쉬는 사이사이에 간간이 쥐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방구석에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리외가 침대 쪽으로 갔다. 그 사나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척추에는 이상이 없었다. 물론 얼마간의 질식 증상은 있었지만 X선을 찍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의사는 강심제 주사를 한 대 놓고 며칠 내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나이는 숨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리외가 경찰서에 알렸느냐고 그랑에게 묻자, 그 서기는 낭패한 태도로 말햇다.
“아니요! 아닙니다. 내 생각에 보다 급한 것은……”
그러나 그때 환자가 몸을 움직이더니, 침대에서 위에서 일어나 아무럿지도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항의 조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대수로운 일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리고 내가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리외가 말했다.
“아!” 환자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는 뒤로 나자빠져 흐느껴 울었다. 조금 전부터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그랑이 환자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자, 코타르 씨, 생각 좀 해봐요. 의사에겐 책임이 있는 법이오. 이를테면 만약 당신이 또 그런 짓을 하는 경우…….”
그러나 코타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할 것이고, 다만 순간적인 발작으로 그랬던 것이며, 자기로서는 가만히 내버려두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외는 처방을 썼다.
“알았습니다.” 리외가 말했다. “그 일은 그대로 둡시다. 2,3일 후에 다시 오겠어요. 그러나 실없는 짓은 다시 하지 마시오.”
리외는 층계참에서 그랑에게, 자기로서는 신고를 해야만 하는데 그 대신 경찰서장에게 그에 대한 조사는 이틀 후에나 해달라고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오늘 밤에는 좀 지켜봐야 하는데요. 그 사람 가족은 있나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나라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 사람을 잘 모릅니다. 말하자면 잘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도와야지요.”
리외는 그 집의 복도에서 기계적으로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이 동네에서는 쥐들이 완전히 없어졌느냐고 물었다. 서기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그는 원래 동네 소문에는 과히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딴 걱정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그가 말했다.
리외는 그때 이미 그랑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전에 수위를 봐주려면 급했다.
석간신문의 거리 판매원들이 쥐들의 침해는 완전히 중지되었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리외는 환자가 상반신을 침대 밖으로 내민 채 한 손은 배에, 또 한 손은 목덜미에 대고 몹시 괴로워하면서 불그스름한 담즙을 오물통에 게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애를 쓰다가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서 그는 다시 누웠다. 체온이 39도 5부였으며, 목의 림프샘과 팔다리가 부어오르고 옆구리의 거무스름한 반점 두 개가 점차 커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뱃속이 아프다고 끙끙거렸다.
“막 쑤시네.” 그가 말했다. “쿡쿡 쑤셔.”
숯검정처럼 된 입에서는 말도 잘 안 나왔다. 골치가 아파서 눈물이 글썽글썽한 두 눈을 의사에게로 돌렸다. 수위의 아내가 아무 말 없는 리외를 불안한 눈길로 보고 있었다.
“선생님, 대체 뭘까요?” 그 여자가 말했다.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겠는데요. 그러나 아직 명확한 증세는 조금도 없습니다. 오늘 저녁은 굶기고 청혈제를 쓰십시오. 물을 많이 마시도록 하고요.”
마침 수위는 목이 말라붙을 지경이었다.
리외는 집으로 돌아오자, 시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의사들 가운데 한 사람인 리샤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요.” 리샤르가 말했다. “특별한 일이라곤 전혀 없는데요.”
“국부적 염증을 수반하는 열 같은 것도 없었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몹시 염증이 심한 림프샘 환자가 둘 있었군요.”
“비정상적이던가요?”
“저, 아시다시피 보통 그런 환자는…..”리샤르가 말했다.
수위는 그날 저녁에 줄곧 헛소리를 했고, 열은 40도까지 올라서 쥐 타령만 하고 있었다. 리외는 농창 고착 치료를 해보았다. 테레빈 주사의 타는 듯한 아픔에 수위는 소리쳤다. “아! 망할 것들 같으니.”
림프샘은 아직 부어 있었는데, 만져보니 딱딱하고 줄이 서 있었다. 수위의 마누라는 넋을 잃고 있었다.
“밤새 지키십시오.” 마누라에게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거든 나를 불러주시오.”
이튿날인 4월 30일에는 벌써 푸르고 눅눅한 하늘에서 훈훈한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산들바람은 가장 먼 교외에서 오는 꽃향기를 실어다 주엇다. 거리에서 들리는 아침의 소음은 여느 때보다 더 활발하고 더 즐겁게 들렸다. 한 주일 동안 겪었던 그 무거운 걱정에서 벗어나, 이 조그만 우리의 도시는 봄날을 맞았다. 리외도 아내의 편지를 받고 안심이 되어서 아주 경쾌한 마음으로 수위의 방으로 내려갔다. 그의 체온은 아침에 38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쇠약해진 환자가 침대에 누운 채로 웃고 있었다.
“괜찮을 것 같군요, 그렇죠, 선생님?” 수위의 마누라가 말했다.
“더 두고 봐야지.”
그러나 낮이 되자 열은 갑자기 40도까지 올라갔다. 환자는 끊임없이 헛소리를 했고, 다시 구토가 시작되었다. 목의 림프샘이 닿기만 해도 아픈지 수위는 될 수 있는 대로 목을 몸에서 멀리 떼어놓으려고 하는 듯이 보였다. 그 마누라는 침대 발치에 앉아서 두 손을 이불 위에 얹고 환자의 두 발을 살그머니 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리외를 보고 있었다.
“아주머니!” 리외가 말했다. “주인을 격리하고 특수한 치료를 해야만 됩니다. 내가 병원에 전화를 걸 테니 구급차로 옮기십시다.”
두 시간 후, 구급차 안에서 의사와 마누라는 환자 위에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종기로 뒤덮인 환자의 입속에서 말이 단편적으로 새어놨다. “쥐들!” 하고 그는 말했다. 촛농같이 된 입술은 푸르죽죽했고, 속눈썹은 무겁게 아래로 축 처졌고, 숨결은 끊길 듯 가빠졌고, 림프샘 때문에 몸이 제멋대로 놀고 있었다. 몸 위에 이불을 덮고 싶은 듯, 혹은 땅 밑에서 그 무엇이 쉴 새 없이 그를 부르기라도 하는 듯 수위는 자리 속 깊이 몸을 쪼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게에 눌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누라가 울고 있었다.
“이제는 가망이 없나요, 선생님?”
“죽었습니다.” 리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