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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클라이머 제프 로우(Jeff Lowe)는 30여 년간 세계 도처의 암벽 루트 700개 이상과 빙벽 루트 3,300개 이상을 초등했고, 프리클라이밍을 주도했으며, 난이도 M8와 M9급 암빙 혼합 루트를 돌파한 위대한 산악인이다.
그는 1950년 9월 13일 미국 유타주의 오그덴에서 출생해 콜로라도주의 리온스에서 성장했다. 여섯살 때 그를 등반에 입문시킨 사람은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그는 일곱 살 때 부친과 함께 미국 그랜드 티톤(Grand Tetons·4,197m)을 등정했고, 15세 때 빙벽 등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16세 때 알프스 아이거(Eiger·3,975m) 북벽의 높이 1,800m의 ‘죽음의 절벽’에 개척된 ‘존 하린 직등 루트’를 등반해냈다.
그는 10대 시절 여름 방학 때마다 미국 와이오밍, 유타 북부,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등지에서 암벽 등반에 몰두했다. 그때 그가 등반한 주요 루트로는 ‘블랙 엘크(5급)’, 길이 6피치의 ‘심 스트레스 코너(5.10, 5.11)’, ‘뉴 뮤직(5.ll)’, 치프 헤드 북동벽의 ‘리스키 비즈니스(5.10, 5.11, 5.11+)’ 등이다. 그는 ‘런-아웃(run-outs, 확보지점 사이의 간격)’이 길고 도전적인 난이도를 지닌 난코스 암벽 루트를 찾아내어 프리클라이밍으로 등반했다.
구식 장비 이용한 브라이들 베일 빙벽 등반으로 명성
1974년 제프 로우는 자일 파트너 마이크 웨이스와 미국 콜로라도주의 텔류라이드 동쪽에 위치한 브라이들 베일(Bridalveil Falls) 빙폭을 프리클라이밍으로 초등, 유명 빙벽 등반가로 급부상했다.
- ▲ 미국 콜로라도주의 고난도 빙벽을 대표하는 브라이들 베일 빙폭을 등반 중인 제프 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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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3급, Water Ice 6’, 높이 122m, 경사가 75~85도에 달하는, ‘신부의 면사포’라는 뜻을 지닌 브라이들 베일 폭포는 여름에는 천둥소리 같은 굉음을 내며 절벽 밑의 밀집된 볼더 위로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폭포다. 폭포 밑에서 굉음을 내는 물기둥을 올려다보면, 곧 물보라로 얼굴이 흠뻑 젖어 버린다. 늦가을부터 폭포 가장자리가 얼어 백색 얼음 날개가 생기기 시작하고, 12월이면 빙폭 전체에 수많은 콜리플라워(cauliflower : 꽃양배추) 또는 샹들리에(chandelier) 형태의 고드름, 그리고 얼음 기둥들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2월 말이나 3월에 빙벽의 얼음이 견고해지며 완전한 빙폭이 형성된다.
1974년은 미국에서 빙폭 등반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었는데도, 제프 로우와 마이크 웨이스는 소용돌이 모양의 브라이들 베일 빙폭의 아름다운 자태에 황홀경에 빠졌다. 그들은 1월 1일 스키를 타고 빙벽 밑으로 접근해 70cm 길이의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구식 취나드 피켈과 사제(私製) 아이스 피톤인 스나그(Snargs)를 휴대하고 불쑥 튀어나온, 75~85도 경사의 잘 깨지는 빙벽으로 프런트포인팅(Front-pointing)을 시작했다.
그들은 위쪽의 오버행 지대에서 피켈이나 스나그를 사용하지 않고, 꽃양배추 형태의 고드름과 얼음 기둥 위에 있는 천연 홀드를 이용하며 프리로 등반하다가 37m 위쪽의 천연 동굴을 확보장소로 활용했다.
다음 오버행 피치는 중간에 돌출한 아이스 레지(ice ledge)를 확보지점으로 이용하며 돌파했다. 그 다음 그들은 빙폭 오른쪽의 기나긴 세 피치 난코스인 수직 필라(pillar)를 돌파하고, 피치 끝의 넓은 천연 동굴을 확보처로 이용했다. 루트는 평범한 경사의 빙벽에서 ‘엑시트 침니(exit chimney)’로 이어졌다. 그들은 불룩 튀어나온 빙벽, 무른 얼음 기둥들, 그리고 수많은 오버행들을 6시간 만에 돌파하고 등정했다.
당시 난코스(난이도 WI 6+) 빙폭의 프리클라이밍 등정은 획기적인 등반으로 평가받았다. 그 시기에 클라이머들이 캐나다로키에서 빙벽에 고정 자일을 설치하며 인공 등반으로 ‘네메시스(Nemesis : 보복의 여신)’를 초등하긴 했지만, 제프 로우 일행의 브라이들 베일 빙폭 자유등반에 비견(比肩)될 수 없었다.
