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내용 소개》거미와 불가사리 1/3
스페인의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는 1519년 밀림 속에서 아스텍제국
의 수도 테오치티틀란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미개한 원시인들을 만날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눈앞에 고도로 발달된
문명 세계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도로는 넓었고, 수로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신전과 피라미드의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인구는 1500만 명을 넘었고, 고유한 언어와 발달된 달력, 중앙통치
기구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기에 주눅들 코르테스가 아니었다.
그는 스페인 군대가 몽땅 다 들어가도 될 만큼 큰 궁전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아스텍 황제 몬테주마 2세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금을 전부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겠다.”
코르테스 같은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몬테주마 2세는 그가 신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자신의 금을 전부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몬테주마 2세를 살해한 후 군대를 동원해 테노치티틀란을 포위했다.
그리곤 식품 반입을 차단했다.
그 결과 80일 만에 24만 명의 주민이 굶어죽었다.
그리고 2년 뒤 아스텍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승리의 기세를 몰아 스페인군은 북으로 진격해 아파치족과 전투를 벌
였다. 그런데 그 막강한 스페인군이 아파치족 앞에선 힘없이 무너졌다.
그 뒤로 2세기 동안 이어진 아파치족과의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계속
패했다.
거대제국 아즈텍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 반면 미개한 아파치족은 강력
한 스페인군과 싸워서 매번 이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이 책 제목 <거미와 불가사리>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리 크고 민첩한 거미라도 한번 잘려나간 부위는 결코 재생되지 않는다.
머리가 잘리면 아예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
하지만 불가사리는 그렇지 않다. 따로 머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신체부위라도 재생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다리 한 쪽을 자르면 잘린 부분에서 새로운 다리가 생겨난다.
링크키아 불가사리의 경우 다리 한 조각에서 전체가 복제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아즈텍 제국은 거미고, 아파치족은 불가사리였다.
아즈텍에서는 모든 권력이 황제인 몬테주마 2세에게 집중돼 있었다.
따라서 그가 죽자 거대한 제국이 순식간에 몰락했다.
아파치족은 정치권력이 분산돼 있었고, 중앙집권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문화인류학자 톰 네빈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파치족에게는 ‘난탄’이라는 영적․문화적 지도자가 있었다.
난탄은 모범을 보임으로써 부족을 이끌었고 강제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부족의 구성원들이 난탄을 따른 것은 스스로 원해서였지 의무
때문이 아니었다. 아파치족은 분권화된 사회 특징들 덕분에 중앙집권화
된 사회였다면 당연히 무너졌을 만한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다. 아파치족은 스페인군의 공격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그
공격으로 더욱 강해졌다. 스페인군이 공격하면 아파치족은 더욱 더 분권
화되었고 정복하기가 점점 더 어려운 상대가 돼갔다.”
여기서 중앙집권화와 분권화라는 상반된 두 제도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중앙집권화된 조직은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책임을 맡은 리더가 확실하게 존재하고, 결정이 이뤄지는
장소가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톰 네빈스는 이런 유형을 ‘강제형 조직’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리더가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반면 분권화된 조직은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여기에는 확실한 리더도, 위계체계도, 중앙본부도 없다.
리더가 있다 해도 사람들에게 매우 제한된 권한만을 행사할 뿐이다.
분권화된 조직에서 리더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모범을 보여서 이끌어가는 것이다.
네빈스는 이를 ‘개방형 조직’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결정
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분권화된 체제에도 규칙과 규범이
있지만 어느 한 사람이 그를 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이 모든 사람과
지역에 분산된다.
오리 브라프먼․로드 벡스트롬 《퍼온글>, 리더스북,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