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세계 ' 내 인생을 바꾼 한 잔의 차"
앞으로 섭외할 분들을 위한 글쓰기 가이드 입니다
그냥 그렇다라고 여기시면 될듯하나, 앞으로는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께 섭외를 해야 할거 같습니다.
글을 원하는 양식에 맞춰서 써 보는 것도 하나의 훈련이라 여깁니다.
워드로 A4 용지 3~4 페이지, 남의 글 인용과 타인의 시 인용은 안됩니다. 사진도 허락 안된 타인의 사진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자기를 표현할 '자기 사진 1장' 과, '자신의 차생활을 표현할 이미지 사진 3~4매 정도 준비' 하시면, 거기서 가장 잘 맞는 사진을 고를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소개할 간략한 이력 - 이건 본인 편의대로 해야할 듯 합니다. 그러니 자기를 가장 잘 드러낼 이력 한 두가지 정도면 될듯 합니다. 그리고 닉네임만 원하시면 닉네임만 표기될 것이며, 성함도 같이 원하시면 성함 포함해서 표기될 것입니다 주소와 함께 아란도 e-메일로 보내시면 됩니다. 섭외시에 글을 쓰시겠다고 하신 분들에게는 다시 이 양식을 복사해서 보내드립니다.
茶가 과연 자기 인생을 바꾸는가?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어느 날 문득 '그 어떤 것' 과의 조우에서, 자신은 무엇을 보게 되는가?
그것은 평범하고 느슨한 일상을 강타할 강렬한 느낌의 이미지이다. 그 뇌가 강타 당해 전해져 오는 느낌이 바로 임팩트 이다. 충격이란, 강렬한 이미지 효과를 준다. 자신이 그 강렬함을 전달 받으면, 문화 충격이거나 혹은 정신적 쇼크다.
차는 정적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풍겨내는 이미지가 정적이기 때문이다. 차는 과연 고요한 것인가? 나는 고요한 것인가? 이 둘은 절대로 고요하지 않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차가 정적이라 여겨지는 이유는? 계속 움직이는 둘을 한 공간에 붙들어 놓기 위함이다. 분위기 조성의 필요성 때문이다. 차는 그 분위기로서 서로를 유도하고 있다. 공간의 설정이나 분위기는 모두 만남을 위한 것이다. 1, 하나를 만들어야 대화가 되기 때문이다. 뭔가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하나가 되지 못하고 중구난방 자기소개식으로 흩어져 버리면...? 차는 흩어져 버린다. 1 이 되지 못하면 깨달음도 없다. 차는 2를 1로 만드는 과정이다. 모임도 그와 같다. 세상의 모든 일이 되는 것들은 다 이 과정을 거친다. 1 이 되지 못할때 사람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자기 글쓰기도 이와 같다. 여지저기 산재하게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한 편의 글이 된다. 질서를 부여하는 것, 하나의 축에 연동되어 제어가 가능한 것. 그럴때 사람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미학은 딱! 하나여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이다. 그것을 찾아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에 집중 시키는 많은 장치들이 있다. 그러나 그 장치들은 도드라지지 않아야 한다.
한 잔의 차를 조상들은 풍류로 접근 하였다. 그러나 더 위로 올라가면 한 잔의 차는 철학이자 죽비였다. 문화로서의 차가 있고 철학으로서의 차가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왜? 시대가 원하기 때문이다. 풍류로서의 차는 그 깊이를 쉬이 현실에 가져 올 수 없다. 그저 자신에 맞게 자신이 원하는대로 각색할 뿐이어서 질서가 없다. 한데 쌓아내기가 곤란하다. 이러한 것은 결과치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절제가 무엇인지 쉽사리 알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디테일을 안다는 것은 심플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과 같다. 심플을 안다는 것은 삶이 그저 물건 정리정돈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관계와 관계유지와 관계유지의 기본 매너를 안다는 것과 같다. 차를 삶으로 가져 온다는 것은 자기소개를 과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현시대에서 차는 문화이자 교양이다. 이 둘을 잇는 것은 철학이다. 철학은 결과보다 원인 - 시작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차가 어떻게 우리의 정신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물질이 비물질에 미치는 영향, 비물질이 물질에 미치는 영향...이 상호관계의 매커니즘을 이 시대에서는 알아야 한다. 그것은 미학이기 때문이다. 현시대는 미학을 알아야만 한다. 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앞으로 우리는 그것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보인다. 왜? 미학이어야만 하는지를....!!
차는 적재적소에서 그 자리에 어울림을 만들어 몰입하게 하는 것과 같다. 관계에서 지나치게 자기소개 하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자기만 사용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원이 피보나치 수열을 그리다가, 다시 하나의 원을 터치하면 다시 하나의 원이 피보나치 수열을 그리며 또 하나의 시작점을 터치한다. 그렇게 관계란 모임이란 미학을 만들어 가야하며 표현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원이 전체로 이어질때 다시 그 원은 바깥으로 뻗어가고 있다. 동력을 외부에서 끌어들일수 있도록, 빈 여백을 장구하게 남기는 것이다.
