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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28 부활절 제 5주
예배로 부름
인도자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 지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2, 11)
예배 기원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안으로 불러 모으심 같이 저희들을 성전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양과 같이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로 모여온 저희들로 평강을 누리게 하시고,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에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만 즐거이 섬기게 하옵소서.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주일의 찬송
예수는 나의 힘이요 (93장) / 환난과 핍박 중에도 (336장)/내가 예수 믿고서 (421장) / 이 세상 끝날까지 (447장/ 기쁜 소리 들리니 (518장) /
고백의 기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살면서도 저희들은 지난 한 주간 믿음 없는 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을 보며 불평하였습니다. 푸른 채소같이 잠시 잠깐 후면 쇠잔하게 될 악인들의 형통을 보면서 신앙의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재물을 우상으로 삼고 호의호식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했습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섭리를 믿지 못하여 작은 난관 앞에 낙심하고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저희들의 불신앙을 용서해 주옵소서.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사 굳건한 믿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고백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사함의 확신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제목: 우리를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
본문: 신명기 8:1-6
☞ 마음 문을 열며
한 때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랑받던 〈길〉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
인생의 길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을 솔직하게 다룬 가사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길로 비유하곤 하며, 살아가면서 수없이 다양한 길들을 만나게 됩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40년 광야 생활의 길 끝자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모세의 설교입니다.
모세는 지난 40년간 왜 광야 생활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영적 교훈들을 이야기합니다. 비록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 잘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사랑을 담아 남긴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1절).
이 구절에는 4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살다, 번성하다, 들어가다, 차지하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4가지 동사를 통해서 모세는 그들이 앞으로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 명령을 잘 지켜서 행하면 잘 살 수 있는 비결,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광야 길을 걷게 하셨던 이유를 정확하게 알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요?
1. 낮추시는 하나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2절).
그들이 40년간 광야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테스트하셔서 명령을 잘 지키는지 아닌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너를 낮추시며’입니다. ‘낮추시며’는 ‘낮추다’, ‘천하게 하다’, ‘괴롭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들의 마음은 낮아진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지난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더 낮아질 게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길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성을 다스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성은 교만을 통해 드러납니다. 교만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자 뿌리입니다. 수많은 죄악들이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400년 노예 생활 동안 그들의 자존감은 철저히 땅에 떨어지고, 자신감도 지극히 낮아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겸손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고생했다고 해서 성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애굽 왕 바로의 심령에나 괴롭힘을 당하던 이스라엘의 심령에나 동일한 죄성이 존재합니다. 다만, 애굽 왕 바로는 그 죄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면서 온갖 악을 저질렀던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죄성이 속으로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노예 생활이나 종살이를 했다고 죄성이 없어지거나 교만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겸손해지거나 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은 환경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본질적인 죄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죄성을 잘 아십니다. 우리 속의 죄 된 것들을 환히 들여다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죄 문제에 관심을 두십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으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탈출한 백성을 그냥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죄성, 완악함, 교만함, 불순종하는 태도와 모습,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멀리하고자 하는 마음들을 낮추셨습니다. 40년 동안광야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그들의 생각, 고집, 불순종하는 마음과 완악하고 나약한 심령을 다듬으시고 낮아지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광야를 걸을 때 생각이 깊어집니다. 고생을 하고 길이 막힐 때,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반성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낮아지길 원하십니다. 높아진 마음을 꺾으십니다.
우리에게 더 낮아져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안에 꺾여야 할 지독한 교만은 없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광야의 시간이 더욱 낮아지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2. 공급하시는 하나님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3-4절).
광야 길을 걸을 때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돈으로만, 성공으로만, 이 땅에서의 가치 기준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광야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 하셨던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음식과 물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들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람이 떡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물과 양식이 가장 귀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처럼 광야에서는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결정됩니다.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1단계 욕구인 생리적 욕구도 채우기 어려운 광야에서 물, 빵, 떡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기는 대단히 힘듭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물과 떡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 물과 떡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알지도 못했던 만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먹여 주셨습니다. 메추라기를 먹여 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렇게 힘든데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최고다’, ‘먹을 양식을 먼저 챙겨라’, ‘노후를 위해 재테크를 해야 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등등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들이 쏟아집니다. 언제나 동일한 사탄의 유혹이고 세상의 논리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중요합니다. 주님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이미 떡도 중요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떡도 중요하나 가장 중요한 것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봐라’, ‘그들이 어떻게 40년간 옷을 입었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광야 40년 동안 옷 한 벌, 신발 하나로 견딜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꽤 많은 소와 양을 갖고 나왔는데, 40년이 지나는 동안 잘 관리하고 키웠던 것 같습니다. 본래 그들의 직업이 목축업이니 당연히 잘 관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나 양들을 지켜주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더 많은 새끼들이 태어나도록,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축들을 잘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척박한 광야에서도 옷과 신발을 구할 수 있었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부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앞서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공급하십니다.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40년을 광야에서 지켜 주시고 공급하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가장 정확하게 채워 주시고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빌 4:19-20).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 믿음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3.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입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5-6절).