그는 마이크 웨이스와 그해 8월 캐나다로키 마운트 키치너(Mount Kitchner)의 ‘그랜드 중앙 쿨와르(Grand Central Couloir)’를 초등하기도 했다. 이 루트(난이도 V, AI 4, M6 VS)는 대략 1,220m 높이로서, 벽 밑에서 시작된 변형 루트가 쿨와르 밑에서 주 루트와 만난다. 높이 460m 정도의 빙벽이 경사도 60도로 변하며, 위쪽의 좁은 쿨와르(AI 3)로 연결된다. 이 빙벽의 최난 구간(M5)은 강빙의 암빙 혼합 구간에서 시작되어 쿨와르 안쪽의 확보지점이 희박한 다이헤드럴(dihedral, 二面角)을 통과한다. 그 다음 65도 빙벽이 쿨와르의 암벽 부분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좁은 침니, 걸리, 난이도 5.9의 바위 스텝, 그리고 눈처마의 빙벽을 오르니 키치너 정상이 나타났다.
- ▲ 제프 로우가 단독으로 아이거 북벽에 개척한 ‘메타노이아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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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말 마이크 웨이스와 제프 로우는 브라이들 베일 빙폭을 재등했는데, 제프 로우의 동생 그레그가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등반과정을 필름에 담아 주었다.
알래스카의 키스톤 캐니언(Keystone Canyon)은 계곡 양쪽에 수많은 빙벽 루트들이 있어서 ‘빙폭 등반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1975년 제프 로우는 존 웨일랜드, 스코트 두 사람과 이 계곡에 있는 ‘키스톤 그린 스텝스(Keystone Green Steps, 높이 183m, 난이도 4급, WI 5)’를 등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빙폭 왼쪽으로 43m 높이의 첫 피치를 등반했다. 제2피치(WI 4)는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빙폭을 가로질러 뻗고, 제3피치(WI 5)는 길고 가파른 필라 위로 솟아 있었다. 필라 중간에 큰 레지가 있고, 고드름 장막 뒤쪽으로 비박지로 적합한 동굴이 있었다. 세 사람이 빙벽을 등반하자니 등반 속도가 너무 느려서 날이 저물어 가는데도 진척이 미미했다. 그들은 그날 하산했다.
다음날 스코트는 두 사람에게 그 벽의 등반을 양보했다. 제프 로우와 존 웨일랜드는 등반을 재개해 빙벽 장비와 식량이 든 무거운 가방을 끌어 올리며, 세 피치를 연속 등반하고 큰 레지에 도달해 동굴에서 비박했다. 그들은 다음날 제4피치(난이도 WI 5) 오른쪽의 높이 23m 빙벽을 통과했다. 마지막 피치인 제6피치는 경사도 낮은 빙벽을 통과하며, 높이 18m의 절벽으로 이어졌고, 그 위쪽에 정상이 있었다. 그들은 8시간 만에 정상을 밟았다.
클라이밍만큼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융합되는 스포츠는 없다
1978년, 제프 로우, 마이크 웨이스, 헨리 바버는 미국 ABC 방송국의 후원으로 브라이들 베일 빙벽을 세 번째로 등정했다. 그해 말 제프 로우는 이 빙벽을 단독 프리클라이밍으로 등정하는 위업을 달성했고, 그 등정기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잡지에 특집기사로 게재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제프 로우는 1979년 자신의 저서 <빙벽 체험기(Ice Experience)>를 발간했다. 이 책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특집기사로 소개된 후, 그는 방송 프로그램 ‘머브 그리핀’과 ‘굿 모닝 아메리카’에 연속 출연해 일약, ‘빙벽 등반의 달인’이란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제프 로우는 그 세평(世評)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하면서, 섭섭한 감정을 피력했다.
- ▲ 제프 로우의 여유로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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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신문, 잡지 등 언론 매체를 통해서 내가 빙폭 등반에 능숙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빙폭 등반이 생소한 스포츠로 여겨지던 시절에 내가 빙폭을 등정해 언론의 집중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 당시 빙벽 등반보다는 암벽 등반에 훨씬 더 능숙했다. 비록 내가 빙벽 등반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도 나는 빙벽 등반보다는 암벽 등반 쪽에 관심이 더 많이 쏠린다. 내가 진정한 클라이밍으로 간주하는 것은 암벽을 프리 클라이밍으로 등반하는 것이다.”
제프 로우는 30년 이상 등반과 스키와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스포츠를 배제한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스키나 등산을 시작했다. 이 스포츠는 나에게 생리적으로 매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러 가지 스포츠를 시도해 보았지만 클라이밍만큼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이 활기차고, 융합되는 스포츠는 발견하지 못했다. 빙벽에 하나의 루트를 개척한 후, 그 루트를 명명하는 행위 자체도 다른 사람들의 등반에 자극제가 되기 때문에 커다란 만족감을 준다. 클라이밍의 대상지를 찾아 아시아, 남미, 유럽 등 세계 도처를 여행해야 하기 때문에 클라이밍은 모험도 병행된다.
