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소년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린,
아찔하고 다정한 소년들의 세계
수능 전날까지 축구를 하다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꾸지람을 듣던 학생은 경찰관이 되어 학교에 순찰을 오기도 하고, 셀프 주유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나에게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제가 아버지 주유소 이어받아서 하고 있습니다.”라며 능숙하게 주유를 해 주고 명함을 건네는 사업가로 성장한 학생도 있다. 삶의 모양이 참 여러 가지인데 학창 시절로 연결해 보면 왜 그렇게 걱정했나 싶게 자기만큼씩 학생들은 잘살고 있었다. 과도한 경쟁이 있고 서열화되는 성적과 입시라는 결과가 중요하기도 한 학교지만 곳곳에 명랑함이 배어 있던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교사로 존재했는지 헤아려 봤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에 여학생들의 섬세한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던 내가 교사가 되고 어쩌다 남고에 발령이 나서 남고생들과 지내는 동안 나의 그런 둔감함이 평온함으로 전환되는 일은 꽤 재밌는 일이었다. 그런데 곳곳에서 발견되는 섬세하고 자상한 소년들의 모습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구나. 나 또한 섬세하지 못한 여성이 아닌 그저 섬세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섬세하고 다정한 시선을 남고에서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보던 글귀 중에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이 투명한 밤하늘만큼이나 명료한 기준이며 그 글은 잘 쓴 글이라고 했는데, 나는 소년의 마음으로 쓰는 소년의 글과 말을 보고 들으며 십 여 년을 산 셈이다. 그 글과 말은 어떤 것인지 상상하며 《아무튼 남고》이야기를 펼치시면 좋겠다.
어쩌면 이 안에 있는 한 명 한 명의 모습이 나의 모습, 누군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학교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초능력과 유머로도 수습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여전히 학교는 자기 길을 향해 전진한다. 서로를 축소하기에 급급한 사회 앞에서 학교에게, 학생에게, 교사들에게 다정한 모습, 다정한 사회를 기대한다. ‘친절함이 이긴다’는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듯이 다정한 것이 이기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아무튼 남고》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가면 좋겠다.
- 에필로그 중에서
어쩌다 남고에서 고군분투하며 생존한 여교사 이야기
《아무튼 남고》에는 맥주 한잔하며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남학생들만의 이야기, 어쩌다 남고에서 여교사가 고군분투하며 생존한 이야기, 그리고 남성 청소년들의 인간미 있는, 특별하지만 보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남고생들의 희로애락을 여교사의 시선으로 관찰한 재미있고 울림 있는 이야기도 곳곳에 있다. 쉽사리 대상화되거나 희화화되어 상처받기도 하는 소년들에게 ‘나’답게 살라는 진부하고 무책임한 충고 대신, 그들의 고유한 잠재력을 끌어내려는 저자의 온정 어린 시선과 언어는 사회의 억압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소년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줄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성인과 아름다운 청소년이 만나 함께 꾸는 꿈을 지켜보는 감동의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 추천의 글
《아무튼 남고》는 읽는 이에 따라 새롭게 읽힌다. 교육자들에게는 좋은 참고서로, 일반인들에게는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에세이로. 하지만 소년의 마음으로 쓰인 소년의 글은 누구보다도 소년들에게 절실하다. 타자화의 단어나 이미지에 가두기 좋아하는 어른들은 소년들을 ‘피터 팬’으로 낭만화하거나 ‘급식충’으로 비하한다. 그 속에서 소년들은 상처받고 상처를 준다. 저자는 그런 소년들에게 그저 꿈을 좇아 ‘나’답게 살라는 진부하고 무책임한 충고 대신 그들의 고유한 잠재력을 끌어내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 과정은 일종의 실험 같은데, 물론 실험실은 교실이고 실험 도구는 온정 어린 시선과 언어다. 이 책이 사회의 억압과 오해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소년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아무튼, 남고생이었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 강영아 선생님의 제자 우민재
남성 청소년 또한 각자의 지향과 성향에 따라 자기 방식의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종종 “남고생들이란!”이라는 짧고 성의 없는 말로 이들을 뭉툭한 덩어리로 인식하고 만다. 《아무튼 남고》에 등장하는 남성 청소년들은 누구도 대상화되거나 희화화되지 않는다. 학생 각자가 가진 개별성과 깊은 고민, 아름다운 지향을 접하는 일이 즐겁고 놀라웠다.
강영아 교사의 문장은 학생 각각을 독자의 눈앞에 생생히 일으켜 세운다. 여성 청소년들을 향한 오래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부서뜨리는 책들이 줄을 이어 출간되는 근래의 현상이 반가우면서도, 남성 청소년들이 소외되는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주제넘은 염려를 접어 두기로 했다. 아름다운 성인, 아름다운 청소년이 만나 함께 꾸는 꿈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 벅차고 황홀했다.
