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이사야서 6장 3-8절
[3]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4]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8]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시편 51편 11-15절
[11]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12]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13] 반역하는 죄인들에게 내가 주님의 길을 가르치게 하여 주십시오. 죄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14]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내가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내 혀가 주님의 의로우심을 소리 높여 외칠 것입니다. [15] 주님, 내 입술을 열어 주십시오.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내 입술로 전파하렵니다.
마태복음 10장 28, 32-33절
[28] 그리고 몸은 죽을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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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5세가 되고서야 교회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회중 앞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저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은 저에게 참으로 큰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설교해야 하나, 만 가지 걱정을 다 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목사였으므로 아버지가 54세에 지병으로 강단을 떠나기까지 설교원고를 쓴 것을 뒤져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설교원고들은 대부분 서문과 본론의 앞부분만 적혀 있고, 그 후에는 주로 ‘애드 립’ (대본에 없는 대사로 연기자가 즉흥적으로 전하는 대사) 으로 설교를 했기 때문에 정작 제가 참고해야 할 부분들은 아버지 설교원고 속에 작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같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저보다 훨씬 일찍 목사가 된 동창에게 ‘너하우’를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말이, 설교원고를 전문 작성해서 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전문을 밤새워 작성해서, 원고 곳곳에, 악보에 사용하는 악상기호로 “큰소리, 작은소리, 점점 빠르게, 액센트” 등등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외워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 주간에 대략 열 번 이상 설교를 해야 하는 목회자의 일상을 내다보며, 앞일이 캄캄해 왔습니다.
한 선배 성직자를 만나서 해결책을 여쭈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이 ‘스토리 텔링’ 으로 설교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참 좋은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동안 그 방향에서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어떤 스토리를 본문에 맞도록 조달한단 말입니까? 역시 대책이 서지 않았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맨날 되풀이할 수도 없고..
은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그 분의 대답이 “기도를 많이 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선배 설교자들의 권유라고 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을 읽고 기도하고, 주석을 찾아 읽고서 기도하고, 제 설교의 청중이 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러기를 날마다 하면서 지금껏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하고 지낸 것이 45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직도 설교에 서툰 사람입니다.
다만 오늘의 본문 (이사야서 6:6) 이 저에게 다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은 “제 입술을 하나님께서 제단의 숯불로 정결케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속된 입술, 제 속된 마음과 뇌리를 숯불, 곧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정결케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고, 말씀의 모티브를 찾을 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회개의 시편 51편 12절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기쁨을” 내 속에서 샘솟게 해 주실 때까지, 내 죄를 샅샅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말씀 속에서 찾은 연후에라야 회중에게 전할 설교가 마음에 깨달아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마태복음 10장 28절 본문에서, ‘회중을 의식하지 말아라. 회중 가운데 그 누구도 너의 설교 모니터가 아니다. 너의 모니터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회중 속, 그 어느 곳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 저의 설교를 모니터링하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에게 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셔서, 늘 말씀 가까이에 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찬미합니다. 저의 구원을 위해서 마련하신 하나님의 조치인 줄 알고 순종합니다.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구원의 기쁨을 깊이 경험하게 하셔서, 말씀의 은총 속에 항상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