나는 일단 입산하면 정말 안락한 기분이 든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질적으로 고독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편이다. 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자연의 방대한 실체 앞에서 가장 웅대한 도시, 즉 인류의 가장 웅대한 건축물도 아주 초라해 보인다. 만물의 전체 구조 속에서 문명도 그 초라한 본색을 드러내고, 그 존재가치도 하찮게 보인다. 산 속에 들어가면 인간의 생과 사(死)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는 만물 중에서 인류만이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신념에 동조하지 않는다.”
제프 로우의 사색은 ‘창조주가 만물 중에서 인간을 가장 소중히 여겨 제일 먼저 창조했다’는 서양의 기독교적 사상에서 벗어나, 동양인의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예로부터 동양의 도가(道家)들도 “인간의 삶과 죽음은 같다(生死一如)”고 주장했다. 오랜 세월 동안 묘향산과 금강산에서 수도생활을 했던, 우리나라의 명승 서산대사도 불자(佛子)의 입장이긴 하지만, “만국도성(萬國都城 : 인류의 문명)은 개미집 같고(왜소하며 쉽게 파괴되고), 천가(千家 : 수많은)의 호걸(영웅)들도 초파리에 불과하지만(쉽게 사라지지만), 밝은 달빛과 끝없는 솔바람 소리의 운치(韻致)는 변함없다(자연은 영원하다)”고 한가로운 도인(道人)의 경지(境地)를 피력한 바 있다.
- ▲ 프랑스의 ‘탐 뒤 락’ 빙탑을 등반 중인 제프 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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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빙벽 등반사에 길이 남을 콩데 북벽 등반
1979년 제프 로우는 네팔 아마다블람 남벽을 단독으로 등정하는 위업을 달성했고, 1982년 미국의 유명 클라이머 데이비드 브리시어스(David Breshears)와 네팔의 콩데(Kwangde·6,194m) 북벽(높이 1,372m)에 도전해 11월 28일부터 12월 2일 사이에 이 거대한 빙벽을 초등하는 데에 성공했다. 쿰부히말의 훈고(Hungo) 마을 위쪽에 위치한 콩테 북벽의 빙벽은 보일러 강판처럼 밀도가 높고 가파른 화강암 석판 위에 눈이 얼어붙어 형성된 빙벽으로, 클라이머가 피켈로 빙벽을 내려치자마자 도자기처럼 얼음이 잘 깨져나갔다. 평균 경사는 65도였고, 최고 경사는 90도나 되었다. 이 빙벽은 겨울철에만 약 1개월간 한시적으로 형성되는 계절적인 벽이다.
빙벽 하단의 초반부 550m는 크랙이 전혀 없는 암벽 위에 얼어붙어, 들떠 있는 상태의 얇고 삐걱거리는 약한 빙벽이었다. 이 빙벽에서는 동계에 미국 요세미티의 엘캐피탄(El Capitan)에 형성되는 빙벽처럼 확보지점을 찾아내기가 수월하지 않았고, 확보 지점의 간격이 무려 60m 이상이 되는 구간이 여럿 있어서 등반 중 추락을 경계해야 했다. 게다가 곳곳에서 가루 눈사태가 쏟아져 내려 등반의 위험 부담이 컸다.
그들은 높이 152m의 피치들을 돌파할 때, 확보용으로 100m 길이의 로프 두 동을 연결해 사용했다. 그들은 밤에 각자 눈 계단에 소형 텐트를 매달고 비박했다. 그들이 제1 비박지를 설치할 때까지 가슴을 졸이며 경사도 80도, 85도 그리고 수직 빙벽(난이도 WI 5)으로 등반을 진행했다. 80도 빙벽을 돌파한 이후 경사가 조금 누그러졌으나, 얇고 단단하지 못한 빙벽 상태는 여전히 위험 요소로 작용했다.
스노 레지가 중앙 록밴드 하부의 왼쪽으로 돌아, 다시 오른쪽으로 122m 뻗어 올라 상부의 빙벽과 연결되었다. 그들은 이곳에 제2비박지를 설치했다. 최난 코스인 기나긴 수직 빙벽(난이도 WI 6 VS)이 중앙 록밴드의 가장 가파른 절벽 위로 뻗어 올랐다. 그들은 좁고 가파른 걸리와 침니를 오르고, 뱃머리를 방불케 하는 검은 암벽에 도달, 그곳에 해먹(hammock : 그물 침대)을 매달고 세 번째 비박을 했다. 가파른 빙폭 등반의 난관도 버거운 판인데, 거기에 강풍, 혹한, 대기 속의 저산소 등, 히말라야 고산 등반의 난관이 추가되어, 이 빙벽의 등반은 지옥의 고통을 연상시켰다.
최종 빙벽(난이도 WI 3, WI 5)이 경사도 50도에서 시작해 85도 급경사로 변하며 북동릉까지 솟아올랐다. 그들은 강풍이 휘몰아치는 북동릉에 도달해 오래된 눈처마의 단단한 빙벽에 어렵사리 얼음 동굴을 파고, 그 속에서 네 번째 비박을 했다. 동굴의 높이는 관(棺)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낮았다. 밤새 강풍이 얼음 동굴을 날려 보낼 태세로 세차게 휘몰아쳤지만, 그들은 다음날 아침 등정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