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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황량한 벌판에 외따로 떨어져 연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변의 수많은 관중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자기자신에게 이야기하듯 담담하며, 꿈속의 장면인 것처럼 몽환적이다. 관객과 떨어져있는 이들의 음악은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열광을 종용하지 않는다. 폐쇄적인 느낌은 관객들과 거리를 유지하게 하며 낯설음을 선사한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제시한다.
1999년. 중성적이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 남상아와 실험성 강한 음악을 했던 99출신 성기완의 만남은 결성당시부터 걸출한 인물들의 조우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었다. 2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활발한 활동을 하던 3호선 버터플라이는 "네 멋대로 해라" 드라마 O.S.T를 맡으며, 좀더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모던록적인 요소를 믹스해 새로운 스타일의 밴드를 만들어 냈다는 평을 듣는 이들은 기타 노이즈(잡음)를 이용하여 거칠면서도 꿈꾸는 듯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며, 꾸준히 새로운 사운드들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추적추적 비가 몹시도 많이 내리는 날. 3집 앨범 작업을 앞두고 정규멤버 6명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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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D): 특별한 의미라기보다 밴드 결성당시 멤버들이 모두 3호선 근처에 살았다. 버터플라이는 "남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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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완(G,V) :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5, 6 학년 때는 가요와 팝을 들었고. 그냥 음악이 너무 좋았다. 좋아하다 보니까 하게 된 건데 고등학교 때 스쿨 밴드를 했었고, 91년인가 92년에 토마토라는 팀으로 판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프로패셔널은 아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김남윤(K) :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우연히 밴드를 하게 됐다. 주로 홍대클럽 등지에서 연주를 했는데, 재미있어서 계속 하게 된 것이고, 현재 다른 밴드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김상우(D) : 일반인들처럼 회사 다니면서 일하는 게 맞지 않았다. 20살 때부터 드럼을 쳤는데 그냥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 김규형(B) : 어릴 때부터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를 좋아했다. 만화 그리기나 뭐 그런 것처럼. 베이스도 그래서 치게 됐고 중학교 마칠 때쯤 시작했다. 이후에 밴드도 하고 계속 활동하다가 3호선에 합류하게 됐다.
- 휘루(해금) : 고등학교 때부터 해금을 했고, 대학 때도 전공이었다. 어느 날 무용하는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하게 됐는데 그것이 계기가 돼 계속 활동하게 됐고, 팀도 있었다. 우연히 성기완씨를 만나 3호선에 합류하게 됐다.
-남상아(V,G) : 좋아서 하게 됐다. 기타는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쳤었고, 밴드로는 91년도에 드럼 치는 선배 언니와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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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상아(V,G) :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무대 위에선 아무 생각도 안 들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보이면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서 머리칼이 얼굴을 가려도 그냥 놔둔다. 의도된 연출은 아니고, 그냥 그러한 분위기가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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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완(G,V) : 2집 때 소속사가 문을 닫았다. 우선은 그 영향이 좀 크고 멤버들이 워낙 게으르고, 귀찮은걸 싫어하는 데다 고집이 세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좀 애로사항이 있었다. 지금은 나름대로 우리들끼리 헤쳐나가는 방법을 습득했고, 3집에서는 인디와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결합이랄까. 그런 부분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물론 기회가 되면 소속사와도 일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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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완(G,V) : 우리가 하는 일들은 사실 모두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이다. 물론 그 안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잘먹고 잘살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접지는 않아야 한다.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경제적인 고달픔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나도 다른 멤버들도 각자 일들을 하고 있다.
- 휘루(해금) : 전에 웹 디자인 회사를 다녔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김남윤(K) : 지금은 음악만 하고 있는데 , 전에는 웹디자인도 했었다.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막막함은 대부분 마찬가지인 것 같다.
- 성기완(G,V) : 이 문제에 대해 역으로 접근해 보면 고달픔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이 천만명의 분을 풀어주는 음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즉 사회적 효용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천만 명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모자라는 부분은 각자가 노동을 해서 충당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음악을 하기 때문에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일 수 있다. 그 부분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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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완(G,V) : 낮에 자는 고집 센 아이들. 오후 4시쯤 되야 비비적대고 일어나기 때문에 우체국을 통한 통신판매가 불가능한 아이들.
- 김남윤(K) : 밴드들이 "인디"라는 말에 반감을 갖는 건 어떤 식으로든 "규정"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고, "인디" 하면 왠지 실력 없고, 별 볼일 없는 애들 같은 인식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 휘루(해금) : 남들의 인식과 부딪히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간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디"라는 말의 개념이 조금씩은 다르니 말이다. - 성기완(G,V) : "인디" 라는 말은 활동영역에 의해서 나누기는 힘들다. 많은 밴드들이 인디 적인 판과 메이저 적인 판에 걸쳐져 있다. 유통의 규모나 프로모션 등에 의해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
- 김상우(D) : 우리는 우리를 부르는 말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해가 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본래적인 의미의 인디 밴드다. 우리를 인디 밴드라고 부르는 것은 맞다. 인디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얻기 어려운 말인데 "인디" 라는 말에 오해나 부담감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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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우(D) : 예전보다 클럽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무대에 설 공간이 별로 없다. 상황이 좋진 않다고 느낀다.
