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차 염장이지만 유 대표도 영화 속 인물들처럼 ‘묫바람’이 나기도 했다. 그는 “눈 감고 자려고 하면 누군가 위에서 쳐다보는 것 같았다. 꽤 선명했다”고 했다.
며칠 동안 이런 현상이 이어지자 아는 스님을 찾아갔더니 “야 인마, 염장이가 뭐 하는 거야. 네가 집착하니까 영이 못 떠나는 것”이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염을 마친 뒤 유 대표가 “아저씨 덕분에 전체 과정을 다 배우게 됐다. 좋은 데 가시라”고 했는데, 계속 고인을 생각한 탓에 고인이 이승을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다음부터는 염할 때도 그게 신조가 됐다”며 “그 순간만 열심히 살고 염 끝나고 나오면서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몇 천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짬이 나면 나도 영화<파묘>를 볼 요량이다. 하지만 당장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다.
어찌 보면 풍수서이기도하고 조선 최고의 지리서이기도 한 것이 이중환의 <택리지>다. 이제 완역본도 쉽사리 찾아 볼 수가 있다. 우리 고유의 공간개념이 궁금해 몇 회독을 한 바 있다. 한 가지 매우 특이한 점이 있다.
단 한 줄, 단 한 마디도 ‘묫자리’말이 없다. 살피건대 당대의 온갖 풍수서와 비기도참서를 망라했음이 분명함에도 어찌 단 한마디도 좋은 묫자리 얘기가 없단 말인가.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래에 있으리라 본다. 아래는 신정일선생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실학자 박제가는 이렇게 말한다.
“옛 글에 이르기를 상고에는 묘를 수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저 땅 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땅 속 일을 다 의심하는데, 천하에 안전한 무덤이 어찌 있으리오.” 그리고 “아비가 옥에 갇혀 온갖 악형을 당하여 몸에 성한 구석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밖에 있는 자식들에게는 종기 하나 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어찌 부모의 유골이 받은 땅 기운이 자식들에게 전해진다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을 믿을 수 있겠느냐…… 중국의 들녘을 보면 모두 다 밭에다가 장사를 지냈는데 한없이 넓은 들에 봉긋봉긋한 것이 서로 비슷하며, 당초부터 청룡 백호며 사격(沙格) 진혈(眞穴) 따위가 다를 것이 없다. 시험 삼아 우리나라 지사(地師)에게 이곳에 와서 묘 자리를 잡게 한다면 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서 평소에 공부하였던 것을 바꿔야 할 것이니 장사에 대하여 한 가지로서만 논할 수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풍수설에 따라 묘 자리를 잡느라 법석을 떤다. 묘 자리를 잘 잡아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매장이 아니고 수장(水葬), 화장(火葬), 조장(鳥葬), 현장(懸葬 시신을 매달아 놓는 것)을 하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곳에도 임금과 신하가 있다. 까닭에 오래 살고 일찍 죽음과 집안이 흥하고 망함과 팔자가 궁하고 좋음과, 살림이 가난하고 부함은 천도의 자연이고, 사람의 행동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장사한 터의 좋고 나쁨에 관련시켜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학의>
이중환의 <택리지>는 땅을 빌어 당대 조선사회의 모순을 질타한 사회비판서다. 동시에 ‘정치적’ 텍스트다. 그것은 근대 합리주의 정신에 터해 있는 바, 묫자리 즉 음택 풍수가 근거해 있는 소위 ‘동기감응론’을 단호히 배격한 것이다. 이러한 내생적 합리주의 전통에서 박제가 역시 음택풍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후기의 사회적 위기는 일종의 미신적 기복종교의 일환으로 음택풍수와 접맥되어 이것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되고 일제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만에 하나 묘터와 후손의 ‘발복’사이 인과가 성립된다면 오늘날 99.9999%의 한국 보통사람들은 흉화를 입어 이 나라는 존속치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 하면 재벌을 비롯 가진 자들이 북한땅까지 포함 한반도의 길지와 명당을 모조리 싹쓸이 할 것이 자명하고, 재벌과의 묫자리 투쟁에서 패배할 것이 정해진 일반인들은 그렇게 소멸할 것이 아닌가.
이 지점에서 내가 자주읽는 프랑스 맑시스트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을 권하고 싶다. 그의 명제는 간명하다. “공간은 정치적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의 메세지 역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공간 즉 땅은 ‘정치적’이다! 이중환의 결론은 매우 비관적이다. 조선에 사대부가 ‘살만한 땅’은 없다. 정치가 당파로 얼룩져 재생의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런 땅에 죽어 육신이 묻혀 후손이 화를 피해 자자손손 영화를 누릴 그럴 명당이 무애 의미가 있는가.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죽어 묻힐 땅을 길지니 악지니 따지는 것은 18세기 조선의 지식인 이중환의 눈높이에서 보더라도 한낮 미신일 뿐이다. 지금은 21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