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놀이 –넵! 외 1편
서범석
다투고 있는 가을단풍과 저녁노을을 선생님이 부르셨다
늬들 또 서로 이쁘다고 우기는 거지?
네
꽃보다 아름다운 지구의 꽃, 또는 꽃보다 아름다운 하늘의
꽃이라고
네, 네
그래봐야 단순히 붉은 얼굴 가지고 뻐기는 거 알지?
네에
둘 다 엔트리넘버 꼴찌라는 건 알고 있니?
― 네
이제 곧 날이 저물 거란 걸 알고 있지?
― ― 네
깜깜한 곳에서 다시는 싸우지 못하겠지?
― ― ― 네
이 길이 어제의 꽃과 새와 바람이 지나간 길임을 알겠지?
네 ― ― ―
집으로 돌아가 봐야 둘 다 우주네 집 한 점일 뿐!
매일 내리고 싶은 역
놀다가 해가 지면 엄마 품으로 돌아오라
―매일매일 방학하는 방학역에 내려야지
⁑ 이놈아 정신 차려, 방아 찧는 동네야
―길한 소리 좋은 소리 길음역에 갈 테야
⁑ 그래그래 하루 종일 물소리 좋다지만…
―고운 여자 순이 사는 군자역으로 갈거나
⁑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왕비 아들 순산한 곳
―답답할 땐 마장역에 승마하러 가야지
⁑ 목마장 있었던 곳, 버스 터미널도 떠났다
―목마르니 옥수역 눈 아프니 약수역
⁑ 지난 얘기 하지마라, 옥수약수 아파트뿐
―황금의 땅 여의도로 행복 잡으러 갈 테야
⁑ 하루 종일 내 섬 네 섬 싸움질 끝이 없지
―그러면 멀리 나가 고덕역으로 가야지
⁑ 역성혁명 비웃고 벼슬 버린 높으신 덕
―그리고 하늘 섬기는 봉천역도 괜찮지
⁑ 노을의 관악처럼 하늘을 받들어라
모든 동네 마땅찮아 나라 앞일 빌어본다
안심 안녕 안국역에 매일같이 내리고저
서범석_1987년 《시와의식》(평론), 1995년 《시와시학》(시) 등단. 시집으로 <풍경화 다섯> <휩풀> <종이 없는 벽지> <하느님의 카메라> <짐작되는 평촌역> 등이 있음. 김종삼시인기념사업회 회장, 국제어문학회 회장, 대진대학교 교육대학원장,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상임이사 등 역임. 현재 대진대학교 명예교수, 계간 《시와소금》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