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장> – 청나라를 일으킨 몽골 여인
멍자오신 (지은이) | 노만수 (옮긴이) | 앨피
![효장](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redian.org%2Fwp-content%2Fuploads%2F2016%2F07%2Fhyojang.jpg)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는 효장태후의 전 생애
16~17세기 중국 대륙에서 각축을 벌이던 만주족·몽골족·한족의 흥망성쇠를 배경으로 남편과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황위에 올린 담대한 몽골 여인 ‘효장’의 일생을 다룬 평전. 청사淸史, 몽골사에 대한 기본 사료는 물론이고, 현대 학자들의 최신 연구 성과까지 촘촘히 반영한 원로 역사학자의 진실한 전기물이다.
만주족 대청제국 133년간의 강건성세康乾盛世를 열어젖힌 강희제는 왜 자신의 모든 공적을 할머니에게로 돌렸는가? 사후 3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중화권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시동생 도르곤과의 사랑 ‘태후하가설’의 진실은 무엇인가? ‘강산을 미인과 바꾸고, 미인은 강산을 지킨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중국사 최전성기를 열어젖힌 몽골 여인
276년 청나라 역사의 처음과 끝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다. 저 유명한 서태후가 청을 멸망으로 이끈 ‘망국’ 태후라면, 이 책의 주인공 효장은 청나라의 성립과 흥성에 기여한 ‘흥국’ 태후로 추앙받는다. 서태후가 함풍제·동치제·광서제·선통제와 관련이 있다면, 효장태후는 청태종·순치제·강희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청태조 누르하치를 제외한 11명의 청나라 황제 중 3분의 2가 넘는 황제들이 이 두 명의 여인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서와 영화, 드라마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널리 ‘악명’을 떨친 서태후와 달리, 효장태후는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화권 드라마 애청자들에게 효장은 결코 낯설지 않은 역사 인물이다. 무엇보다, 청나라 군대를 이끌고 명나라의 난공불락 요새이자 마지막 보루인 산해관을 뚫은 ‘난세의 영웅’ 도르곤과의 염문설 때문이다. 13세에 청태종 홍타이지와 정략결혼하여 만주족 영웅 누르하치의 며느리가 된 이민족 여인이 아들 순치제를 먼저 보내고 손자 강희제를 청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만든 스토리는 그 자체로 대하사극의 훌륭한 이야깃거리임이 분명하다.
청나라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기회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청나라의 강건성세 시기를 “미래 중국의 모델”로 제시했다. 강희제-옹정제-건륭제에 이르는 이 130여 년간, 청나라는 영토의 광활함뿐만 아니라 군사력·경제력·문화력까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 중국사의 최전성기를 이끈 만주족 뒤에 ‘부무부타이’라는 이름의 몽골 여인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중국에서 효장태후는 ‘현명함, 지혜, 인애, 자신보다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대청제국을 일으켜 세운 청나라의 ‘흥국 태후’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한국에는 지금까지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 번역, 소개되는 효장태후의 전 생애는, 무엇보다 청나라의 역사를 좀 더 폭넓은 시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첫머리가 될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야사 뒤에 감춰진 ‘흥국’ 태후의 진실
이 책의 저자인 청사 연구의 대가 멍자오신孟昭信은 전통시대 이래 야사나 연의를 통해서만 전해진 효장태후의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이 책을 지었다고 밝혔다. 민간에 사생활이나 흥미 위주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전파되어 효장에 대한 진실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전히 그녀는 막후에서 청나라 조정을 쥐락펴락한 냉혹한 권력가, 혹은 시동생 도르곤과 결혼한 부도덕한 패륜녀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형편이다. 저자는 효장태후가 몽골 초원의 소녀에서 후금 황실의 며느리로 시집간 후, 후궁에서 황태후, 황태후에서 태황태후가 되어 가는 과정을 청나라 초기 역사에 대한 방대한 1차 사료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객관적 입장에서 소상하게 정리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효장태후가 중국사에서 그 어떤 여인보다 훌륭한 여성 정치가이자 성공적인 인생을 산 여인이었음을 평전 형식으로 전해 준다.
말갈, 여진, 만주, 한족을 아우른 ‘몽골 제일의 미녀’
훗날 모택동은 효장을 “청나라 제일의 여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재주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호르친 초원으로부터 날아든 옥처럼 부드럽고 윤기가 찬란한 오색나비”라고 묘사될 정도로 미모도 뛰어났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홍타이지 곁에서 ‘대청의 여자 제갈량’ 노릇을 했다. 동북방 변경의 일개 오랑캐로 불리면서 고구려와 발해를 세웠던 말갈족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여진족(만주족)이 산해관을 넘어 광활한 중국 대륙을 점령하고 300여 년간 군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몽골 제일의 미녀이자 중국 제일의 여성 지낭智囊 ’ 효장태후의 역할이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의 일생이 청나라라는 새로운 나라의 개창 및 융성과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지, 저자와 옮긴이의 상세한 설명 그리고 책 뒤의 <효장문황후 연표>가 소상히 보여 준다.
첫댓글 우앙...함 알아봐야겠네요 ^^
금나라, 청나라 황성이 경주 김씨 아니면 안동 권씨입다. 시조가 신라 말 마의 태자의 후손이라는 설 안동 권씨 시조 권행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죠. 금 태조 완안아골타의 실제 성이 김입니다. 이리 보면 금, 청은 우리하고 관련이 많은 역사.
안동 권씨가 원래 경주 김씨. ㅋㅋ 강희제 우리 식 이름이 김현엽 아님 권현엽이죠.
우와~ 관심 갑니다. 꼭 보고싶네요.
다 우린 동이족 즉 거 고조선 부여... 동이족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