-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 물꼬방 교사 김영희
■ 저자
강영아
오현고등학교 사회 교사. 청소년과 노동,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십 대들의 문해력에 대해 재밌게 연구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이다. 특히, 지적 재미와 의미가 어떻게 자발성과 심층성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피고 있다.
《주제와 감수성이 살아나는 공감 수업》, 《그림책으로 만난 어린이 세계》를 썼다.
* 이메일: kamomee25@gmail.com
* 인스타그램: @young.a_kang
■ 책 속으로
O중학교 짱이었던 학생과 J중학교 짱이었던 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같은 반이 되었다. 모두 우리 반. 입학식 첫날 서로를 알아본 짱들은 종례 시간이 끝나자마자 학교 뒷산으로 갔다. 각 짱들을 보위하는 친구들도 삼삼오오 학교 뒷산으로 모였고 그들은 일렬로 서서 서로를 마주 봤다. 일제히 서로를 째려보며 어느 쪽에서 먼저 눈을 내리까는지 지켜봤지만 모두 팽팽한 시선 처리를 했고 드디어 두 짱들은 쌈질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싸움은 금세 끝났고 한 방에 나가떨어진 J중학교 짱은 패배를 인정할 새도 없이 얼굴을 두들겨 맞아 코피가 많이 흘렀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서둘러 택시를 불러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삼성정형외과로 갔다. 학생들의 진술을 들으며 나는 그런 짱님 둘을 학급에 모시고 일 년을 지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슬픈 초임 선생님이 되고 있었다. 내가 목도한 적자생존의 경험이 계속되는 나날들이었다. 매일 갱신되는 남학생들 쌈질의 나날들…….
― 「심신 단련」 중에서
상처받는 일이 교사의 일이겠거니 싶을 정도로 교사는 많은 곳에서 상처를 받는다. 지금이야 상처받는 일에 무뎌지는 감각이 생겨 이젠 별수 없잖아, 다 그런 거잖아 하며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초임 시절 매일, 번번이 상처받았던 나는 여러 일에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책의 일화로 내가 느낀 것은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과 ‘그 행위’가 더 도드라질 뿐, 곁에서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의 손길이 더 많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혼자 감내하는 일이 더 적어졌다.
― 「오해와 이해」 중에서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관련된 예시를 생각하고 일부러 재밌는 유머도 넣어서 수업 전개를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서 마음이 작아진 적도 꽤 있었다. 가끔 다른 학교 공개수업에 참여해 학생들의 고조된 반응을 보면서 피드백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한마디로 남고생들을 웃기기는 어렵다.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웃기를 여러 번, 그러다 보면 어쩌다 가끔 학생들이 웃어 주기도 한다. 상담할 때도 비슷한 맥락이 있는데 지각을 하거나 야간자율학습에 무단으로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교실 청소 벌칙 대신 상담을 하겠다고 하면 현저히 무단으로 행하는 활동들이 줄어들었다.
―「남고생들의 문장」 중에서
사피엔스 클럽도 결국 책이라는 세계의 본질성보다는 입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하고 자신의 진로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수순을 밟게 되었을 텐데, 나는 여러 가지를 저울질하는 학생들의 신중함에 애잔함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만난 학생들의 표정에서 비장함도 느껴졌고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을 위해 형식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의 마음도 보였다. 입시라는 거대한 문을 통과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순수한 독서 세계로의 진입은 어쩌면 나만의 헛된 기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애매한 첫 만남이었다.
― 「배움의 감각」 중에서
살살 돌아가는 뱅뱅이에 앉아 까만 하늘을 바라보는데 신선생님이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눈물을 삼키려고 고개를 젖히는 신선생님을 따라 이선생님도 운다. 각자 다른 이유의 눈물인데 나는 다 알 것 같은 눈물이었다. 지금 나의 메마른 눈물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기보다는 시절을 관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아지트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 「낯설지만 괜찮을 경험」 중에서
■ 차례
프롤로그 Lovelylove
심신 단련
전국 짱님들은 모두 어디에
우유갑과 초코송이
맨시티 어웨이 vs 한국 국가대표 어웨이
우리가 졌습니까
오해와 이해
82년생 김지영과 메갈 선생님
비단잉어에 대하여
아메바와 통기타
먼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남고생들의 문장
혁명과 폭동 사이
콜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
인생은 ‘먹을 복’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폐허가 되어 가는데 우리는 춤을 추네
남고생들에게 말 걸기
배움의 감각
사피엔스 클럽의 탄생
너희들이 만날 시간을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줘
천진한 울음
어깨너머로 배우기
네잎클로버와 여름의 맛
낯설지만 괜찮을 경험
문과 여자의 과학 공부
앞구르기는 못했지만
순대 집 옆 꺼리실
누군가의 아지트
에필로그 소년의 마음으로 쓰는 소년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