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으로서 마지막 여름 방학이 끝나가던 무렵 어떤 심야 방송 DJ로부터 전설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땐 이 사람의 죽음에 별 관심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헤비메탈과 하드락에 열광하던 핏댕이였기에 틀딱들의 상징인 블루스 기타 연주자 따위 어떻게 되든 알바 아니었다.
뭐??
감옥에서 셔츠로 목 매달아 자살했다구??
하늘이 내린 목숨을 스스로 끊는 나약한 넘들을 경멸하던 10대의 머리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토로할수없는 그의 괴로운 심경 따위 헤아릴수 없었다.
그냥 세상엔 정말 나약한 놈들이 많구 미친 놈들도 많구나 이런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조금 흥미로웠던건 당시 우리반 반장이었다.
반장.....
전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지 못했던 독특한 아이.....
이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학생 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정신이 많이 깨어 있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집회에도 참석하고 이런 저런 계몽 운동도 하구 여러모로 진보적인 녀석이었다.
이런 애들의 대부분이 정형화된 인생관과 사고방식으로 록 음악을 증오하곤 하는데(서양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구) 반장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이론에 따르자면 락은 타인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피부 내면에 뜨뜻하게 흐르고 있는 혈액같은 것이라고 했다.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모든 이의 살점 속에 생생히 흘러다니고 있는 혈액 같은 것.....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인생관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피부 깊숙히 들어가 내면을 들춰보면 모두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본인의 사회적 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본능에 충실하게 된다면 그 어느 누구도 락음악의 매력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나처럼 락 음악에 깊이 몰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락 음악을 애써 부인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반장인데도 불구하고 위험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반동 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교실 보다는 교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는 내 인생의 얼마 되지 않는 안티 히어로중 하나였다.
"걘 반장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학교를 나오지 않아??"
담임 선생님은 항상 우리들을 기만했다.
고등학교 내내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 등교했던 아이를 교무실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감방에 처넣고 선도를 위장한 가혹행위를 해놓구 우리들에겐 그 아이가 학교에 의도적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담임 선생님도 또 다른 희생양이셨다.
그 분 역시 상부의 압력에 억눌려 그런 판단을 내릴수 밖에 없던 당신이 갑갑했을 것이다.
"오래만이야~~"
30여년전 이맘때였다.
고딩으로서 마지막 여름 방학이 끝나가던 무렵 오래만에 반장을 만나 정답게 수다를 떨었다.
"그래~ 잘 지냈어??"
오래만에 본 반장은 언제나처럼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힘들어보였다.
그가 힘든 이유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았다.
잠깐동안의 이런 저런 신변에 관련된 잡설(공부 잘 되어가니?? 어떤 대학 생각하고 있어?? 등등)을 나누다가 문득 그가 먼저 내게 말을 건넸다.
"혹시 어제 전영혁 방송 들었니??"
"웅~ 조금 들었어.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듣다가 잔 것 같은데 ㅋ"
"그럼 그 소식 들었겠네??
로이 부 캐넌의 자살소식....."
"아 그거 ㅋㅋㅋ
응 들었어. 그 미친 눔~~"
잠깐 동안 반장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머금은 회색빛 미소가 그려졌다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하늘이 주신 생명을 지 스스로 끊다니 미친 놈.....
난 그런 놈들 제일 싫어....."
이윽고 반장이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고 입술을 열었다.
"그렇구나.
한 사람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질수 있구나."
"엥??
넌 그 사람 좋아하냐??"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나도 그 사람에 대해서 잘은 몰라.
하지만 그 사람이 연주했던 몇몇 곡들은 확실히 나의 심장을 건드렸어.
나는 그 사람의 죽음이 왠지 슬프더라구."
"아 그래??"
"어제 그 사람 추모곡으로 나온 곡 있잖아??
messiah will come again인가??
그 음악 정말 슬프지 않았니??"
"좀 지루하던데~
그거 들으면서 잔 것 같은데....."
"그랬구나~
난 그 곡 들으니까 눈물이 나던데....."
반장은 로이 부 캐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의 음악과 연주는 확실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느 소년같지 않게 격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여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그는 내가 미처 알수 없었던 인생의 어둡고 습기찬 부분을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했다.
위의 대화는 그가 반장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학교에서 재적 아닌 재적을 당하기 전에 나눈 그나마 긴 이야기중 하나이기에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꽤나 강렬하게 각인되어있다.
고딩 졸업후 그가 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이 부 캐넌의 연주를 들을때면 가려진 시간 속의 그와의 대화가 어렴풋이 떠오르는건 어쩔수 없다.
"그럼 그 소식 들었겠네?? 로이 부 캐넌의 자살소식....."
https://www.youtube.com/watch?v=deeBQZ8Aklc
ROY BUCHANAN - THE MESSIAH WILL COME AGAIN(LIVE 1976)DEDICATE TO ROY BUCHANANSo cooool!!!Love this so much!!!Guitar・Vocals:ROY BUCHANANBass:JOHN HARRISONDrums:BYRD FOSTERKeyboards:MALCOLM LUKENSwww.youtube.com
첫댓글 침울했던 80년대의 정경이 절로 떠오르네요~!!
아련하고 애절했던 구슬픈 시절의 소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