- 김남윤(K) : 우선 한참 밴드들이 많아지고 붐을 이루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좀 정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런 상태가 쭉 이어지는 것 같다.
- 휘루(해금) : 우선 남윤의 말대로 거품이 한번 빠졌다. 그리고 정부가 시스템 적으로 바뀌어 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얼마 전에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에서 음악콘텐츠 다양화와 창작저변 확대를 위해 소규모 독립음반사의 음반제작에 대한 지원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3호선 버터플라이를 포함해 20팀 정도 지원을 받았고, 적절한 팀 선정이었다. 심사위원들이 박준흠씨 등 인디를 잘 아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제도적인 변화가 조금이나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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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완(G,V) :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찾아오는 관객들만의 숫자로는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을 클럽들도 깨달았을 것이다. 일종의 레이블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될만한 친구들, 팔릴만한 친구들만 키울 테니 부작용이 없진 않겠지만 전체적인 퀄리티를 높이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클럽씬이 이렇게 해서라도 유지가 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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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윤(K) : 인디를 오버를 가기 위해 거쳐가는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외국에는 인디 밴드나 레이블들이 많은데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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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완(G,V) : 중단이 아니라 완전히 해체된 것으로 알고 있다. 초반에 인디 레이블은 3가지 형태였다. "인디 레이블"처럼 유통을 독립적으로 맡아 진행하던 레이블과 "드럭" 처럼 클럽, 뮤지션, 사장이 뭉친 열린 커뮤니티 형태. "강아지 문화 예술" 처럼 음악가 집단이 만든 레이블 등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 "드럭" 과 같은 열린 커뮤니티 형태의 레이블뿐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척 의미심장 한 것이겠지만, 구체적인 자료수집과 분석 후 논의될 부분이다.
이제 밴드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스스로 작업해서 앨범을 만든다. 레코딩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녹음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자신의 음반을 직접 제작, 웹사이트를 통해 홍보하고 판매하는 밴드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밴드들이 이 같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진행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음악판의 실력 있고 대중적 견인력을 지닌,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돌아다니는 친구들보다 이런 친구들이 훨씬 의미 있으며 앞으로 더욱 증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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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완(G,V) : 초반 인디씬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델리스파이스와 같이 PC통신을 통해 모인 부류와 크라잉 넛과 같이 ‘드럭’ 이라는 독특한 커뮤니티에서 생성된 부류, 박현준.강기영과 같이 뮤지션이었던 부류, 황신혜, 어어부 같은 인텔리 부류.
황신혜와 어어부의 음악은 지적인 게임이다. 그들은 미술적인 의미에서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지적인 자가 의식을 갖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이 인텔리였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퍼포먼스는 다른 밴드들에 비해 주목받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두드러져 보였을 수는 있으나 몇 개의 카테고리중 하나인 것이지 ‘인텔리’ 들이 인디씬을 전부 차지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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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상아(V,G) : 음악적인 색깔이나 느낌들을 하나로 잘 어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김남윤(K) : 열심히 하는 것.
- 김규형(B) : 예전에는 때로 곡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있는 한 부분을 음악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그 부분이 참 중요한 것 같다.
- 김상우(D) : 우리가 한평생 살지만 사실 나를 제대로 표현할 기회는 많지 않다.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인 "나"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
- 휘루(해금) : 음악을 위해서는 나 자신이 중요하다. 자의식 같은 부분인데 이건 안으로 품는다고 사라지거나 내던진다고 떨쳐지지 않는다. 남들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이 많다. 자의식의 문제에 접근해 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하다
- 성기완(G,V) : 2가지 정도의 생각을 한다. 음악은 2종류가 있는 것 같다. 황신혜 밴드나 어어부처럼 보여주는 음악과 넘어가는 음악이라고 할까 문을 여는 음악이라고 할까 마치 시인들이 하는 작업처럼. 후자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한가지 있다.
다른 하나는 텍스트화 된 음악들의 맥락에 관한 것이다. 이제 대중음악도 그 데이타 베이스가 많이 누적됐다. 마치 도서관에 꽂힌 빽빽한 책들처럼 텍스트가 된 것이다. 그 텍스트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맥이 느껴지는데 그중 하나가 사이키델릭한 면이다. 촌스러우면서도 절정을 끌어올리며 문을 "확" 여는 듯한 무언가를 지녔다는 것이 우리 대중음악이 가진 하나의 맥락인데 요즘엔 그런 부분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그러한 맥을 살리는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두번째이다.
인터뷰,글/ 김기자 사진/유감독
2003
* 더 자세한 인터뷰 이야기는 http://cafe.daum.net/Indiestory 에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 지금 나오는 음악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꿈꾸는 나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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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