차맛어때는, 모든 회원들이 자기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자기 글만 올리는 게시판을 운영해 왔다. 한 줄을 쓰더라도 ...이긴 하였지만, 거기서 자기 글쓰기를 통하여 칼럼이든, 에세이든, 그 밖의 어떠한 글쓰기이든... 자기의 점진적 확장을 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자기 글을 엮어낼 줄 아는, 자기 얘기를 엮어낼 줄 아는 것은 어느정도 훈련이 되어야 한다. 하나로 엮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성이다. 글이 엮어진다는 것..그 자체가 이미 논리(틀 -형식)이다. 그 논리안에 또 다는 내용이란 논리가 끼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 내용은 모두 하나를 중심으로 모아져야 한다. 자기 주장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논리이다.
많은 에너지가 모여도 무엇인가 핵을 이룰만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에너지가 모이도록 무엇인가가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면(챘다면...). 사람은 스스로 성장해 주어야 한다. 자기 연마는 자기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된 사람을 세상이 골라서 쓰게 된다(물론 사회가 엉망이면 이도 잘 되지 않겠지만...). 자신이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 왜? 인간의 존엄은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중심과의 연결만이 인간을 비참과 좌절에서 건져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중심이 어디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디일까...? 이걸 찾는 것이 미학을 알아가는 것이다.
차계에 기존에 글쓰는 분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글쟁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무엇인가가 될려면 글이 받쳐 주어야 한다. 인터넷도 한 때 논객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논객의 시대는 가고 자기 글쓰기가 대세가 되었다. 사람은 한 번이라도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글을 써 보아야 글이 가지는 힘을 알게 된다.(이건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압박과 무게를 자기 스스로 버텨내야 한다. 글은 용기이자 도전이다. 글로 새로운 세상 혹은 자기 세상을 열어가게 된다. 글이 그냥 쓰기만 한다고 글이 아니듯이..., 논리를 한 번은 스스로 거쳐가 보아야 한다. 쉽게 쓰라고 모든 사람들과 책들이 말하고 있다. 웃기지 말라! 라고 말하고 싶다. 쉬운 글은 어렵게 써보는 훈련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다. 거기서 글이 생성되는 뼈대를 알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가장 어렵다고 생각되는 글을 독파해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어려운 책 내용을 자기 스스로 정리 해보려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럴때 글의 얼개를 알게 된다. 그것만이 자기 것이다. 글이 되는 뼈대를 알면, 그 다음은 글에 시대성과 현대성을 입혀야 한다. 시대성과 현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보는 안목을 갖는 일이다. 이것을 보면 곧 방향성인 것이므로 글은 미래와 맞닿는다. 방향제시가 저절로 생겨 난다.
글은 길든 짧든 구성되는 뼈대가 있다. 그 뼈대에 내용이란 살이 붙여지는 것이다. 뼈대는 쓰고 싶은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면 되고, 내용은 상황에 맞게 각색하면 된다. 뼈대는 모형과 같아서 자기안에 획득된 물질과 같다. 계속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아이디어와 영감이다. 이 내용에 대한 것은 세상이 그 역할을 해준다. 거기서 얼마나 자기 생각과 자기언어로 뽑아내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차의세계 - 내 인생을 바꾼 한 잔의 차....
내 인생을 바꿨다는 것에서...아마도, 글들이 연대기식으로 써지게 되는 함정인거 같다. 해서 "내 인생의 한 잔의 차' 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코너는 자기소개서 쓰듯 글쓰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잔의 차를 접하고나서, 전광석화와도 같은 깨달음을 얻듯이..., 그런 느낌들을 깊게 파고 들어가서 인상적인 부분을 건져내어 글을 써달라는 요구와도 같다. 그러니까, 차를 접하고 자기안의 변화를 가장 인상깊게 주목해서 그 부분을 할당된 페이지에 맞게 글을 써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고흐의 인상주의를 잘 생각해봐도 좋을듯 하다. 한 잔의 차를 접하고 가장 자기가 변화되는 그런 부분에 입각해서, 그 인상적인 부분이 자기에게 충격이나 쇼크로 다가 왔을때를 임팩트있게, 리얼리티를 살려서 에세이 쓰듯 담담하게 써달라는 것이다. 은근하지만 강렬할수도 있고, 강렬하지만 애상할 수도 있는..., 그러니까... ㅋ~ 이 요구는 실로 숙련된 글쓰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보통 사람은 글쓰기가 정착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거나, 혹은 한번도 그런 형태의 글을 써보지 않으면, 유명인이 자기소개식 자서전 쓰듯이 글을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생각과 경험과 교훈을 나열식으로 쓰게 된다. 한 번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싶기 때문이다. 다 담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물론 이를 욕심이라 표현하기는 부적절 할 수도 있다. 이리 되는 이유는 써야 할 글의 뼈대가 잡히지 않아서 이다. 또한, 글을 써서 교훈을 주려고 쓰지 말아야 한다. 다..알아서 생각하고 알아 듣는다. 남 걱정 하지 말고 자기 글을 자기 결대로 쓰면 된다. 이런 교훈 줄 걱정과 욕심을 버리고, 하고자 하는 얘기를 군더더기 없이 자기언어로 쓰면 된다. 무엇보다 나열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다 집어 넣을순 없다. 읽는이도 지루하지만, 무엇보다 글에서 김이 빠져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모티브가 되는 한 부분을 공략하여 깊게 파고 들어가 거기서 다시 글을 넓게 확장시키면 된다.
