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덕유산에는 엄청난 눈이 쌓였다
차고 투명한 대기 속으로 파도처럼 넘실대는 산줄기가 뜨거웠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들꽃들의 가쁜 숨결 때문이다
동자꽃과 원추리와 일월비비추와 산오이풀이 꿈틀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묵묵히 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휴일을 맞은 무주리조트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렵게 탑승권을 예약한 덕에 수월하게 곤돌라에 탑승하였다.
곤돌라는 20여분 상승한 끝에 설천봉에 다다랐다
1,520m의 설천봉은 예상 외로 너무너무 조용하고 아늑하였다
여름철에 올라와도 한기가 느껴지는데 오늘은 다른 모습이었다
설천봉에는 스키의 고수들이 올라와 있었다
쳐다만 봐도 다리가 후들거리는데...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젊음들이 부럽다.
덕유산의 정상은 향적봉(香積峰)이 아니라 인적봉(人積峰)이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담으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100m는 되어 보인다
우리는 줄 서는 것을 포기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산그리메를 감상하였다.
우리 일행을 대표한 두 남녀가 정상석 옆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향적봉에서는 마이산, 가야산, 지리산, 계룡산, 무등산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다양한 산 봉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세 친구들이 함께 올라와 포효하는 모습이 멋지다
이 세상에 함께 기쁨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덕유산(德裕山)은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의 산(母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으로 숨어들어 화를 피하곤 했던 민초들의 고마움과 평안한 삶에 대한 희망도 담겨 있다.
정상에서 한참 비켜선 곳에 일행들이 모두 모였다.
이 산은 '덕을 품고 있는 산'이어서 덕유산이 아니다
어리석고 덕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산에 안기면 덕스러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향적봉 대피소에도 사람들로 넘처난다
라면 끓이는 냄새와 김치찌게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우리는 가야할 길이 멀기에 대피소 옆으로 난 길로 비켜갔다
연대기를 알 수 없는
검은 책이다
먼 시간을 집대성한 페이지를 넘기면
불탄 새의 발자국이 떠도는
바람의 유적지
막다른 길에서 시간은 일어선다................................................고경숙 <고사목> 부분
중봉은(1,594m) 덕유산의 대표 조망터다
중봉은 늘 바람이 거칠다
중봉에 서서 덕유평전과 좌우로 펼쳐진 산세를 볼 수 있는 조망은 진정 감동이다
1500m의 고지대에서 덕유평전처럼 너른 평원을 만나는 것은 특별하다
덕유평전(德裕平田)은 덕유산 중봉에서 백암봉까지의 넓은 평원을 말한다.
이곳에서 봄을 기다리는 동자꽃과 원추리와 산오이풀의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덕유산에는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많은 눈이 쌓였다.
시몬과 카타리나가 눈밭에서 진한 애정 행각을 벌였다
앉았다가 일어서고, 엎어졌다 뒤집어지고...주위의 나무들이 모두 눈을 감았다 ㅋㅋ
백암봉(1,490m)은 안성 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향적봉의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덕유산의 한가운대를 지키고 있다
백두대간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꺾어졌다가 북향하게 된다
백암봉에서 눈을 다지고 앉아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필립보 신부님께서 가져오신 꼬냑 1병이 금새 동나버렸다
꼬냑으로 달구어진 우리들의 체열로 인해 눈이 녹기 시작하였다. ㅎㅎ
산에 가거든
그 안에 푹 젖어 보아라
가만히 귀를 대고
산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세상의 모든 언약이 서서히
깨어지고 있는 소리를
산에 가거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풀바람이 되어 보아라............................................................김지헌 <산에 가거든> 부분
후미를 지키고 있는 세 분이 암봉에 올라 휴식을 취한다
회장님께서 쉬지 않고 마구 내달리는 산행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겨울산을 오른다는 건 나무가 되는 것
모든 겉치레를 벗어버린 나무가
그런 나무와 마주 서 있는 동안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나무가 되는 것
나무가 되어 나무의 마음을 엿듣는 것
가문 물소리에 대해
돌아오지 않는 새소리에 대해
임자 없는 무덤의 쓸쓸함에 대해..........................................김수열 <겨울산> 부분
덕유산의 옛 고개인 동엽령(冬葉嶺, 1,320m)에 다다랐다.
덕유산 국립 공원의 동업령 코스와 종주 코스가 교차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남쪽의 남덕유산까지는 10.5㎞, 삿갓골재 대피소까지는 6.2㎞ 거리다
동엽령의 겨울바람은 혹독하기로 유명한데....오늘은 어머니의 품처럼 고요하다
동엽령에 예전에 없던 긴급재난 안전쉼터가 세워져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산객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오늘은 두 명의 미녀가 지키고 있어 더욱 온화한 기운이 감돈다.
이제 동엽령과 작별하고 내려가야 한다
야속한 선두 그룹은 흔적도 없이 하산해버렸다
함께 만나서 격려하고 인사하며 사랑을 나누던 첫 모습이 그립디
비어 있는 숲들은 장례 행렬 같다
어떤 숲은 유아세례식 같기도 하지만
이 숲은 텅 비어 있으면서
숨이 막힐 듯이 채워져 있다
어둠이 숲을 채우면 이 숲은 무겁다
어둠이 숲을 채우면 이 숲은 무겁지 않다
숲의 형식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 숲에는 요염한 여인이 누워 있다
이 숲에는 성자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이 숲은 차갑지 않다......................................................................이경임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부분
드디어 칠연폭포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좌절하지 않고 하산을 완료한 후미그룹이 장하다
누군가가 길가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머리엔 모자를 쓰고 담뱃대를 물고 있는 모습이다
시골집 마당에서 동생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통안천(通安川)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봄을 머금고 있었다
이 하천은 덕유산 국립 공원 내 동업령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다
상류에 칠연 폭포(七淵瀑布), 용추 계곡(龍秋溪谷)이 자리잡고 있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대형버스가 올라오지 못하는 바람에 통안리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전주에 도착하여 김치찌게와 매생이굴전으로 하산주를 마시니 그윽한 행복이 밀려왔다
첫댓글 오늘도 팔다리가 아픕니다.그러나 몇년만에 아이젠도 신어보고 넘넘 좋았습니다.
수고! 수고 많았어요. ⌒u⌒
산행기를 보니 덕유산 다녀온지가 생각이 안납니다.. 얼른 산에 가야는데 그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간 컴퓨터없이 핸폰으로만 검색하고 지내와서 다음카페 접속이 원활하지 못해서 검색뿐만 아니라 댓글도 못달고 그렇게 지내왔는데, 오늘 핸폰으로 재가입 시도 성공해서 댓글도 달아볼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매번 보는 산행기는 감동 그 자체이죠.
항상 주옥같은 필력으로 산행의 감흥을 더욱 깊은맛으로 감상할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덕유산 산행이 처음이라 설레고 기대도 되었지만 걱정이 앞섰는데 함께여서 무사히 마칠수 있었습니다 모두 대단해 보이고 장하게 느껴 집니다 제주 둘레길도 잘 마칠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신산회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