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 코너; 2024-6-9☆
< "책사랑 코너" 는 저가 읽은 책 중에서 골라 여러분 "지知의 동지" 들과 책읽기의 열락을 함께 나누고자 "주말단상" 과는 별도로 가끔 올리는 칼럼입니다.
읽기가 불편하신 분은 죄송하오나 즉시 딜리트나 건너 뛰기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만지 >
《건너가는 자(者); 최진석 지음》
대나무 중에 모죽毛竹이 있다.
모죽은 5년 여를 땅속에 뿌리를 넓고 건강하게 내리다가 죽순이 돋은 직후 고작 두어달 만에 30m 넘게 자라는 신비의 식물이다.
인류의 학문세계에도 모죽과 같은 시대가 있었으니 우리는 이를 "기축시대(機軸時代. 영; Axial Age액시얼 에이지)" 또는 줄여서 "축軸의 시대" 라 부른다. 카를 야스퍼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하며 독일어로는 "악센차이트(Achsenzeit)" 이다.
2500BCE 를 전후로 세계 각 나라에서 인류사史를 완전히 바꿀 철학▪︎예술▪︎종교계의 영웅들이 줄줄이 나타났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석가모니, 노자, 장자, 공자, 등등 헤아리기 힘들만치 많은 인류의 등불이 된 선지자가 그들이다.
마치 수천년의 시간을 고요히 땅 밑에서 침잠하다가 고작 사 오백년에 걸쳐 한꺼번에 앞 다투어 땅 위로 솟아 난 모양새가 되었다.
그 중에서 플라톤과 공자는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제대로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둘은 현실정치에 뛰어 들었었다.
그러나 "나쁜 현실"은 언제나 "좋은 이상理想" 을 압도하는 법이어서 두 영웅은 정치판에서 성공하지 못한 채 위대한 학문적 성취만 하고 죽었다.
책상물림으로 나약하게 글만 쓰는 학자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철학자 최진석은 건명원의 초대 원장도 맡았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용기있는 학자이다.
철인哲人의 정의사상이 정치에 넓고 깊게 스며들어야 사회가 올바로 선다고 확신한 그는 두 번 현실정치에 뛰어 들었다.
그는 그러나 플라톤처럼 입문과 동시에 정치판의 《거대한 악惡의 벽》에 부딪쳐 두번 다 초기에 좌절했다.
최진석 교수가 지난 5월 신간 "건너가는 자" 를 펴냈다.
장자莊子 연구로 박사가 되고 노자老子 연구에도 몰두했던 철학자가 불교경전 "반야심경 해설서" 를 상재上梓한 점이 놀랍다.
그는 베이징대학에서 공부할 때 부터 반야심경을 나름 깊이 연구했던 것 같다.
반야심경 전반에 걸쳐 평이한 표현으로 격조있게 해설한 책이다.
최진석은 "세상의 모든 경전經典중에 한 권만 남기고 다 소멸 시켜야 한다면 남을 한권은 단연코 반야심경" 이라고 말한다.
반야심경은 불교철학(또는 宗敎)을 집대성한 방대한 경전인 반야경을 약 270개의 한자漢字로 진수만을 뽑은 경전經典이다.
서유기의 주인공 삼장법사 현장(三藏法師 玄奘) 이 인도의 불경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을 줄인 말이고 "마하摩訶
: 크다", "반야般若: 지혜", "바라밀다波羅蜜多: 건너가다" 라는 뜻이다.
《큰 지혜와 더불어 묵은(진부한) 이 곳에서 새로운(탁월한) 저 곳으로 건너가자》가 되겠다.
심경心經은 경전 중에서 핵심만을 정선하여 편찬한《경전의 경전》이란 의미다.
영화제목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아제아제 바라라제",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든지 "본무자성" 등도 반야심경의 구절들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을 모두 읽기에 부담없고 그러나 깊이있게 설명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같은 우리가 많이 쓰는 용어들도 그 본 뜻을 자신의 철학을 녹여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 책은 '현실정치 환경'에 철저히 환멸을 경험했던 이 시대의 철학자가 다시 한번 마음의 고삐를 다잡고 나라와 민족의 웅대한 미래를 도모해 보자는 "신 출사표新出辭表" 로 보인다.
"무늬로만이 아닌 진정한 선진국 한번 되어 보자" 는 철학자의 평소 소신이 더욱 굳건해 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온 대한민국인데 이 쯤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는 그의 절규가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