요즘은 영화도 전기형식을 차용하지 않는다. 한 공간에 가둬서(닫힌계 설정 -수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로 두시간을 울궈 먹는다. 시간상으로 보면 하루 일수도 있고, 몇 시간일수도 있고, 몇 분일수도 있다. 한 대목을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것이다. 거기에도 기승전결 희노애락 깨달음과 분노와 환희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풀어보면 글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그리면 인상주의 그림이 된다. 정말로, 짧은 3~4 페이지 분량의 글에 자신의 인생을 몰아서 넣으려면, 강한 압축이 필요해진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한 부분을 부각하여 깊게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승부를 보아야 한다. 그럴때 강하고도 임팩트 있는 글이 생성 된다.
예를 들자면, 우린 다회를 수 없이 했다. 거기에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별거 없지만, 이 후기를 디테일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써보다 보면, 글쓰기는 금방 는다. 여기에는 관찰이 필요하고 자기만의 위트가 필요하고, 자기가 보는 관점이 필요하고, 구성이 필요하게 된다. 쓰다보면 깨달음도 온다. 환희도 경험하게 된다. 여운을 놓치지 않고 글을 써본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여긴다. 일박이일이든 몇 시간이든 ...그 시간안에 우리가 갇혀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가득차 있다. 에너지가 가득차 있으면 느껴지는 속도도 빠르다. 뜨거운 수증기의 이동이 훨씬 활발하듯이 말이다. 그것을 자기 글로 잡아 낸다는 것도 쉬운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의무감으로라도 해야 한다. 느끼고자 하고 글의 뼈대를 알려면. 그래서 운영진도 하는 것이고 카페지기도 하는 것이다. 귀찮아도 책임감이 글을 써야만 하도록 하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이왕지사 다홍치마인 것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라기 보다는 좋은 것을 타인들에게 주고 싶은 자기 열망을 발견하게 된다.( 해서, 한잔의 차 글쓰기도 기한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 원고를 맞추어서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에 대해서...? 오물을 타인에게 줄 것인가..? 보석을 줄 것인가...? 를 저절로 알게 된다. 이는 물질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자기가 알도록 하기 위해서. 또한 좋아서 활동한다 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글쓰기가 어느 한 공간만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글쓰기가 된다는 것은, 자기인생을 바꾸는 관점이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기도 하며, 자기가 바뀌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글을 내기 위해서 누군가에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삶을 끌어 올려 준다. 글이 갖는 에너지를 이해한다면, 결코 글쓰기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찮은 것은 절대로 하찮은 것이 아니다. 쓸모없다 여기는 것이 가장 쓸모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글쓰기이지만, " (글쓰기) " 라는 괄호 안에는 그 무엇이든 " X " 로 치환하여 보면 다양한 것을 넣어서 꺼낼 수 있다. 글쓰기에만 한정된 글은 아닌 것이다. 물론.
* 제 생각으로 이리 썼으므로, 이 글에 대해서 가타부타 자기 여론은 사절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참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 글을 쓰는 일이 참 고욕입니다. 글을 다룰 줄 알아야 사람의 마음을 다룰 수 있으니까요, 이번 연재들이 저희들에게는 또다른 훈련을 하게 만드네요. 향후 섭외될 분들에게 힘을 드리고 싶어요. 화이팅!
예전부터..그리고 지금도 글로 먹고 살지 않아도 글쓰기에 관심갖는 사람은 많은거 같아요...정치 문화 전문 블로거들의 글쓰기에서 이제 대중적인 글쓰기 시대인거 같아요. 이제라도 다~ 써보면 되는 거겠지요...^^
석천님께서 말씀하신 핵심대로
가이드를 잘 해주셨구려~~~
화이팅!!!
그래서, 석천님도 1주년이 되면 자신의 차한잔의 관한 글을 쓰셔야 할듯.... 분석해부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ㅋ~~~
8월 9월 10월은 팔공산팀으로 갑니다...^^
@아란도 팔공산팀 긴장하겠네요~
모두 야인성향들이라서~~ㅋㅋ
@심곡 이미 정해진듯 합니다. 아마 써야 할듯해요...ㅋㅋ^^