본문에 나타난 ‘징계’라는 단어의 원어는 ‘얏싸르’로 ‘교훈하다’, ‘견책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도록 지도하는 모든 교육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겪었던 광야 40년의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께서 마치 어버이와 같은 심정으로 그들을 훈육하신 사랑의 매였습니다. “너희는, 사람이 자기 자녀를 훈련시키듯이, 주 너희의 하나님도 너희를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겨 두어라”(신 8:5, 표준 새번역).
하나님이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아비의 마음으로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더 성장하도록, 더 성숙해 지도록, 무엇보다도 더 큰 마음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 공동체를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도록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높아진 마음, 불평하는 마음, 비판적인 생각과 이기적인 생각과 태도, 행동과 자세, 포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며, 하나 되지 못하는 이 모든 마음과 자세들을 교정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받은 훈련은 단순한 형벌이 아닙니다.
모든 훈련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체력, 정신력, 팀워크, 실제적인 전투 능력, 위기 탈출, 생존 기술 등등은 전쟁을 위함인지, 테러 진압을 위한 것인지 목적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그들은 전직 노예 출신입니다. 일에 대한 의지도, 열정도 없고 민족성이나 공동체 의식도 전혀 없는 자들입니다. 때리면 맞아야 하고, 시키면 움직이는 노예 출신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40년간 지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무엇보다도 지도자를 위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 1:16-18).
이스라엘은 모세를 이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다짐합니다. “명령하는 것은 다행할 것입니다. 보내는 곳에 가겠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이들은 과거에 모세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돌을 들어서 치려했던 사람들, 반역하던 사람들, 지독하게도 자기 뜻과 고집대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변화됨으로 이렇게 멋진 고백을 한 것입니다.
지도자에게 순종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도 가지게 됐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갖게 됐습니다.
“만약 너희 소유지가 깨끗하지 않다면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께서 소유하신 땅으로 건너와 우리의 땅을 나눠쓰자. 다만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것을 스스로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거나 우리를 거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수 22:19, 우리말 성경).
본래 열두 지파 중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강 동편에서 머물게 됩니다. 이후 남자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 전쟁을 마친 후 다시 강을 건너가려고 할 때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곳이 별로라면 성막도 없는 그 땅에서 살지 말고 그냥 건너와서 우리 땅 나누어 줄 테니 같이 쓰자. 부족해도, 좁더라도 우리 함께 살면 어떻겠냐?” 지독히도 이기적이던 그들이 서로를 위합니다.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성막 외에 다른 것을 세우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변화된 그들입니다. 훈련을 제대로 받은 후 그들은 변화됐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40년간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대로 그들은 변화됐고 더욱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훈련된 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어떤 길을 걸어갈까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6절).‘그의 길’은 ‘하나님의 길’ 또는 ‘그가 보여 주시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길로 걸으라. 많은 길이 있지만 하나님의 길을 걸으라. 수많은 길들이 있지만 그분이 보여 주시는 길을 걸어가라’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힘든 길을 걸어오셨습니까? 광야 길이어서 힘드셨습니까?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가야 할 길입니다. 지금 힘들긴 해도, 불편하긴 해도 이유가 있다면 더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이 길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이 여정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의 시간들은 가장 힘들고 고달픈 세월이었지만, 또한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공동체가 형성되고, 더욱 성숙하게 변화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또는 광야의 길을 벗어난 분이 있다면 지나왔던 길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낮추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며, 내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신 분이며, 내 부족한 부분을 훈련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앞으로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들을 걸어가십시오. 말씀에 순종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을 어떤 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7-10절).
☞ 갈무리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십시오.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들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가장 좋은 영적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광야의 길을 지나서, 더 좋은 은혜의 땅으로 나아가는 놀라운 복이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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