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빨리 좀 와보세요~"
거실에서 오랫만에 동생과 뭘 하는지 화기애애하게 놀고 있던 아들이 무슨 큰 일 난 듯 나를 부른다.
놀라 나가보니 늘 구박하는 동생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호들갑 떤다.
"엄마~ 글쎄 얘가 완전 베토벤이예요.
글쎄 내가 귀공이보고 눈 감고 있으라 하고 아무거나 실로폰으로 띵똥땡 치고 무슨 음인지 알아맞혀 보랬더니
하나도 안 틀리고 다 맞히는 거 있죠. 너무 신기해요~"
그러더니 내 앞에서 재연해 보이는데 귀공이는 진짜 신기하게 정확한 계이름을 찾아낸다.
언니 고 3이던 작년. 귀공이는 언니가 10년 레슨 받던 피아노 선생님께 레슨을 받기 시작했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서 귀공이 피아노 치기는 일시중지 되었었다.
형식적으로는 언니 시험 얼마 안 남았으니 집안에 소음을 줄이자는 의도였지만
고3엄마로 해주는 거도 없이 마음만 바쁜 엄마가
피아노 숙제 하는 거 신경쓰기 시간맞춰 레슨하는 선생님 댁으로 귀공이를 데려다 주기등이 신경쓰였던 이유도 있었다.
언니 입학하고 올 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귀공이는 다시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가끔 선생님이 "신동하나 났어요. 막둥이 진짜 날 나으셨어요. 음감이 보통이 아니예요" 말씀하실 때
난 늦게 막둥이 하나 낳고 야무지게 뒷바라지도 못하면서 일까지 가져 항상 허둥지둥 하는 날 위로하는 말씀이라 여겼었다.
귀공이는 언니처럼 선생님을 따르며 즐겁게 피아노를 배워갔고
난 식탁옆 피아노에 귀공이를 앉히고 경쾌한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식사준비를 하면서
12년 전 큰 딸과의 행복한 순간들이 마치 복제되고 있는 듯 느끼곤 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선생님에게 슬픈 일이 생겼다.
건강상 문제가 생겨 레슨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잘 키워보려 했는데 미안하다시며 남은 기간의 레슨비를 돌려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귀공이의 경우는 피아노 학원 보다는 개인레슨을 권한다시며 가장 좋은 건 언니가 해주는 거라 하셨다.
한창 피아노에 재미가 붙어있고 또 엄마처럼 다정한 선생님께 정이들어 있던 귀공이는
선생님과 이별하게 되니 슬프다며 울먹거렸다.
대학생 딸에게 얘기를 하니 우선 선생님의 건강을 걱정하며 놀라서 펄쩍 뛴다.
그리고 레슨은 걱정말라며 자기가 해주겠다고 한다.
딸의 피아노 실력은 내가 우울할 때 최고의 명약이 되어줄 정도로 놀랍다.
다른 친구들 영어학원 수학학원 다닐때도 꿋꿋이 흔들림없이 중3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전공을 할 거도 아니면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아이와 엄마를 주변에선 이상하게 보았지만
말릴 이유가 없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넘쳐났고 피아노 학원을 다녀도 공부를 잘했고
무엇보다 피아노를 치는 것을 행복해 했으니까..
큰 딸이 동생 레슨 하는 폼을 보면서 웃었다.
꼬박꼬박 자기를 가리키며 선생님이라고 동생에게 말한다.
귀공이도 언니라고 말하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내가 옛날 저를 가르칠 때 엄마라고 하지 말고 꼭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한 거 처럼.
어제 큰 딸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나갔는데 레슨하는 날이라고 굳이 일찍 들어와 귀공이를 부른다.
피아노 숙제 한 거 펼치자 숙제 잘해 놓은 착한 어린이라고 칭찬 한마디 하고 레슨을 시작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부른다.
"귀공이 어머니~ 지난 주 동요 "화가"는 다 배웠는데 준비가 안되셨네요~"
"아~ 잠깐만요~ " 나는 급히 준비해둔 다음 노래 ' 이렇게 살아가래요' 악보를 들고 갖다 주었다.
기본 교재는 선생님이 알아서 나가시고 새로운 동요 하나씩을 같이 가르쳐 달라고 주문했었다.
그리고 내가 부르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동요 순서대로 악보를 마련해 주었다.
귀공이 반주에 맞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다.
엄마의 노래반주를 해주며 귀공이는 성취감을 느낄 거고 또 자연스럽게 피아노 연습이 될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던 남편이
"선생님이 알아서 가르치지 엄마가 이거 가르쳐달라 저거 가르쳐달라 주문하는 게 어딨냐?" 한다.
엄마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자칫하면 교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이론을 나도 알고 있는 터라
내 행동이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 가만 있는데 딸이 아빠를 향해 명랑한 목소리로 재치있게 말한다.
"귀공이 아버님~ 요즘은요~좋은 교사는 학부모와 충분히 상의해서 학습의 방향을 결정하는 거라구요~~"
고3시절에도 동요 좋아하는 엄마의 신호 떨어질 때마다 반주를 해주었던는 아이..
이제 저는 훌쩍 대학생으로 자라 제 할 일도 많아지고 엄마가 원할 때 엄마곁에 있어줄 수 없어서
새로운 꼬마 반주자 만들어 엄마곁에 두게 하려는 양인지
열심히 귀공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첫댓글 그 딸님도 "훌륭"한 기미가 충분하게 보이구 귀공이도 "훌륭"해질 기미가 보이네요. 대단! 하십다.
부럽습네다~~~ 이삔 언니도 두고 효자선생님도 두구요 ㅎㅎㅎ
시내님 글 보면서..제 후배 딸아이가 생각나네요..엄마 뱃속에 있을때부터 피아노 소릴 듣더니만..ㅎㅎ 지금 초딩인데두 못치는게 없다구 자랑이에요..부럽습니다..
귀공이 아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대단히 진지하신 샘이시네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